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7화 〉 7. 질투는 나의 힘(7)
* * *
찰나에 오고 간 공방은 지극히 빨랐다.
대기를 찢고 날아든 손도끼가 어느덧 허공에서 공회전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새 몸을 일으킨 나는 곧장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얹었다.
그때까지도 황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나를 응시했을 따름이었다.
사실, 내가 노리고 있던 대상이 황제가 아니기도 했다. 아직 시야에 남은 은빛 궤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 열상의 끝자락.
흑의를 걸친 사내가 하나 서 있었다.
존재만으로도 기시감을 주는 상대였다. 그 차가운 눈동자와 기민한 손놀림이 삶을 말하고 있었는데, 정작 그 육체에서는 호흡과 맥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그조차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수련을 거쳐, 은신과 호위 임무에 특화된 무인만이 지닐 수 있는 특유의 기도였다.
굳이 겨루어 볼 필요도 없었다.
눈앞의 사내는, 상당한 실력자이리라.
제국 첩보부의 진정한 정예들.
제국의 5대 귀족 가문 중 하나, 핀들스턴 가문이 자랑하는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돌이켜 보면 당연했다. 나는 황제와 초면이었고, 냉정히 말해 무한정 신뢰할 만한 상대는 되지 못했다. 만에 하나라도 역심을 품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최고의 호위들을 붙여놓았겠지.
설령 내가 목을 노리더라도, 몇 분 동안은 황제의 안위를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실력자들을 말이다.
그렇다면 몇 분 후에는?
그딴 가정은 무의미했다.
검공이 되돌아올 테니까.
황제가 금세 낯빛에서 동요를 지운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터였다. 더불어 아직 내가 살의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겠지.
도리어 황제는 내가 걱정스럽다는 듯 탄식을 흘려 보냈을 뿐이었다.
“이안 경, 이게 무슨 짓인가?”
“이 자리에서 증명하면 되겠습니까?”
짤막한 반문이었다.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조차 없는 단단한 어조라, 황제의 눈빛이 다시금 깊이 가라앉았다.
내 진심을 가늠해 보려는 듯.
나는 더욱 침착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제가 황실에 비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를.”
“그대에겐 과분한 짐일 텐데.”
“시험해 보시죠.”
그 직후, 맑은 마찰음과 함께 새하얀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럼에도 흑의의 사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감정이 거세라도 된 듯, 흘깃 황제를 바라보며 지시를 기다렸을 따름이었다.
황제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자그마한 한숨이 내뱉어졌고, 노인은 등을 돌렸다.
“……마음대로 하게.”
암묵적인 허가.
그렇다면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정정 속에서 두 검사가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파열.
대기가 뒤늦게 비명을 내질렀다. 찢겨나간 공기가 마구잡이로 흩날리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 없이 땅을 박찬 사내의 신형은 마치 검은 벼락과 같았다.
순식간에 쇄도한 사내의 두 손에는 단검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검신이 구불구불 휜 모양새가 얼핏 보기에도 심상치 않았다.
제국 첩보부를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유 중 하나였다.
제국의 첩보원들은 어린 시절부터 특수한 훈련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온갖 기기묘묘한 무장들을 다루게 되는데, 이를 일평생을 함께할 주무장으로 고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저 단검만 하더라도 도무지 그 용도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내게 한가롭게 고민을 할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후우, 하고 숨소리가 고요한 공간 속을 뒤흔들었다.
마치 파문이 번지듯 시야가 무채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기름칠을 제대로 하지 않은 기계처럼 서서히 운동량을 빼앗기는 세상.
단검이 닿기 직전, 사내의 몸짓이 완전히 멎었다.
그래봐야 찰나에 불과한 시간.
팍, 하고 은빛의 사선을 따라 핏물이 터져 나왔다.
“……흐음?”
되돌아 온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흑의의 사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내 검은 어느덧 그의 가슴팍을 가르고 지나간 뒤였다.
‘벼락’, 이라는 표현조차 부족한 광속의 일격.
그러나 타격을 입은 쪽은 비단 흑의의 사내만이 아니었다.
“크읍……!”
이를 악물었지만, 목젖을 치고 흘러나오는 신음을 온전히 삼켜내기는 힘들었다.
은빛의 오러가 전신의 혈도 속에서 날뛰고 있었다. 아직 이 힘을 온전히 제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무려 시간을 정지하는 기술이다.
한두 번 ‘경계’를 보았다고 해서 통달할 수 있는 종류의 심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정지한 시간 속으로 돌입하기 위해서는 몇 초의 간극이 필요하기까지 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면, 흑의의 사내에게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기술이었다.
울컥, 하고 사내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치던 그가 단검을 쥔 손아귀에서 힘을 풀었고, 두 자루의 곡도는 그렇게 떨어져 내렸다.
단 일합.
제국 첩보부의 최정예 요원이 무릎을 꿇을 때까지 나눈 공방의 수였다.
그래, 이대로 끝났어야 할 승부였는데.
느닷없는 통증이 살갗을 스쳤다. 이제는 내가 멍한 눈빛을 할 차례였다.
내 시선이 슬그머니 통증의 진원지를 향했다.
그곳에는 땅으로 떨어져 내리던 곡도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그 구불구불하던 검신은 어느덧 빳빳이 펴져 내 살갗을 찢어 내리고 있었다.
마치 몸을 웅크리고 있던 뱀처럼.
무슨, 이딴 무기가…….
그렇게 토막 난 사고가 이어지기도 전, 무릎을 꿇었던 사내가 퉁겨 오르듯 내게 돌진을 개시했다.
균형조차 제대로 잡지 못해 무방비한 자세였다. 이대로 내가 다시 검을 내리긋기만 해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럼에도 사내의 질주는 그치지 않았다.
생존 본능을 관장하는 뇌의 일부분이 잘려 나가기라도 한 듯한 기세였다. 하기야, 내 실력을 잘 알고 있을 텐데도 고작 칼질 한 방에 쓰러질 호위를 배치했을 리는 없겠지.
그래서 나는 더더욱 증명해 낼 필요가 있었다.
팍, 하고 묵직한 소음과 함께 사내의 상반신이 앞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그의 눈동자가 말없이 등 뒤를 향했다. 그곳에는 처음에 던져 놓았던 손도끼가 다시금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정중동의 묘리.
소드 서클의 비전 기술을 목도한 황제의 눈동자에 옅은 이채가 흘렀다.
그러나 내 상대는 한 명이 아니었다.
미세한 시선이 내 기감을 간지럽혔다. 숫자는 총 둘, 그마저도 위치는 불확실했다.
최선은 이 틈새를 잘 이용하는 것뿐.
하아, 하고 나는 눈을 감고 다시금 호흡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온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훅, 하고 팔이 뻗어져 나왔다. 아직 심상이 제대로 발현되기도 전이었고, 그 손끝이 내게 닿을 때까지 시간이 완전히 정지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 몸짓은 현저히 둔해져 있다.
이것이 내 심상이 지닌 진정한 무서움이었다. 시간이 정지하지 않더라도, 느려지는 흐름 속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은 무수히 많았다.
예를 들어, 좀 더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거나.
내 손이 멋대로 뻗어오는 팔을 붙잡았다. 상대는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한 채 내게 질질 이끌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허공에서 또 하나의 인영이 드러났다.
어디선가 은은한 예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또 다른 적은 날붙이를 들고 있는 듯했다.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단지 호흡을 더욱 깊이, 가라앉히며.
나는 어느 날 보았던 풍경을 떠올렸다.
시엔델 산의 정상에서, 나는 무얼 보았지?
성자는 마치 태산과 같았다. 맞설 엄두조차도 나지 않던 그의 기술은, 나를 수백 번이나 무너트렸다.
그 과정에서 무의식에 심층에 새겨진 가르침이 있었다.
정지한 시간을 유영하던 성자의 몸짓 하나하나가 숨 막힐 듯 무거운 정적 속을 부유했다.
그렇게 나를 향해 날아들던 칼과 팔이 교차하기 직전.
내 몸이 팔을 내뻗던 사내의 품을 파고들었다. 천장에서 내게 칼을 뻗고 있던 사내의 무심한 시선이 나를 훑어내렸다.
다음으로 찌를 곳을 노리는, 맹수의 눈이었다.
헛된 노력이었다.
일순, 세상이 기울었다.
뒤집힌 세상 속에서 나는 하늘을 향해 하나의 몸뚱어리를 던지고 있었다.
성국의 유술 비전, ‘달 뒤집기’.
성자가 내게 몸소 시범을 보여 주었던 기술이었다.
‘달 뒤집기’의 핵심은 메다꽂기가 아니었다.
마치 중력을 역전시키듯, 상대의 몸뚱어리에 무차별적인 질량을 때려 박는 것이다.
별의 무게를.
아직 내 숙련도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허공에서 두 사내를 격돌시킬 정도는 되었다.
우득, 하고 절로 뼈가 시리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두 사내의 몸이 맞부딪히며 뼈가 아작나는 소리였다. 죽지는 않았겠지만, 한동안 몸을 가누지는 못할 터였다.
그렇게 신음하는 두 육체가 차례로 떨어져 내리고, 내 앞을 가로막는 그림자가 또 하나.
그는 무척이나 침착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그만.”
묵직한 한 마디였다.
나는 무시하고 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느닷없이 몸이 휘청이며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내 걸음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사내는 말없이 팔짱을 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검으로 마룻바닥을 짚은 나를 응시하는 시선에서 지긋지긋하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자가 호위대의 대장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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