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62 - 7. 질투는 나의 힘(62)
“자세한 내용은 몰라요. 다만, 대마녀께서 동행하신 걸로 보아 중대한 사안이 아닐까요?”
그 가벼운 어조에 서운함 따위는 일절 섞여 있지 않았다.
마치 주인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충견 같은 태도였다. 이안의 선택과 결정에는 한 점의 의문도 품지 않으면서, 오직 부탁 받은 일만 처리하는 영리한 반려견 말이다.
“……그렇군요.”
세리아는 일단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아직도 제대로 된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사랑하는 선배는 떠났다는데.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병실의 대화는 뚝 끊겨 버렸다. 시엔은 세리아에게 더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세리아도 입을 다물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까.
멍하니 시엔의 바느질을 지켜보던 세리아는 난데없는 의문을 느끼고 말았다.
이안을 닮은 인형을 만드는 시엔의 낯빛은 순수한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소녀의 즐거움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단지 사내를 본뜬 모조품을 만드는데도 이러는 마당이었다.
그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이안을 얼마나 아끼고 연모하는지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사랑하고 있구나.
새삼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본래의 세리아라면, 이 시점에서 낯빛을 서늘하게 가라앉혀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시엔이라는 연적을 앞둔 세리아의 마음은 기묘할 정도로 평온했다. 조각배를 띄운 호수의 풍경화처럼, 세리아의 심장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뒤이어 떠오르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질투가 나지는 않으세요?”
난데없는 물음이었다.
그제야 시엔은 바느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시선을 옮겼다. 의아함을 담은 눈빛을 마주한 세리아의 낯빛은 여전히 잔잔하기만 했다.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황녀 전하께 공유하지 않았잖아요. 심지어 다른 여자와 함께 다니기까지 하고… 화가 나지는 않나요? 여태껏 이런 적이 몇 번은 더 있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정적.
시엔은 대답 대신 침묵을 되돌려 주었다. 멀거니 세리아를 응시하는 그 눈동자가 유독 얼이 빠져 보였다.
이조차도 잠시.
황녀는 곧 역적 모의를 제안 받은 충신처럼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외쳤다.
“무, 무, 무… 무슨 말씀을! 저, 저 따위가 어찌 이안 경을 두고 질투를… 물론, 서운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 그래도 질투는 아니에요! 한때 이안 경을 괴롭혔던 몸이잖아요? 그러니까 질투할 자격 따위는 없어요! 그, 그렇죠?!”
종래에 이르러서는 의문형으로 끝나고 만 답변이었다.
그만큼이나 당황했다는 뜻이겠지.
세리아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이를 무슨 뜻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시엔은 울상을 지으며 제 결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서, 선배… 믿어 주실 거죠? 호, 혹시라도 이안 경이 들으셨다가 주제 넘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날엔……!”
그러면서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도대체 무슨 피해망상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처럼 아리송한 반응에도 세리아의 눈동자가 다시금 시엔을 향하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시야에 좀 더 희한한 광경이 비치고 있었으니까.
검은 진흙이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 같았다. 부정형의 물체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사실이 기시감을 주었으나, 저 존재가 여인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는 점은 명백해 보였다.
질척이는 액체 사이로 핏빛 눈동자가 홀연히 떠올랐다.
“지, 질투께서… 킥, 킥킥… 질투께서 오시리라…….”
대개의 인간들은 흉측스럽다며 눈을 돌릴 몰골이었다. 하지만 세리아의 감수성은 유별난 구석이 있었고, 더욱이 오늘의 세리아는 유독 감정의 변화가 드물었다.
아직 잠에 취해 있는 걸까.
세리아는 눈을 두어 번 깜박이다가, 이내 검지로 눈앞의 괴생물체를 지목하며 물었다.
“보이나요?”
그제야 시엔은 웅얼웅얼 변명을 늘어놓기를 멈추며 시선을 돌렸다.
검지를 따라, 텅 빈 공간으로.
이내 황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새하얀 벽밖에 없는데요? 그, 그보다! 아무튼,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아직 저는 한참이나 더 반성하고 속죄해야 하는 못난 여자예요. 그, 그러니 누구를 질투하거나 하는 건방진 마음은 절대, 절대 품지 않으니까요!”
그 후에도 황녀는 이래저래 떠들었으나, 세리아의 관심은 온통 새로 나타난 검은 진흙에 쏠린 지 오래였다.
차라리 본능에 가까운 행위였다.
검은 진흙이 질척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워낙 몸집이 작고 속도가 느린 탓에, 딱히 공포감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 끝없이 중얼대는 목소리가 세리아의 가슴을 울렸다.
“질, 투… 질투… 그래, 질투께서 오셨도다!”
기묘할 만큼 반복되는 낱말이 있었다.
‘질투’라.
마침 화제로 삼고 있던 감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세리아는 무심코 제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았다.
한창 황녀가 의기소침해져 몸을 벌벌 떨고 있던 도중이었다.
“그러니, 절대 질투는 아니……!”
“거짓말이잖아요.”
뚝, 하고.
마치 축음기의 전원이 내려간 듯 침묵이 시작됐다. 그만큼이나 세리아의 단언에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황녀는 무어라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동그랗게 뜨인 소녀의 두 눈동자에서 당혹감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황녀로 태어나 귀족으로부터 이처럼 노골적인 반론을 들어본 적이 얼마 없기도 하거니와, 무심히 입술을 달싹이는 세리아의 태도가 낯설었던 탓도 있었다.
푸른 동공 위로 떠오른 풍경 안에 시엔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멍하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
몽롱한 눈동자가 뇌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죄를 지었으니까, 자격이 없으니까 질투를 하지 않는다니요? 그건 거짓말이에요. 모자라니까, 부족하니까 질투하는 거죠… 내가 갖지 못한 것, 그러나 어떻게든 가지고 싶은 것.”
무심코 흘린 말치고는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이는 세리아의 숨김 없는 진심이리라.
풀려 버린 초점과, 옅은 단내를 풍기는 숨소리가 그 증거였다.
온전한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단 뜻이 아닌가.
시엔은 이 즈음에서 묘한 직감을 느꼈다. 마치 진흙으로 된 늪에 발을 내딛는 듯한, 불길하고 기이한 느낌.
그러든 말든 세리아의 말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황녀 전하께서는 거짓말을 하신 거죠… 불완전한 인간만이 질투를 할 수 있거든요. 모든 것을 갖춘 존재가 무언가를 탐할 까닭은 없잖아요?”
“……그, 그럼 선배께서는!”
반사적으로 내뱉어진 반문이었다.
그제야 세리아의 눈동자가 멍하니 시엔을 향했다.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텅 빈 시선.
황녀는 확신했다.
지금의 세리아는 어딘가 이상했다. 당장이라도 몸을 빼고 싶은 마음을, 소녀는 꾹 눌러 참았다.
이안으로부터 부탁 받지 않았던가. 이 여인을 잘 돌보아 달라고.
납득할 만한 사유 없이 약속을 물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엔은 겁 먹은 집토끼처럼 몸을 웅크리며 재차 물어야 했다.
“그럼 선배께서는, 어떠신데요……”
슬쩍 눈을 내리깔며 던진 소심한 질문이었다.
시엔은 이를 내뱉고 난 뒤에야 아차, 싶어 우물쭈물하고 말았다. 다소 무례한 소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던 탓이었다.
그러는 당신은 어떠냐니.
우선 세리아가 질투심이 많다는 사실을 에둘러 지적하는 물음이나 다름없었고, 더불어 그 논리대로라면 세리아도 한없이 부족한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어느 쪽이든 실례가 되는 말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정작 세리아는 딱히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지만 말이다.
여인은 도리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맞아요, 저도 한참이나 모자란 인간이죠. 어린 시절부터 늘 그랬거든요. 언제나 비교당하고, 무시당하면서… 그래도 제가 열심히 하다 보면 무언가 달라지리란 희망을 품고 있었죠. 그런데 말이에요, 전하. 사실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어요.”
나지막이 진심을 토해내는 음색은 묵직하고 어두웠다. 질척거린다는 인상마저 주는 그 목소리에, 시엔은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게 몇 번이나 되뇌이면서도, 황녀는 끝내 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안의 부탁이라든지, 함께 사선을 넘은 동료와의 우정이라든지.
이제는 핑계에 불과했다.
단지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시엔은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까닭 없는 고집이었다.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물론 달콤한 꿈을 꾸었던 적도 있었어요. 늘 패배만 반복하던 삶에, 기적이 일어나서 분에 넘치도록 좋은 사람과 인연이 닿았죠… 하지만 딱 거기까지.”
어느덧 세리아는 상반신을 굽혀 시엔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숨소리, 살내음, 달콤하고 몽롱한 감각.
황녀는 호흡조차 잊은 채 세리아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정작 그토록 바라던 그이는 이미 빼앗긴 뒤였죠. 우물쭈물하고 있다가, 추레한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애초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면?”
“세, 세리아 선배…….”
“황녀 전하도 그렇죠?”
창백한 낯빛을 한 소녀의 귓가가 속삭임으로 젖어 들어간다.
세리아는 비밀스러운 음모를 전하는 전령처럼 목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사실은 질투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추악한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어서, 일부러 눈 돌리고 있는 것 아닌가요? 뻔뻔해지면 미움 받을까 두려워서…….”
시엔의 호흡이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