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506화 (506/649)

〈 506화 〉 7. 질투는 나의 힘(6)

* * *

숨 막힐 듯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단 둘이 독점하고 있는 실내는 지나치게 넓었다. 곳곳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가구가 은은한 권위를 드러내고, 달그락거리는 찻주전자 소리마저 묘한 조바심을 주는 공간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노인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당장 목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무례였다.

상대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촌로 따위가 아니었다. 제국의 정점이자, 대륙 권력의 핵이라 불리는 ‘황제’였다. 그 앞에서 감히 침묵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은 얼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어째서 입을 열지 못하는가.

원인은 단순명료했다. 단지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람에 숨은 용, 명검보다도 잘 드는 녹슨 칼’

황제는 내게 그 아리송한 문구의 뜻을 묻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나는 그러한 말을 남들 앞에서 읊은 적이 없었다.

아니, 입에 담기는커녕 난생 처음 들어보는 암호였다.

그렇다면 유력한 가설은 하나뿐이었다.

십중팔구는 미래에서 온 사내가 멋대로 입에 담은 말일 터였다. 그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겠지만, 이처럼 중요한 내용을 미리 공유해 주면 좀 좋단 말인가.

아마 오랜 전쟁을 거치며 감정과 함께 사회성도 마모된 모양이었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다시 닫기를 몇 번.

내가 식은땀만 줄줄 흘리고 있자 옅은 코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진원지는 뻔했다.

황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느긋한 걸음걸이를 옮겨 방 한 켠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탁자 위에서 찻주전자 하나가 멋대로 끓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가 슬쩍 찻잔을 어루만지자마자 따뜻한 찻물을 그 안에 따르기까지.

아티팩트였다.

찻주전자 따위에 저만한 마법을 부여하는 사치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지만, 은은히 피어오르는 마력으로 보아 확실했다.

황제는 별 말 없이 손짓으로 제 맞은편을 권했다.

“앉게.”

“하오나, 폐하. 어찌 신하된 도리로 주군의 맞은편에 앉을 수…….”

“이미 무례는 충분히 저지르지 않았나.”

장난인지, 압박인지 모를 말이었다.

물론 일리가 없는 지적은 아니었다.

주군 앞에서 신하가 입을 다문다는 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차를 홀짝이며 나를 응시하는 청색의 동공이 유독 심유했다. 노인의 위엄 있는 어조가 재차 이어졌다.

“앉게. 아니면, 짐이 세 번 말해야 듣겠나?”

결국 나는 짧게 목례한 뒤 몸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어명이었다. 제국의 귀족으로서 복종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노인은 의외로 나를 탓하거나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차를 권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를 토해냈을 따름이었다.

“너무 어렵게 대할 것 없네. 짐 또한 그대와 같은 인간이니. 단지 좀 더 나이를 먹었을 뿐.”

“허나, 제국 황실의 위신이 폐하의 어깨에…….”

“이곳에 제국 황실의 위신을 의심할 이들이 어디 있는가?”

그렇게 헛웃음을 삼키면서, 황제는 내게 짓궂은 농을 던지기까지 했다.

“혹시 그대인가? 감히 제국의 위엄을 의심하는 자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말아 올리며 그리 답했다.

도무지 종 잡을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제국의 황제라 하면 대개 권위적인 절대자의 모습을 상상하곤 하는데, 정작 내 앞에 앉은 노인은 다소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위엄? 넘친다.

처음 그를 마주했을 때는 일순 전율이 일었을 정도였다. 나를 꿰뚫어보는 청색의 동공을 보며, 우습게도 나는 황녀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용의 눈을 마주하던 날의 감각.

그것이 절로 되살아날 만큼, 인간의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시선이었다. 어째서 이 자가 제국의 정점이라 불리는지는 그 첫인상만으로도 납득이 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권위와 예법을 귀찮아 하는 기색도 느껴졌다.

근거는 딱히 없었다.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어느덧 황제라는 인물을 다소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대하기 까다로웠다.

그의 속내를 도무지 짐작해 내기 힘들어서.

내가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차라리 칼 한 자루만 가지고 악신의 권속과 맞서고 말지.

이처럼 둘 중 하나가 머뭇거리고 있는 판이었으니, 대화는 남은 사람이 주도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궁금하지 않나?”

“……네?”

황제의 난데없는 물음에, 나는 또 다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내 멍한 반문에도 황제는 불쾌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단지 향긋한 찻물을 홀짝거렸을 뿐.

“모든 것이… 황실의 비원이란 무엇일까? 난데없이 찾아온 황제란 자는 왜 하필 이 주제를 입에 담고 있으며, 제대로 된 대답을 꺼내지 못해도 별 말을 하지 않는지.”

하나하나 부정하기 힘든 의문들이었다.

내가 대답 대신 차를 홀짝이자, 황제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제국 황실이 그대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저히 정체를 가늠하기 힘들었단 뜻이네.”

그러면서 흘깃 나를 훑는 청색의 시선이 다시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나는 우선 함부로 입을 열지 않기로 했다.

정보에서 명백히 열세였다. 말은 적을수록 좋았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검에 재능을 좀 가진 자작가의 차남에 불과하지.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성장이 너무 빨라. 심지어 이따금씩 그 성격도, 실력도 일변하기까지.”

“폐하, 그에 대해서는…….”

“자네가 아니야.”

냉정하다 느껴질 만큼 단호한 결론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짐작하지 못할 사안의 본질을 파고드는 말이라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판을 뒤흔든 사람은 따로 있어. 그대도 고생이 꽤 많았겠어… 느닷없이 사건에 휘말려서, 죽을 위기를 수없이 넘겼겠지.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군.”

내가 애써 숨기고 있던 진심이었다.

이를 하나하나 지적당하자, 이윽고 뇌리가 새하얘졌다.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최초의 문답부터 시작해서, 나는 눈앞의 노인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기껏 짜낸 의문이라고는 한 마디에 불과했다.

“……의심하지 않으십니까?”

“짐이 왜?”

보다 많은 맥락이 포함된 질문이었지만, 황제는 굳이 부연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짤막한 반문을 던졌을 따름이었다.

“그대가 암흑교단의 끄나풀이라도 될까 봐? 아무도 모를 정보를 수집해서, 신뢰를 얻는다… 고전적이지만, 훌륭한 이간계지.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멀리 오지 않았나.”

한 점의 의심조차 묻어나오지 않는 어조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황제는 이미 나에 대한 판단을 끝냈다. 어쩌면, 오늘 이 자리를 가지기 전부터.

“제국 심부에 첩자를 심을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 암흑교단이 희생해 온 계획들이 너무나 많네. 만일 의도했다면 이 멍청한 첩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고, 의도하지 않았다면 그대는 무죄지… 어느 쪽이든 그대를 믿어도 손해는 없잖나.”

“결론을 내리셨군요, 이미 오래 전부터.”

황제는 대답 대신 의자 등받이에 상반신을 기댔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어딘가 쓸쓸해 보인다면, 착각일까.

“……그대의 마음, 이해하네.”

또 다시 뜬금없는 소리였다.

나는 바짝바짝 타는 마음에 찻물을 들이켰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가슴의 잔불이 진화되지는 않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네. 황족으로 태어나 많은 것을 누린 만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지… 그저 최선의 수를 고르고 고르다 보니, 어느덧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더군.”

‘짐’이 아닌 ‘나’로 스스로를 칭했다.

다시 말해, 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나를 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황제가 굳이 나를 기만할 까닭은 없었다. 숨김 없는 진심이라 이해해도 문제는 없을 터였다.

“사실, 아직도 이따금씩 자문하곤 하네. 이것이 최선이었을까? 황제라는 짐은, 이 내게 너무 무겁지 않은가 하고.”

초면에 털어놓기엔 너무나 무거운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황제의 말이 옳았다.

그는 내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러한 속내를 털어놓을 턱이 없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미래에서 온 편지가 도착했고, 내 인생은 일변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이고 묻지 않았던가.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나여야만 했나.

제국의 절대자로 군림하던 황제조차도, 그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던 듯했다.

“일국의 통치자로서, 앞날이 창창한 젊은 기사 하나의 짐을 덜어주고 싶군.”

황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한 낯빛으로 말했다.

“황실의 비원에 대해 아는 자를 불러주게. 듣기로, 제국의 충신이라 했던가?”

“하오나…….”

“당장은 힘들 수도 있겠지. 그래도 괜찮네.”

용건은 끝났다는 듯, 노인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언제든 준비가 되면 연락을 취해 주게. 까마귀는 어디에나 있으니.”

내가 아니라 미래에서 온 ‘나’와 연락을 취해 보겠다는 뜻이었다.

그 편이 더욱 효율적이었으니까.

이해가 가지 않는 결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로서도 더욱 마음 편한 결정이기도 했다.

최소한 내가 신경 써야 할 문제 중 하나는 사라질 테니까.

그럼에도 왜.

나는 무심코 목젖을 치고 나오는 의문을 참아내지 못했다.

“……제가.”

그 한 마디에 황제의 신형이 우뚝 멈춰 섰다.

묵직하게 가라앉은 청색의 동공이 다시금 등 뒤를 향했다. 의문을 담은 눈빛이었다.

“제가 들으면 안 되겠습니까?”

“무엇을?”

“제국 황실의 비원.”

짧은 문답 끝에, 황제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헛웃음을 머금었다.

“쓸데없는 호기심일세… 왜 굳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려 하나?”

“왜 하필 저냐고 물은 적도 많았습니다.”

황제는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니 나 또한 그에 준하는 진심을 고백하기로 했다.

사실 얼마 되지는 않은 각오였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 신과 운명을 원망한 끝에 도달했던 하나의 결론.

“그런데, 이제는 좀 다른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합니다.”

“무슨 질문?”

“왜 저는 안 됩니까?”

그 한 마디에 황제는 처음으로 머뭇거리며 답을 주지 못했다.

물론 동요는 길지 못했다. 황제는 이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등을 돌렸다.

“다음에 또 보지.”

저벅, 하고 황제가 걸음을 내딛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정적.

나는 고요 속에서 고민에 잠겼다.

제국 황실의 비원?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사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었다면, 진작 미래에서 온 사내가 언급을 해두었을 텐데도 그랬다.

하지만 문득 또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어느 교차로에서, 나는 사내에게 외쳤던 적이 있었다.

내 길이라고.

어느덧 허리춤을 더듬던 내 손아귀에 힘이 들었다.

팍, 하고.

은빛의 궤적이 허공을 수놓는다. 그야말로 벼락 같은 출수,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무인은 극소수에 속했다.

최소한 황제는 아닐 터였다.

둔중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황제와 내 시선이 마주쳤다. 휘둥그레 뜨인 황제의 눈빛에는 의외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다시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

캉, 하고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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