〈 429화 〉 6. 존재 증명(17)
* * *
셀린의 이어지는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셀린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심야 수련을 하러 떠났다.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난 마력의 양에 익숙해지고, 또 손에 익지 않은 무기인 배틀 엑스에도 익숙해지기 위해서였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셀린의 훈련이 소음을 동반한다는 점이었다.
검을 휘두른다고 귀에 거슬릴 정도의 음량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장과 비등한 길이의 배틀 엑스는 이야기가 달랐다. 그 파괴력만큼이나 발생하는 소음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셀린은 마력을 전력으로 투사는 편을 즐긴다. 다시 말해, 무기를 허공에 정지시키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지반에 틀어박힌 배틀 엑스가 어떤 소리를 낼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녀가 굳이 고아원 바깥으로 나서야 했던 이유였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조우가 이루어진 것도 그때였다.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달빛이 어슴푸레 구름의 장막을 뚫고 쏟아지던 찰나, 새하얀 가면이 반사된 빛이 셀린의 망막을 쬐었다.
담벼락을 앞에 두고, 두 남녀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그렇게 말하니까 분위기가 묘하다?”
“닥쳐 봐, 지금 중요한 때니까… 그리고 내가 어디 한 눈 팔 여자야?”
도대체 무슨 한 눈을 판다는 건지.
정작 나는 한 눈을 팔아도 너무 많이 파는 남자였기에, 일단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대화는 없었어. 본능적으로 직감했거든. 저 인간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이상하다니?”
“느낌이 사람이랑 달랐어.”
‘저 인간’이라고 호칭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사람’과 느낌이 다르다니.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할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셀린의 눈빛은 진중하기만 했다.
“좀 더 불쾌한 느낌? 날 바라보는 눈빛도 어딘가 꺼림칙했고.”
“마인이네.”
오랜 경험에 비추어 나는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셀린의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생각해 보니, 셀린은 마인을 마주해 본 적이 없었다.
길포드 씨는 나홀로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북부에서는 셀린이 따라오지 않았으니까.
“평소에 마인은 흉성을 감추고 있거든. 그러다 마인의 힘을 이끌어내면 그렇게 불쾌한 느낌이 드는 거야. 인간이랑 마수 사이에 있는 존재니까.”
“그렇구나… 그럼 내가 기절한 것도 그와 관련이 있는 걸까?”
흐음, 하고 침음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온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마인 중에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는 개체도 종종 있었으니까.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내 입에서 흐릿한 반문이 흘러나왔다.
“그 외에 기억나는 점은 없어?”
“으음, 내가 곧바로 도끼를 휘두르려 했거든? 그런데 그때…….”
번쩍, 하고 눈앞이 새하얘지더니 기절해 버렸다고.
어떠한 조짐이나 전조도 없었을 터다. 있기야 있었겠지만, 셀린의 실력으로는 눈치조차 챌 수 없었다는 뜻이겠지.
나는 그 점이 못내 의아했다.
“정면에서 눈을 마주치고 있었는데 당했다고? 거리도 꽤 있었을 텐데.”
“아하하… 그러니까 말이야.”
셀린은 또 다시 시무룩해져 어색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 낯빛에서 숨길 수 없는 울적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손조차 쓰지 못하고 패배했다는 사실에 우울함을 느끼는 듯했다. 나도 어이없이 적에게 당한 적이 많았으니,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당장 셀린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눈앞이 ‘번쩍’했다는 증언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이린 경도 눈앞이 ‘번쩍’했다는 증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그때는 아이린 경이 워낙 폐급이라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이나 우연이 반복될 리는 없었다. 다시 말해, 이 증언 어딘가에 범인을 특정할 단서가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봐야 지금으로선 짐작조차 가지 않았지만.
나는 헛웃음을 삼키다가, 다시금 셀린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시무룩한 안색이었다.
“미안, 이안 오빠…….”
“또 뭐가 미안해.”
내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기에 알 수 있었다.
셀린이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지를.
무력감은 열등감을 동반한다. 그동안 너무 바쁘다며 무관심했던 탓에, 셀린의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새겨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 점이 못내 안타깝고 슬펐다.
아카데미에 남아 홀로 수련을 하겠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또 아무 도움도 못 됐잖아.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너무 초조해 하지 마.”
나는 탁, 하고 셀린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평소라면 머리 모양 망가진다고 화를 냈겠지만, 오늘의 얌전하기만 했다.
어쩌면 화를 낼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는지도 몰랐다.
“너는 이미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어. 함께 전투에 나선 적도 많았잖아… 그리고 또, 요즘에는 실력이 늘고 있고.”
솔직한 감상이었다.
얼마 전 아카데미에서 셀린을 마주했을 때, 나는 무심코 탄성을 터트린 바 있었다. 셀린의 실력이 상상 이상으로 좋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따스한 음색을 내려 애쓰면서, 나는 셀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대로만 가면 돼.”
“……이대로?”
그제야 셀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어느덧 그 황갈빛 눈동자에는 빛이 사라져 있었다. 음울한 음영만이 드리운 동공은 기묘한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내 목소리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래, 이대로. 너만의 걸음걸이로 나아가면 돼. 사실, 나도 어쩌다 운이 좋아 강해졌을 뿐이잖아. 심지어 내가 상대해야 할 적에 비하자면 턱도 없는 실력이고.”
“하지만, 난 이안 오빠의 도움이 되고 싶어.”
꾸욱, 하고 눌러 담은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셀린을 응시했다.
“짐덩이가 되고 싶지 않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취급은 싫어. 내가 이안 오빠한테 꼭 필요한 존재였으면 좋겠어.”
“셀린…….”
한숨 끝에, 나는 조용히 셀린의 두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살짝 무릎을 꿇자 셀린과 눈높이가 맞았다. 두 사람의 마음이 가장 잘 통할 수 있는 높이였다.
“넌 이미 나한테 꼭 필요한 존재야.”
“진짜로?”
“그래, 당연히…….”
“지난 몇 달 간은 나 없이도 잘만 살았잖아.”
예상 외로 날카로운 말투에 일순 내 말문이 막혔다. 셀린이 이토록 화가 났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해 주리라 판단했다. 우리 둘은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가.
나의 의무, 나의 책임. 그에 따르는 희생을 당연히 감수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너무 이기적이었던 걸까.
“그렇지? 나 없어도 많잖아. 찐따도 있고, 라이넬라 선배나 유르디나 선배도 있으니까. 참, 성녀님이나 황녀 전하도 빼놓을 수 없지?”
“셀린,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알고 있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셀린은 냉랭한 목소리로 단언했다. 단단하면서도 흐릿한 물기가 섞인 음색이었다.
“전부 다, 내 잘못이라는 거…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무엇을, 이라고 되묻을 틈도 없었다.
셀린은 뒤섞이는 울음기를 감추려는 듯 돌아서고 말았다. 단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으스러져라 꽉 쥔 주먹뿐이었다.
“더, 더 강해지면 되잖아. 어떻게든……!”
악물어진 잇새로 새어 나온 결의를 마지막으로, 셀린은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더는 나를 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셀린!”
그렇게 이름을 불러도 셀린이 발걸음을 돌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고아원 쪽으로 향하고 있어 다행이었다. 또 어딘가로 실종되면 어떡할까 했는데.
나는 끄응, 하고 신음을 흘리면서 이마를 짚었다.
“나 보고 어쩌라는 거야…….”
이래서 인간관계가 싫었다. 명확한 정답이란 도무지 존재하지 않아서.
누군가 내게 답을 제시해 주면 어련히 좋으련만.
원망스레 하늘을 올려다 보던 내 걸음이 한 걸음씩 내딛어졌다. 터벅터벅 이어지는 발소리는 일정한 운율로 나의 고뇌를 자극했다.
가면을 쓴 괴한과, 셀린.
그 어느 것도 마땅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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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풀 지친 낯빛이 되어 고아원으로 되돌아왔다.
셀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방구석에 틀어박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차피 만난다고 해서 셀린을 설득할 자신도 없었지만.
그러고 보니, 성녀가 침실로 찾아오라고 했는데.
우울한 심정이 드니 위로를 받은 욕구가 강해졌다. 성녀의 넘치는 신성력을 담고 있는 주머니라면 날 충분히 위로해 줄 수 있으리라.
그러던 내 눈에 띈 사람이 바로 유렌이었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아이들이 노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병정놀이라도 하는 듯, 나뭇가지를 들고 칼싸움을 하는 폼이 꽤 노련했다.
그래봐야 내 눈에는 귀여운 수준에 불과했지만.
아니, 그 이전에 꼬맹이들끼리 아옹다옹하는 모습이 귀엽지 않을 리 없었다. 어느새 내 입가에는 피식, 하고 얕은 웃음이 맺혀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유렌의 옆으로 나란히 섰다. 유렌은 팔짱을 낀 채, 기둥에 몸을 삐딱하게 기대고 있었다.
“어때, 제2의 유렌이 될 싹수가 보이냐?”
내 농담에 유렌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 건조한 소리에서 유렌의 시큰둥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아니? 난 저 나이 때 이미 쾌검술을 익히고 있었어. 나보다 몇 살이나 많은 형들도 나를 건드리지 못했지.”
“그래, 그래….너 잘났다. 임마.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사실이겠지만, 제 특출난 재능을 자랑하는 천재의 모습은 눈꼴 시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니까 아카데미의 검술학부에서도 차석을 차지하고 있겠지.
내가 무심코 반론을 제기한 이유였다.
“뒤늦게 재능을 발견할지도. 삶은 길고, 저 아이들한테는 더 길 테니까.”
“글쎄…….”
내 지당한 의견에도 유렌은 여전히 회의적인 기색이었다.
“그때까지 살아갈 수나 있을까? 그리고 검의 길도 인생에 못지 않게 길거든. 나도 어린 시절에는 내가 천재인 줄만 알았지.”
“천재 맞잖아?”
나로서는 황당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아카데미 검술학부의 차석, 성국이 자랑하는 쾌검술의 달인이 천재가 아니라면 누가 ‘천재’란 말인가.
그러나 담담히 의견을 밝히는 유렌의 목소리에서는 한 톨의 겸양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랬지. 하지만 검은 만만한 도구가 아니야. 다루면 다룰수록 약점이 보이고, 자꾸 고치려 발버둥치다 보면 오히려 엉망진창이 될 때가 있거든.”
“……’벽’이구나.”
그제야 나는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동감을 표했다.
‘벽’, 그것은 내가 마주하고 있는 최대의 난관이기도 했다. 오러는 점점 강해지고, 검술도 정교해지는데, 정작 오러의 특성이 개화하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수없이 고민을 반복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음에 미래의 ‘나’를 만나면 조언이라도 구해야 하나.
그러는 사이, 유렌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미쳐버리는 줄 알았지. 나는 가만히 있는데, 내 옆에 있던 사람은 벌써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더라고. 내가 그 옆에 서야 하는데,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유렌의 입에서 흐, 하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왜 신세 한탄을 늘어놓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듯이.
“그러다 ‘심마’에 빠지는 거야. 뭐, 이제는 상관 없지만… 그보다, 알아낸 정보는 좀 있냐?”
유렌이 던진 질문의 의도는 꽤 명확했다. 지금 우리 일행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정보는 하나뿐이었으니까.
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젓는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번쩍’ 했다더라.”
“그건 나도 할 수 있는 말인데.”
그 지적에 내놓을 반론은 없었다. 그저 어깨를 으쓱였을 따름이었다.
우리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고, 고민에 빠진 두 남자는 멍하니 아이들이 노는 꼴을 구경했다. 그러던 유렌의 눈이 어느 순간 번뜩였다.
“그럼 순식간에 당했다는 뜻이잖아? 아니면…….”
내 얼떨떨한 시선이 유렌의 눈동자를 쫓았다. 그곳에는 병정놀이를 하는 사내아이들에 맞서, 마녀라도 되는 듯 깨진 사기그릇에 잡초를 으깨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마법이라든가.”
그리고 다시 정적.
침묵은 길지 않았다. 나는 곧장 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엘시 선배를 찾아봐야겠어. 그리고 수정구를 좀 준비해 줄래? 아카데미에 연락해 봐야겠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마법 전문가는 일행 중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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