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0화 〉 6. 존재 증명(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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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사들은 세상의 은폐된 규칙들을 탐구한다.
신화에 따르면 먼 옛날 아루스가 빛과 함께 탄생했고, 따라서 어둠이 나타나니 그 자의 이름이 오메로스였다. 태초의 질서는 그때부터 정립되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은 불가분한 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광원이 존재하는 곳에는 으레 그림자가 생기며, 빛이 불을 잉태하고 있으므로 어둠은 물을 잉태한다.
그러므로 빛과 열이 넘치는 곳에서는 물이 사라지며, 어둡고 찬 곳에서는 불이 자취를 감추기 마련이다. 이러한 규율들은 무척 정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를 모두 알고 있는 자는 오직 천신 아루스뿐이다.
그가 상징하는 이성과 지혜는 이를 의미했다. ‘전지(??)’야말로 ‘전능(??)’를 이루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지혜는 천신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오메로스가 온갖 생명의 육체를 지을 때, 아루스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지혜의 조각을 조금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천신의 은혜를 특히 많이 입은 존재들도 있었다.
그들이 바로 용이었고, 용은 이내 스스로 진리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수천 년이 지나 용이 사라질 무렵에는, 인류가 그 은밀한 진리의 파편을 이어받았다.
그것이 마법의 시초였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있는 만큼, 마법사들의 지식욕은 무시무시한 면이 있었다. 해명되지 않은 모든 현상들이 그들의 연구 주제였고,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민중은 마법사를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들은 모르는 것이 없는 지식인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식을 위해 인륜을 져버리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야 할 때도 있는 법.
특히 마법에 관련된 문제는 마법사에게 문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나의 일장연설에 엘시 선배는 황당하다는 얼굴이었고, 수정구 너머의 화상으로 떠오른 황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주인님… 설마 나를 의심하는 거야?”
“도, 동감이에요! 이안 경, 전 선량한 마법사라고요. 애완용이 주인을 무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저보다 음모와 거리가 먼 마법사는 없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아니, 애초에 ‘애완용’이라는 개념이 생소한데.
그러한 말이 목구멍까지 치달았지만, 나는 일단 오해를 풀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니, 아니. 엘시 선배나 황녀 전하가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혹시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다는 소리죠.”
예를 들어, 금단의 지식을 탐하다가 암흑교단의 손을 잡은 마법사라든가.
너무나 현실성 있는 가설이라 엘시 선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이처럼 마법사들조차 마법사라는 족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잠시 후, 머뭇거리던 엘시 선배의 입에서 옅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야, 가능성이야 있지만…….”
“그렇다면 무얼 대가로 받았을까요?”
그나마 마법사의 명예를 지키려는 엘시 선배와 달리, 황녀의 추론은 거침이 없었다. 오히려 연회색 눈동자를 흥미로 반짝이고 있을 정도였다.
“오래 전에 실전된 새로운 체계의 마법? 인간이 손 대서는 안 될 금단의 지식? 아아, 혹시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암흑 원소 반응에 대한 정리라도…….”
“황녀 전하, 그쯤 하세요.”
엘시 선배의 무기질적인 타박이었다. 황녀는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더니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는 꼴이, 위험한 발언을 했다는 자각은 있는 모양이었다. 보다 눈치가 빨랐다면 좋았을 뻔했지만 말이다.
나는 한숨과 함께 엘시 선배를 추켜세우려 했다.
“역시, 믿을 사람은 엘시 선배밖에…….”
“암흑 원소 반응은 공상에 불과해요. 이미 수천 년 동안 연구했는데 명확한 정리가 나오지 않았잖아요? 차라리 빛 원소와 전기 원소의 전환 반응에 대한 연구에 도움을 받았다면 몰라.”
정작 엘시 선배는 내 기대를 어김없이 배신했지만 말이다.
나는 깨달았다. 이 세상에 신뢰할 수 있는 마법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도 우리는 델피렘에 맞서 인류를 구할 사명이 있는 일행이 아닌가. 헌데 그 일원이 암흑교단에 협력하는 대가를 흥정하고 있는 꼴이라니.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든 말든, 두 사람은 저마다의 논리에 몰입하고 있었다.
“아, 아닌데요?! 암흑 원소 반응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근거도 없잖아요! 암흑 원소의 존재를 부정하면 해명되지 않는 문제가 너무 많아져요.”
“모아서 보면 그렇게 보이겠지만, 흩어놓고 보면 개별 이론의 영역에서 충분히 해명이 가능하잖아요? 애초에 암흑 원소 자체의 존재 유무부터 불분명해요. 암흑은 빛 원소의 부재 상태라고 보는 편이 오히려 더 타당하죠.”
“당신, 지금 우리 델로스 학파를 모욕하는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두 마법사의 논쟁은 더욱 거칠어졌다. 내게는 쓸데없는 말다툼으로 느껴질 뿐이었지만, 이에 응하는 엘시 선배와 황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보였다.
당장 황녀만 해도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마당이었다. 너무 흥분한 탓인지 마지막에 발음이 다소 새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엘시 선배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여유를 가장하고 싶은 모양인데,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모욕? 객관적인 사실을 호도하는 표현은 그만둬 주시겠어요? 하기야, 델로스 학파처럼 낡은 모임에서 이론의 혁파 따위가 이루어질 리 없지만.”
“당신, 말 다했어?! 델로스 학파는 엄연히 제국 황실의 인정을 받은 주류 학파……!”
“그만, 그만.”
슬슬 분위기가 과열되던 차라 나는 황녀를 만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대는 황녀의 모습은 꽤 오랜만이었다.
처음 만났을 적의 황녀가 떠오를 정도였다.
그때의 총명하고 음험해 보이던 소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는 본론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다들 진정하시고, 일단 우리 이야기부터 나눠봅시다. 실력 있는 기사를 단번에 제압할 만한 마법이 존재합니까? 또, 피시전자의 눈앞이 ‘번쩍’해야 합니다.”
새로운 논제가 마법사들의 입을 무겁게 만들었다.
의문의 해소는 탐구자들의 의무나 다름없었다. 이내 새로운 토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기사를 단번에 제압했다면, 거리는 얼마 정도지?”
“아무리 거리가 있더라도 기사를 눈앞에서 제압하긴 힘들어요. 영창조차 필요 없는 즉발성 마법이겠죠.”
“하지만 즉발성 마법의 위력에는 한계가 있어. 단발로 실력 있는 기사를 제압하는 것이 가능한가?”
“기사보다 월등히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라면 가능하겠죠. ‘마법’이라는 가능성을 제외해도 그렇겠지만요.”
결론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결국 중요한 건 마법의 종류겠군요. 어떤 종류의 마법이 눈앞이 ‘번쩍’하는 느낌을 줄까요?”
“실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걸?”
명쾌하면서도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하기야 피시전자의 경험을 시전자가 알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특히 눈앞이 ‘번쩍’한다는 느낌을 준다는 설명은 특기할 만한 사항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실험해 봐야겠네요.”
내 떨떠름한 목소리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실험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실험 대상이 문제였다.
눈앞이 ‘번쩍’하더니 기절하는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터였다. 물론 이는 나도 마찬가지로, 차마 자원하겠다는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엘시 선배도 내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는 듯했다. 상냥한 미소와 함께, 소녀의 입에서 대안이 흘러나왔다.
“고아나 몇 명 데리고 올까?”
“인성에 문제 있습니까?”
어이가 없어 되묻는 내게, 황녀가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그럼, 아이린 경이라도……?”
이쯤 되니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두 손을 들며 고집을 꺾는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 좋습니다. 제가 할게요.”
엘시 선배와 황녀의 고개가 갸웃 기울었다. 굳이 내가 나서는 까닭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어차피 설득이 통할 상대도 아니었다. 나는 망설이는 엘시 선배를 재촉했다.
“기절할 정도로만 위력을 조절해 가며 해봅시다. 엘시 선배의 전문 분야잖아요.”
정확히는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괴롭힐 때 쓰던 기술이었다. 엘시 선배도 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보였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따로 있었을 뿐.
“아무리 그래도 내가 어떻게 주인님을…….”
“부탁드릴게요.”
내 강경한 태도에 엘시 선배는 끄응, 하고 신음을 흘렸다. 슬쩍 시선을 피하고 있던 소녀의 검지에 전하가 맺히기 시작했다.
“……원망하기 없기다?”
그렇게 고난의 연속이 이어졌다.
첫 번째 마법, 전기 충격.
혈관을 타고 바늘이 비죽비죽 튀어나오는 감각이 느껴지는 듯하더니, 나는 어느새 기절해 있었다.
눈앞이 새하얘지는 충격이었다.
뒤이어 두 번째 마법, 빛의 범람.
바닥에서 전하를 들끓자 근육이 멋대로 위축되었다. 땅바닥에 엎어지자마자 기억이 삭제됐다.
눈앞이 새하얘지는 아픔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기절, 기절, 기절.
슬슬 짜릿한 통증에도 익숙해질 무렵, 나는 고성을 내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뭘 당하든 눈앞이 새하얘지잖아요!”
“감전에 수반되는 전형적인 증상인가 본데?”
내 입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래서는 실험을 하는 의미가 없었다. 엘시 선배는 전격 마법사였고, 공용 마법 몇 가지를 제외하면 마력의 형질 자체가 전하를 띠고 있었다.
당연히 무슨 마법을 동원해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마법사를 구해야 하나. 내가 실의에 잠겨 있을 무렵이었다.
“이안 경, 반대로 아이린 경이나 하스터 양도 감전을 당했을 수도 있잖아요?”
“그야 그렇죠. 하지만 그래서는 단서가 너무 부족합니다. 전격 마법을 쓰는 마법사는 세상에 너무 많아요.”
“글쎄요.”
황녀는 검지로 입술을 톡, 톡 두드리며 고민에 잠겼다. 흐으음, 하고 눈을 감은 여인의 낯빛에는 고심의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편이 좋겠어요. 사실 가면의 괴한이 목격된 건 세 번이지만, 눈앞이 ‘번쩍’했다는 증언은 두 건밖에 수집되지 않았아요. 왜냐하면, 전 그날 기척을 들키지 않았으니까.”
“그런다고 달라지는 사실이 있습니까?”
“있죠.”
황녀는 의기양양하게 검지를 치켜들었다. 어떠한 결론에 먼저 도달한 모양이었다.
“가면을 쓴 괴한이 되는 법은 간단해요. 가면만 쓰면 누구나 괴한이 될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북부에서 목격된 가면의 괴한과, 페르쿠스 저택과 성국에서 목격된 가면의 괴한은 별개의 인물일 가능성이 있어요.”
“하지만, 둘이라고 해봐야…….”
“세상에 전하를 다루는 마법사는 많지만, 기사를 단숨에 제압할 만큼 솜씨 좋은 마법사는 드물어요. 그러한 인물이 형편 좋게 주위에 널려 있을 리는 없죠. 따라서 후보군은 단숨에 좁혀집니다.”
황녀가 내뱉는 추론은 설득력이 있었다. 어느덧 나 또한 황녀의 말을 따라 사고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래, 실력 있는 마법사는 드물다. 심지어 셀린은 몰라도, 아이린 경은 익스퍼트에 이른 무인이었다. 이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동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페르쿠스 저택과 고아원에 잠입이 가능하고, 솜씨 또한 월등하며, 전격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라.
내 등 뒤로 식은땀이 배이기 시작했다.
황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한 것이다.
나는 다급히 황녀를 만류하려 들었다.
“황녀 전하,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레이놀드 라이넬라 경.”
그러나 차마 내 말이 끝맺어지기도 전에, 황녀는 싱긋 웃으며 우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밖에 없네요. 눈치를 채기 전에 뒤를 밟아야…….”
“야.”
스산하고 차가운 목소리, 황제의 핏줄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 울림의 진원지가 어디일지는 뻔했다. 황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굳어버린 사이, 나는 슬쩍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엘시 선배였다.
블루 사파이어를 닮은 푸른 눈동자가 극지의 한기를 품고 있었다.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은 도리어 엘시 선배의 분노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었다.
끝났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
결국 황녀는 심상찮은 분위기에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눈치가 없는 게 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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