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44 - 7. 질투는 나의 힘(44)
손윗사람과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은 늘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특히 상대와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며, 지위 차도 까마득하다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마녀’는 최악의 동행인 중 하나라 할 만했다.
무려 대륙의 단 셋밖에 없는 마스터가 아닌가.
물론 나 또한 어딜 가서 무시당할 신분은 아니기는 했다. 암흑교단의 음모를 몇 번이나 분쇄하고, 악신의 권속과도 맞서 싸운 업적은 나를 대륙의 샛별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내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여인은 ‘대마녀’였다.
이미 대륙을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한 바 있는 영웅.
이제 막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나와 견줄 수는 없었다. 제국의 황제조차도 공대를 해야 하는 위인이었으니까.
당연히 그 옆에 선 나로서는 공연히 초조하고,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마땅히 그래야 할 텐데.
“하아암… 햇빛이 따사로우니 무료하구나.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보거라.”
“어차피 곧 목적지인데요.”
대마녀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기지개를 펴고 있었고, 나는 평온한 말투로 이에 응수했다.
묘하게도 우리 둘 사이에서는 느슨한 긴장감조차 감돌지 않았다.
검공과 동행했던 며칠 간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혹은, 미래에서 온 기억이 내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거나.
다만 대마녀가 딱히 내 태도를 흠으로 삼지 않는 까닭은 조금 궁금했다.
처음에는 실수에 불과했다.
무심코 나온 친근한 태도에 나는 깜짝 놀라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혹시나 대마녀의 심기를 거스르면 어쩌나 싶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대마녀는 별달리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도리어 아무렇지도 않은 양 내 말을 맞받아치기까지 할 정도였다. 지금만 하더라도, 대마녀의 낯빛에는 권태감만이 감돌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천성이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성미일지도.
물론, 내가 대마녀의 속내를 읽어낼 리는 만무했다. 곰방대를 질겅질겅 씹는 여인의 탁한 동공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무어라 할까.
손짓과 어조에서 묻어나오는 느낌이 묘하기는 했다.
“흥, 고얀 놈… 어른이 말하는데 재깍재깍 따르지 않고.”
“한참 어린 꼬맹이 말 들어봐야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차라리 저보다 수백 년은 더 사신 분이 이야깃거리가… 커억!”
딱, 하고.
곰방대가 내 뒤통수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신장 차이가 현격한데, 어떻게 치고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고속의 일격이었다.
한창 불을 피우고 있던 곰방대는 뜨거웠다. 불의의 기습을 허용한 내 입에서 짤막한 비명이 토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뒷머리를 문지르며 쓰읍, 하고 신음을 삼켰다. 이윽고 대마녀를 향하는 항의의 눈초리.
물론 대마녀는 본 체도 하지 않았다.
단지 곰방대를 물더니 후우, 하고 한숨과 같은 담배 연기를 뿜어냈을 뿐.
“……앞으로 나이 이야기는 금지다.”
“아니, 검공 어르신이 말하실 때는 별말 없으시더니?”
“내 마음이다만?”
여러모로 속내를 알 수 없는 여인이었다.
검공은 되고, 나는 안 되다니?
내심 억울한 마음이 들기는 했으나, 어쩌겠는가.
나는 홀로 분을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곰방대를 얻어맞은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내 이야기라…….”
나른한 숨결과 함께 씁쓸한 약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어느덧 여인의 연녹빛 눈동자가 몽롱히 풀려 있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동공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최소한 지금은 아닐 터였다.
보다 오래 전의 풍광을 훑는 대마녀의 낯빛이 퍽 씁쓸해졌다.
“……후후, 그야말로 재미없는 이야기뿐이지.”
“자랑스러운 무용담도 많지 않습니까?”
“반대야. 모조리 후회 투성이다.”
별 것 아닌 양 말했지만, 나는 일순 입을 다물어야 했다.
내 눈길이 슬쩍 대마녀의 입가를 살폈다. 그곳에는, 씁쓸한 초생달이 하나.
“자업자득(自業自得), 인과응보(因果應報)… 무어라 말하든 내 탓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 사실 나는 딱히 영웅적인 성미가 아니거든.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말이야… 그러니 내 이야기를 들어도 재미는 없을 게다.”
“그래도 듣고 싶은데요.”
푸흐, 하고 대마녀는 짤막한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괜한 객기를 부린다 생각한 듯했다. 혹은, 어설픈 위로를 건넨다고 생각했거나.
못내 귀엽다는 눈빛이 나를 향했다. 대마녀가 보인 몇 안 되는 노골적인 호의였다.
“푸흡! 꼬맹아, 그래도 남자라고 날 달래 주기라도 할 셈이냐? 주제 넘은 짓 마라. 나는, 네가 걱정할 만큼…….”
“저도 그랬거든요.”
이제는 대마녀가 입을 다물 차례였다.
내 담백한 고백에, 웃음을 터트리던 여인의 몸짓이 멎었다. 그러든 말든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이어 갈 뿐이었다.
“많이도 죽였습니다. 벗이었던 사람도, 함께 싸웠던 사람도… 반드시 그래야 했을까요.”
꾸밈 없는 본심이었다.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은 기묘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때로는 그 짐을 짊어지기가 두려워,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환기하고는 할 만큼.
하지만 상대는 대수림의 현인이었다.
그까짓 무게쯤 짊어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후우, 하고 한숨인지 모를 숨소리가 연기와 함께 흩어졌다.
“……’연(緣)’이라고 들어봤느냐.”
“운명과 비슷한 말입니까?”
“비슷하다면 비슷하고, 아니라면 아니지. 그보다는 유동적인 개념이라고 보면 될 게다.”
그러면서 대마녀는 검지로 자그마한 원을 그렸다. 얼핏 보기에는 손장난에 불과해 보였지만, 가상이 원은 곧 그 지름을 넓혀가더니 허공에 다섯 개의 점을 띄웠다.
불, 물, 새싹, 금속, 흙.
“만물을 이루는 오행(五行)에는 상성이란 것이 존재한다. 서로 상생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상극을 이루기도 하지… 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다섯 극점 사이를, 빛의 점 하나가 치이고 튕기며 이리저리 오고 가고 있었다.
아마도 저것이 ‘인간’의 표상일 터였다.
“시(時), 운(運), 심지어 마주치는 사람 하나하나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삶이다. 대수림에서는 이를 끊어낼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연(緣)’이라고 부르지… 닿고 이어지는 삶의 연속된 단면들 말이다.”
“좀 더 난해한 개념이었군요.”
“무얼, 단지 세계관의 차이일 뿐이지… 하여튼 중요한 사실은, 이 잇따른 삶의 순간에서 누구도 제 선택이 불러올 여파를 계산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과거를 후회하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신이 아닌 이상에야, 실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어.”
“그럼, 혹시 대마녀께서도…….”
내뱉고 나서도 아차, 싶었던 반문이었다.
너무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어서였다. 누구든 숨기고 싶은 속사정이야 있는 법이었고, 이는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으니까.
하물며 수백 년을 살아 온 대현자라면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내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흥,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그렇게 답하는 대마녀의 낯빛이 일견 허탈해 보였다. 세월의 풍파에 닳고 닳아서, ‘희망’이라는 낱말조차 잊어버린 얼굴이었다.
“너도 보았겠지? 시도 때도 없이 이 몸뚱어리를 덮치는 고통을… 이게 내 죗값이다. 너는 이렇게 되지 말거라.”
그게 왜 당신 잘못이냐고.
내가 묻기도 전에, 대마녀는 담배 연기와 함께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곰방대를 쥔 손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내가 진작, 진작 마음을 먹었더라면…….”
그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회한이 너무나도 처량해서.
나는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대마녀와 달리, 나는 누군가의 진심을 감당하기에 아직 미숙했다.
제 마음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놈이 무슨.
그래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도 마음이 불편해서, 나는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대마녀도 굳이 제 감정을 토로하고 싶지는 않았던 듯했다.
금세 신색을 가다듬은 여인의 동공이 주위를 유심히 살폈다. 흐응, 하고 묘한 소리를 내며 대마녀는 내게 물었다.
“꼬맹아, 네가 볼 땐 어떻지?”
“네?”
난데없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뜻인가 싶어 기감을 곤두세워도 마찬가지였다. 이 주위에서는 어떠한 반응도 감지되지 않고 있었다.
하이 익스퍼트에 이른 기사의 감각은 아주 작은 숨결 하나조차 놓치지 않는다.
내가 느끼지 못했다면, 이 주변은 안전하다고 보아도 좋았다.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였다.
나를 바라보는 대마녀의 눈빛이 묘했다. 마치 시험을 앞둔 제자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래서 불현듯 깨달았다.
“……이상하군요.”
“그렇지?”
이곳은 숲의 한복판이었다.
당연히 온갖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나무나 풀을 제외하면 어떠한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니.
지나치게 수상했다.
대마녀는 나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는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하지만, 어중이떠중이들은 이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발걸음을 돌렸을 게다. 상당히 은밀한 결계가 쳐져 있어… 나도 들어오고 나서야 눈치 챘을 만큼.”
“그럴 수도 있습니까?”
깜짝 놀라 내뱉은 되물음이었다.
검공이 검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듯이, 대마녀는 주술과 결계에 능했다. 그러한 인물이 곧잘 눈치 채지 못할 정도라면 상당한 수준의 결계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대마녀는 아직 침착하기만 했다.
“호들갑 떨지 말거라. 나도 본신이 아닌 이상, 한계는 있어… 다만 결계의 수준이 의외로 높은 건 사실이다.”
“우선 멈출까요?”
지원을 불러와야 하냐는 뜻이었다.
그러자 대마녀는 으음음, 하고 늘어지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고민에 잠겼다. 물론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아니, 늦었어… 이미 선객이 와 있구나.”
짤막한 진술.
내 손이 곧장 허리춤을 향하기에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