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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590)화 (590/649)

Chapter 590 - 7. 질투는 나의 힘(90)

살기 위한 본능에 의한 행동이었다. 사내는 또 다시 입에서 피를 뿜으며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아, 안… 안 돼애애애애애액!”

그러자 미치기 직전이 된 쪽은 ‘탐욕’이었다.

시종일관 여유롭던 소녀의 눈동자에 실핏줄이 도드라졌다. 제 머리카락을 붙잡는 손아귀의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벌써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뽑혀 나갔을 지경이었다.

‘탐욕’은 극도의 흥분에 빠져 흡혈귀를 노려보았다.

“질투, 만일 오빠가 잘못된다면 넌 반드시 내 손에……!”

“아, 아니. 하지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데…….”

“우리 오빠가 어떻게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너, 미쳤어?!”

그러면서 척, 하고 저 먼 곳을 지목하는 새하얀 손가락.

그곳에는 흡혈귀의 일격에 당한 사내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누가 보아도,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몸이 저 꼴인데, 어떻게 갑자기 네 눈앞에 나타나냐고! 우리 오빠가 시간이라도 멈췄다는 거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텐데?!”

“그렇지만, 실제로…….”

“핑계는 한 번뿐이야!”

우드득,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주먹을 쥐며 소녀는 불길 같은 눈빛을 토해냈다.

“만일 한 번만 더, 우리 오빠의 목숨이 위험해졌다간……!”

바로 그때.

쿵, 하고 들릴 리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녀의 얼떨떨한 시선이 제가 가리키고 있던 지점을 향했다. 그곳에서는, 일어날 리 없는 사내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다 무릎을 땅에 찧기도 한두 번.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검을 지팡이로 삼아, 사내는 기어코 또 다시 몸을 일으켰다.

벌써 두 번째.

의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광경에, 소녀가 넋을 놓아버렸을 찰나.

또 다시 질풍이 내달린다.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금번의 질주는, 소녀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으니까.

칼바람이 소녀의 새하얀 뺨에 얕은 생채기를 내며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쾅!

사내가 또 다시 저 멀리 날아가며 나동그라졌다. 일순 얼이 빠져 있던 소녀의 눈동자에서는, 그제야 핏줄이 터져 나왔다.

“질투, 내가 분명……!”

“또 온다.”

담백한 한 마디.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탐욕’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듯, 고개조차 돌리지 않으려 했지만.

또 다시 질풍이 내달린다.

폭음이 들리고, 저 멀리 사내가 떨어져 나간다.

누더기?

저 몸뚱어리는 이미 그러한 낱말로 설명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아직도 뼈와 근육이 기능하고 있단 말인가.

마치 일정 주기마다 시간이 되돌아간다는 착각이 일 정도였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내는 일어서서 내달렸다. 흡혈귀는 이에 응수해 사내를 저 멀리 날려 버리고, ‘탐욕’은 비명을 내지르다가, 다시 사내가 일어나기를 반복.

도대체 몇 번째인지.

이제는 ‘탐욕’마저 비명을 내지르다 못해 목이 쉬었을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기계적으로 응수하던 흡혈귀는, 악에 받쳐 소리를 내질러야 했다.

“쓰러져, 쓰러져, 쓰러져, 쓰러져……!”

후려치고.

주먹을 꽂아 넣고, 팔다리를 날려 버리고, 손톱으로 내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기까지 했는데.

사내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째서 망가진 사지가 다시 붙어서 되돌아오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저렇게 몇 번이나 땅을 구르는데도.

끝내 흡혈귀는 도움의 손길을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탐욕, 너도 도와!”

“하, 하지만……!”

“그러지 않으면 저 몸뚱어리를 통째로 날려버릴까? 저 남자를 살리고 싶으면, 당장 나와서 제압해!”

소녀의 눈동자가 정처를 잃고 흔들린다.

그러나 고민은 짧았다. 아무리 사랑에 미친 여자라고는 하지만, 이미 수십 번이나 반복되는 광경을 보면 깨달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있었다.

무언가 위험하다.

직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또한, 내심 흡혈귀의 말이 옳다고 느끼기도 했던 참이었다.

오빠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판단이 서자 소녀의 손가락이 까닥이며 핏빛의 실을 조정했다. 거미줄처럼 넓은 그물망이 펼쳐지고, 시간을 멈춰 달리던 사내의 몸은 그 구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멈칫해서 허공에 떠오른 사내를 향해, 핏빛 전하로 물든 손길이 작렬했다.

파직, 파직, 파지직!

사내의 명치에 손을 꽂아 넣은 흡혈귀의 이마에 어느덧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실로 오랜만에, 기도하듯이 이를 악물었다.

“제발, 이제 끝……!”

쾅, 하고 사내의 몸이 두둥실 허공에 떠오른다.

그리고 철푸덕 넘어져, 그것으로 끝.

사내의 숨소리가 차츰차츰 잦아들었다. 이를 보고 ‘탐욕’은 다시금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려고 했으나, 그보다 흡혈귀의 설명이 더 빨랐다.

“죽지는 않아.”

한계까지 치켜 뜨인 소녀의 눈동자가 흡혈귀를 응시했다. 만일 거짓말이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의사가 노골적으로 묻어나오는 시선.

그럼에도 흡혈귀는 피로하다는 낯빛을 할 뿐이었다.

“온몸의 장기와 혈관이 다 박살난 상태거든. 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가사(假死) 상태로라도 만들어야지.”

“그 말, 진실이어야 할 거야……!”

“흥, 어련하시겠어?”

흡혈귀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까지 성가시기는 했지만, 잘 끝나서 다행이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얌전히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

흡혈귀는 도도한 어조로 협상을 시도했다.

“그래도 마지막에 고생한 값은 받아야겠지. 네 요구사항을 들어주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나도 저 남자의 권리를 주장해야겠어.”

“무, 뭐?!”

그 폭탄 선언에 ‘탐욕’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기까지 했다. 분하다는 낯빛에서 은근한 살의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여간, 제 오빠만 관련됐다 하면.

내심 혀를 쯧쯧 차는 흡혈귀였으나, 어쩌겠는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단지 적정 수준에서 거래 조건을 조정하는 정도가 가능할 뿐.

“당연히 통째로 달라는 말은 아니야, 응? 나도 네 오빠 사랑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대신, 피를 조금 주기적으로 공급해 주었으면 하는데…….”

“으, 으으……!”

“너무 그러지 마, ‘탐욕’. 집착이 과한 여자는 추하단다? 그깟 피쯤이야, 주기적으로 뽑는다고 네 오빠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은근한 설득이 이어지자 ‘탐욕’도 서서히 기세를 누그러트리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벌컥 화를 내기는 했지만, 흡혈귀가 바라는 조건은 결코 과한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소녀의 입에서 기나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진짜,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조금만이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친 흡혈귀가, 반색하며 손을 내밀었을 때.

“당연한 소리를, 후후. 나도 그렇게 많은 양까지는……!”

침묵.

소름이 돋을 만치 모든 소리가 일시에 삭제된다. 말소리는 물론이고, 호흡이나 심장 박동, 심지어는 얼굴 없는 괴물들이 흘리는 신음까지도.

식은땀이 맺힌다.

흡혈귀도, ‘탐욕’도 제 몸의 변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은 도대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긴장, 경악, 그리고 ‘공포’.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본신의 힘을 각성하지 못했다고 한들, 이곳에 서 있는 여인은 둘 다 암흑교단의 칠죄성을 담당하고 있었다.

두려움?

그까짓 감정은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지 오래가 아닌가.

만일,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흡혈귀의 눈동자가 다급히 어딘가를 향했다. 그곳에는 대마녀가 위치하고 있었다.

‘마스터’라면 가능하다.

전력을 낼 수 있는 마스터라면, 본신의 힘을 각성하지 못한 칠죄성 따위 둘이든 셋이든 압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대마녀의 낯빛 또한 흡혈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어느 지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

이윽고 좌중의 시선이 남은 한 가지의 가능성을 향했다.

설마, 아니겠지.

이변이 시작된 것은 그때였다.

“꺄으, 으…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느닷없이 대마녀가 제 머리를 부여잡으며 땅바닥을 뒹굴었다.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가 그 고통의 크기를 짐작케 했다. 심지어 격통을 호소하는 이는 대마녀뿐만이 아니었다.

“으극, 끄으… 꺄아아아아아악!”

정신을 잃고 있던 엘시도 난데없이 비명을 터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태연자약하던 흡혈귀와 ‘탐욕’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기에는 이상사태였다.

하지만 소음을 일으키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웅웅웅웅-!

수백에 달하는 거울들이 일제히 진동하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거울은 낯선 기억을 비춘다. 당연히, 흡혈귀의 뇌리 속에 남은 풍경들은 아니었다.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는 화상들.

우는 사내가 하나 떠오른다. 아니, 무수히.

수백 개의 화상은 하나같이 피와 불길로 얼룩진 길을 비추고 있었다. 영혼을 쥐어짜내는 울음 소리, 절망과 원독에 물든 눈빛이 핏발에 물들어 강렬하다.

오늘, 처음으로 흡혈귀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적 존재는 누구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공포를 느끼니까.

거울들이 비추는 광경은 점점 더 강렬해진다. 그럴수록 수백 개의 거울들이 떨리는 강도 또한 더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델피렘, 델피렘, 델피렘……!]

쿵, 쿵, 쾅!

주먹의 살갗이 짓이겨지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사내가 땅을 마구잡이로 내려친다. 울고 울어서, 눈물샘마저 말라버린 사내의 눈동자는 건조한 안광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리어 더욱 강렬한 불꽃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농축시켜, 한 방울의 액체로 만든다면 저러한 빛깔을 띠고 있으리라.

[너는, 너는 내가 반드시…….]

혹사 당한 성대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목소리인지, 바람 빠지는 소리인지 모를 음색만을 가까스로 흘릴 뿐.

다만 어째서일까.

그 불꽃과도 같은 금빛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이곳에 자리한 모두는 소름이 돋을 만치 명료하게 깨달았다.

저 사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죽인다.]

챙, 챙, 챙, 챙그랑!

수백 개의 거울이 떨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제히 터져나가며 장관을 연출했다. 수정을 닮은 빛의 입자들이 흩날리며, 어둑하기만 하던 공간을 환상적인 풍경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피를 달라, 조금만 가져가라. 또, 뭐. 어쩌고저쩌고.”

메마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지막한 읊조림이었는데, 그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커 보이는 착각.

‘질투’와 ‘탐욕’의 시선이 서서히 그 진원지를 향했다. 하나같이 경악으로 얼어붙은 눈빛이었다.

“멋대로 떠들고 계시군. 이 몸뚱어리가, 마치 전리품이라도 되는 것 마냥…….”

팍, 하고.

시체처럼 누워있던 사내의 손이 하늘을 향하자, 땅에 꽂혀 있던 검이 빛살처럼 제자리를 찾는다. 검을 움켜쥔 사내의 손등에서는 핏줄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이안 페르쿠스.

아니, 정녕 ‘이안 페르쿠스’가 맞나?

사내는 용수처럼 퉁겨 올라 땅 위에 우뚝 섰다. 그러면서 제 옷을 툭툭 털어내는 그 모습은, 분명 ‘이안 페르쿠스’를 닮아있었지만.

어딘가 다르다.

흡혈귀는, 그리고 ‘탐욕’은 그 황금빛 눈동자를 보자마자 직감했다.

지독히도 피로에 젖은 그 처연한 호수를.

“이제 지랄은 끝났나?”

사내의 귀환이었다.

신음을 흘리며 쓰러진 제 사매와, 스승을 등지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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