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4화 〉 6. 존재 증명(42)
* * *
그날도 소녀는 맹렬한 통증과 함께 눈을 떴다.
마치 개미가 혈관을 타고 기어 다니는 듯했다. 뾰족한 주둥이로 체내를 하나씩 물어뜯으며 지나간다면 이와 비슷한 고통이 일지도 몰랐다.
케엑, 켁.
부릅떠진 눈에 이슬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하지만 메마른 성대는 울음소리조차 제대로 토해내지 못했고, 차가운 침상 위에 고정된 몸은 꿈틀거릴 뿐 움직이지 못했다.
오늘따라 시야가 이상했다.
눈 하나를 감으니, 나머지 시야가 온통 흐릿해졌다. 다른 사람이라면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녀의 낯빛은 의외로 덤덤하기만 했다.
아, 오늘은 눈이 멀었구나.
그저 체념과 절망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을 따름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의 솜털이 바짝 곤두서며, 두려움으로 가득 찬 시선이 그 진원지를 향했다. 소녀는 히이익, 하고 숨을 들이키며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려 애를 썼다.
물론 헛된 시도였다.
가뜩이나 병약하다는 평가를 들어오던 소녀였다. 사지가 단단히 결박당한 시점부터 반항은 무의미했다.
끄윽, 끅.
울음이 목젖을 치고 올라온다. 음식도, 물도 섭취하지 않아 더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째서 눈물과 신음만은 습기로 가득 차 있는가.
안개처럼 흐릿한 조명을 받으며, 기괴한 차림의 사내가 나타났다.
차림새뿐만이 아니었다. 그 이목구비도 마구 뒤틀어져 마치 덜 완성된 조각품을 보는 듯했다.
암흑사제 미트람.
그는 소녀를 보며, 코 바로 옆에 달린 눈에서 눈물을 한 방울 찍어냈다.
“오, 가여운 아가씨… 아직 고통이 낯선 모양이군요.”
“하, 하이 마… 오이 마…….”
얼마 전에 이를 모조리 뽑힌 탓에, 소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애원은 바람 새는 소리로 수렴했다.
그 간절한 목소리에도 미트람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또한 ‘계약’이니까요.”
“나, 나한… 그런 허, 한 적 없어…….”
“당신의 의사와는 관계 없습니다.”
그러면서 사내는 제 품을 뒤적거렸다.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수상한 액체를 담은 주사기였다.
소녀는 이제 발작이라도 하듯 몸을 바르르 떨어댔다. 다가올 고통을 예감한 뇌가 강제로 의식을 잃으려 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애처로운 풍경이었다.
모든 시도가 무가치하다는 점에서 특히나 그랬다.
팍, 하고 사내의 손에 들린 주사기가 소녀의 경동맥을 꿰뚫었다.
강렬한 환각 효과에 소녀의 입에서 끄르륵, 하고 거품이 끓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미트람은 이를 보고도 눈물을 뚝뚝 흘릴 뿐이었다.
“악! 아아아아악! 아아아악!”
“불쌍한 아가씨… 어떻게 이토록 잔인한 일이 있을까.”
비명을 내지르는 소녀의 눈에서 물방울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하악, 하악, 숨조차 거칠어진 어린아이의 입에서는 구원을 바라는 기도문이 절로 읊어졌다.
“하, 하나임… 구, 구해 주……!”
“신 따위는 없습니다.”
잔인한 형벌을 언도하듯이, 미트람은 판사가 되어 그렇게 속삭였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았겠죠.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우리 같이 버림 받은 자들이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걸… 오직 우리 자신뿐!”
“아니야!”
극한의 고통 속에서 각성이라도 한 것일까.
소녀의 입에서 얼마만인지 모를 멀쩡한 목소리가 토해졌다. 핏발이 선 눈이 강렬한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나, 난 버려지지 않았어!”
“버려졌습니다.”
“거, 거짓말 하지 마!”
그것은 증오인가, 소원인가.
황금빛 눈동자에 새파란 불꽃이 명멸했다. 소녀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쳤다.
“나, 난 잠깐 맡겨진 것뿐이야… 엄마랑 아빠가 그랬어. 날 다시 데리러 올 거야! 엄마, 아빠… 살려 줘…….”
히끅이며 흐느낌이 범람한다.
홀로 눈물을 흘리는 소녀의 모습은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미트람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지, 그의 입에서 기나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연민의 시선이 소녀를 내리쬔다.
“……정 믿기 힘들다면, 보여드리죠.”
그리고 사내의 우악스러운 손이 콰직, 하고 소녀의 손가락을 으깨 버렸다.
투여받은 약물로 감각이 극한까지 예민해진 소녀였다. 도를 넘은 통증에 뇌에서 새하얀 벼락이 치나 싶더니, 이내 전신이 바르르 떨며 경련을 시작했다.
시야가 훅훅 넘어가듯 전환된다.
아늑하고 따스한 집 안이었다.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씁쓸하면서도, 슬픈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네 이름은 리아란다.”
“……리, 아?”
“그래, 네가 이제부터 ‘리아 페르쿠스’야. 우리의 가족.”
우드득, 소녀는 비명과 함께 다시 정신을 차렸다.
헐떡이는 숨소리와 반쯤 풀린 눈동자, 그럼에도 그 낯빛에 스친 경악은 지워지지 않았다.
혹시 꿈인가?
아니었다. 소녀의 부모는 그렇게 낯설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영문을 깨닫지 못하는 소녀에게, 미트람은 잔인한 진실을 읊어주었다.
“당신 대신 보낸 가짜가 보고 있는 광경입니다. 페르쿠스 일가는, 아무래도 당신을 포기하기로 한 모양이군요.”
“거, 거짓마이햐…….”
소녀는 울며 부정하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미트람을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고문을 가할 뿐이었다.
벼락이 치는 듯한 통증에 이어 장면이 전환된다.
소녀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만찬을 즐기는 모습.
“아니야…….”
거리를 두는 가족들 앞에서 소녀는 영원히 수줍을 것만 같았다. 매일 밤 공터에서 땅을 구르며 훈련하는 사내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스스로를 ‘작은 오빠’라고 소개한 소년은, 맑은 미소를 지으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년이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내가 지켜줄게.’
단 한 번도 소녀는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간절한 약속이기도 했다.
“아니야…….”
쾅, 쾅, 쾅.
며칠이고 뇌리에 벼락이 내리친다.
그러는 사이, 소녀는 점점 더 가족의 품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옷을 걸치기도 하고.
소년이 훈련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그 손을 잡고 뒷산에 놀러 가기도 했다.
그곳에는 멋진 꽃밭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녀는 소년이 만들어 준 꽃반지를 손가락에 끼면서,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떨구었다.
‘잘 어울리네, 리아.’
소년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웃지 마.
행복해 하지 마.
가족애를 느껴? 우애를 느껴? 감히, 네까짓 게 사랑을 해?
아니야, 아니야.
그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내가 ‘리아’니까!”
그까짓 가짜가 아니라, 몇 번이고 목청을 높여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세월은 속절 없이 흐른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때마다, 어김없이 소녀의 세계는 환상처럼 일변했다.
날이 갈수록 소녀가 웃음을 잃어 가는 사이, 소녀를 닮은 소녀는 웃음이 많아졌다.
피폐해진 정신의 틈새로 원망의 기름이 부어졌다.
누구를 증오해야 하는가.
나를 버린 부모?
“마땅히 그래야죠.”
미트람이 킥킥거리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덧 통증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몸으로, 소녀는 멍하니 읊조렸다.
“그리고, 그 가짜도…….”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미 답을 다 알고 있으면서, 사내는 제자의 멋진 대답을 고대하는 스승처럼 손을 비비적거렸다.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소녀는 그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내 것이니까.”
죽어 있던 금빛 눈동자에 다시 한 번 빛이 탄생했다.
으득, 으득, 이를 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으스러지는 치아를 느끼며, 소녀가 증오를 가득 담아 울부짖었다.
“내 것, 내 것, 내 것! 전부 다 내 것이어야 하잖아!”
저 미소와,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오빠까지도!
모든 것이 소녀의 몫이었다. 인생을 송두리째 뺏긴 소녀의 원한은 깊고 짙었다.
우둑, 하고 소녀를 묶고 있던 철제 침상이 들썩인 것은 그때였다.
실명한 두 눈, 이미 타버린 신경과 난자된 몸뚱아리 사이로 칠흑의 액체가 울컥울컥 쏟아져 내렸다.
미트람은 이를 두고 탄성을 터트리며 무릎을 꿇었다.
“다시 되찾아야 해…….”
“드디어, 완성되셨군요.”
쾅, 하고 폭음이 터져 나오자 세상이 찢겨 나갔다.
아니, 찢겨 나간 것은 소녀를 구속하고 있던 빗장이었다. 강철로 이루어졌을 구속구와 침상이 형편없이 찢겨 지면 위를 굴렀다.
날카로운 충돌음이 마치 비명 소리 같았다.
어쩌면 소녀가 참고 참았던 비명이 뒤늦게 내질러지는지도 몰랐다.
미트람은 이제 눈물까지 흘리며 땅에 머리를 찧고 있었다.
“탐욕의 그릇이시여……!”
그러든 말든, 소녀의 뇌리는 어느 사내의 생각으로 가득 찬 뒤였다.
이안 페르쿠스.
소녀를 버리지 않은 단 하나의 혈육, 비록 환상 너머에서나마 소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어 준 유일한 존재.
그를 가장 먼저 되찾아야 했다.
그래야만, 소녀는 비로소 제 인생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첫사랑.
유년기의 끝, 사춘기의 시작이었다.
비록 그것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광애(??)라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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