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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570)화 (570/649)

Chapter 570 - 7. 질투는 나의 힘(70)

“구하고 싶습니다.”

“그래 보거라.”

조소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를 흘리면서 대마녀는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네, 그럴 생각인데요.

이러한 답변을 내뱉으려던 찰나, 나는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기는 힘을 느꼈다. 그곳에는 어느덧 엘시 선배가 꿍한 얼굴을 한 채 서 있던 참이었다.

소녀는 까치발을 들고, 내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쓸데없는 짓이니 하지 말란 뜻이야.”

“네? 왜요?”

“불가능하니까, 새끼야.”

엘시 선배는 내 지당한 의문을 그렇게 간단히 짓뭉개 버렸다.

그럼에도 내가 납득하지 못한 얼굴을 하자, 소녀는 자그마한 입술 사이로 기나긴 한숨을 흘려 보내야 했다.

“그, 셀린이랑 세리아? 네 후배인가 뭔가 하는 애들은 최대한 살려 볼게. 하지만 흡혈귀의 권속까지는 못 살려.”

예전에도 나누었던 적이 있던 문답이었다.

분명 엘시 선배는 그때도 이와 같이 말했었다. 흡혈귀의 권속이 된 이들을 되돌릴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그 이유를 묻고 싶었다.

예전에 흡혈귀의 권속이 된 이들을 치료할 방법을 연구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최소한 납득이 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스스로에게 변명할 거리가 생길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떠들었던 탓일까.

“이안 님!”

저 멀리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 왔다. 좌중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근원에 모이게 되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학생으로 보이는 차림새였다. 아카데미의 제복을 입고 있었고, 연령대도 20대 초반으로 보였으니.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 남학생은 사실 제국 첩보부 아카데미 지부의 일원으로, 일전에 신문사에서 안면을 익힌 사이였다. 그가 내게 달려오고 있다는 점은, 내게 불길함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첩보부가 나를 찾을 리는 없었으니까.

이러한 예감을 받은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내 옆에 선 엘시 선배부터 미간을 좁히고 있는 판이었다.

그리고 불안은 곧 현실이 되어 찾아왔다.

“흐, 흡혈귀가… 정체불명의 여인들이 아카데미 내부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건물 안에 대피 중이지만, 몇몇 학부는 아직도 대피 중이라…….”

나는 곧장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었지만, 웃어른 앞이기에 최선을 다해 참아 보기로 했다.

사실 참을 필요도 딱히 없었다.

내 심정을 대변해 줄 사람이 하나 더 있었으니까.

“지랄 났네, 지랄 났어… 좆됐다, 진짜.”

무례할 만큼 적나라한 말투였지만, 대마녀는 굳이 엘시 선배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쪽은, 실전 경험이 얼마 없는 황녀였다.

“어, 어, 어떡하죠?! 당장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니에요? 결계의 핵은, 나중에도 찾을 수 있으니까…….”

“……진정하시죠.”

막내를 챙기는 건 맞선임의 몫.

연령대로 따지자면 나는 바닥에서 두 번째, 그리고 황녀와도 가장 교류가 깊은 인물이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판단 아래 황녀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흡혈귀 쪽에서 먼저 행동에 나선 까닭이 있을 겁니다. 특히 권속들이 먼저 나섰다는 건, 우리의 전력을 분할하려는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죠. 혹은 결계의 핵을 탐색할 시간을 최대한 늦추고 싶거나.”

“그 말대로다.”

그렇게 침착하게 이어지던 설명을 받은 이는 대마녀였다.

수백 년을 살아온 대마녀는 최연장자답게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카데미 내부에는 호위를 위해 교수들이 붙어 있다. 괜히 우리끼리만 움직이는 줄 아느냐? 또 재학생들도 나름 한 자락 실력은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게다.”

나와 대마녀의 설득이 통한 것일까.

당장이라도 뛰쳐 나갈 기색이던 황녀의 기세가 그제야 잠잠해졌다. 소녀는 무한한 신뢰를 담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존경스럽다는 듯 바라보면서.

“그, 그렇군요! 과연 이안 경이시네요. 이 와중에도 평정을 잃지 않으시다니…….”

그야 여태 워낙 많은 돌발상황을 겪어 왔으니까.

‘기습’이나 ‘습격’은 유달리 많이 들었던 낱말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황녀를 구하던 날도 암흑교단의 습격이 있지 않았던가.

이처럼 내가 추억에 잠겨 있을 무렵.

“저, 저…….”

제국 첩보부원이 조심스레 회상에 잠긴 내 정신을 일깨웠다.

아직 할 말이 더 남아있는 듯했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심적인 부담이 큰 모양이었다.

내가 그렇게 무섭나.

첩보부원이 눈을 질끈 감은 것은 그 직후였다.

“그, 대피하지 못한 학부 중에… 연금학부가 있다는 소식이…….”

그리고 침묵.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입을 다물기를 택했다. 내 뇌리를 타고 전류처럼 사고가 흐르고 있었지만, 끝내 언어로 화한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엠마!”

땅을 박차자마자 내 몸은 바람처럼 쏘아졌고, 어이가 없다는 시선이 등 뒤에서 느껴졌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 머릿속은 유독 나쁜 꼴을 자주 당하던 소녀 하나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것도 꽤나.

**

하이 익스퍼트의 신체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는 각력도 마찬가지였다. 땅을 박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드디어 찾고 있던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적갈빛 머리카락과 맑은 녹색 눈동자, 그리고 시약을 다루는 연금학부 특유의 새하얀 실험복까지.

‘엠마’였다.

그녀는 마침 끙끙대며 짐을 옮기고 있던 도중이었다. 대피를 한 뒤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을 심산인지, 속이 꽉 찬 보따리가 꽤나 무거워 보였다.

나는 엠마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엠마!”

“……응?”

낑낑대며 보따리를 잡아당기고 있던 여인의 눈이 나를 향했다. 그러더니 삽시간에 밝아지는 낯빛.

화사한 미소였다.

흡혈귀의 저주가 감도는 아카데미였으나, 엠마는 천성이 워낙 선한 탓인지 저주의 영향조차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이처럼 깨끗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이유도 그 덕이겠지.

엠마는 다행스럽게도 무탈해 보였다.

“이안! 어떻게 된 거야?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다고 했잖아… 아아, 혹시 놓고 간 물건 있어? 어제 먹은 약이 필요하다던가?”

“엠마,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거친 숨결을 재빨리 정리하며, 천천히 엠마에게로 다가섰다.

그제야 엠마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엠마의 몸 어디에도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엠마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말했다.

“엠마, 잘 들어. 대피소에 데려다 줄 테니까, 한동안은 바깥으로 나오지 마. 그리고 교수님들 곁에 꼭 붙어 있고.”

“응? 하지만, 짐이 아직 조금 남아 있…….”

“그건 어찌 되든 좋으니까.”

내 강경한 어조에 엠마는 곧 우물쭈물하며 시선을 피했다. 살짝 붉어진 볼이, 나와의 거리감을 가늠하기 힘들어 보이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포근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콤달콤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엠마는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소심한 반론을 제기했다.

“버, 버섯 말려 놨는데……”

“어서.”

물론 헛된 반항이었다.

엠마는 머뭇머뭇 보따리에 연결된 줄을 툭, 하고 던져 버렸다. 그리고 말없이 두 팔을 벌린 채 눈을 질끈 감기까지.

“자! 준비는 됐어!”

안아서 옮겨 주리라 생각한 걸까.

처음에는 업어서 옮기려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들쳐메고 가는 편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내가 한 걸음을 내딛은 찰나.

팍, 하고.

내 시야가 일순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대로 세상이 정지한 듯한 착각.

나는 멍하니 손을 눈가로 가져갔다. 슬쩍 낯가죽을 훑고 지나간 내 손에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라?”

멍하니, 나지막히.

탄식인지 탄성인지 모를 소리를 들은 내 시선이 서서히 정면을 향했다. 그곳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제 몸뚱어리를 내려다보는 여인이 하나 서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제 복부를.

갈라진 틈새로부터 핏물이 울컥울컥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은 핏물이지만, 이제 곧 장기들이 쏟아져 내리겠지.

엠마는 덜덜 떨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말라 올렸다. 내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듯이.

“왜, 왜? 이안, 지금 뭔가…….”

그것이 끝.

더는 견딜 수 없었는지, 여인의 눈이 뒤집히며 자세가 앞으로 기울었다. 철푸덕, 하는 소리와 함께 엎어진 여인의 몸 주위로 온기를 품은 선홍빛 액체가 번져 나갔다.

나 또한 넋을 놓고 우두커니 서 있기를 몇 초.

저 멀리에서,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는 기척이 느껴졌다.

“일단은 한 명.”

내 동공이 멍하니 그 진원지를 쫓았다. 엠마가 쓰러진 자리로 트인 시야, 그곳에 석양처럼 드리우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생김새는 제각각.

공통점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회색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

그중 화려한 의상을 갖춘 여인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어머, 네가 ‘이안’이구나? 아직 하이 익스퍼트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던…….”

후후, 하고 귓가를 파고드는 조소.

“이건 자그마한 복수란다? 우리 자매 하나가 네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 이제 서로 빚은 없는 거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이 내가 제정신으로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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