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1화 〉 6. 존재 증명(39)
* * *
치솟는 핏물로 호흡조차 버겁다.
관통당한 복부로부터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척추를 타고 올라온 불꽃이 뇌리를 불태우며 솟구쳤다.
아프다.
하지만 고통 따위는 내 의식을 지배하지 못했다. 오직 하나의 의문만이 나의 영혼을 유령처럼 붙잡고 있을 뿐.
어째서냐고, 나는 묻고 싶었지만 성대까지 핏물이 차오른 지 오래였다.
피 끓는 소리와 함께 피거품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끄르륵, 하는 처연한 소음에 옥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친구, 유렌.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친구’였던’ 인물이었다.
팍, 하고 그가 내 몸에 꽂힌 검을 회수했다. 핏물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이미 한계에 가까웠던 내 몸뚱어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엎어져야 했다.
눈앞이 흐렸다.
그럼에도 나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내 초점이 맞지 않은 눈이 어딘가를 향했다.
“주, 주인… 꺄윽?!”
도끼 자루가 소녀의 손을 짓이기고 있었다.
으드득, 으드득.
마치 거친 돌 사이에서 곡물이 갈려나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평생 겪어 본 적 없는 통증일 텐데도, 엘시 선배는 이를 악물고 땅바닥을 기고 있었다.
핏발이 선 눈, 핏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어깨가 차례로 내 망막에 새겨졌다.
“아, 안 돼… 주인님만큼은…….”
엘시 선배의 저항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콱, 하고 도끼 자루가 호쾌하게 엘시 선배의 뒷목을 후려쳤다. 검사도 아닌 마법사가 견딜 만한 위력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정신줄을 붙들고 있었다는 사실이 용할 정도였다.
정작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는 따로 있었다.
엘시 선배를 만신창이로 만든 당사자, 바로 셀린이었다.
그 황갈빛 눈동자에 공포가 가득 차올랐다. 제 몸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강한 공포를 느끼는 듯했다.
토막 나 흘러나오는 변명이 덜덜 떨렸다.
“아니, 아니야… 나, 나는 이러고 싶지 않…….”
“정말 그럴까?”
검은 사제복을 입은 소녀가 사뿐사뿐 걸음을 내딛었다.
그 경로 위에 유렌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그는 딱히 소녀에게 관심을 표하지 않았다. 묵묵히 제 검신에 묻은 피를 천으로 닦아냈을 따름이었다.
소녀와 셀린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끈적한 목소리가 셀린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하고 싶었잖아? 느닷없이 나타나서, 소꿉친구의 옆자리를 멋대로 차지해…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는 벌써 약혼자라도 된 양 질투나 부리고 말이야. 짜증나지 않았어? 진작부터 이러고 싶었잖아, 응?”
“나, 나는… 아니, 아닐 텐데…….”
짝, 하고 맑은 손뼉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녀는 생글생글 순박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나랑 ‘거래’했잖아?”
“거래라니, 내가 언제…….”
내뱉어지는 진술과는 달리, 셀린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점점 넋을 놓는 셀린을 보며 소녀는 쿡쿡,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요사스러운 호선이 부유한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운 좋게 권세가에 태어나, 온갖 특혜를 누리고, ‘재능’이라는 이름만으로 달콤한 과실을 독식하지… 반면 누구는 어린 시절 가문이 풍비박산 나, 매일 손이 부르트도록 수련에 매진해도 기어코 따라잡을 수 없잖아.”
황갈빛 동공에 광채가 사라졌다. 셀린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듯 입술만을 짓씹으면서.
소녀는 더욱 셀린의 지척에 붙어 속삭였다.
“……전부 빼앗긴 거야.”
은은한 분노마저 담긴 음색이었다.
셀린의 몸에 이는 떨림이 더욱 강해졌다.
“가문도, 성과도, 심지어는 사랑조차도… 그렇게 평생 빼앗기고만 살 거야? 우리가, 언니의 정당한 몫을 돌려줄게.”
“정당한, 내 몫……?”
“그래, 마땅히 받았어야 할 언니의 몫!”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소녀는 두 팔을 펼치고 해맑은 웃음을 머금었다.
순수한 선의가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구역질나게도.
“고위 귀족? 상관 없어! 그까짓 건 부숴버리면 되잖아? 지금껏 흘린 땀방울에 준하는 힘을 줄게. 그리고 자꾸 우리 오빠한테 달라붙는 날파리들을 쫓아버리는 거야.”
끄으으, 하고 내 입에서 진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안 된다.
셀린마저 빼앗길 수는 없었다. 그러한 일념 하에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납처럼 굳은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유렌의 무심한 한 마디가 내리꽂혔다.
“아서라.”
으득, 하고 나는 이를 갈면서 시선을 억지로 위로 말아 올렸다. 유렌은 씁쓸한 낯빛을 한 채 허탈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미 늦었어. 내 검에 맞으면, 모든 것이 느려지거든… 마치 굳어버린 것처럼.”
유렌의 오러에는 그따위 능력은 없었을 텐데.
나의 의문은 오래지 않아 해결되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유렌의 눈동자가 불길한 녹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그 눈은, 위대한 경지에 도달한 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짐승 또한 밤이 되면 눈을 빛내지 않던가.
인간과 짐승의 한가운데 있는 존재, 마인.
악신과 계약한 그들은 인간이 아닌 마수로서의 소질과 적성 또한 이어받는다.
그 말을 증명하듯 복부에 남은 관통상을 중심으로 환부가 번지는 것이 느껴졌다. 묵직하고 단단한 감각, 마치 돌이라도 얹힌 느낌이었다.
나는 유렌의 눈을 보며 한 가지 인물을 떠올렸다.
“가, 가면…….”
“맞아.”
그러면서 유렌은 말없이 품에서 새하얀 가면을 꺼냈다.
탁, 하고 가면이 사내의 안면을 덮자 익숙한 초상화가 탄생했다.
“나야, ‘가면의 괴한’.”
울컥, 하고 가슴을 불태우는 감정에 고함이라도 내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굳기 시작한 내 몸은 뇌의 지시를 거부했다. 오로지 소녀의 요염한 설득이 내 귓가를 간지럽혔을 뿐.
“……내 손을 잡아, 언니.”
셀린의 호흡은 더없이 거칠어진 뒤였다. 나는 셀린이 어리석은 선택을 할까 두려워 핏물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신 따위는 형편없는 편애꾼에 불과해. 우리와 함께하자, 마땅히 가져야 할 몫을 돌려줄 테니……”
바들바들 떨리는 몸, 가쁜 숨소리, 와들와들 경련하는 턱 근육에 어금니가 딱딱 부딪히고 있었다.
셀린은 조심스레 손을 들어, 소녀의 손바닥 어림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소녀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리려던 찰나.
“……지랄하지 마!”
고함과 함께 셀린이 맞잡은 소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정작 소녀는 미동조차 없었다. 다만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빙글 팔을 회전시켰다.
그 원형의 궤적을 따라 셀린의 몸이 허공을 부유했다.
이내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셀린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야트막한 지진이 일 만큼 강한 위력이었다. 쿨럭, 하고 핏물을 토한 셀린의 눈이 감겼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사제복은 걸친 소녀의 근력은 이미 가늠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강해져 있었다. 설령 내가 맞서더라도 승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적어도 일행 전원이 모여야 붙어볼 만한 괴물이었다.
내가 꿈틀거리며 경련을 반복하자, 소녀가 볼을 부풀리며 유렌을 쏘아보았다.
“동업자 양반, 아무리 그래도 우리 오빠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이러다 죽으면 책임이라도 지려고?”
“당신이 잘했어야지.”
짜증을 가득 담은 대답이었다.
유렌의 낯빛에는 짙은 피로와 불쾌감이 스치고 있었다. 이따금씩 나를 내려다보는 그 눈에서, 복잡한 심정이 전해져 왔다.
“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낸 거지? 심지어 왜 샤일록 상회의 존재를 노출시킨 거야… 그러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럴 필요까지는!”
“그래야 우리 오빠가 낚일 것 아니야?”
상쾌한 미소를 지으면서, 소녀가 사뿐사뿐 걸음을 내딛었다.
쓰러진 나를 내려다보는 그 눈빛이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소녀 같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는지, 그 볼에는 어느덧 홍조가 떠올라 있었다.
나는 도무지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유렌이 우리를 배신한 것인지.
샤일록 상회를 일부러 노출시켰다는 말은 무슨 소리인지.
헐떡이는 숨소리가 반복될수록 눈꺼풀의 무게가 더해진다.
“잘 들어, 오빠. 내가 오빠를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말해줄게.”
키득키득, 맑은 웃음 소리가 내 고막을 간질였다.
“사실 저 동업자 양반한테는 비밀이 있어. 아주 오래 전에, 실력의 벽을 느끼고 암흑교단과 접선한 적이 있거든.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말이야…….”
“누님을 위해서였어.”
한숨을 내쉬며, 사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누님의 곁에는 인재가 없었거든. 고아 출신이라 정치적 입지도 위태로웠지… 그에 반해, 누님을 적대하는 세력들은 너무나 강대했어.”
“그래서 우리가 도와주기로 한 거야.”
두 배신자의 목소리가 화음을 이루며 연달아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위험부담이 크긴 했지만, 그때는 선택지가 없었지. 나는 그렇게 누님을 돕는 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어… 하지만 여전히 기득권의 벽은 높고도 단단했지.”
“몇 달 전이던가? 동업자 양반이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더라고… 성녀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소리였지. 그럴수록 종교적 상징성이 강해진다나.”
“너도 알디시피, 기적을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해…….”
유렌이 말끝을 흐리자, 소녀가 매혹적인 웃음을 터트리며 손가락을 퉁겼다.
핏빛의 태양이 울부짖는다.
우우우, 하는 진동과 함께 밀실에 널린 고아들의 시체가 공명하기 시작했다. 흐릿한 영혼이 태양의 핵으로 빨려 들어가며 잔향처럼 비명 소리를 남겼다.
그리고 톡, 하고 핏빛의 태양으로부터 물방울이 하나 떨어져 내렸다.
핏방울은 정확히 소녀의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이후 몇 초 동안 부르르 떨며 제 형체를 다듬어 가더니, 곧 낯익은 핏빛 구슬의 모습을 갖추었다.
내 입에서 진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혈, 정.”
내 목숨을 몇 번이나 구했던 공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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