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5화 〉 6. 존재 증명(23)
* * *
‘가면의 괴한’.
암흑교단의 동료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다. 새하얀 가면을 쓰고 나타나며, 그 모습을 목격하는 찰나에 기절해 버린다는 특징이 있기도 했다.
내 동료들이 그를 목격한 적은 세 번에 달했다. 그러나 나와 얼굴을 마주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무려 네 번째.
당연히 우연일 리는 없었다. 그 사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이 전투가 이를 알아낼 좋은 계기가 되어 주기를 바랐다.
비로소 만난 적의 모습을 철저히 망막 위에 새긴다.
상대는 아이린 경을 단번에 기절시킨 강자였다. 나라고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뇌리에 우겨 넣어야 했다.
우선 분위기가 특이하다.
남자인가, 여자인가. 그러한 언급이 없었던 까닭이 이해가 갔다.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체형이었다.
얇은 허리는 여성을 연상시켰지만, 평탄하고 단단한 근육은 남성의 특징이었다. 심지어 목젖도 애매한 수준으로 부풀어 있었다.
무엇보다 가면의 괴한이 품고 있는 기묘한 분위기.
인간과 괴물 사이에 애매하게 걸친 그 애매한 느낌이, 자꾸만 내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 잡종을 당장이라도 쳐내라는 듯이.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으나, 괴한의 인상은 내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마치 시간이 정지라도 한 느낌이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고요한 침묵 가운데, 나는 미미한 대기의 진동을 읽어냈다.
무언가가 온다.
그 사실을 깨우친 순간 내 상체가 사선으로 젖혀졌다. 가슴팍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지나가는 기다란 궤적이 느껴졌다.
어떻게?
제대로 반응조차 불가능한 속력이었다. 최근 오러가 성장하며 감각이 진일보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을 터였다.
예기(??)인가, 둔기(??)인가.
그조차도 불분명했다. 심지어 상대는 이미 내가 던져둔 손도끼에 대응해야 할 참이었다.
수수께끼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풀렸다.
일직선을 그리던 내 손도끼가 무언가에 강타당해 허공을 표류했다. 그리고 정중동의 묘리를 쓸 만한 시점에 맞추어, 연달아 몇 개의 타격이 이어지기까지.
내 전투 방식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급히 젖힌 상체를 굽히며 땅을 박차고 쏘아졌다.
그새 가면의 괴한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며 도주할 기회를 살피고 있었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어디 가, 임마!”
급한 대로 나는 검을 집어던졌다.
전투 중에 이토록 마음이 조급했던 적이 얼마만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주무장과 보조무장을 전부 내던져서라도, 저 ‘가면의 괴한’을 붙잡아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내게도 위험 부담이 있는 행위였다.
그런 만큼 상대도 내 선택을 의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등을 돌려 도주하려던 가면의 괴한이 처음으로 멈칫거렸다.
땅을 박차는 내 발바닥에 묵직한 압박감이 전해져 왔다. 전력을 다해 내달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때, 나는 또 다시 묘한 떨림을 느꼈다.
직후 내 몸이 땅 위를 구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새로 깨닫는 바가 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정신을 집중하니 삐하는 옅은 이명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방금 전 고성을 내지를 때까지만 해도 내 청력은 멀쩡했으므로, 가능성은 두 가지뿐이었다.
지금 막 귀가 멀었거나, 특정한 시점마다 청력이 상실되거나.
그와 동시에 나는 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파편을 감각했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눈치 채지 못했지만, 옷이 펄럭이고 있었다. 억지로 고개를 치켜드니 이는 가면의 괴한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전조도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단지 너무나 빨랐을 뿐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고, 마법처럼 느껴졌을 뿐.
가면의 괴한은 육체파였다.
내가 다시 튕겨 오르듯 몸을 일으키는 동안, 내던진 검은 처량한 몰골로 몇 차례 허공을 배회해야 했다. 그 짧은 시간이라도 벌 수 있는 것이 어디냐 싶었다.
때마침 손도끼가 내 손으로 빨려 들어오듯 안착했다. 그간의 성과 덕이었다.
내가 발전시킨 분야는 오러뿐만이 아니었다. 전반적인 실력의 상승에 힘입어 비전에 대한 이해도 높아진 것이다.
당연히 정중동의 묘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근의 나라면, 이전보다 한 번에서 두 번 정도의 변화를 더 줄 수 있었다.
그 결과가 지금 내 손에 들어와 있었다.
어느덧 가면의 괴한을 목전에 둔 내 팔이 망설임 없이 휘둘러졌다.
쾅!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이명조차 가리지 못할 만큼의 진동이었다. 나는 드물게도 두 손으로 손도끼를 쥐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힘에서 밀릴지도 몰랐으니까.
마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신체 능력이 앞서고 있다고 가정해야 옳았다.
그리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 증명되었다.
한 치의 양보조차 없었다.
내 손도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거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이지 않는 무기? 아니, 혹시 마법인가?”
이미 내심으로는 마법사가 아니라 단정 지은 뒤였지만, 만일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물론 가면의 사내는 내게 대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우묵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을 뿐. 아니, 응시한다고 해야 할까?
애초에 새하얀 가면에는 눈이 나올 틈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물건이었다.
시력 따위는 필요 없다는 뜻이겠지.
너무나 마인다운 판단이었다.
이를 악물며, 나는 더욱 힘을 주어 가면의 괴한을 몰아붙였다. 흐릿한 신음 소리로 보아, 괴한 또한 여유가 넘치는 상황은 아닌 듯했다.
“대답 안 해? 그래도, 뭐…….”
도끼날 위에서 춤을 추던 은빛의 오러가 단단해진다.
“……상관없지만!”
결집된 오러는 이내 안개처럼 흩어지고, 그 이변에 가면의 괴한이 머뭇거리는 사이 내 도끼가 투명한 무구를 튕겨내 버렸다.
결(?)과 해(?)였다.
그럼에도 상대의 무구에는 어떠한 변화도 일지 않았다. 흐릿한 은빛이 보이다 말 뿐이었다. 다시 말해, 일시적인 마력의 결집으로 만들어진 현상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무기구나.
그것도 굉장히 귀한 물건이었다. 순간적으로 무구를 두르고 있던 마법이 풀릴 뻔했으나, 금세 수복되지 않았는가.
나는 내친 김에 한 발자국을 내딛어 간격을 좁히려 시도했다.
그보다 먼저 사내가 무기를 거두고 물러나지 않았다면, 내 손도끼가 사내의 가슴팍을 치고 지나갔을지도 몰랐다.
노련한 판단 능력.
수많은 실전을 거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축복이었다. 역시 직접 무기를 맞대봐야만 알 수 있는 정보도 있었다.
아이린 경이 조금만 더 유능했다면.
일순 아쉬움이 내 머릿속을 스치긴 했으나, 아직 잡념에 빠져 있을 때는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다시금 공세를 이어가려던 찰나였다.
새하얀 가면의 각도가 살짝 틀어졌다.
응시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눈을 완전히 가린 만큼, 시력은 의미가 없을 텐데.
나는 이내 그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가면의 괴한은 핏물을 흘리며 쓰러진 페리를 바라보려 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게 그렇다는 느낌을 주려 했다.
일종의 양자택일이었다.
더 싸우겠느냐, 저 사내의 목숨을 구하겠느냐.
고아원에는 성녀가 머물고 있었다. 부상이 깊어 보이긴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목숨만은 끊어지지 않은 채였다. 살리고자 한다면 살릴 수는 있었다.
대신 가면의 괴한은 도망쳐 버리겠지만.
내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든 말든, 내 피부에 흐릿한 진동이 전해졌다.
또 다시 온다.
이를 직감한 내 이가 으스러질 듯 악물어졌다. 결국 내 선택은 하나였다.
“이, 씹새끼가……!”
몸을 던지듯 내 손도끼가 가상의 궤적을 강타했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도끼가 튕겨나갔으나, 피격 당한 무언가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궤도가 완전히 틀어졌다는 사실이 손을 타고 흐르는 떨림으로 느껴졌다.
너무나 갑작스레 방향을 튼 탓에, 내 자세는 온전치 못했다. 반탄력을 온전히 감내할 수 없을 만큼.
그 틈을 타 가면의 괴한은 자연스레 도주를 택했다. 남겨진 나는 이를 갈면서도 추적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선 페리를 살려야 했다. 또 도주하는 괴한의 속도가 상상 이상이기도 했고.
쫓아봐야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쓰러진 사내 하나와, 덜덜 떨리는 다리로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연민이 어린 눈빛으로 리아를 바라보던 내 시선이 페리에게로 이동했다.
죽을 뻔했다. 가면의 괴한은 진심으로 페리를 죽이려 했다.
도대체 왜?
부디 그 해답이 사건의 결정적인 실마리로 연결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달이 밝았다. 신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내려주지 않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
엉엉 울던 리아를 달래 보내고, 나는 벽에 몸을 기댄 채 누군가를 기다렸다.
방의 구석에 침상에서 새하얀 빛이 일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쯤, 이내 등을 돌리며 피곤한 안색의 여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성녀였다.
내 입에선 다짜고짜 질문이 흘러나왔다.
“어떻습니까?”
“생명에 지장은 없어요.”
이미 내 물음 따위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성녀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의식을 잃긴 했지만,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정신을 차릴 거예요. 당신처럼 몸을 막 다룬 사람은 아니라서요.”
“그것 참 다행이군요.”
은근한 가시가 숨어 있는 말을 받아 넘기며, 나는 슬쩍 페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숨소리가 안정되어 있었다. 아직 얼굴에는 고통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이 또한 얼마 후에는 사라질 터였다.
오히려 내 걱정거리는 따로 있었다.
“……확실히 의식을 잃은 겁니까?”
“네, 설마 제가 그것도 모르려고요?”
그럼에도 나는 안심을 하지 못해서, 결국 성녀의 손을 붙들고 실외로 향해야 했다. 성녀는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기색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말해야 할 시점이었다.
“혹시 페리의 상태를 자세히 살피셨습니까?”
“당연히 살폈죠. 최소한 환자를 돌보는 데 있어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아요.”
내 말이 모욕이라도 된다는 양 성녀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나라서 이 정도였지, 남이 이러한 의심을 꺼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했을 공산이 컸다.
사실 나도 다소 조마조마하기는 했다.
성녀의 성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중 하나가 나였으니까.
하지만 해야 할 말은 해야 했다. 한결 조심스러워진 질문이 이어졌다.
“무언가 마법의 흔적이 있다던가…….”
“암흑교단의 조종을 받고 있냐고요? 그런 건 전부 다 티가 나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성녀는 과연 눈치가 빨랐다.
내가 무얼 걱정하는지 곧장 눈치 채고 조곤조곤 설명을 늘어놓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성녀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정보가 남아있었다.
“그, 한 번만 더 살펴 보시면 안 되겠습니까? 감지가 까다로운 종류의 계약 마법도 존재한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지난번에 성국의 군영에서 리아를 습격한 얼굴 없는 괴한들도…….”
“이안.”
나지막하고, 강한 음색이었다.
그렇게 확신을 담은 설득이 이어졌다.
“무얼 걱정하는 줄은 알겠어요. 그런데… 조사해 본 결과, 샤일록 상회는 딱히 수상한 구석이 없어요. 자금 출처도 깔끔하고요. 또 설령 샤일록 상회가 숨겨진 암흑교단의 지회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이 고아원과 관계는 없어요.”
“어째서입니까?”
“이 고아원은 성국이 운영하는 곳이니까요.”
나는 끄으응, 하고 침묵에 잠겼다. 슬쩍 내 시선이 측면을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믿기 힘들다고 하고 싶었다.
다만 일국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에게, 당신의 조국도 의심스럽다는 말을 어찌 꺼낼 수가 있겠는가.
성녀의 주장에는 나름의 근거도 존재했다.
“아무리 샤일록 상회가 일을 꾸미고 싶더라도, 이곳에서 아이나 상품을 데려가는 이상 성국의 감시가 따라붙어요.”
“이곳의 총책임자는 아인델 총주교 아닙니까? 그, 성녀님과 적대 관계라던…….”
“아인델 총주교 또한 성직자에요.”
그와 함께 성녀의 가녀린 검지가 척, 하고 치켜세워졌다. 그리고 이내 그 끝으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새하얀 빛무리.
나는 성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주께서 내려 주신 기적을 허락받은 인물이라고요. 몇 가지 흠결이 있을 수는 있어도, 하늘에 계신 우리 주님을 배신할 수는 없어요.”
그러한 인간에게 천신이 신성력을 허락할 리가 없으니까.
성녀가 굳이 덧붙이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논거의 핵심이라는 사실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마땅히 떠오르는 반박은 없었다.
솔직히 말해, 종교는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렇게 믿겠다는 사람을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이쯤 되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살펴 주시죠.”
“이안…….”
막무가내에 가까운 부탁이었다. 성녀 또한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한창 잠을 자던 중에 깨어난 참이었다.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성녀의 입에서 흐릿한 열기가 토해졌다.
“자신 있어요? 제 말을 그렇게 못 믿겠다는 건가요?”
“아니, 꼭 그렇다는 건 아닌데…….”
“좋아요.”
으득으득 이를 갈면서, 성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나를 향했다.
“다시 제대로 검사해 볼게요. 아예 핏줄과 내장까지, 싸그리… 그러고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각오해요.”
성녀의 태도가 전에 본 적 없이 강경했다. 나는 괜히 불안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성녀는 화가 난 티를 팍팍 내며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더니 페리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식은땀까지 흘리는 모습으로 보아, 무척이나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야단 났다. 화난 성녀를 달래 주려면 못해도 몇 시간은 써야 할 듯 싶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헐떡이며 눈을 뜬 성녀는, 멍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어라?”
잠깐 졸고 있던 내 눈이 번쩍 뜨였다. 누가 봐도 성녀는 당황한 얼굴이라, 나는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됐구나.
이를 눈치 챈 직후, 나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는 듯 의기양양한 태도로 되물었다.
“각오는 끝났습니까?”
‘페리 쿠아르스’.
그의 몸속 깊숙한 곳에는, 암흑교단과의 계약이 자리 잡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