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3화 〉 6. 존재 증명(31)
* * *
며칠만의 조우였다.
페리의 몰골은 여전했다. 건장한 육체는 피로를 잊어버린 듯 홀가분해 보였고, 피부도 잡티 하나 깨끗해서 휴양이라도 떠났다 온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단 하나 이전과 달라진 점은 있었다.
메마르다 못해 적막한 낯빛.
다시 만난 사내는 수분을 강탈 당한 진흙처럼 금이 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따로 파고들지 않아도 될 만큼 명확했다.
저 젊은 상인의 몸에는 암흑교단의 계약이 새겨져 있었다.
이내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이안 님,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슬픈 직감은 늘 맞아떨어진다는 소리를…….”
더듬더듬, 리아는 엉덩이를 질질 끌며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내 근처까지 다가온 리아의 눈에 이슬이 방울방울 맺혔다. 덜덜 떨리는 가녀린 손가락이 페리를 이내 가리켰다.
물기에 함뿍 젖은 호소가 이어졌다.
“오, 오빠아… 흐윽. 저, 저 인간… 무언가 이상해. 사람이 아니야… 괴물이라고!”
나는 대답하는 대신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단지 우묵한 시선으로 페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을 따름이었다.
그의 눈은 하늘에 뜬 핏빛 태양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일생의 역작을 우러러보는 예술가라도 된다는 듯이.
리아가 울음을 터트리든 말든, 사내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도리어 페리는 더욱 여유로워진 음색으로 내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군요. 너무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진다 했습니다. 일부러 상행에 동행하더니, 적당한 시기에 동선을 분리한다라…….”
“눈치 채고 있었나?”
“어느 정도는.”
사내의 무감정한 눈동자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 동공에는 이미 빛이 사라진 뒤라서, 그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눈빛이었다.
나와 성녀를 시내에서 습격했던 얼굴 없는 괴한, 그중 하나가 빙의되었을 때 보이던 양상과 일치했다.
이를 깨달은 내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우리는 구면이군.”
그러자 사내의 입에서 큭, 하고 메마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감정 따위는 한 톨조차 담기지 않은 목소리, 차라리 소음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물론이죠. 얼마나 오랜 시간 당신을 주목해 왔는지 모릅니다.”
서서히 몸을 돌리며, 페리는 은근한 조소가 담긴 어조로 내게 물음을 던졌다.
“이처럼 빠른 시일 내에 당신과 대화를 나누게 될 줄 몰랐습니다… 참, 제 소개를 하지 않았던가요?”
“그때도 날 계속 지켜보고 있었나?”
다만 나는 페리의 말을 들은 체도 않았다. 그저 내가 궁금했던 점을 캐물었을 따름이었다.
이러한 내 태도는 상정 외였는지, 사내는 어안이 벙벙한 눈빛이었다.
그러든 말든 내 추궁이 재차 이어졌다.
“시내에서 말이야. 자꾸 날 쳐다보고 있었잖아.”
“아하, 그때 말이군요? 물론 그랬죠.”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연극 배우라도 되는 양 작위적인 말투였다.
“제 시선이 좀 뜨거웠던가요? 하하하, 이해해 주시길… 어차피 이제 와서는 상관 없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사내가 잔혹한 미소를 지은 직후였다.
딱, 하고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와 함께 모든 빛과 소리가 점멸했다.
그래봐야 아주 짧은 시간.
우우우, 하고 낮은 울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부드럽고 음울한 음색이 고막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이내 빛이 되돌아왔다.
그새 주위의 풍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수십에 달하는 검은 그림자들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그때까지도 나를 포함한 일행은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직 리아만이 겁에 질려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울먹였을 뿐이었다.
“오, 오빠아…….”
하나둘씩 땅을 딛고 선 그림자들이 피와 살의 껍데기를 입기 시작했다. 뭉개진 이목구비와 흉측하게 주름진 피부, ‘얼굴 없는 괴한’이었다.
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나 했더니.
그 본질이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생체의 호흡이 감지될 리는 없었다. 이제야 밝혀지는 비밀에, 나는 헛웃음을 머금을 뻔했다.
무엇이라도 내게서 반응이 돌아와 즐거운 걸까.
페리의 얼굴에 어색한 감정의 동요가 일었다. 희열의 파도가 사내의 얼굴을 근육을 기괴하게 일그러트렸다.
이내 과장스러운 예와 함께 굽어지는 허리, 얼핏 보기에도 조롱의 의도가 명백한 몸짓이었다.
“모처럼의 만남을 기념하여 간단한 내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조건은, 그래… 이중에 숨은 제 본체를 찾아내는 건 어떻겠습니까?”
“본체?”
“네, 보시다시피 전 자유롭게 빙의체를 조정할 수 있거든요. 이 인형들 사이를 얼마든지 오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하지만 상품이 없으면 재미없으니까…….”
짝, 하고 사내의 두 손이 맞닿은 순간.
또 다시 이변이 발생했다.
팍, 하고 다시금 점등한 조명 사이로 핏빛의 태양이 줄기를 뻗치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며 울리는 진동 사이로 희미한 비명 소리가 뒤섞이고 있었다.
크아악, 으악, 아아아악.
마구잡이로 내뱉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
울부짖는 목소리가 특정한 운율을 형성하고 있었다. 장엄하면서도 불길한, 그리고 기묘하게도 경쾌한 곡조가 빛을 잃은 밀실에 내려앉았다.
악취미였다.
고통에 찬 비명 소리로 음악을 연주하다니.
그 끔찍한 연주를 배경으로, 핏빛의 촉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핏빛 태양으로부터 발원한 촉수가 눈 깜짝할 새 기절한 여자아이의 몸을 휘감았다. 이내 고치처럼 아이의 몸을 뒤덮은 괴생물체는 불길한 고동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를 상품으로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어느 쪽이든 괜찮은 내기가 될 겁니다. 만일 일찍 구할 수만 있다면 아이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테고, 설혹 너무 늦어 버리더라도…….”
큭큭큭, 하고 사내의 입에서 비열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멋진 선물이 되어 있을 겁니다. 장담하죠.”
“그럼 바로 시작인가?”
노골적인 도발에도 내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하기만 했다.
그 사실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페리는 혀를 찼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였을 따름이었다.
“후우, 의외로 재미가 없는 분이시군요. 이 두근거리는 내기를 듣고도 가슴이 뛰지 않으십니까?! 좋아요, 그럼 바로 시작……!”
콱, 하고.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발길질이 어딘가에 적중했다. 신원 미상의 몸뚱아리가 하늘을 날았고, 사내의 부릅떠진 눈이 내게 고정되었다.
그야말로 기습적.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땅에 철퍼덕 엎어져 신음하는 인물을 제외하고는.
침묵은 몇 초 후에나 깨졌다.
페리의 성대에서 토막 난 언어가 새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당신, 뭘 하는…….”
“내기하자며? '본체 찾기'였던가.”
그와 함께 내 무심한 눈동자가 특정 지점을 향했다. 내게 걷어 차여, 숨을 헐떡이고 있는 소녀를 향해서였다.
불신으로 물든 금빛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느닷없는 발길질에 고통이 극심한 것인지, 제 명치를 억누르는 손이 부르르 떨렸다. 고통을 호소하며 닫힌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하악, 하악.
복부를 강타 당한 탓에 호흡마저 불안정했다. 아무리 숨을 가다듬어도 괴로운 기색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였다.
가슴 아픈 광경이었다.
그래,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으리라.
“……안 그래?”
“어, 어떻게…….”
헐떡이면서, 리아는 원망과 배신감에 젖은 목소리를 토해냈다.
땅을 짚은 손이 꽉 쥐어지며 바닥에 핏자국을 남겼다. 부러진 손톱 사이로 핏물이 흥건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소녀의 금빛 눈망울에 물기가 차올랐다.
뚝, 뚝.
한 방울씩 떨어지는 눈물이 구슬픈 단말마를 내뱉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녀의 입에서는 끅끅거리는 울음 소리가 짜내어졌다.
“어떻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 자의 반응이었다.
일순 마음이 흔들렸으나, 나는 잠자코 인내의 시간을 가졌다.
피로 물든 소녀의 주먹이 탁, 하고 땅바닥을 연이어 내리쳤다.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어떻게에에에에……!”
울면서, 흐느끼면서.
분노와 절망, 원망과 자책을 담아 소녀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울음에 파묻혀 숨소리조차 제대로 들려오지 않을 무렵.
새하얀 어깨에 일던 떨림이 비로소 잦아들었고, 여인이 서서히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녀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나는 허탈한 웃음을 머금어야 했다.
“……어떻게 알았지?”
지독히도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소녀는 제 검지로 입꼬리를 죽 그어 올렸다.
섬뜩한 핏빛의 호선이 그려진다.
“에헷.”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애교스러운 웃음 소리와 함께.
한쪽 눈을 찡긋하며 살짝 혀를 빼무는 그 모습은, 지나치게 장난스러워 보여서.
나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오늘의 전투는 꽤 힘이 들 것 같다고.
운명의 초침이 다시금 움직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