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39 - 7. 질투는 나의 힘(39)
대마녀의 거처는 고요했다.
시중 드는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는 건물은 침묵을 지켰다. 남부 열왕국의 국사(國師)라는 신분을 고려하면 푸대접이나 다름없는 대우였다.
당연히 남부 열왕국이 대마녀를 일부러 홀대할 까닭은 없었다. 오히려 말하자면, 남부 열왕국은 물론이고 아카데미와 제국까지 나서 대마녀를 융숭히 접대하려는 의지를 보였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곳은 어찌 이리 한적한가.
그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대마녀가 정적을 원했으니까.
수백 년 동안이나 스스로를 수해(樹海) 속의 섬 위에 고립시켜 왔던 여인이었다. 이제 와서 북적거리는 인파를 그리워 할 리는 없었다.
그리하여 아카데미 구석에 위치한 건물은 또 하나의 대수림이 되어 있었다.
나무 대신 적막으로 이루어진 바다 한가운데.
황량할 만큼 텅 빈 복도 위를, 나지막한 발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증폭된 소음이 고막을 두드렸다. 온기 없는 대리석 바닥은 그 색만큼이나 창백한 소리를 뱉어냈다.
여러모로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도화지에 튄 물감처럼, 나와 내 옆구리에 낀 여인은 떠들썩한 소란을 벌이고 있었다. 특히 고깔모자를 쓴 소녀는 발버둥까지 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빽빽 토해내는 소리가 꽤 매서웠다.
“야! 너 미쳤어?!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후배 주제에 어딜……!”
“시간도 아끼고 좋죠, 뭘. 어차피 용건이 있던 거 아닙니까?”
그럼에도 내 목소리는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엘시 선배’는 언제든지 내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력자였다. 당장 나와 승부를 겨루어도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수준이었으니까.
몸부림을 치고는 있지만, 굳이 내 팔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는 않는다.
이는 암묵적인 동의라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내 판단이 옳았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증명됐다. 이윽고 엘시 선배는 몸을 축 늘어트리더니, 콧방귀를 뀌며 시선을 홱 돌려버렸다.
“……흥, 넌 내 마음 모를 거야.”
“당연한 말씀을.”
반항하지 않는 사람을 굳이 짐짝처럼 들고 갈 필요는 없었다.
나는 얌전히 엘시 선배를 땅바닥에 내려놓았고, 이윽고 소녀는 코웃음을 치며 제 머리를 쓸어 넘겼다.
“흥, 이 엘시 라이넬라의 몸에 손을 대는 영광을 누렸으니 감사하라고.”
“제 약혼자의 몸인데요.”
물론 ‘엘시 선배’는 내 지당한 반론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단지 도도한 걸음걸이를 옮기면서, 끝없이 툴툴거렸을 따름이었다.
“야만적인 놈, 우리 페르쿠스는 좀 더 상냥했는데…….”
“저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요.”
“뭐, 됐어. 마침 너한테 하고 싶은 말도 있던 참이었으니까.”
그러면서 엘시 선배는 발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마침 작열하는 태양이 사선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비스듬히 쏟아져 내리는 햇빛을 사이에 둔 채로, 엘시 선배는 한숨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안 돌아와.”
“네?”
영문 모를 소리에 나는 얼빠진 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엘시 선배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 육체의 원래 주인 말이야! 네가 아는 ‘엘시 페르쿠스’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게, 무슨 소리…….”
“술을 진창 먹어도 마찬가지였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태에 내 뇌리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엘시 선배가 왜 돌아오지 않는단 말인가.
내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사람 중 하나였다. 당연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쉬울 턱이 없었다.
도를 넘은 혼란은 흥분을 초래한다.
울컥, 하고 치밀어 오르는 불덩이가 목젖에 막 닿았을 찰나였다.
소녀는 품속에서 팔랑거리는 쪽지 하나를 꺼내 보였다.
“네가 바라던 정보는 다 정리해 놨거든. 그리고 뭐, 나중에 잠깐 얼굴만 들이밀 생각이었는데…….”
탁, 엘시 선배가 손가락을 퉁기자마자 쪽지가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본능적으로 종이를 낚아 챈 내 눈이 말없이 글씨를 훑어 내렸다.
‘오행진(五行陣)의 거점으로 추정되는 위치’
물론 그러한 문구들이 내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쪽지를 찣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아내며 물었다.
“……그래서, 왜 엘시 선배는 돌아오지 않는 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코웃음과 함께 되돌아온 반문.
일순 소녀를 향한 내 눈빛에 짜증이 맺히다 사라졌다.
대신 기나긴 한숨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엘시 선배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날 뻔했지만, 돌이켜 보면 ‘엘시 선배’는 아무런 죄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엘시 선배’의 말이 옳기도 했다.
그녀는 난데없이 과거로 불려 온 망령에 가까웠다. 당연히 관련된 현상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고, 또 전후사정을 짐작해 볼 만큼 엘시 선배의 속마음에 밝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얼핏 뇌리를 스치는 인물이 하나 있기는 했다.
그보다 먼저 소녀가 넌지시 단서를 주었을 뿐.
“……돌아오기 싫나 보지.”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 뭐냐… 사실 겁이 많을 수도 있잖아. 넌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
그야,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돌아오기 싫다고 해서 진짜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니.
그렇다면 지금 엘시 선배는 어디에 있는 걸까.
당장 답도 나오지 않는 문제가 사고의 둑을 부수고 범람했다. 쪽지를 쥔 내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엘시 선배가 다시금 걸음을 옮기고 시작한 건 그때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엄청 많았거든.”
이대로 홀로 멈춰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급히 엘시 선배의 뒤에 따라붙으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엘시 선배가 되돌아올까요?”
“글쎄, 잘… 난 지금도 살짝 무서워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묻기도 전에.
엘시 선배는 기나긴 한숨을 토해냈다.
“하여튼, 이 할매는 하는 짓이 한결같다니까…….”
그 직후였다.
허공에 자그마한 불길이 잉태됐다. 이윽고 그 잿더미로부터 전하가 파생되고, 전하는 어느 지점에 닿아 물로 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은 새싹, 새싹은 다시 불길로.
원을 그리며 이어지는 다섯 극점의 교류가 점점 가속할수록 원진에는 빈틈이 사라졌다.
이윽고 그 궤적만으로도 온전한 원을 그리게 되었을 무렵.
파직, 하고 허공에 난데없는 균열이 인다.
다섯 극점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빗금은 이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그로부터 파열음을 일으키며 세상이 깨져 나갈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후우, 하고.
무너져 내리는 파편 속을 담배 연기가 부유했다. 어느덧 나와 엘시 선배는 낯선 방 안에 서 있었다.
꽤 떨떠름한 눈빛을 하고서.
“……제법이구나.”
“누구 밑에서 몇 년을 구른 덕분에.”
엘시 선배는 흐, 하고 헛웃음을 터트리며 다소 도전적인 표정을 지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였다. 그래서 나는 우선 침묵을 택하기로 했다.
내가 알던 엘시 선배를 되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두 사람의 조우가 먼저였다.
이 사건이 끝난 뒤에야 조언이라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또 내가 의문을 가지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대마녀의 반응이었다.
엘시 선배는 낯선 술법으로 무언가를 깨트렸다. 아마도 대마녀의 결계가 아닐까 싶었는데, 대마녀는 난생 처음 보는 소녀에게 제 마법을 파훼당한 꼴이었다.
그럼에도 대마녀의 안색은 아직 침착해 보였다.
그 시선에서 묻어나오는 경계의 빛을 숨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스승을 잘 두었나 보구나… 누구를 사사했지?”
“성격 나쁜 노파가 한 분 계시거든요. 어찌나 성격이 배배 꼬였는지, 인적도 드문 숲 한가운데에 집을 짓고 산다니까요? 더욱 끔찍한 점은, 제자도 그 안에서 생활할 것을 강요한다는 점이죠.”
엘시 선배의 능청스러운 말에 대마녀는 후우, 하고 기나긴 담배 연기를 토해냈다.
“그럼 제자가 스승과 함께 지내지, 어디서 지낸단 말이냐?”
“그래도 좀 웃기지 않아요? 그러면서 외로움은 또 엄청나게 탄다니까요… 내참.”
곰방대를 꼬나문 대마녀의 시선이 슬쩍 측면을 향했다.
별 관심 없어 보인다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알았다.
애초에 대마녀는 관심이 없다면 이렇게 문답을 나누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상하구나… 내 기억에 오행을 이만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드문데. 그중에서도 네가 말한 특징에 일치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그렇게 말하는 대마녀의 눈동자는 깊이 침잠해 있었다.
수백 년을 살아 온 현자의 시선은 때때로 인간의 마음 속 깊숙이 숨겨든 감정을 파헤친다. 엘시 선배가 담담히 대마녀의 눈을 마주할 수 있는 까닭은, 이미 익숙해진 덕이겠지.
엘시 선배는 머뭇거리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침묵.
대마녀는 흐음, 하고 침음을 토해내며 내게로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래, 뭐… 누구든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는 법이지. 그래서 꼬맹아, 이 땅딸보를 내게 데려온 이유가…….”
“……한 명 있잖아요.”
슬그머니 내뱉은 엘시 선배의 한 마디에,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아니, 느닷없이?
그러나 퉁명스러운 소녀의 목소리에는 은은한 분노마저 맺혀 있었다. 나는 그 감정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순 넋을 놓고 우두커니 굳어 버렸다.
대마녀도 엘시 선배의 심상치 않은 기색에 어리둥절한 낯빛을 할 뿐이었다.
“무슨, 소리를…….”
척, 하고.
소녀의 가녀린 검지가 정면을 향했다. 그 끝에는, 당연히 대마녀가 위치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순 엘시 선배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대마녀의 몸이 뻣뻣이 굳어버렸다.
그럼에도 엘시 선배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를 토해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두 손으로 주먹 꽉 쥔 채로,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어, 어떻게… 어떻게……!”
그리고 다음 순간.
팍, 하고 뛰쳐나간 엘시 선배의 손이 대마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무례에, 내 눈은 물론이고 입까지 떡 벌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당신이 날 못 알아볼 수 있어!”
난데없이 멱살을 잡힌 대마녀의 얼어붙은 시선이 나를 향했다.
설마 하던 대참사였다.
**
검공은 세리아를 둘러멘 채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몸뚱어리가 작아졌어도 마스터의 육체는 강건했다. 저보다 키가 큰 소녀를 옮기고 있음에도 검공의 낯빛에는 별달리 힘겨운 기색이 엿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뇌리를 메우고 있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아, 대련하고 싶다…….”
짐덩이는 어서 병실에 던져 놓고, 꼬맹이나 찾아가 봐야지.
오늘 밤에 대련을 하기로 했으니 이제 더는 미루지도 못하리라.
그렇게 신전 안으로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오늘따라 한적한 신전을 오가는 행인은 몇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열린 병실 사이로 희미한 목소리 정도만 새어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봐야 평범한 사람들은 듣지 못할 만큼 미세한 소리에 불과했지만.
검공은 달랐다. 마스터의 발달한 청각은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주위의 모든 소리를 포착해 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너만이, 황실의 비원을…….”
“부디 헛된 생각 하지 마시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엿들은 검공의 걸음이 우뚝 멎었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라 잠자코 고민해 보니, 아무래도 조카손녀 중 하나인 듯했다.
제2황녀 아이리스.
그리고 또 하나는, 알펜하우저의 쌍둥이 중 하나였던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검공은 무의식적으로 병실 앞을 향하고 말았다. 잠깐 대화만 하고 떠날 심산이었는지, 어설프게 열린 문틈으로 속삭이는 소리가 전부 들려왔다.
“시엔, 알겠니? 내가 그 ‘이안’이란 남자와 잘 교섭해 볼 테니, 넌 내 말만 따르면 되는 거야.”
“하, 하지만 빌테온 오라버니가 아직… 앗!”
그때였다.
노골적으로 대화를 꺼리던 시엔과 검공의 눈이 마주쳤다. 지난날의 악몽이 떠오른 검공은 흠칫 몸을 굳히고 말았지만, 이제 건강을 되찾은 시엔은 반갑다는 듯 침대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두 손을 맞잡기까지.
“앗, 어서 와! 그때 이안 경과 함께 날 이곳까지 옮겨줬다며? 걱정돼서 찾아온 거야? 그래도 미안, 어째서인지 그날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아서…….”
그러면서 시엔은 에헤헤, 하고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도를 넘은 충격에 뇌가 기억을 지워버린 모양이었다.
이를 깨달은 검공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너는 몰라도 된다. 시엔아.
모든 죄는 이 할애비가 안고 가마.
바로 그때였다.
“……그 아이는 누구니?”
아이리스의 차가운 시선이 검공을 향했다. 아니, 아이리스뿐만 아니라 아이리스를 수행하고 있던 전원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본체였을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처럼 내려다보기는 커녕,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기 일쑤였는데.
가소로운 마음에 검공은 허, 하고 헛웃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하, 누구냐고? 나는 말이다…….”
“히, 히이이이이익!”
그러나 검공이 평소 말투로 입을 열자마자, 시엔은 오들오들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좌중이 당혹 속에 침묵을 지키는 사이, 시엔은 물기에 젖은 목소리를 토해냈다.
“무, 뭔가가… 뭔가, 뭔가가 자꾸 생각나려고… 으으으으으!”
검공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혹시, 시엔에게 정체를 들킬 때 평소 말투를 써서 그런가?
그렇다면 답은 하나뿐이었다.
“나, 나는… 아니! 소, 소녀는 말이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말투를 수정하자마자 시엔의 떨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연회색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자, 검공은 눈물을 삼키며 해탈한 미소를 짓는 수밖에 없었다.
“어, 언니의 동생입니다…….”
요즘따라 인생살이가 참 쉽지 않다고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