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2화 〉 6. 존재 증명(40)
* * *
“맞아, 고아들로 만든 거야. 예쁘지?”
자랑스레 혈정을 내미는 소녀의 낯빛에는 뿌듯함마저 엿보였다.
내게는 확인사살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무심코 으득, 하고 내 악문 잇새로 비명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 또한 몇 번이고 덕을 본 적이 있는 귀한 제물이었다. 설마 그 재료가 고아들의 영혼이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해가 불가능했다. 어떻게 그딴 물건이 천신에게 바치는 공물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후회, 배신감, 그리고 죄의식이 넘실거리며 내 가슴을 잠식했다.
목숨뿐만이 아니었다.
유렌의 말마따나 수많이 기적이 저 혈정을 제물로 이루어졌다. 그 힘이 없었다면, 내가 여태껏 걸어 왔던 길은 진작에 끊기고 말았으리라.
만인이 칭송하고 동경하는 영웅의 삶.
고아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핏빛의 궤적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이 역겨웠다.
이대로 질식이라도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끄으윽, 끄윽.
나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신음을 토해냈다. 무어라 분노를 토해내고 싶은데, 도무지 그럴 여력이 남아있지 못했다.
고작해야 이글거리는 눈으로 유렌을 노려보았을 뿐.
유렌의 낯빛은 여전히 침착하기만 했다.
“미안하다, 이안.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성, 녀가…….”
메마른 혀를 가까스로 움직이며, 나는 유렌이 애써 눈 돌리고 있던 사실을 언급했다.
“용서, 하지 않아… 그, 그딴… 쿨럭! 짓만큼은…….”
“알고 있어. 어쩌면 내가 멍청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지.”
그 말과 달리,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서는 강한 확신이 느껴지고 있었다.
맹종이나 광신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차라리 신앙이라고 불러야 할까.
유렌의 녹색 눈동자에 불길한 빛이 반짝였다.
“하지만 이안, 난 고아로 살아오며 온갖 못 볼 꼴을 봐 왔어… 세상이 얼마나 약자에게 악독한지, 그리고 신을 모시는 성국의 사제들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잔안한지.”
나는 그제야 유렌의 마음을 이해했다.
성녀를 돕기 위해 저지른 짓이라지만, 죄의 규모가 너무나 컸다. 자칫 들통이라도 나면 유렌 혼자로 끝나지는 않을 수준이었다.
십중팔구는 성녀에게도 불똥이 튀겠지.
그럼에도 유렌이 이 반인륜적인 행위에 참여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것이 그의 신념이었으니까.
유렌은 애초에 천신교의 교리를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따지자면 암흑교단에 더욱 가까운 인물이었다.
“썩어빠진 나무의 내부를 파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불태우고 거름으로 뿌려 새로운 나무를 키우는 편이 몇 배는 나아… 우리 누님은 그 씨앗이 될 거다. 아니, 그 나무 위에서 월계관을 쓰고 모두를 통치할 거야!”
“미, 친 새끼… 암흑, 교단이…….”
“그렇게 둘 거야.”
짝, 하고 양손을 마주치며 소녀가 생긋 미소를 머금었다.
괜한 걱정은 하지 말라는 듯, 믿음직한 상인을 연기하는 얼굴이었다.
“몇 가지 조건만 이행한다면 말이지? 뭐, 멍청한 여자는 아니라고 들었으니까… 정 안 되면 설득할 수단은 많아.”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다.
이 두 사람은 광인의 영역에 발을 디딘 지 오래였다. 일반적인 윤리관과 상식,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대로 끝인가.
아무리 고민해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한가.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는 운이 너무나 좋았다.
혈정뿐만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무수한 희생 위에서 나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또 한 번의 요행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내가 절망에 빠진 사이, 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뒷짐을 진 채, 소녀가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사실, 내가 꾸민 짓이야. 원래 샤일록 상회는 좀 더 오래 써먹을 패였거든? 그런데 오빠를 보니까, 내 심장이…….”
하아, 하아. 달뜬 한숨을 내쉬는 소녀의 표정이 몽롱해졌다.
“내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가지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은 거야! 그래서 일부러 오빠를 좀 자극해 봤어. ‘샤일록 상회’라는 멋진 미끼를 놓칠 수는 없잖아? 질투심도 유발해 보고, 후후… 동업자 양반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내 소중한 인형을 제거하려 들었지만 말이야.”
“이 빚은 언젠가 반드시 받아내지.”
유렌의 툴툴거림이 이어졌으나, 소녀는 일말의 관심조차 쏟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을 제 눈망울에 가득 채울 뿐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내 꿈이 이루어졌어… 오메로스, 만세! 오빠, 우리 예쁜 아이를 낳자?”
정욕과 탐욕, 증오와 원망에 도취된 목소리가 고막을 함뿍 적신다.
“그리고 날 버린 그 인간들한테 찾아가는 거야… 어때, 재미있겠지? 자신들이 지은 죄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를 알면……!”
“……신이.”
눈을 감기 직전, 내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은 그따위였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남은 것은 오직 신에게 기도할 수밖에.
하찮은 자기만족에 불과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두 사람을 저주했다.
“신이 두렵지 않나?”
소녀의 눈꺼풀이 멍하니 개폐를 반복했다. 너무 이상한 소리를 들어서, 내 정신 상태를 종잡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반면 유렌은 헛웃음을 터트릴 따름이었다.
그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신은 없어, 이안.”
이를 마지막으로, 사내의 등이 뒤돌아 섰다. 작별의 인사는 길지 않았다.
“지금 네 꼴이 그 증거다.”
저벅, 저벅.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일정한 운율을 형성했다. 마치 자장가를 듣는 신생아처럼, 나는 그 음정에 맞춰 서서히 눈을 깜박였다.
감았다가, 뜨기를 몇 번.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 눈꺼풀이 더는 열리지가 않았고.
웅웅, 하고 품속에서 울어대는 자그마한 구슬의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구슬이 울고 있었다. 계속해서.
**
또 다시 꿈속을 부유한다.
낯선 사내가 보았던, 어느 날의 풍경.
“전선을 뒤로 물려야 합니다.”
묵직한 선언이었다.
그 발언의 무게를 방증하듯 회의장 곳곳에서 침음이 터져 나왔다. 몇몇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표정이었으나, 정작 내 의견에 반대를 표하는 이는 없었다.
내 판단은 지극히 이성적이었으니까.
인류가 유지하고 있는 전선은 네 곳에 달했다. 사방이 포위된 형국으로, 내부에 숨은 암흑교단의 간첩들까지 소요를 일으키며 전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겪고 있었다.
그래서 인류의 지도자들은 결단을 내렸다.
남은 땅을 버리고, 지킬 수 있는 최후의 영토를 지키기로. 그리고 그 경계에 인류의 마지막 저력을 집대성한 성벽을 지을 예정이었다.
물론 득만큼이나 실도 많은 판단이었다.
당장 전선을 물리면, 그 안에 살아가고 있던 주민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피난의 과정은 지난했다. 평생을 일구었던 삶의 터전을 떠나는 길이 고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인명이 희생당해야 할지도 모를 결정이었다.
아니, 사실은 이 계획의 기저에는 그러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피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생산성 없는 인구들을 버리고, 인구 구조를 재편하여 최후의 항쟁에 나선다는 속셈이었다.
이 천막에 모인 지휘관들도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닐 터였다.
그래서 다들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인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최전선에 나선 이들이었다. 이곳에 영지를 둔 귀족도 있었고, 한평생 토박이로 살아오던 인물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조차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히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인류는 공멸의 길을 갈 뿐이었다.
암흑교단의 세력은 너무나 강대했다.
무려 수천 년 동안 음지에서 힘을 키우던 괴물들이었다. 마스터의 존재가 이들을 가까스로 억제하고 있었지만, ‘칠죄성’이라는 악마가 등장하자마자 모든 전황이 뒤바뀌었다.
비로소 암흑교단이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이 꼴이었다.
인류는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더는 멈출 수 없는 폭주 기관처럼.
아무도 반론을 내지 않을 것쯤은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찬동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저들은 비겁자였다.
누구보다 전선을 물러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면서도, 그로부터 파생될 원망과 비난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악역을 자처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입에서 짙은 피로가 어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반대 의견이 없다면, 이 사안에 대해서는 향후 불문에 부치기로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다칠 텐데요.”
발언권조차 득하지 않고 내뱉어진 말이었다.
하지만 회의장의 그 누구도 발언자를 책망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 여인이야말로 동부 전선의 수장이자, 극한의 조건에서 암흑교단의 침공을 방어해 낸 장본인이었으니까.
참고로, 내 연인이기도 했다.
침대 위에서는 누구보다 순종적인 여인인데, 그 외에는 늘 공사를 칼같이 구분하곤 했다.
지아비의 억지에 한두 번쯤은 어울려 줄 수 있지 않나.
나는 흘러나오는 한숨을 애써 삼키며, 준비해 두었던 대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전선을 물려야 한다는 판단에는 이견이 없어요. 하지만, 그러면 전선 뒤에 머무르고 있던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책임지죠?”
“누구도 책임지지 못합니다.”
잔혹하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현실이었다.
나를 원망하는 시선이 이곳저곳에서 던져졌다.
상관없었다. 욕 따위는 얼마든지 먹어 주마.
“전력을 온존하며 후퇴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냉정히 말해서,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여력은 없어요.”
“그렇군요.”
의외로 여인은 시원스레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최근 밤마다 일방적으로 당하던 경험이 심경에 변화라도 준 것일까.
이러한 의미에서는 연애를 시작하기 잘했다 싶었다. 여인이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사실쯤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기대는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와장창 깨져나가고 말았다.
“그럼 제가 남아야겠네요.”
우뚝, 하고 내 호흡이 멎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회의장에 착석한 모든 이들의 숨소리가 정지해 있었다.
부릅뜬 내 시선이 간절한 소망을 담아 여인을 향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발, 안 돼.
“제가 남아서, 이 전선을 지키겠습니다.”
그냥 해본 말이었다고 해.
“그 사이 모두 후퇴하세요. 그럼 되잖아요?”
그러면서 여인은 조용히 제 가슴에 성호를 그었다.
내 주먹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힘줄이 울긋불긋 솟아나오며, 내 악물어진 잇새가 덜덜 떨렸다.
“임마누엘…….”
쾅, 하고 내가 책상을 내리친 것은 그때였다.
깨져 나간 나무 파편이 사방을 날았다. 몇몇 사람들이 작은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귀에는 닿지 않았다.
다만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성녀만이 내 시야를 가득 채울 뿐이었다.
도대체 무어라 말해야 할까.
몇 번을 번민하다가, 나는.
“……따라 나와.”
일단 둘만의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내가 서 있던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오빠, 일어났어?”
귓가를 적시는 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흐릿해지는 의식을 붙잡으니 시야가 맑아진다.
나는 끄으, 하고 옅은 신음을 흘렸다. 어느덧 내 몸의 상처는 온데간데없이 나은 뒤였다. 그럼에도 잔류하는 통증이 내 촉각을 일깨운 것이다.
내 멍한 눈빛이 정면을 향했다.
그곳에는 검은 머리카락에 금빛 눈동자를 지닌, 미모의 소녀가 생글거리며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특이점은 소녀의 위치 정도였다.
나를 깨운 소녀는, 내 허리 위에 올라탄 채였으니까.
기함한 나는 어떻게든 몸을 빼내려고 했다.
헛된 시도였다. 팔다리를 묶고 있는 구속구가 워낙 단단했던 탓이었다.
내 당황한 눈빛이 주위를 훑었다.
기절한 셀린과, 신음을 토하고 있는 엘시 선배, 그리고 내 앞의 소녀와 똑 닮은 모습을 한 내 여동생이 소녀의 등 뒤로 나란히 구속되어 있었다.
이곳은 어디지, 라고 내가 자문을 던진 찰나.
“오빠, 이제 내 것이 될 준비는 됐어?”
질척한 유혹이 뱀처럼 나를 휘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