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99 - 7. 질투는 나의 힘(99)
당장이라도 여인을 옭아맬 듯 팽팽히 당겨져 있던 실이, 단숨에 그 탄력을 잃어린다.
무심코 어라, 하고 또 다시 의문을 품었을 찰나.
여인의 회전에 맞추어 실들이 핑그르르 돌아가며 얽히기 시작했다. 누에가 고치를 입듯이, 순식간에 얽히고설킨 실낱들의 숫자만 물경 수천 가닥.
어느덧 황녀의 연회색 동공이 세로로 찢어져 있었다.
“용이 미래를 읽는다는 소문, 들어본 적 있나요?”
“이게, 무슨……!”
여인은 뒤늦게 바둥대며 회전을 멈추려 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소용돌이처럼 빨려 들어간 실의 구속은 빈틈이 없었다. 이윽고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된 여인에게 남은 선택지는, 당혹감에 가득 찬 비명을 터트리는 것뿐.
헐떡이는 소녀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너무 흥분하신 탓이죠. 왜 우리가 자꾸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지, 그리고 왜 주변에는 이토록 흐트러진 실이 많은데 하나도 사라지지 않는지… 의문을 품으셨어야 했는데.”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황녀의 차분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도저히 흥분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악에 받친 외침이 이어진다.
“아무리 순발력이 좋더라도, 내가 회전에 들어가려는 전조가 보이자마자 반응할 수는 없어! 미리 움직임을 읽고 있지 않는 한……!”
대답은 불필요했다.
여인의 말끝이 차츰차츰 흐려지더니, 이내 멍청한 시선이 황녀의 눈동자에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세로로 찢어진 연회색의 동공.
돌이켜 보면, 이 소녀는 이상할 정도로 여인의 기습을 잘 피해내고 있었다.
그만큼이나 육체 능력이 뛰어날 턱이 없을 텐데도.
“……설마, 보이는 거야?”
“보여요. 단지 미래가 아니라, 당신의 감정이 보일 뿐.”
‘용의 눈’에는 감정이 색조로 비친다.
그리고 감정이 흐르는 방향을 알 수 있다면, 상대의 노림수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여인은 욕망의 화신이라 칭해도 이상하지 않는 마인이었다.
이를 읽어내지 못할 황녀가 아니었다. 태어나고 나서 지금까지, 제 눈을 저주하면서도 의존해 왔던 그녀였으니까.
그 담백한 설명을 끝으로, 황녀는 마지막 남은 손을 더듬거리며 제 품에서 물약을 꺼냈다. 이를 관통상에 뿌리자마자 치이익- 하고 새하얀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과연 황실의 비품.
실시간으로 살과 근육이 차오르고 있었다. 비록 통증을 동반하기는 했지만, 팔다리가 꿰뚫리는 고통에 비하자면 참을 만했다.
그때였다.
“푸흐, 아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느닷없이 여인이 웃음을 터트린 것은.
황녀는 말없이 가라앉은 시선을 여인에게로 향했다. 거미줄에 묶인 먹잇감의 꼴이 되고 나서도, 여인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낯빛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서 어떡할 거지? 네 연약한 마법으로는 내 피부조차 뚫기가 힘든데?”
꿀꺽꿀꺽.
황녀는 또 다시 침묵을 지키며, 물약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제야 진탕이 되었던 내부가 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좋아, 몇 병 더 구해서 이안 경에게 선물할까.
이러한 생각이나 하면서.
“설마, 모든 사건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을 하려는 거야? 소용없어! 내가 결계의 마지막 남은 핵이거든. 다시 말해, 나를 죽이지 못하는 한… 네 동료들도 언니의 손에서 무사할 수는……!”
“재미있는 짓을 하시더라고요.”
황녀는 가냘픈 미소를 지으면서 그리 말했다.
묘한 분위기였다. 여인은, 처음으로 호기심이 아닌 그 미소에 압도되어 입을 다물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끼친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공중에서 회전력을 더해, 돌파력을 높인다… 간단한 아이디어에요. 왜 지금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그야, 아이디어가 있어도 적용하기 힘드니까 그렇지. 술식을 조금이라도 비튼다는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하지만 여인의 조소는 황녀의 귀에 닿지 못했다.
그보다 먼저, 황녀가 서서히 손을 들어 여인의 머리를 겨누었기 때문이었다.
해맑은 미소를 지은 채로.
“……천리일도(千里一跳).”
우드드드드드득!
푸른 새가 날개를 펼치더니, 이내 제 몸뚱어리를 회전시켜 맹렬히 여인의 이마를 꿰뚫기 시작했다. 피부가 찢겨지는 감각에 여인의 입에서는 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끄으으으으으으……!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빗물이 바위를 꿰뚫는다는 속담, 알고 있나요? 비슷한 짓을 할 생각이에요… 천리일도(千里一跳).”
우드드드드드드득!
또 다시 내쏘아진 마법에 여인의 이마에 옅은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동일한 지점을 연속으로 꿰뚫고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그 발상이 지나치게 냉혹할 뿐이지.
제국의 제5황녀, 시엔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흥얼거렸다.
“몇 번이나 버티려나? 스무 번? 서른 번? 혹시… 백 번 넘게?”
그 모습이 마치 잠자리의 날개를 뜯는 어린아이를 닮아 있어서.
여인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에 온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도, 여인을 붙잡고 있는 구속은 풀리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끝내 여인은 절규를 토해내는 수밖에 없었다.
“끄으, 으으… 아아아아아악! 이래도, 이래도 되겠어?! 내 딸이.. 내 딸이 이 원한을 잊지 않을……!”
“천리일도(千里一跳).”
“아아아아아아아아악!”
황녀가 시동어를 읊으면 읊을 때마다, 여인의 새된 비명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이제 청백색의 새는 부리로 여인의 두개골을 긁고 있었다. 뼈가 서서히 파이는 통증과 두려움이란, 겪어 보지 않은 자는 결코 알 수가 없었다.
공황 상태.
논리와 이성이 붕괴한다. 죽음을 앞둔 동물은 그만큼이나 필사적인 면이 있었다. 짐승의 특성을 타고 난 박쥐 마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인이 아무 말이나 부르짖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그때 처음으로.
끊임없이 시동어를 읊던 소녀의 입술이 멎었다. 연회색 눈동자에 얼핏 싸늘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여인의 입가에 비틀린 호선이 걸렸다.
이게 바로 네 약점이구나.
“그 남자가, 잘도 좋아하겠는데? 아끼는 후배의 어머니를 죽인 여자… 꺼림칙하지 않아? 나도 귀족이라서 알아. 질투가 많은 여자는, 배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아이라 유르디나 부인.”
실로 기품 있는 어조와 음색으로, 황녀는 여인의 말을 잘라냈다.
“위대한 제국 황가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정정해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저는, ‘질투’ 따위 하지 않아요.”
그 말을 들은 여인의 미간이 살포시 좁혀졌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고자 한단 말인가.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는 황녀의 낯빛은 퍽이나 진지해 보였다. 사랑스러운 입술이 달싹이자, 조곤조곤한 말씨가 이어졌다.
“왜냐하면, ‘질투’는 약자의 몫이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질투’ 따위 하지 않아요. 결코.”
그리고 다시 한 번 탕, 하고 터져 나오는 새의 날갯짓.
“으, 아, 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여인의 비명이 울려 퍼진다. 이를 반주 삼아서, 황녀는 이를 악물고 핏발이 선 눈으로 외쳤다.
“그딴 건, ‘용’에게 어울리지 않으니까!”
탕, 탕, 탕!
소녀의 손에서 마력의 새가 도약하는 빈도가 점점 더 짧아졌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무수히도 많은 일격.
석재가 갉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피와 뒤섞인 뼛가루가 질척이며 땅바닥에 들러붙는다.
이윽고 연주는 절정으로.
“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렇게 목소리가 한도 끝도 없이 높아졌을 때였다.
팍, 하고.
폭죽처럼 여인의 두개골이 터져 나가며 내용물이 비산했다. 핏물과, 뇌수와, 그리고 한때 인체를 이루고 있었을 살점들.
후두둑 비가 쏟아져 내렸다. 지독히도 비린내가 나는 비가.
소녀는 그제야 가쁜 숨을 고르며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쳤다. 제가 한 짓을 믿을 수 없는지, 몇 번이고 청백색의 새를 토해내던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황녀는 남은 손으로 그 팔을 움켜쥐었다가.
이내 입술을 짓씹으며, 매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질투’는 아니에요, 절대로.”
말하자면, 소녀가 인지한 첫 살인.
그리고 용의 탄생이었다.
**
별빛과 피구름이 뒤섞인다.
하늘이 수천 조각으로 쪼개지고, 그 사이에서 괴성을 내지르며 피보라가 들이닥친다. 허공을 노니는 사내가 맞서는 적은 생물의 형상마저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차라리 자연재해라면 모를까.
검 한 자루를 들고 천재지변과 대적하는 사내가 더 이상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 끝도 없는 싸움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한 점의 돌파구도 보이지 않던 그때.
[……!]
사내를 덮치려던 핏빛의 안개가, 일순 일렁이면서 이상 징후를 보였다.
그리고 결계가 뒤흔들린다.
쿵, 쿵, 쿵!
연달아 지축을 후려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핏빛 구름이 좌우로 맹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쯤.
[설마……!]
팍, 하고 안개가 흩어지며 아리따운 여인 하나가 지상에 추락했다.
한껏 불신을 담은 눈을 한 채로.
사내는 그제야 무감정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제야 시작인가…….”
움찔, 하고.
쓰러져 있던 소녀의 손가락이 떨린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