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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525)화 (525/649)

Chapter 525 - 7. 질투는 나의 힘(25)

“……바보 같은 짓을 했더구나.”

내가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뜨자마자 들은 소리는 그랬다.

후우, 하고 여인이 내뿜은 연기가 뭉게구름처럼 이어졌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불현듯 내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그래, 기절했었구나.

몇 번이나 실패한 뒤 가까스로 완성한 물건이었다. 대마녀는 한창 끙끙거리며 괴로워하고 있던 참이었고, 나는 어떻게든  그 고통을 빨리 덜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향로에 넣고 불을 붙였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약재를 태운 연기를 흠입하는 즉시,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애초에 마스터가 쓰는 약물이 아니었던가.

그 강도가 약할 리가 없었다.

그나마 약효가 몸을 나른하게 하는 쪽이라 다행이었다. 마약은 종류에 따라 사람을 광분하게 만들기도 했으니까.

만일 내가 그대로 정신이 나가 버렸다면?

‘추태’로 끝나지는 않을 터였다. 하이 익스퍼트에 이른 무인은 일종의 전술 병기나 다름없었고, 수백에 달하는 인명을 순식간에 해할 위험이 있었다.

당연히 대참사가 났겠지.

대마녀 또한 이를 지적하고 있는 듯했다. 나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결국 나는 한숨과 함께 다시 고개를 탁자 위로 처박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무얼, 사과할 필요까지는 없다. 굳이 따지자면 내 잘못이니… 내가 난데없이 쓰러져서 깜짝 놀랐겠구나.”

나는 그 태연한 목소리에 의외라는 낯빛을 하고 말았다.

의외로 대마녀는 화를 내거나, 부끄러워 하는 기색이 없었다.

무려 남부 열왕국의 시조이자 뿌리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이러한 거물의 약점은 이용가치가 무궁무진했다. 만일 내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남부 열왕국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대마녀는 딱히 내게 비밀 엄수를 강요하지 않았다.

내 결백을 확인하기 위해 목숨까지 위협하던 이전과는 영 딴판인 태도였다. 나로서는 얼떨떨한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든 말든, 대마녀는 평탄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을 따름이었다.

“내가 왜 쓰러졌는지는 짐작하고 있나?”

내가 무어라 답할지는 이미 알고 있다는 투였다.

찔끔한 마음에 나는 슬쩍 대마녀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당장 마음이 급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마약의 조제법은 미래에서 온 ‘나’로부터 건네받은 지식이었다.

당연히 이 시대의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조제법을 입수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실제로 조제에 성공하기까지 했다. 이는 전적으로 미래에서 온 ‘나’의 기술 덕분이었지만 말이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아서, 나는 또 한 번의 뒷걸음질을 택했다.

“그, 저도 잘…….”

“거짓말은 말고.”

물론 이빨도 박히지 않을 시도였다.

그 싸늘한 목소리에도 내가 우물쭈물 하고만 있자, 대마녀는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그 낯빛에 은은한 짜증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 인정 못한다.”

“뭘 말입니까?”

“너, 그 자체.”

맞은편 소파에 몸을 눕힌 채, 머리를 괴고 있는 대마녀의 어조는 단호했다.

그야말로 내 존재를 용납할 수 없다는 투였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존재할 수 있지?”

“아니, 너무 심하잖습니까…….”

“흥, 이제부터 넌 내 특별관리 대상이다.”

소심한 반항에도 불구하고, 대마녀는 이미 내 미래를 결정 지은 뒤였다.

탁, 하고 대마녀의 곰방대가 탁자 위의 재떨이를 후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으로 너는 나와 함께 일대의 이상 현상을 해결하는 중책을 맡아야 한다. 덧붙여, 내 제자 선발 작업도 좀 도와줘야겠다.”

“네? 제자 말입니까?”

“그래, 제자.”

후우, 하고 다시금 머금고 있던 담배 연기를 뿜으며 대마녀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이곳을 놀러 온 줄 아느냐? 제자를 뽑겠다고 공언했으니, 마땅히 그래야겠지.”

“아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정도의 긴급 사태라면 다들 이해하고 넘어가 줄 텐데… 무엇보다, 제자를 반드시 지금 뽑아야 할 까닭도 없잖습니까.”

“운명적 직감.”

또 이해할 수 없는 소리였다.

나는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대마녀는 제 결정을 무를 생각이 없는 듯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러니 네가 한동안 내 조수 노릇을 해줘야겠다.”

“저, 죄송하지만 저도 따로 해야 할 일이…….”

“결(結)과 해(解)는 어디까지 익혔느냐?”

나는 다시 한 번 침묵을 지켰다.

‘결과 해’, 다름 아닌 대마녀의 비전이었다. 당연히 기술을 만든 본인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미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머뭇거리다 되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으려 들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한심한 수준이더구나.”

하지만 대마녀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단 한 줄의 단평.

나는 울컥 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사나운 눈빛을 했다.

후우, 하고 담배 연기가 구불구불 하늘로 흩어진다. 대마녀의 눈동자에 몽롱한 빛이 어리고 있었다.

“어떻게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훔쳐 배운 주제에 내 체면까지 망치는 짓은 그만두지 않겠느냐? 검 미치광이나 천신쟁이한테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을 정도인데.”

“……그 ‘천신쟁이’한테 칼침 먹인 게 접니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반론이었다.

그러자 대마녀는 다시 한 번 담배 연기를 머금더니 후우, 하고 토해냈다. 그 입꼬리를 비틀어 말아 올리면서.

여인의 입에서 흐, 하고 옅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제에 성깔은 좀 있나 보지?”

“무인이라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흥, 훔쳐 배웠다는 말에는 반박하지 못하면서…….”

마땅히 되돌려 줄 말이 없었다.

사실, 대마녀로부터 비전을 전수 받은 이는 내가 아니었다. 내가 다루는 기술은 대개 그의 기억을 엿본 뒤 훔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그 점이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유독 짜증이 났는지도.

대마녀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 이리 마음에 걸리던지.

나는 생선 가시를 삼킨 듯 불쾌한 심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당장이라도 내막을 캐묻고 싶지만, 다행인 줄 알아라. 우선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나로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만한 선언이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마녀는 딱히 나를 추궁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보다는 우선 내 협력을 구하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렸으리라.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이나 사태가 악화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 의문을 담은 눈빛에 대마녀는 짐짓 어쩔 수 없다는 체를 했다.

“아무래도, ‘흡혈귀’가 아카데미를 노리는 것 같다.”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당장 권속들까지 목격한 마당에.”

“권속 수준이 아니야… 본체가 이곳으로 오고 있어.”

내 의문이 이어지기도 전에, 대마녀는 다시 한 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내뿜은 담배 연기는 이전과 달리 금세 흩어지지 않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반투명한 증기가 허공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원 안에 박쥐 하나가 갇혀 있는 형상이었다.

“이게 흡혈귀를 가둔 결계의 대략적인 구도다. 이 드넓은 결계가 오직 마인 하나를 가두기 위해 존재하지. 그리고 이 결계는 내 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요즘 이상할 정도로…….”

대마녀는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원 안에 들어 있던 박쥐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훅, 훅 박쥐가 원에 몸을 박을 때마다 담배 연기가 미세하게 흩어졌다.

“……발작을 하고 있단 말이지. 네 앞에서 느닷없이 쓰러진 것도 그 탓이다.”

“그렇다면 본체는 결계 안에 남아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 분명 그래야 하는데…….”

탄식하는 대마녀의 낯빛에는 어느덧 그늘이 어려 있었다. 마치 첫 살인을 회고하는 병사 마냥 불쾌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딱, 하고 다시 한 번 울려 퍼지는 경쾌한 소리.

이윽고 담배 연기로 이루어진 박쥐가 둘로 분열하기 시작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본체의 의식을 담고 있는 그릇이 탈출한 모양이야. 대다수의 힘을 가진 육체는 결계 안에 갇혀 있지만 말이지.”

나는 팔짱을 낀 채 침묵했다.

말만 들어서는 결계에 허점이 존재하는 듯했지만, 무려 대마녀가 제 힘의 대부분을 소진해 가며 만든 술식이었다.

그렇게 간단히 뚫릴 리가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진작에 흡혈귀가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었으리라.

이처럼 아직 사건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단 하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료했다.

“……네가 찾아라.”

후우, 하고 대마녀가 재차 담배 연기를 내뿜자 원과 박쥐의 형상이 흐려졌다.

그 너머에서 보이는 건, 유독 피로한 낯빛을 한 여인의 모습.

“일부러 무리까지 하면서 결계를 건드리는 까닭이 있겠지. 나를 그만큼 경계하기 때문일 거야… 하지만, 너라면 아무 문제 없어. 오히려 아카데미에 지인들이 많을 테니 도움이 될 테고.”

“제가 알던 사람들은 싹 다 맛이 갔을 텐데요.”

“설마, 전부는 아니야… 아무리 흡혈귀의 술식이라도 한계는 있어. 규격 외의 강자에게는 별다른 소용이 없거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헛웃음을 삼켰다.

‘규격 외의 강자’라니.

말이 쉽지, 최소한 ‘하이 익스퍼트’나 ‘대마법사’쯤은 되어야 그러한 표현을 쓸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내 지인 중에는 데렉 교수님이 유일하다는 뜻이었다.

내가 그러한 반론을 입에 담으려던 찰나였다.

“아니, 한 명 있잖느냐.”

설마 데렉 교수님의 존재를 아는 걸까.

그렇게 내가 의아한 시선을 보내자, 대마녀의 의뭉스러운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아주 강하고, 네게도 도움이 되는 놈.”

그리고 얼마 후.

내 맞은편에는 머리가 희꿋한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무도회장에서 마주쳤다면 나이 지긋한 노신사로 착각할 만한 외모였으나, 그 풍채부터가 남달랐다.

탄탄한 근육과 강자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

커튼이 걷히지 않은 터라 실내는 어둑했다. 그럼에도 불길처럼 일렁이는 그 푸른 눈빛이 어둠에 덮이는 일은 없었다.

제국의 검공.

나는 대륙에 단 셋밖에 없는 절대자 앞에서,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대마녀께서 절 제자로 삼고 싶으시다더군요.”

그리고 침묵.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아무런 말도 앉아 있던 검공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그 한물 간 할망구가 감히?! 우리 제국의 보물을 훔쳐 가려고… 하도 나이를 쳐먹다 보니 진짜 노망이 났나……!”

쾅, 하고 탁자를 내리치면서 말이다.

얼굴이 벌개져 분노를 토해내는 검공을 보며, 나는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정말 이게 최선이었을까.

그렇게 자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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