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4화 〉 7. 질투는 나의 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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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황제가 아카데미에 방문한다.
그것도 대륙에 단 셋밖에 없는 마스터 중 둘을 대동한 방문이었다. 비단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온 대륙에 일대 파란이 일 수밖에 없는 정보였다.
황제가 누구인가.
그는 대륙의 오롯한 지존 중 하나였다.
바다 위에 널리 퍼진 군도나 제도를 포함해서, 우리가 딛고 선 대륙에는 온갖 국가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자그마한 공국이나 시국에 불과한 약소 국가에 불과하기는 했다.
그중에서 진정 ‘나라’라 불릴 만한 국력을 지닌 곳은 얼마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과 성국, 그리고 군소 왕국의 연합체인 남부 열왕국.
이처럼 대륙의 질서를 주도하는 국가는 오직 셋뿐이었다. 각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마스터를 하나 이상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통치를 수백 년 이상 이어온 나라들.
제국은 그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성국과 남부 열왕국조차 한 수 접어 주어야 하는 국가의 수반이었다. 심지어 제국은 삼국 중에서도 가장 중앙집권적인 체제를 지니고 있었기에, 그 위세와 비할 만한 존재조차 참기 힘든 실정이었다.
그나마 각국의 마스터 정도가 동등한 대접을 받을까.
이러한 대륙 권력의 중추가 아카데미로 오고 있다.
아카데미로서는 갓 새끼를 낳은 고양이처럼 잔뜩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사유로는 세속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마스터들과는 달리, 제국 황제는 그 자체로 한 명의 위정자로서 활동하는 인물이었다.
어떠한 의미로는 마스터보다도 위험천만한 존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충격적인 소식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무려 대마녀가 비전을 전할 제자를 아카데미에서 찾으리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부 열왕국의 대모이자, 국사(國?)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긴장과 흥분이 얽힌 공기가 아카데미에 넘실댈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막후에서는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온갖 정치적 거래가 오고 가고 있겠지.
내게는 무관한 문제였다.
어차피 정치가 주된 목적이 되는 판에서 내가 움직일 여지는 한없이 적었다. 애초에 나는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보다는 내가 당면한 사안들이 너무나도 중차대했다.
우선 첫 번째, 흡혈귀의 잠입.
두 번째, 황제와의 독대.
그리고 마지막은, 이제 막 해결하려던 참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황녀와의 짧은 대담을 마친 후, 나는 급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황제의 도착은 내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야 워프 게이트를 타고 오면 아카데미는 지근거리였으니, 오랜 시간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내게는 당장 예복을 갖추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하여 시내로 향하는 길, 자연스레 내 등 뒤로 따라붙은 인물이 하나 있었다.
‘엘시 선배’.
정확히 말하자면, 미래에서 온 엘시 선배였다. 나는 도무지 그녀가 이 시점에 등장한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글쎄? 그건 내가 더 묻고 싶은데… 그보다 너, 나 알아? 왜 이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원래 엘시 선배는 어디로 갔습니까?”
“낸들 알까.”
흥, 하고 새침하게 코웃음을 치는 모습에서 얼핏 엘시 선배가 보이긴 했다.
내게 손도끼를 맞기 전의 엘시 선배가 말이다.
혹시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면 보다 협조적인 자세로 나올까.
일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헛소리였다. 단지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폭행할 수는 없었다. 더불어 상대의 실력이 만만찮기도 했고.
‘대마법사’,
최소한 그 영광스러운 호칭을 받을 만한 경지였다. 정돈된 마력과 두 개의 원소를 혼합하는 독창적인 술식만 봐도 감이 왔다.
문득 꿈에서 본 광경이 떠올랐다.
미래에서 온 사내의 기억 속에서, ‘경계’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나는 엘시 선배가 최근 경지의 상승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뒤이어 연상했을 따름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엘시 선배는 ‘경계’를 보았을 것이다.
레이놀드 씨의 유품은 ‘경계’를 더욱 잘 볼 수 있게끔 하는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이 엘시 선배의 목표가 ‘대마법사’였던 만큼, ‘경계’를 맞닥뜨리는 미래는 필연이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이상현상이 발생한 건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인적이 드문 오솔길 무렵에서, 우뚝 멈춰 선 채 본론부터 꺼내 보기로 했다.
“……슬슬 돌려 주시죠.”
“뭘?”
나름 의도가 명백한 요구였다. 그럼에도 엘시 선배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화두를 돌릴 뿐이었다.
기어코 내게서 날 것의 언어를 듣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결국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아는 ‘엘시 선배’ 말입니다… 한창 중요한 수련 중이었어요. 당장 졸업 임무를 앞두고 있는데, 만약을 위해서라도 경지를 올려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졸업 임무’.
말 그대로 아카데미의 졸업장을 받기 위해 마지막으로 수행하는 임무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 임무에서는 누구의 조력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일까.
오직 홀로 임무를 수행해 자신의 한계를 목도하는 것이 ‘졸업 임무’의 목표였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많았다. 매년 졸업예비생의 삼할 남짓이 졸업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 사상자가 되고 말 정도였으니까.
계절은 이미 가을이었다. 이제 곧 겨울이 찾아올 테고, 그렇게 되면 델핀 선배와 엘시 선배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독한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대략 두 달, 겨울의 끝자락이 찾아와 졸업식을 준비할 때까지.
당연히 그동안은 나도 엘시 선배를 도울 길이 없었다. 아니, 돕기는커녕 연락이나 제대로 된다면 다행일 터였다.
졸업 임무의 난이도는 학생의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엘시 선배쯤 되는 강자라면, 이름을 지닌 마수를 단독으로 토벌하라는 지령이 내려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졸업 임무? 임마, 나 때도 그런 건 잘만 해결…….”
“엘시 선배는 암흑교단의 이목을 너무 끌었어요.”
내 담담한 진술에 엘시 선배의 달싹이던 입술이 멈칫했다.
설득이 먹히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는 재차 한숨 섞인 목소리를 내뱉어야 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또, 지금의 엘시 선배는 너무 이상해요. 방금 전에 황녀 전하 표정 봤습니까?”
끄응, 하고 엘시 선배는 신음을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그럴 만도 했다. 황녀와 마주한 엘시 선배는, 깍듯한 예를 취하며 ‘라이넬라 가문의 엘시’라며 스스로를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목격한 황녀의 표정을, 무어라 묘사해야 좋을까.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가 어린 눈빛이었다. 이처럼 ‘엘시 선배’는 우리 사이에서 낯선 존재인 것이다.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엘시 선배 또한 우리를 낯설게 인지하고 있을 터였다. 급변하는 정세에 일일이 발 맞추어 시시각각 움직일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한시가 급한 마당에 ‘엘시 선배’를 붙들고 지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도 없고.
이를 모를 만큼, 엘시 선배는 멍청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구나.”
담담한 어조였지만, 많은 회한이 담긴 감상이었다.
푸르른 눈동자가 침착히 가라앉았다. 오솔길의 너머를 바라보는 그 시선이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 심정이 어떨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최대한 이성에 기초하여 엘시 선배를 위로했다.
“루핀이 살아있잖습니까.”
“그래, 그럼 됐어.”
쓴웃음을 지으며, 엘시 선배는 그렇게 읊조렸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아.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나마 마지막에는, 소중한 사람을 살릴 수 있어서…….”
그와 함께 엘시 선배의 시선이 슬쩍 나를 향했다.
나는 그 푸른 눈동자를 마주할 생각이 없었다. 슬쩍 내 시야가 측면으로 이동했다.
여인이 구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나와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불쌍한 사내 하나였을 뿐.
하다못해 그가 걸어가야 했던 불우한 미래를 읊어 줄 만큼, 나는 모진 성미를 지니지 못했다.
이를 깨달은 엘시 선배의 입가에 처량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행이었지. 그래, 좋아. 한동안 느긋이 쉬고 싶었는데, 뭐.”
차라리 후련하다는 어조로, 엘시 선배는 두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폈다.
“내게 허락된 시간이 아니란 거지? 이해했어, 후배님…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얌전히 떠나줄게.”
“술을 잔뜩 마시면 될 겁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흔들릴까 싶어 던진 말이었다.
엘시 선배는 잠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가, 옅은 눈웃음을 지었다.
“뭔가 아는 눈빛인데?”
나는 묵비권을 지켰다.
짧은 만남이었으나, 사내의 감정이 내게 전이된 탓인지 엘시 선배를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기가 꺼려졌다.
허나 어쩌겠는가.
내게 중요한 것은 눈앞의 ‘엘시 선배’가 아니었다. 서툴고 인성도 좋지 않지만, 웃는 얼굴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약혼자였다.
엘시 선배 또한 마찬가지겠지.
잠시 동안은 이 세계를 보며 위안을 얻었을지 모르겠지만, 내 반응을 보며 확신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이곳에 ‘엘시 선배’의 자리는 없다.
사랑했던 기억도, 소중했던 사람들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 덕에 엘시 선배는 의외로 순순히 내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좋아, 그럼 이만… 짧지만 재밌었어. 나중에 ‘나’를 만나면 그렇게 살지 말라고 전해 주고.”
그러면서 뒤돌아 휘휘 하늘로 손을 내젓는 그 모습에는 일말의 미련도 엿보이지 않았다.
이게 맞는 거겠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마찬가지로 뒤돌아 섰을 무렵이었다.
“아, 참.”
문득 생각났다는 듯 던진 가벼운 한 마디였다.
의문이 찬 내 눈이 이내 블루 사파이어를 닮은 푸른 동공과 마주쳤다.
장난기를 가득 담은 눈동자였다.
“쓸데없는 걱정일지도 모르겠는데… ‘흡혈귀’를 조심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잊고 있었던 사실 몇 가지가 뇌리에서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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