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8화 〉 6. 존재 증명(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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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맹종을 근간으로 한다.
신앙이란 비이성적인 감정이다. 보이지도 않는 신을 위해 제 목숨마저 버리는 판단이 합리적일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늘 인류의 역사 속에서 존속해 왔다.
공동체를 위해서, 더 광범위한 연대 의식을 이루기 위해서.
혹은 법과 규율로 통제할 수 없는 도덕의 영역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종교는 동원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학자들의 각론을 차치하고, 대다수의 신도들에게 있어 종교의 진실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신은 존재한다.
불합리한 제 자신의 처지도, 해명되지 않은 자연재해조차 위대한 신의 뜻 아래 통제된다. 종교를 믿는 이들이 바라마지 않는 세상의 진리란 그곳에 있었다.
때로는 종교의 이러한 기능이 기득권에 의해 악용된다는 비판도 가해졌다. 하지만 신의 존재가 신도들의 염원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그리하여 신의 존재 증명은 모든 종교의 숙원이 되었다.
천신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든 신도들은 제 믿음이 보답받기를 원했다. 희생과 기도가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 잔인한 현실의 끝에는 구원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 누구보다 믿고 싶은 이들이 바로 성도들이었다.
따라서 기적을 두 눈으로 목도한 지금, 어찌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찬란한 서광이 하늘에서 내리쬔다. 따스한 햇살은 소나기로 젖은 대지를 보듬고, 옷을 잔뜩 적신 신도들은 빗물과 함께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들이 과연 죄 없는 여인을 불태우려 했던 이들이란 말인가?
심지어 교황조차 무릎을 꿇은 채 감히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성직자가 된 지 수십 년만에 처음, 천신이 내린 응답에 그의 몸이 감동과 환희로 부르르 떨렸다.
이대로 두면 혼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빛이 사라진 동공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니, 비단 교황뿐만 아니라 수만에 달하는 인파 전원이 이와 비슷한 상태였다.
단 한 명의 인간 앞에서.
모든 이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경배하는 광경은 장엄한 풍경화를 연출했다.
언젠가 천신교의 위대한 기록물 중 하나가 될 이 성화 속에서,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선 인물은 단 둘뿐이었다.
이안과 성자.
얼떨떨한 낯빛을 한 채 몸을 굳힌 이안을 보며, 성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황스러우십니까?”
흠칫 얼어붙은 황금빛 시선이 성자를 향했다. 일순 그의 존재마저 잊고 있었다는 기색이었다.
그만큼이나 여인이 보인 기적이 압도적이라서.
이안은 아직도 넋이 나가 멀거니 서 있을 뿐이었다.
“아, 네. 네…….”
“혹은, 불쾌하십니까?”
이안은 대답 대신 입을 다물었다.
어느 쪽이든 감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이안은 군중들이 무슨 반응을 보이든 간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성녀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못내 감사할 따름이었다.
설령 그것이 세상을 불구덩이와 같은 운명 속에 처박은 천신이더라도.
하지만 돌이켜 보니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성녀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소리치던 이들도 저 군중 속에 섞여 있을 텐데.
이를 주도한 교황과, 성녀를 희생시키려 했던 성국의 수뇌부 또한 그 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럼에도 저들은 도리어 구원을 얻었다는 얼굴이었다.
이안이 머뭇거리는 사이, 성자는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인간은 비겁한 존재입니다. 불안할수록 더욱 극단적인 면모를 보이죠… 운 나쁘게 엎어져, 흙투성이가 된 개를 짓밟는 일조차 서슴지 않습니다. 그렇게 정의가 지켜졌다고 믿고 싶거든요.”
“그것 참…….”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사내가 난감한 대답을 담기도 전에.
“그래서 전 인간을 사랑합니다.”
성자는 그렇게 말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인간을 향한 믿음이, 신을 향한 믿음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는 사실이… 비록 당장 대답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전 언젠가 저들이 가장 빛나는 결단을 내려 주리라 믿습니다.”
잔잔한 미소와 함께 내뱉어진 고백이었다.
거짓말은 아니리라.
성자의 눈에는 흐릿한 연민과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저들이 불쌍하다고 여기는 듯했다.
나약해서, 강인하지 못해서.
비겁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
그 눈빛을 본 이안은 문득 궁금해져 되물었다.
“……성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님’이라는 존칭마저 생략된 물음이었다.
이제 막 성인(?人)의 반열에 오른 위인에게 보일 태도는 아니었다. 사내는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늘 그랬듯이 성자는 딱히 인세의 예의에 연연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는 뒷짐을 진 채로, 조용히 장작 위에 꿇어앉은 성녀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심판도, 자비도 주의 뜻이거늘…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알 듯 말 듯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이안은 굳이 성자를 채근하지는 않았다. 내심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선택은 성녀의 몫이었다.
제 몸을 장작 위에 올려, 불구덩이 속에서 천신의 뜻을 물었다.
스스로 이룬 기적이었다.
당연히 그 대가 또한 성녀가 취해야 마땅했다. 사내는 그녀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기쁨을 느꼈다.
그때였다.
장작 위에서 서서히 여인이 몸을 일으켰다. 두 손을 모은 채로,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는 그 자태가 남다르게 아름다웠다.
마치 세상이 길을 틔워 주는 듯했다.
잿더미가 된 장작들이 차례대로 폭삭 내려앉으며 층계를 이루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성녀의 몸은 산상법정에 가까워졌다.
“오, 오오오……!”
교황은 어느덧 드높은 절벽에서 엉금엉금 기어, 땅 밑에 엎어져 있었다. 성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등 뒤로 일렁이는 빛의 선이 펼쳐졌다.
날개와 같은 형상, 교황은 더욱 감격해서 땅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쿵.
그것이 신호였다.
쿵, 쿵, 쿵!
수만에 달하는 인파가 땅에 머리를 찧을 때마다 지축이 뒤흔들렸다. 여인의 낯빛은 그 인공의 지진 속에서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이윽고 여인의 발이 사뿐히 땅을 즈려밟는다.
걷고 걸어, 여인의 발길이 멎은 곳은 교황의 바로 앞.
머리를 조아린 노사제는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이, 이 미천한 종이…….”
감격과 후회로 범벅이 된 숨소리를 토해내며, 늙은 신도가 헐떡였다.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용서해 달라는 애원조차 아니었다.
무슨 처분을 내리든 그대로 감내하겠다는 뜻이었다. 오랜 세월을 성국의 정치판에서 구른 능구렁이가 내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는 성직자였다.
신의 기적 앞에서 할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다만 평생을 품어왔던 믿음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내 감격스러웠을 뿐.
성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세요.”
“하지만, 어찌…….”
“이 자리에 꿇어앉은 모든 이들이 죄인이 되길 원하십니까?”
교황은 말문이 막힌 듯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그가 어떠한 선택을 내릴지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성녀의 말은 당근과 채찍을 담고 있었다.
당근은, 당연히 몸을 일으켜 죄인이 아닌 신분으로서 마주하라는 권유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공터에 꿇어앉은 모든 이들이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은근한 위협이 채찍이었다.
성녀를 십자가에 매달고자 했던 것은 성국의 수뇌부뿐만이 아니었다.
이성을 잃은 군중들 또한 성녀를 잔혹하게 죽이기를 원했다. 교황은 지도자로서 수만에 달하는 인파를 죄인으로 만들 만큼 몰염치한 인간은 되지 못했다.
주춤주춤 교황이 몸을 일으키자, 여인은 그제야 흐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찌 이 세상에 죄 짓지 않는 영혼이 있겠습니까? 스스로 죄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했으나, 모든 것이 악의 손을 빌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절망하고 후회스러웠습니다. 신을 부정하고 모욕하기까지 했지요.”
교황은 바짝 긴장한 낯빛으로 성녀의 말에 귀를 기울일 따름이었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 신을 부정하고 모욕했다니.
마땅히 정보를 통제해야겠으나, 교황은 어쩐지 그러한 지시를 내릴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성녀로부터 피어오르는 금빛의 광채에 압도당했기 때문이었다.
혹은, 빛을 등진 성녀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묻노니, 그대가 나를 미워하였습니까? 원수처럼 여겨 부정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돌을 던지려 했습니까?”
“……그러하옵나이다.”
“그렇다면 용서하겠습니다.”
한 점의 미련조차 없이 후련한 어조였다.
수만 쌍의 눈동자가 멍하니 성녀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주께서 그리하셨듯이, 나 또한.”
모든 이를 위한 면죄부를 남긴 채로, 성녀는 볼 일은 끝이라는 듯 등을 돌렸다.
당황한 교황의 손이 허공을 허우적댈 무렵이었다.
“……참.”
성녀의 눈이 다시 흘깃 등 뒤를 향했다. 교황을 향해서, 아니.
이때까지도 공터로 내려오지 않은 정상의 누군가를 향해서.
연분홍빛 동공 위에 떠오른 금빛의 광채가 타고 있었다.
“성국 내에 파고든 암흑교단의 색출 작업에 힘써 주세요. 이에 대한 적임자는… 아인델 총주교?”
높디 높은 산의 정상, 그 끄트머리에 어느 늙은 사제가 서 있었다.
왜소한 키와 달리 선이 굵은 얼굴이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묵묵히 지상을 내려다보는 그 푸른 눈동자는 얼핏 보기에 감정이 마모된 듯도 보였다.
이안은 그제야 그의 존재를 떠올렸다.
둘로 나뉜 성국의 정치판, 개혁파의 필두인 성녀에 맞서 보수파를 이끌고 있는 거물이었다.
아인델 총주교.
그 이름을, 이안은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레오릭의 입으로부터.
조심하라고 했던가.
한참 동안이나 노사제는 대답이 없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기는 했다.
성녀의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총주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넉넉히 쳐줘도 동급의 지위에 놓인 인물에게 함부로 지시를 내릴 수는 없었다.
심지어 이곳에는 교황이라는 명백한 상급자가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가 뜻을 받들겠나이다, 성녀시여.”
아인델 총주교는 서서히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성녀는 더는 교단의 얼굴 마담 따위가 아니었다.
천신의 인정을 받은 성인이었다.
성국의 주도권이 온전히 한 여인에게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성녀’라.”
성녀는 그렇게 읊조리며, 훗, 하고 웃음을 머금었다. 이제야 만족했다는 낯빛이었다.
그리고 다시 성녀의 행로가 이어졌다. 그 길의 끝에 위치한 사내는, 바로 이안이었다.
그는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성녀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수만 쌍의 눈동자가 움직였던 탓이었다. 이안은 어느덧 성녀와 함께 무수한 시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사내의 바로 앞에서, 성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몰아쉬었다.
여태껏 보인 적 없는 긴장한 모습이었다.
이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성녀…….”
그러나 그 전에, 여인의 검지가 이안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이안은 의아한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든 말든, 심호흡을 마친 여인은 재빨리 말을 이어갔다.
“이안, 나는 지금까지 ‘성녀’였어요. 이름 따위는 없었죠. 그저 그 지위에 맞추어, 감정이 없는 인간인 양 살았던 거예요. 목적을 위해서, 때로는 악과 희생으로부터 눈을 돌리기도 했죠.”
여인의 고백에 이안은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다만 다소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여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데 당신이 날 바꾸어 버렸어요.”
여인의 몸에 떠돌던 금빛의 광채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이안의 곁에 서 있던 성자가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이윽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그는 스리슬쩍 뒷걸음질을 치며 떠나 버렸다.
그리하여 이곳에 남은 이는 단 둘뿐.
“말한 적이 있었죠? ‘성녀’에게 감정은 허락되지 않아요.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자리죠. 그래서 처음에는, 무섭고 당황스러웠어요. 내 감정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커져 가고 있어서.”
껍데기에 갇혀 있던 여인의 본심이었다.
수만에 달하는 인파가 숨을 죽인 채, 그 비화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결국 당신이, 당신이…….”
여인의 손이 꾸욱, 하고 제 목에 걸린 은빛의 로자리오를 움켜 쥐었다.
연분홍빛 눈동자에 흐릿한 이슬이 맺힌다.
여인은 살풋 미소를 지으며.
“……당신이, 나를 구했군요.”
비단 오늘만이 아니었다.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평민 따위에 연연하는 어리숙한 귀족도 있구나 생각했다.
무관심한 척했지만 내심은 인상 깊었다. 신분에 연연하지 않는 이도 있다는 사실을, 그날 깨달았다.
그 후로도 당신은 당연하다는 듯 몇 번이고 세상을 구해 냈다.
오늘에 이르러, 당신은 십자가에 매달릴 여인을 구하고.
불길 속에서, 그리고 ‘성녀’라는 껍데기에 갇혀 있던 여인 하나를 건져내 이 자리에 세웠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인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가 힘들었다.
“나는, ‘성녀’가 아니에요. 그건 날 부르는 수많은 호칭 중 하나에 불과하잖아요? 내게는 보다 본질적인 것이 필요해요.”
“그렇다면, 무엇을…….”
“……이름.”
바짝바짝 말라오는 입술을 침으로 축이며, 성녀는 그렇게 말했다.
진작부터 결심해 왔다는 듯.
“당신이 정해 줘요. 당신이, 나를 ‘성녀’가 아니게 만들었으니까.”
이안은 그 부탁에 일순 멍한 낯빛을 했다가.
이내 헛웃음을 삼켰다. 놀랍도록 떠오르는 이름은 하나밖에 없었다.
소소한 바람을 담아서, 이안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 이름을 꺼냈다.
“……루시아.”
미래에서 온 연애 편지의 말미.
그곳에 적혀 있던, 언젠가 연인이 될 여인의 이름이었다. 이윽고 이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루시아는 어떻습니까?”
“루시아, 루시아…….”
잊지 않겠다는 듯, 여인은 몇 번이나 그렇게 그 이름을 되뇌었다.
그리고 맑은 웃음이 떠올랐다.
“좋아요, 루시아. 마음에 드네요.”
이제야 끝인가.
그렇게 이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쉴 무렵이었다.
바짝 얼어붙은 한 걸음이 내딛어졌다.
루시아였다. 그 연분홍빛 눈동자에는 옅은 긴장과 떨림이 뒤섞여 있었다.
오래 전부터 생각했다.
‘성녀’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면, 반드시 이래야겠다고.
수만에 달하는 인파.
교황과 성자, 그리고 성국을 움직이는 수많은 실세들 앞에서 보이고 마리라.
나는 더는 ‘성녀’가 아니다.
감정을 지닌 인간이다. 더는 껍데기에 맞추어 살아가는, 텅 빈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성녀’로서는 저지를 수 없는 짓을 저지르자고.
단 1초.
숨결이 뒤섞이고, 앞으로 기울던 여인의 입술이 덮치듯이 사내의 입술에 맞닿는다.
이윽고 부릅떠지는 황금빛 눈동자.
이는 수만에 달하는 인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눈은 더는 커질 수 없을 만큼 찢어져 있었다.
뒷걸음질을 치는 사내의 몸에 발 맞추어, 그 위에 포개어지듯 여인의 몸이 겹친다.
그렇게 무너져 내리는 풍경 속, 이름을 받은 여인은 비로소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이걸 원했어.
존재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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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대륙 곳곳이 염문설로 떠들썩해졌다.
예외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딜 가나 이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떠드느라 여념이 없었고, 곧 세상을 구할 영웅과 성녀의 열애담은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해졌다.
멀리, 멀리.
라이넬라 가문과 유르디나 가문, 심지어 황궁까지도.
새로운 파란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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