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442화 (442/649)

〈 442화 〉 6. 존재 증명(30)

* * *

우짖는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밤이었다.

야음을 틈타 오두막으로 접근한 일행의 숨소리가 가라앉았다. 지근거리에서 관찰하니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오두막 근처의 인기척이 지나치게 드물었다.

멀쩡히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존재감이 흐릿해졌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오두막 주변에는 그 많던 상인들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

고작해야 호위를 선 몇몇 용병들이 하품을 내쉬고 있을 뿐.

수십에 달하던 인원이 이 주변을 벗어났을 리는 없었다. 그랬다면 진작에 우리의 눈에 띄었을 테니까.

유일한 가능성은 저 ‘오두막’에 있었다.

저 자그마한 오두막이 상인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이러한 가정만이 고독하게 성립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조용히 숨을 죽이고 땅바닥에 귀를 가져다 댔다. 눈을 감고 청각에 정신을 집중하자, 이내 흐릿한 바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행의 이목이 자연스레 내게 모였다. 나는 일부러 입 모양만으로 그들과 소통했다.

‘지하가 있다.’

그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무언의 합의를 끝마친 우리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각자 처리할 용병을 하나씩 눈짓으로 지목한 뒤, 이내 땅을 박차고 네 명의 인영이 쏘아졌다.

억, 악, 윽!

그리고 파지직, 하고 누군가가 감전되는 소리.

검의 폼멜에 뒷목을 강타당한 용병은 제대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그저 눈을 까뒤집고 털썩 엎어졌을 뿐.

유렌과 셀린에게 당한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엘시 선배의 전격에 직격 당한 용병이 비명을 내지를 뻔했으나, 혀까지 파고든 전류는 그의 숨구멍을 통째로 틀어막아 버렸다.

의외였던 점은 셀린의 솜씨가 상상 이상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본래 속도보다 위력으로 승부하던 그녀였다. 당연히 단숨에 제압하지 못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셀린은 도끼조차 꺼내 들지 않고 제 역할을 완수했다.

팔꿈치가 명치를 강타한 순간, 용병은 핏물이라도 토할 듯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실력이 발전하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잘하면 보다 높은 경지를 노릴 수 있지 않을까.

셀린의 노력 여하에 달린 문제였다.

그렇게 오두막 주위의 용병을 정리하고 나서야, 우리는 손을 탁탁 털며 목소리를 되찾았다.

“의외로 간단한데?”

“조심하세요, 엘시 선배.”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만한 사실이라, 나는 저벅저벅 걸어 오두막의 문 앞에 섰다.

그러자 유렌과 셀린이 자연스레 내 양옆으로 섰고, 엘시 선배는 후방을 지켰다.

나는 흐, 하고 헛웃음을 머금었다.

명백히 전투를 대비한 진형이었다. 내심은 모두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오두막을 여는 순간, 더는 돌이킬 수 없으리란 사실을.

후우, 하고 나는 숨을 가라앉혔다.

내 머릿속에 몇 가지 장면이 부유하기 시작했다.

얼굴 없는 괴한들의 첫 습격이 떠올랐다. 다소 난데없는 면이 있던 시점이었다.

왜 하필 그날따라 마수가 흉폭해졌을까.

그리고 왜 얼굴 없는 괴한들은 성국의 인물 대신 리아를 노렸는지.

당시의 리아는 울면서 내게 매달렸다. 죽을 위기를 넘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

쾅, 하고 내 발차기가 시원스럽게 오두막의 문을 박살 냈다.

목편과 함께 뿌연 먼지가 일었다. 이내 눈앞에 드러난 풍경은, 차와 다과를 먹으며 쉬고 있던 상인들.

그들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다.

손뼉을 짝짝 치면서, 오두막 안으로 들어섰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 이중에서 암흑교단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신 분?”

끔벅끔벅.

멀뚱히 나를 바라보던 상인들의 눈꺼풀이 개폐 운동을 반복했다. 개중에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가 재차 그들을 도발한 이유였다.

“……델피렘 개새끼 해 봐.”

이후 정적.

멍하니 굳어 있던 상인들의 머리가 일제히 기울었다. 수십 쌍의 눈동자가 동시에 움직이는 광경은 기시감마저 주고 있었다.

그렇게 상인들은 얼마쯤 침묵을 지키다가.

“크으, 키헤에에에에엑!”

비명을 내지르며, 눈을 붉게 물들였다.

난데없이 몸을 일으킨 상인의 숫자는 전원. 더는 두고 볼 까닭이 없었다.

팍, 하고 빛살이 대기를 가로지르며 쏘아진다.

손도끼였다.

일직선의 궤적이 최선두에 선 상인의 이마에 틀어박혔다. 핏물이 개전을 알리는 뿔나팔처럼 허공에 흩뿌렸다.

물론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은빛의 도끼날이 등불의 빛을 반사하며 허공에서 춤을 춘다. 그리고 뒤이어 두 검사의 그림자가 땅을 박차고 쏘아졌다.

콱, 콱, 콱!

손도끼가 제비처럼 궤도를 뒤틀 때마다 핏물이 튀었고, 나는 그 사이를 질주했다. 내 앞을 가로막던 상인 중 하나의 몸에 무수한 은빛 실선이 새겨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찰나.

단 한 번, 유렌의 검이 빛을 뿜자 상인의 몸이 토막 나 흩어졌다. 더불어 셀린이 온힘을 다해 휘두른 도끼는 상인 둘의 상반신을 절단했다.

저항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일격이었다.

쿵!

벽면에 내리꽂힌 배틀 엑스가 강한 충격파를 일으켰다. 우르르, 하고 진동하는 오두막의 천장으로부터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끄아아아아악!”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새파란 뇌전이 상인의 사이사이를 퉁겨 다니며 매캐한 탄내를 풍겼다. 나는 이따금씩 남은 적의 가슴을 가르는 정도로 충분했다.

발로 차고, 검으로 베고.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핏물과 벼락이 난자했다. 유렌의 검에 가슴을 관통 당한 상인이 울컥이며 피를 토하거나, 셀린의 배틀 엑스에 상인 하나가 정수리부터 반토막이 나거나.

그 피와 살점의 축제 속에서,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대마법사와 결투를 벌였던 날이었다.

나는 그날 생경한 경치를 보았다. 언젠가 나아가야 할 길, 열어젖히고 싶은 경계를.

그러다 냄새를 맡기도 했지.

비릿한 피 냄새, 암흑교단 특유의 악취였다.

시간이 점차 그 유속을 줄여 가고 있었다.

어느덧 내 검이 시차를 찢어발기며 살덩어리를 도륙했다. 칼끝이 명치를 소리조차 없이 꿰뚫고, 상인의 눈이 원망과 경악을 담아 부릅떠졌다.

그 뒤로 또 다른 상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푹, 하고 시체가 된 상인의 가슴팍을 관통하며 또 다른 상인의 팔이 출현했다. 그 직후, 내 빈손이 허공을 날던 손도끼를 낚아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새빨간 뇌수가 골편과 함께 비산한다.

비스듬히 팔을 피해낸 내 몸이 그제야 거리낌 없이 시체에 힘을 실었다. 분수처럼 뿜어지는 핏물을 뒤집어 쓰며, 나는 두 개의 시체를 단숨에 밀쳐냈다.

우당탕!

느닷없이 넘어진 시체에, 내게 달려들던 상인 셋이 깜짝 놀라 펄쩍 뛰어 올랐다. 야수의 그림자가 순식간에 그중 한 명을 덮치며 올라탔다.

유렌이었다.

막대한 운동량을 이겨내지 못한 상인의 몸이 주르륵, 밀려나며 쓰러졌다. 유렌은 망설임 없이 검을 역수로 쥐며 희생양의 목젖을 관통했다.

동시에 손도끼가 빛의 사선을 그리며 던져졌다.

도끼날에 측면을 강타당한 상인 하나의 몸이 반토막이 나 흩어졌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굳이 내가 처리할 것도 없었다.

쾅, 하고 어디선가 날아든 소녀가 전신을 뭉개 버렸으니까.

어느새 피 범벅이 된 셀린이 맑은 웃음꽃을 피워 올렸다.

“휴, 이제 끝!”

이를 신호로 탁, 하고 손도끼가 내 손으로 돌아왔다. 검사 셋이 만들어 낸 참상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핏물의 개울 위로 토막 난 신체 부위가 뒹굴고 있었다. 즉사를 면한 시체가 드물 정도였다.

엘시 선배의 입에서 휘유, 하고 감탄 섞인 휘파람이 새어 나왔다.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는데?”

“벌써 안심하기는 이르죠. 아직 지하가 남았잖습니까.”

내 너스레에, 유렌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는 진심으로 지하로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이안, 슬슬 만족하고 돌아가지 않을래? 저 밑에 어떤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잖아.”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나는 기어코 책장으로 가려져 있던 비밀 통로를 찾아냈다. 기나긴 층계가 어둠 속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횃불로 밝혀진 시야가 나를 인도했다.

저벅저벅 계단을 하나씩 밟고 내려갈 때마다, 내 머릿속을 긁는 기억들이 있었다.

내 여동생, 리아.

어린 시절부터 겁이 많았다. 날 처음 만났을 때는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해 매일 내 눈치를 보았을 정도였다.

소심한 성격 탓에 한 번 놀라면 며칠 동안이나 벌벌 떨곤 했지.

몇 가지 장면이 차례차례 망막을 스친다.

돈 이야기에 활짝 웃으며 볼에 입을 맞추던 리아.

가면의 괴한 앞에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던 리아.

그리고 시내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상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리아.

“……이안?”

그 나지막한 부름에 나는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유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엘시 선배와 셀린도 물론이었다.

“괜찮겠냐?”

당연하지, 라고 단박에 대답하고 싶었으나.

나는 일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물론 머뭇거림은 길지 않았다.

이내 내 입가에 쓴웃음이 피어 올랐다.

“……당연하지, 임마.”

유렌은 별 말 없이 손을 거두었다. 벌써 지하까지 층계는 얼마 남지 않은 채였다.

그렇게 묵직한 침묵이 우리 사이에 내려앉을 찰나.

“꺄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명백히 우리가 향하고 있는 장소로부터 발원한 울림이었다.

나와 유렌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인 직후, 우리는 내달리다시피 남은 계단을 다급히 내려갔다. 깊은 지하에는 놀라울 만큼 넓은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다.

천장에는 태양을 연상시키는 핏빛 구체가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름 모를 아이들과 함께, 창백하게 질린 여자아이 하나가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샤일록 상회의 주선으로 입양되기로 했던 아이였다.

그리고 주저앉아 벌벌 떠는 소녀가 하나.

금빛 눈동자에는 공포의 감정이 선연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뒷짐을 진 채 등을 보이고 있는 사내가 하나가 눈에 띄었다.

페리 쿠아르스.

우리가 쫓고 있던 인물이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