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9화 〉 6. 존재 증명(27)
* * *
‘얼굴 없는 괴한’.
일전에 리아를 습격한 적이 있던 존재였다. 암흑교단의 계약 마법이 몸과 마음을 장악해서, 스스로 사고하거나 행동할 수 없는 불행한 꼭두각시라고 했던가.
그 외모 또한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지점토를 뭉개놓은 듯한 얼굴은 이목구비가 명확하지 않았다. 비스듬히 뜨인 실눈에, 코는 높낮이가 사라져 비공만이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입술조차 지니지 못한 안면은 입의 경계조차 흐릿했다.
이러한 괴물들이 여러 명, 나와 성녀를 포위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어디서 나타난 걸까.
기척조차 제대로 눈치 채지 못했다. 나는 이 점이 유독 의문이었다.
성국의 군영에서 만난 검은 머리의 여인도 그렇고, 이 얼굴 없는 괴한들도 일부러 존재감을 지우기라도 한 듯 기척이 감지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 위에 선 느낌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차차 조사해 보면 되리라.
그보다는 먼저 성녀를 보호해야 했다. 내 손아귀에는 어느덧 검 손잡이가 쥐어져 있었다.
손도끼가 진동을 시작한다.
이미 얼굴 없는 괴한 하나의 골통을 박살낸 뒤였다. 정중동의 묘리에 힘 입은 도끼날이 다시금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의외였던 사실은, 지난번과 달리 얼굴 없는 괴한들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점이었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손도끼가 튕겨 나갔다. 근래 들어 급성장한 내 실력을 고려하면, 놀라운 선전이었다.
익스퍼트, 혹은 그에 준하는 실력자이리라.
심지어 이러한 선전을 보이는 괴한은 한둘이 아니었다.
몇 자루의 단검이 허공에 기기묘묘한 궤적을 그렸다.
단검 자체는 싸구려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담긴 마력이 범상치 않았다. 내 눈앞에 가상의 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명백히 성녀를 노리고 던져진 단검이었다.
아니, 비단 단검뿐만이 아니었다.
담벼락을 타 넘은 괴물들은 하나같이 성녀를 향하고 있었다. 내 손도끼를 쳐낸 검사 괴한마저 나를 무시하고 성녀를 노려보고 있을 정도였다.
당연히 이를 두고 보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어딜 가… 이 새끼야!”
나를 지나치려던 검사 괴한의 옆구리에 발길질이 틀어박혔다. 괴물은 숨 넘어가는 소리조차 없이 땅바닥을 몇 차례 구르더니,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친 것은 그때였다.
콱, 하고 허공을 회전하던 손도끼가 빛의 폭포가 되어 떨어져 내렸다. 그럼에도 두개골이 으깨지지 않아, 마치 장작을 패듯 손도끼는 상하 운동을 반복해야 했다.
팍, 팍, 팍.
나는 규칙적인 소음을 배경으로 검을 집어던졌다.
성녀에게 날아드는 단검들을 향해서.
성녀는 마침 깜짝 놀라 자세를 낮추던 참이었고, 그 위를 교차하듯 내 검이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붓질을 하듯 허공에 새겨지는 은빛의 커튼.
해(?)를 응용한 기술이었다.
오러의 안개에 닿은 단검들이 제멋대로 폭주하며 충돌하기 시작했다. 마력이 흩어지며 궤적이 제대로 고정되지 못한 탓이었다. 나는 그 틈을 타 성녀에게 다가섰다.
고작해야 몇 걸음, 성녀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않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흔들리는 연분홍빛 동공이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깜짝 놀랐을 테지만, 성녀는 섣불리 소리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단지 필사적으로 고민을 거듭하는 눈빛이었다.
무엇이 최선의 수일지, 어떻게 행동해야 내게 이익이 될지.
어느덧 전장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깜짝 놀랄 때마다 비명을 내지르곤 했는데.
나는 우선 성녀를 안심시켜 보기로 했다.
“성녀님, 괜찮… 큭?!”
그러자 훅, 하고 짓쳐드는 주먹이 하나.
순식간에 다가온 괴한은 단련된 육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 품새부터 성국의 무투가라는 티가 났다.
이대로 물러난다면 괴한의 팔꿈치가 곧장 성녀의 등을 내리찍겠지.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던 팔을 붙잡고 몸을 빙글 돌려 괴한을 땅에 메쳤다.
쾅!
강한 충격파와 함께 괴물의 전신에 경련이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우적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들어서, 나는 전력을 다해 괴물의 머리를 걷어차야 했다.
빡, 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괴한 하나의 움직임이 멎었다.
이제야 겨우 둘.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살아 움직이는 괴한은 넷이나 더 있었다.
특히 단검을 들고 있는 녀석이 거슬렸다.
원거리에서 궤도를 조정할 수 있는 상대는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특히나 지켜야 할 사람이 있을 때라면 더더욱.
정중동의 묘리가 얼마나 대응하기 까다로운 기술인지, 나는 이제야 체감할 수 있었다.
성녀가 침묵을 깬 것은 그때였다.
“……너무 정교해요.”
“네?”
내겐 몇 토막의 여유조차 남아있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내뱉은 반문에, 성녀가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이안, 잠깐만 저를 방치해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나는 무심코 차오르는 의문을 참아냈다.
성녀에게도 무언가 수가 있을 터였다.
다만 걱정되는 마음을 온전히 털어낼 수는 없어서, 내 걱정스러운 시선이 성녀를 향했다.
성녀는 탁탁 제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어서요. 대신, 저 단검 던지는 괴물은 당신이 상대해 주세요.”
진중한 음색이었다. 결국 나는 끄응, 하고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돌려야 했다.
동료를 믿는 것도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그 직후, 우리 둘을 주시하고 있던 괴한들이 일시에 습격을 재개했다.
또 다시 던져지는 칼날, 성녀에게 달려드는 나머지 셋.
나는 땅을 구르며 바닥에 떨어진 검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단검을 하나하나 쳐냈다.
캉, 캉, 캉!
불꽃이 튀길 때마다 단검들이 허공을 비산했다. 한 걸음씩 나아가던 내 남은 손에 단검 하나가 쥐어지고, 이내 빛살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쏘아졌다.
팍, 하고 이마를 꿰뚫린 괴물의 몸이 발작적으로 움직였다.
죽어도 멈추지 않는 투척을 멈추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서걱, 하고 은하수가 단검의 폭풍을 가르고 흩뿌려졌다.
절단된 팔이 땅바닥에서 꿈틀대며 발악을 했다. 그럼에도 지지대를 잃은 팔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남은 팔 하나가 절단되기를 기다릴 뿐.
그렇게 내가 괴한 하나의 사지를 분해했을 무렵이었다.
“……빛이여!”
순백의 폭발이 망막을 새하얗게 덮고 지나갔다. 은은한 온기와 함께 활력이 돋는 것으로 보아, 신성력이 분명했다.
이처럼 밀도 높은 신성력을 광범위하게 투사해 내다니.
언제 보아도 불합리할 정도로 많은 신성력이었다. 정작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은 별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얼굴 없는 괴한들의 반응이었다.
크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엑!
성녀의 신성력에 닿은 괴물들이 그 자리에 엎어져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제 목을 두 손으로 조르고 있는 개체부터, 살충제에 닿은 바퀴벌레처럼 몸부림을 치는 개체까지.
말라붙은 피부 위로 금빛의 광채가 비치고 있었다. 안온한 빛이 불꽃처럼 괴물들의 내부를 메꾸었다.
단순히 신성력에 접촉했을 뿐인데도 이렇다고?
내 눈이 의혹으로 물들었다. 신성력은 애초에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힘이었다. 강한 효과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육체를 지닌 존재에게 가할 수 있는 피해는 제한적이었다.
언데드라면 몰라.
그럼에도 성녀는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 예상하고 있던 결과라는 듯, 사뿐사뿐 걸음을 내딛어 몸부림치는 괴한 중 하나의 멱살을 쥐었을 뿐이었다.
으득, 하고 성녀의 잇새로 억눌린 물음이 새어 나왔다.
“……당신, 누구야.”
당연히 이성을 잃은 괴물이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단지 버둥거리며 성녀의 손을 떼어내려 할 따름이었다.
결국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야 했다.
“성녀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왜 이 괴물들이 신성력에…….”
“조종당하고 있었어요.”
내 말문이 자연스레 막혔다.
너무나 뻔한 대답이기는 했다. 조종당하고 있다니, 암흑교단에게 몸과 의식을 전부 다 빼앗겼으니 당연한 소리였다.
물론 성녀가 그렇게 무의미한 답변을 할 리가 없었다.
이내 보충설명이 이어졌다.
“행동이 너무 정밀해요. 아무리 술식을 복잡하게 짜더라도, 이지를 잃은 존재가 이토록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는 건 불가능해요. 다시 말해…….”
“보고 있다는 뜻이군요.”
성녀는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물었다.
굳이 덧붙이지는 않았으나, 누가 무엇을 보고 있을지는 명확했다.
저 괴물을 만든 존재가, 우리를.
그때였다.
킥킥, 하고 날카로운 웃음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멱살을 붙잡힌 괴물이 낸 소음이었다.
“킥, 큭큭… 푸하, 아하, 아하하하하하하하!”
제 폐부를 모조리 짜내듯이.
괴물이 웃어제끼고 있었다. 이대로 숨이 막혀도 죽어도 좋다는 듯, 딸깍거리며 주름진 대가리가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얄따란 눈동자가 나와 성녀를 향했다.
“내가 너무 티를 냈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광경이었다.
미트람이 실험체에 빙의했을 때, 이러한 이질적인 분위기를 냈던가.
성녀는 이를 으득으득 갈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당신, 누구야.”
“진정해, 진정해… 우리가 벌써부터 얼굴을 붉혀야 할 이유가 있어? 또, 내가 누구인지 알면?”
틈새로 남은 입가가 진득한 호선을 그렸다.
“그럼, 감당은 할 수 있고?”
“누구냐고 묻잖아!”
드물게도 흥분한 성녀의 태도에, 괴물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끈적한 시선이 내게 따라붙다 떨어졌다.
“너무 재촉하지 마, 어차피 우리는 곧 만날 테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성국에 심어놓은 첩자는 얼마나 되고?!”
“재촉하지 말래도.”
싱긋, 하고 주름진 얼굴이 미소 비스무리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곧 알게 될 거야… 모든 것을 말이야.”
뚝, 하고 목소리가 그치자 성녀는 울컥하고 말았다. 여인의 손길이 괴물의 멱살을 거칠게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빈껍데기로부터 돌아올 반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손이 말없이 성녀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만 하자는 신호였다.
“늦었습니다, 성녀님.”
“하, 하지만… 하지만, 이안!”
“어차피 얻을 만한 정보는 모두 얻었습니다.”
그제야 성녀의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나를 올려다보는 성녀의 시선을 마주하며, 내 입에서는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아마도요.”
이제 남은 것은 수수께끼를 풀 계기뿐이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찾아왔다.
어느 날 밤, 고아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언젠가 내게 ‘우리를 데리러 왔냐’며 경계의 시선을 보내던 사내아이.
그 꼬마가 울먹이며 말했다.
“아저씨, 도와주세요… 어른들이 제 여동생을 데려가겠대요.”
시곗바늘이 고독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시각은, 이제 자정.
비밀을 밝힐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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