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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513)화 (513/649)

Chapter 513 - 7. 질투는 나의 힘(13)

일순 싸늘한 정적이 공터를 지배했다.

아델라는 무어라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 더듬더듬 토막 난 목소리를 토해냈다.

“무, 무슨 소리예요… 그래, 새치! 새치가 생겼나 봐요. 최근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거든요!”

“스트레스라니?”

“그게, 그게 있잖아요. 이제 곧 기말고사를 봐야 하잖아요? 그런데 무슨 짓을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낙제권인데, 그 아이는 왜…….”

헐떡이면서, 아델라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아델라의 귓가에 재차 속삭였다.

“‘그 아이’?”

“네, 네… 그 아이. 나는 아무것도 없는데, 나와 비슷한 신세라 생각했는데, 왜 그 아이는… 내가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전부.”

다시금 숨이 멎고.

“……전부.”

여인의 몸에 일던 떨림이 일시에 정지했다.

단숨에 운동량을 빼앗긴 소녀는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어느 상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붉은 눈동자가 요사스러운 빛을 토해냈다.

그 안에 일렁이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전부 다, 빼앗고 차지하고 가지고 강탈하고 독점하고… 아아, 왜 이리 욕심이 많은 거죠? 하나쯤은, 하나쯤은 내게 주어도 좋을 텐데!”

그렇게 아델라는 몸을 비틀면서, 실로 괴롭다는 듯 울부짖었다.

이 무렵에서 나는 서서히 여인과 거리를 벌렸다. 내 손은 슬그머니 허리춤을 향하고 있었다.

냄새가 났다.

지독한 악취였다. 어둠에 속한 존재들만이 풍길 수 있는 고약한 향취.

그것이 사방에서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헐레벌떡 달려오는 숨소리가 거칠었다.

팍, 팍.

아델라의 목이 기괴하게 꺾이며 음산한 울음을 토해냈다.

“그래서 저는, 그 아이가… 그 아이가……!”

여인의 붉은 눈동자에 푸른 물감이 떨어져 내렸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불그스름하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허공에 떠오른 청색의 불길이 농밀한 감정을 연료 삼아 맹렬히 타올랐다.

이윽고 온몸을 비틀며 짜낸 비명 소리가 한 번.

“’질투’가 나!”

찢어질 듯한 고성과 함께 여인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노골적인 살의가 서린 눈빛에, 나는 망설임 없이 손도끼를 뽑아들었다.

팍, 하고 핏물이 무지개를 그리고.

내 심장을 향해 내뻗어지던 아델라의 팔이 공중을 날았다. 어느덧 그 손끝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난 뒤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륵, 크륵!

군침을 뚝뚝 흘리는 마수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척이야 한참 전에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눈이 벌개진 채 헐떡이는 마수의 모습은 일종의 시각적 충격이나 다름없었다.

어딜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아델라도, 마수도.

심지어는 땅바닥 위를 펄떡이는 아델라의 팔조차도.

키에에에에엑!

아델라의 팔이 꿈틀거리더니 비명이 내질러졌다. 이윽고 아델라의 손바닥 위로 호선이 죽, 그어지며 또 하나의 입이 드러났다.

상상 이상으로 흉측한 광경이었다.

그래서, 전부 죽였다.

*

“……죽였다고?”

내 이야기가 끝을 맺은 후, 처음으로 내뱉어진 감상은 그랬다.

아이리스 황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였다. 아직도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황녀를 향해,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네, 죽였습니다. 보다시피.”

“심문을 시도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나요?”

“해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나는 흘깃 땅바닥에 엎어진 팔 하나를 눈짓했다.

직전에 아이리스 황녀를 덮치려 들었던 팔이었다. 움푹 박힌 손도끼 탓에 기세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바르르 몸을 떠는 꼴로 보아 아직 살아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실로 경이로운 생명력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아이리스 황녀의 감상은 나와 조금 다른 듯했다. 혐오로 물든 시선이 괴물의 팔을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괴물의 팔은 마지막으로 구슬픈 신음을 토해냈다.

끼에에에…….

“……됐어요, 당장 눈앞에서 치워 주세요.”

팍, 하고.

나는 제국의 충성스러운 신하답게 황녀의 명을 즉시 이행해 주었다. 공중으로 솟구친 손도끼가 다시 한 번 곤두박질쳤고,  괴물의 팔은 그제야 제 질긴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불쌍하기는.

나는 쯧, 하고 혀를 차며 슬쩍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임무를 끝마친 손도끼가 곧장 내 손아귀로 되돌아왔다.

시엔은 어느덧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머, 멋져요… 이안 경! 벌써 이만한 성과를 올리시다니, 누구와 달리 유능해요!”

“운이 좋았습니다. 애초에, 시시할 정도로 정체를 잘 드러내기도 했고…….”

부끄러울 만큼 나를 찬미하는 시엔과, 머리를 긁적이며 겸양을 떠는 나.

그 꼴을 한동안 지켜보고 있던 아이리스 황녀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이마에 손을 얹고 있던 여인은 한참 후에나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이안 페르쿠스. 당신의 공을 인정하죠.”

난데없는 칭찬이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상찬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그러든 말든, 아이리스 황녀는 크나큰 은혜를 베풀기라도 한다는 투로 제안을 이어갈 따름이었다.

“특별히 저와 함께할 기회를 드리겠어요. 이후의 활약에 따라, 제 측근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겠죠.”

나와 시엔의 시선이 허공에서 멀거니 마주쳤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시엔 또한 아이리스 황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대답은 하나였다.

“그러니,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도록…….”

“싫은데요.”

우뚝, 하고 조곤조곤 이어지던 아이리스 황녀의 목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정적.

석상처럼 굳은 아이리스 황녀는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설마 내가 이러한 대답을 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나는 재차 단언해야 했다.

“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리스 전하.”

그것이 끝.

아이리스 황녀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

나는 하품을 내쉬며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아이리스 황녀의 제안을 거절하기는 했지만, 이미 루나 선배한테 들은 정보는 많았다. 일단은 단독 행동을 하며 단서를 수집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일단 ‘실종자’들부터 찾아가야겠지.

아카데미에 암흑교단의 끄나풀이 숨어들었다는 사실은 이제 명확해졌다. 무려 황제 폐하까지 머무르고 있는 판이었으니, 이에 대한 보고가 올라가는 대로 마땅한 조치가 이어지리라.

그동안 나는 몇 가지 의문점을 해소해 볼 요량이었다.

우선 하나, 아델라는 내게 너무나 간단히 정체를 드러냈다.

그 점이 나는 못내 마음에 밟혔다. 이처럼 손쉽게 괴물의 본성을 드러낼 정도라면, 진작에 사고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언가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가정이 더욱 합리적이었다.

왜 하필 나한테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걸까.

한참을 고민해도 마땅한 가설은 세워지지 않았다. 결국 좀 더 ‘실종자’ 수색에 전념하면서 차차 파악해 가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또, 편지의 뒷면에 사내가 휘갈겨 쓴 내용.

어떤 약품의 배합식으로 추정되는 글귀였다. 이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갈 필요가 있을 터였다.

마침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던 참이었다.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하며 걸음을 옮기던 때였다.

숲속의 좁다란 길을 걷고 있던 내 귓가에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이처럼 지근거리에 이를 때까지 위치를 파악하지 못한 상대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이윽고 무언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자그마한 엉덩이였다.

흐음, 하고 내 입에서 절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바위 뒤에 고깔모자를 쓴 소녀 하나가 엉거주춤 엎드려 있었다. 아마도 모습을 감추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머리 위의 고깔모자마저 감추려다 보니 상반신을 바짝 낮추는 수밖에 없었다.

쪼그려 앉기에는 바위의 높이가 낮았고, 또 납작 엎드리자니 바위의 폭이 좁았다.

그 절묘한 크기 덕에 소녀는 자그마한 엉덩이를 치켜든 자세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은 자그마한 엉덩이를 보자마자 나는 단박에 상대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윽고 고깔모자마저 확인한 뒤에는, 더욱 강한 확신을 가지는 수밖에 없었다.

엘시 선배였다.

그녀는 끙끙거리며 저 너머를 힐끔힐끔 살펴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미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내 이목은 눈앞에서 살랑이는 엉덩이에 고정된 지 오래였다.

어떠한 본능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들었다.

성욕이라고 해야 할까, 혹은 장난기라고 해도 좋았다.

눈앞에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살랑이고 있다. 심지어 무방비하기까지 한.

한 대 때려보고 싶지 않은가?

심지어 상대는 내 약혼자가 될 몸이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몸’만 그렇기는 했다. 아직 미래에서 온 ‘엘시 선배’가 저 육체를 빌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고는 늘 그렇듯 본능을 따라잡지 못했다.

욕망을 이기지 못한 내 손바닥이 짜악, 하고 눈앞의 엉덩이를 후려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히, 히이이이이이익……?! 아니, 어떤 미친 새끼가… 야! 너 미쳤어?!”

“쉿.”

그러면서 나는 뻔뻔스레 검지를 치켜들었다.

울그락불그락 달아오른 소녀의 낯빛이 분노의 크기를 증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엘시 선배는 애써 비명을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가는 미행이 들킬 테니까.

나는 엘시 선배한테 나지막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러다 들키겠습니다. 조심하시죠.”

“그건 네가… 야! 어딜 감히 외간 여자의 엉덩이를 건드려?! 진짜 죽을래?!”

“제 약혼자가 될 몸인데요, 뭘.”

내 태연자약한 어조에 엘시 선배는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미행'이라는 대의 앞에서 침묵하는 수밖에.

다만 이쯤 되니 궁금해지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엘시 선배가 도대체 누구를 미행하고 있었을지.

그렇게 내 눈이 슬그머니 좁다란 길의 너머를 향했을 무렵이었다.

"너, 진짜 미쳤냐?! 난 사랑하는 사람 따로 있다니깐? 너보다 훨씬, 훨씬 멋지고 상냥하고 순수한 남자친구 있거든?! 근데 네가 무슨 권리로 내 몸에 손을……!"

"조용."

싸늘한 한 마디였다.

느닷없이 진지해진 내 어투에 엘시 선배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에도 툴툴거리기만 할 뿐 차마 목청을 다시 높이지는 못했다.

내 낯빛이 어느덧 딱딱히 굳어 있었으니까.

저 앞에서, 두 사람의 인영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나는 '실종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던 여학생이 한 명.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내 소중한 사람이 한 명.

'엠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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