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6화 〉 6.존재 증명(34)
* * *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데,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혀가 돌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성대를 쥐어짜려 할 때마다 목젖이 흠칫흠칫 떨렸다.
여동생,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뇌리를 부유하는 낱말들이 맞물리지 않았다. 문장이 되지 못한 언어는 고독한 심상이 되어 흩어질 뿐이었다. 나는 울컥, 하고 차오르는 감정을 토해내고 싶었다.
왜 이제야 나타났느냐고.
그리고 왜 하필 지금이어야 했냐고.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고, 네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알고는 있냐고.
허나 그 모든 의문들이 단 하나의 낱말에 막혀 버렸다. 내 가슴을 묵직이 찍어 누르는 원죄가 있었다.
내 여동생.
그래, 내가 버렸다.
처음 여동생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은 부모님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체 거인을 쓰러트린 이후, 내 여동생의 행방을 찾아보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사실은 두려웠다.
암흑교단에 붙잡힌 여동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혹은 리아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고 저어했다. 아니, 한때 이별했던 여동생의 삶에 나와 가족이 이물질이 될 수도 있다 생각했다.
핑계였다.
여러 가지 핑계가 있겠으나, 결국 나의 선택은 추레한 도피였다.
그 결말이 지금 내 눈앞에 있지 않은가.
내 얼굴 근육이 경련했다. 너무나 다양한 감정이 솟아오르고 있어서, 어떠한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몸조차 알지 못했다. 가지각색의 파문이 내 낯빛을 스쳐 지나갔다.
일그러지고, 무너져 내리고, 입술을 짓씹기를 한참.
소녀는 광소를 터트렸다.
“푸흐, 아핫… 아하하하하하! 노, 놀랐어? 깜짝 놀랐지~? 미안미안, 미리 말해주고 싶었는데…….”
으득, 하고 난데없이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어금니가 부서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강렬한 감정이 담긴 소음이었다. 쾅, 하고 소녀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발을 구르자, 폭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이 일었다.
쩌저적, 암반에 금이 가며 지하가 빼곰이 입을 벌린다.
단순한 각력이 이만한 위력이었다. 나와 비교해도 신체 능력이 차원이 달랐다.
본격적인 전투에 나서면 그 힘은 어떠할 것인가.
그렇게 나는 공포와 자괴감에 빠졌다.
저만한 실력이었다. 당연히 아무런 고통 없이 얻을 수는 없었다.
필히 무언가를 대가로 바쳐야만 했으리라.
이를 증명하듯, 소녀의 금빛 눈동자에서 귀기가 새파랗게 타올랐다. 일순 그 도깨비불을 제외한 모든 시야가 암전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으득, 으득.
새하얀 치아가 바스라지는 소리를 오선지로, 진득한 증오의 감정이 토해졌다.
“남매의 상봉이 그렇게 재미없으면 안 되잖아… 안 그래? 오라버니?”
“리아, 나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면서, 손을 이마에 얹어 시야를 가렸다.
어지럽다. 이대로 혼절해 버릴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일렁이는 의식 속에서 가까스로 건져낸 물음이란, 고작 몇 마디뿐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으응?”
그러자 소녀의 낯빛에서 원독이 소멸했다.
악귀를 연상시키는 귀기 대신, 새삼 순박한 표정을 지은 소녀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정작 내게는 그 놀라운 반전에 일일이 놀랄 정신마저 남아있지 못했지만.
내 손이 허우적거리며 소녀의 등 뒤를 가리켰다.
인형처럼 도열한 얼굴 없는 괴물들.
그들이 한때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도대체 무슨, 무슨 짓을… 리아!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아항.”
그제야 내 말뜻을 깨달았다는 듯, 소녀가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뿐사뿐 내딛어지는 발걸음이 얼굴 없는 괴물들에게로 이어졌다. 소녀는 마치 잡화점의 판촉 사원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레 두 팔을 벌려 인사했다.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지? 나는 단지 소원을 들어주었을 뿐이야… 그런데, 거래는 공정해야 하잖아? 그래서 상인으로서 그 대가를 받아 챙긴 거지.”
“소원이었다고? 몸과 마음을 통째로 빼앗긴 노예가 되는 것이?”
소녀가 쿡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깜박, 하고 핏빛의 태양이 잠시 점멸했다. 이후 조명은 직사광선처럼 특정한 지점만을 비추기 시작했다.
크엑, 크악, 케에엑.
망가진 관절 인형처럼 삐걱대며 얼굴 없는 괴물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 앞에서 두 팔로 괴물에게 시선을 모은 소녀가 낭랑한 목소리로 선전을 시작했다.
“델로스 학파의 텔론 경! 마도계의 거두인 스승 밑에서 수학했으나, 돈을 밝히는 스승에게 인정받는 건 그의 사제뿐! 제대로 된 배움조차 얻지 못했던 그는 더 많은 지식을 갈망했죠. 그러다 저희 상회와 거래를 시작한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이럴수가! 홧김에 스승을 살해해 버린 그는 델로스 학파의 살생부에 오릅니다. 자포자기한 그의 선택은… 비밀이에요?”
찡긋, 내게 애교스러운 눈짓을 한 소녀의 시선이 어딘가를 향했다.
옅은 신음이 새어 나오고 있는 곳이었다. 소녀의 일격을 허용한 엘시 선배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고 있던 와중이었다.
입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턱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내 표정이 다급해지자, 소녀의 입가에 떠오른 호선이 더욱 짙어졌다.
“오늘은 친히 고객님의 애완견을 지도해 주시겠습니다!”
키에에엑!
얼굴 없는 괴물의 눈동자에서 핏빛 흉광이 터져 나왔다. 고막을 긁는 괴성과 함께 괴물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허공에 도열하는 칠흑의 구체들.
엘시 선배는 자세조차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였다. 이대로라면 승패의 행방은 명확했다.
내 목에서 곧장 고성이 터져 나왔다.
"엘시 선배!"
나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을 더듬어 손도끼를 쥐었다. 어떻게든 엘시 선배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손도끼를 내던지기 직전.
으드득, 하고 내 팔의 움직임이 멎었다. 이를 악물며 힘을 주어도 팔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질 뿐이었다.
핏발이 선 내 눈이 팔 부근을 향했다.
이제야 보인다.
미세한 핏빛의 실선들이 거미줄처럼 이 공간을 뒤덮고 있었다. 내 팔 또한 수십 가닥의 실에 붙잡혀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느새?
이러한 의문은 소녀가 통통 걸음을 옮기는 동안 사라졌다. 그 낯빛에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조차 엿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전황이 당연하다는 태도였다.
실력의 차이다.
분할 만치 그 사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저 소녀는 언제, 어디서든 공간을 장악할 실력이 있었다.
깜박, 하고 다시금 조명이 점멸한다.
얼굴 없는 괴물 두 체가 삐걱거리며 나섰다. 핏빛의 세례를 맞으며 빼빼 마른 살덩어리가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쿠어억, 크엑, 켁!
그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배경으로, 소녀가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성국의 멜시스 형제! 어린 시절부터 마을의 주임 사제를 믿고 따랐지만, 이럴 수가? 사실 그는 어린 남아를 겁간하기를 즐기는 악마였습니다! 그럼에도 맹신에 빠진 부모는 오히려 형제를 비난하기에 이르렀고… 우연히 저희를 만났죠. 주임 사제와 부모를 살해한 그들은 머나면 여정을 떠났습니다. 과거를 잊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때까지, 푸흐흐… 네, 성국의 토벌대가 오기 전까진 말이죠! 종래에는 가족만은 살려달라는 조건으로 저희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비열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누군가의 상처와 약점을 헤집고, 마치 유일한 구원이라도 되는 양 조건을 내건다.
그 끝이 파멸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잔혹한 거래였다.
공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협박이나 강요와 다름없었다. 그 외의 선택지를 고려할 수 없는 정신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남을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소녀의 눈이 흘깃 측면을 향했고, 곧이어 예의 바른 미소가 이어졌다.
"오늘은 특별히 잔머리나 굴리는 후배와, 주제 넘는 꿈을 꾸는 꼬마를 가르쳐 주신다군요!"
크에에에에엑!
그 선언과 함께 두 괴물이 땅 위를 펄쩍펄쩍 뛰며 움직였다. 팔다리에 맺힌 검은 오러가 불길한 궤적을 남기고 있었다.
유렌과 셀린은 이제야 막 정신을 차린 참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려 들었다. 허나 그럴수록 핏빛의 실은 점점 나를 옥죄어 올 뿐이었다.
간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셀린, 유렌!"
마침 몸을 막 일으킨 유렌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씹… 내가 적당히 튀쟀잖아!"
할 말이 없었다.
곧 폭음이 들려왔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신음이 일행의 열세를 증언하고 있었다.
나는 반쯤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내 소중한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절망, 비명, 피.
그 사이로 소녀가 뇌쇄적인 걸음을 옮겼다. 살풋 머금은 눈웃음이 치명적일 만큼 매력적이었다.
"……포기해."
그 한 마디에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핏빛의 속삭임이 뇌리를 물들인다.
"어차피 오빠가 내게 승리할 가능성은 없어… 알고 있지? 그러니까, 얌전히 항복해."
내 눈이 미친듯이 떨렸다.
이대로 굴복하라고?
하나둘씩 추억이 떨어져 내린다.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성녀와의 기억이 이슬비가 되어 쏟아졌다.
임마누엘, 임마누엘…….
무의미한 읊조림 사이에 소녀의 음성이 끼어들었다.
"……신은 없어."
킥킥, 조소가 이어진다.
"있다면, 왜 구해주지 않아?"
빙글, 하고 두 팔을 벌린 소녀의 몸이 회전한다.
"우리의 주께서는, 대가를 바친 만큼 확실한 보상을 주시거든… 그런데, 오빠의 주께서는 어때?"
마음속을 까마득한 흑점이 파고들었다.
"포기해, 절망해, 무너져……!"
달콤한 속삭임에 나는 그만 무릎을 꿇고 싶었다.
내 입에서 진한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만두고 싶다.
쓰러져서, 굴복하고 눈을 감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어째서 그러지 못하는가.
문득 어느 날의 기억이 뇌리를 스첬다.
흐리디 흐린 풍경 속, 어느 여인이 내게 속삭였다.
'……이것이 주의 뜻입니다.'
새하얀 벼락이 척추를 관통하는 감각.
나는 찌르르, 몸을 타고 오르는 전율에 취해 멋대로 외쳤다.
"탐욕, 거래를 제안한다!"
움찔, 하고 시종일관 여유롭던 소녀의 몸이 굳었다.
이내 얼어붙은 시선이 나를 향했다. 한없이 진지해진 낯빛으로, 소녀가 물었다.
"……조건은?"
내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사실 멋대로 내뱉은 말이라, 자세한 제안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나는 무심코 장난스러운 제시를 하고 말았다.
"한 번, 진심을 담아 포옹해 준다든가?"
헛소리였다.
고작 이 정도로 무얼 들어준단 말인가. 상대가 워낙 리아와 비슷한 몰골을 하고 있어 착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내가 반쯤 포기했을 때였다.
"……흐음."
소녀가 턱을 손으로 쥔 채 진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어라, 하는 사이.
"좋아."
딱, 하고 소녀가 손을 튕기자 엘시 선배를 습격하고 있던 괴물이 그림자로 흩어졌다.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던 엘시 선배가 숨을 헐떡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
하지만 나 또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직 소녀만이, 두 팔을 벌리며 살짝 볼을 붉혔을 뿐.
부끄럽다는 듯 살짝 내 눈을 피하면서.
"대신, 1분 이상 안아줘야 해?"
나는 허, 하고 헛웃음을 삼키며 생각했다.
……이게 통하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