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469화 (469/649)

〈 469화 〉 6. 존재 증명(57)

* * *

밤은 어둡다.

너무나 당연한 진술이었으나, 아카데미에 한해 이는 드물게 참인 명제였다. 무려 수만에 달하는 인구가 상주하고 있는 장소가 아닌가. 낮이든 밤이든 문명의 빛을 뿜지 않는 곳이 없었다.

연중 내내 인파로 붐비는 아카데미가 조용한 날은 며칠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이 그 ‘며칠’ 중 하나였다.

아카데미의 유명인사 중 하나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그것도 인류를 배반했다는 죄목이었다. 극형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는 소문이 아카데미를 공공연히 맴돌았다.

이 믿기 힘든 소식이 한파처럼 아카데미의 열기를 앗아갔다.

혹여 성녀와 엮이기라도 할까 두려워 학생들은 활동을 줄였다. 교원들은 매일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결국 아카데미는 쥐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태양이 두려워 숨는 죄인들.

비단 이곳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리라. 온 세상이 성녀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느라 안달이 났다고 들었으니.

이러한 쥐들의 세계에서, 나는 홀로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단지 잠이 오지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욱씬거리며 쑤시는 몸뚱어리가 내게 외치고 있었다.

불가능하다.

설령 내 육체가 멀쩡하더라도 성녀를 살릴 길은 보이지 않았다. 누더기처럼 기워 붙인 몸을 가지고 무얼 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무력감은 지독했다.

아직도 입술에 성녀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했다. 내 귓가에 와 닿던 성녀의 숨결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를 사랑한다던 그 수줍은 고백까지도.

후우, 하고 나는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치솟는 한숨을 내뱉었다.

아카데미의 북쪽에는 야트막한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의 중턱에 마련된 전망대에서 하염없이 달을 올려다보고 있던 참이었다.

느닷없이 묵직한 목소리가 내 귓전을 파고들었다.

“오늘따라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군.”

터벅터벅 산의 정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걸음 소리.

나는 언뜻 시선을 돌리다 깜짝 놀라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곳에는 정열적인 붉은 머리카락과 수염을 지닌 중년의 사내가 위치하고 있었다.

데렉 교수님.

전설적인 마수 사냥꾼이자, 아카데미 내에서 나의 검술 지도를 가장 성심성의껏 봐준 인물이었다. 제자 된 도리로서 마땅히 고개를 꺾을 수밖에 없었다.

무척 오랜만에 뵙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귀향제에서 황녀를 구출하기 위한 도움을 몇 번 받은 적이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만남에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데렉 교수님이 태연한 칭찬을 건넸다.

“기세가 많이 안정됐어… 심상은 깨우쳤나?”

“네, 네? 아… 네, 아마도…….”

내 애매한 대답에도 데렉 교수님은 피식, 하고 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근육질의 사내가 자연스레 내 옆에 섰다.

그러지 않아도 복잡하던 머리가 단단히 꼬이고 말았다. 교수란 아무리 친해져도 어려운 존재였다.

다행스럽게도 교수님은 마냥 침묵을 사랑하는 분이 아니셨다.

“왜 심상이 중요한 줄 아나?”

난데없는 물음이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일순 답을 하지 못했다.

그야 심상을 세워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익스퍼트에 이른 무인은 신체와 마력뿐만 아니라, 심상 또한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오러의 위력을 강화시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심상이 일정 단계까지 각성되면, 오러가 현실을 왜곡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개화’라 불리는 오러의 각성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흔해빠진 내용을 묻고 싶은 것 같지는 않았다.

교수님은 굳이 뜸을 들이지 않았다.

“명줄을 붙여주거든.”

너무나도 단순한 이유에 나는 침묵을 지켰다.

의아하다는 시선이 데렉 교수님을 향했다.

그러든 말든, 데렉 교수님은 무척 중요한 사실을 전한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심상은 현실을 왜곡하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는 소리야. 다시 말해서, 죽어 움직이지 못할 몸뚱아리도 움직일 수 있지. 그건 실전에서 아주 결정적인 차이를 부른다.”

“그래서 움직였군요.”

나는 그제야 지난 전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심장이 뚫리고, 피를 한 무더기 토해낸 육체가 다시 움직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날 나는 죽어 사라졌어야 했다.

하지만 심상을 각성했기 때문에 신체가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만큼 심상을 깨우치는 건 힘들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다… 그 정도로 강한 심상을 품어야 한단 소리니까 말이야.”

“데렉 교수님은 언제 각성하셨습니까?”

“죽기 직전에.”

그때를 회상하듯, 근육질의 사내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리고 또 한 번 죽을 위기를 넘겼을 때, 얼핏 보았지. 이 길의 끝을…….”

“하이 익스퍼트셨습니까?”

나는 순수하게 놀랐다는 투로 말했다.

아무도 데렉 교수님의 전력을 본 적은 없었다. 그야 마수를 사냥할 때 홀로 움직이는 편이었으니, 그 진정한 실력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델레모어 학장 정도나 알고 있을까.

대륙을 통틀어 수십 명밖에 되지 않는 존재들이 ‘하이 익스퍼트’, 혹은 ‘대마법사’였다. 아카데미 교수 중에도 몇 명이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설마 데렉 교수님일 줄이야.

근본도 없는 마수 사냥꾼 출신이라는 풍문이 내 무의식에도 영향을 미친 탓일까.

나는 속으로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그때 모든 것의 편린을 보았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전능하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지.”

“그 정도입니까?”

“한시적으로 마스터의 경지를 엿본다고 생각하면 편하네.”

그러고 보니, 레이놀드 씨도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진리의 편린을 보았다고. 그때 휩쓸리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고.

흐음, 하고 내 묘한 침음을 삼킬 무렵이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죽으러 들진 말도록.”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그 충고에 몸을 흠칫 떠는 수밖에 없었다.

노회한 검사의 눈이 묵묵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수십 번을 죽는다 해도 ‘끝’을 볼 수 있는 검사는 소수에 불과해.”

“그럼 수백 번으로는 안 되겠습니까?”

내 반문에 교수님은 큭큭, 하고 옅은 웃음을 토해냈다. 말도 안 된다는 듯.

“당연히 그 전에 죽겠지. 또, 그만큼 임사 체험을 한다면 살아도 산 게 아니야.”

두터운 검지가 머리의 측면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렸다.

“산송장이 될 테니까… 인간의 정신은 그렇게 강하지 못하거든.”

그러면서 데렉 교수님은 다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자한테 전해 주고 싶은 말은 이제 다 끝난 모양이었다.

“또, 주변 사람들에게도 할 짓이 못 되지. 죽을 위기를 못해도 수백 번은 넘기다니… 애가 닳다 못해 모조리 마르고 말걸? 그러다 죽기라도 해 봐라.”

턱, 하고 데렉 교수님의 큼지막한 손이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며 지나갔다.

“저 위에 라이넬라 꼬맹이도 마음고생이 심한 모양이더구나.”

“……라이넬라?”

내 혼잣말을 들은 데렉 교수님이 피식, 하고 터트린 웃음이 마지막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카데미에 돌아와 일행들을 만나지 못했다.

나와 함께 ‘탐욕’과 전투를 치른 동료들도 멀쩡하지는 못할 터였다. 각자 하나씩은 마음에 상처를 받을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셀린은 또 다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나를 습격했다.

리아는 ‘가짜’라는 소리를 면전에서 들어야 했고, 엘시 선배는 존경하던 삼촌을 잃었다.

너무 내 생각만 했구나.

데렉 교수님이 떠난 뒤에도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결의를 다졌다.

동료들의 마음을 돌보는 것도 중요한 의무였다.

정작 내 찢겨진 가슴은 나을 길이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그렇게 걸음을 재촉해 올라간 야트막한 산의 정상.

그곳에는, 데렉 교수님의 말마따나 울음을 터트리는 라이넬라가 하나 서 있었다.

“커헉, 흐엉… 사, 삼초오온……”

엘시 선배의 동생, 루핀 라이넬라가 말이다.

흉하게 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 꼴을 본 내 안면이 그대로 구겨졌다.

“……이런 씨발.”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

술 한 잔.

술은 인간을 무뎌지게도, 예민하게도 만든다. 대개 첫 잔의 술은 감정을 증폭시키기 마련이었다.

내 앞에 앉은 채 훌쩍이는 루핀이 딱 그랬다.

그는 아직도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또한 레이놀드 씨를 많이 따랐던 모양이었다.

물론 사내 자식이 질질 짜던 말던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내 입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엘시 선배는?”

“크흡, 흐윽… 바, 방에서 칩거 중이야… 아마 수련 중일지도…….”

마법사는 방 안에서도 수련을 할 수 있구나.

참 편하겠다는 생각이 얼핏 머리를 스쳤다. 물론 엘시 선배의 각오가 그 정도는 아닐 테지만 말이다.

나는 한숨과 함께 술 한 잔을 들이켰다.

이대로 말없이 밤의 정취를 즐기고 싶었으나, 훌쩍이는 소리가 자꾸만 귀에 밟혔다. 결국 내 입술 사이로 희미한 타박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임마, 사내가 돼서 뭘 그리 징징 짜?”

“하, 하지마안…….”

“레이놀드 씨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그제야 루핀은 어떻게든 제 울음을 억누르려 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턱을 타고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나름대로 인망이 있었던 걸까.

내 눈이 다시금 달을 향했다. 사실 루핀 앞에서, 나는 죄인의 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레이놀드 씨는 나와 일행을 위해 희생했다.

내 잘못만은 아니겠으나, 내 존재가 ‘탐욕’의 관심을 끌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 점이 못내 가슴에 걸려 나는 결국 야밤의 술자리를 가져야 했다.

아직도 그가 남긴 유훈이 물결처럼 심장을 맴돌았다.

“사, 삼촌… 삼촌은 후회하지 않았을까?”

물기가 조금 가신 목소리로, 루핀은 그렇게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손수건을 내밀었다.

킁, 하는 소리와 함께 루핀이 코를 풀었다. 나는 내심 저 손수건은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앞의 인물이 엘시 선배였다면 세탁해서 다시 쓰고 말았을 텐데.

“무섭지 않았을까? 마, 많이 아팠을 텐데… 심장이 터질 정도면…….”

“평온하게 가셨다.”

아마도, 라고 나는 애써 차오르는 말을 참아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인간도 있나?

나 또한 몇 번이고 사선을 오갔던 인물이었다. 죽고 싶지 않다는 본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놀드 씨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본래 암흑교단에게 패배했어야 할 그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유품과 유언도 남기셨어.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무, 뭐라고… 훌쩍, 하셨는데?”

내 말문이 일순 틀어막혔다.

까닭은 알 수 없었다. 무언가 말을 꺼내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상대는 라이넬라 가문의 일원이었다.

레이놀드 씨의 유언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머뭇거리며 말문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지 말고…….”

거기까지, 나는 말을 이어가다 말고 술잔을 가득 채우고 비웠다.

그러나 루핀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마저 유언을 들으려는 듯.

멍하니, 나는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 갔다.

“……비겁하게 굴지 말라고.”

“다행이네.”

훌쩍, 하고 눈물을 훔친 루핀의 감상이었다.

내 넋 나간 시선이 그를 향했다.

“너한테 남긴 유언이잖아? 나는, 그런 약속 못 지켜.”

“나라고 만능인 줄 알아?”

헛웃음을 삼키며 내뱉은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나는 만능이 아니었다. 내가 이루어 온 업적 또한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선 층계에 불과했다.

지금만 하더라도, 보라.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운신조차 힘든 마당이었다. 무얼 하고 말고 할 계제는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성녀를 이대로 둘 것이냐.

바위처럼 무거운 물음이 내 폐부를 내리눌렀다. 헐떡이면서, 나는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루핀이 내게 무언가를 건넨 것은 그때였다.

칠흑의 막대.

낯익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엘시 선배가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을, 어째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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