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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610)화 (610/649)

Chapter 610 - 7. 질투는 나의 힘(110)

“이안 오빠는, 그딴 말 안해……!”

“그 남자를 믿고 있구나.”

“이안 오빠는, 절대 나를 버리지 않는다고……!”

그래, 솔직히 말해서.

이안과 여인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눈앞의 여인이 보여 주는 환상이 전부 거짓은 아닐 테니, 그중에는 진실도 있겠지.

그렇다고 해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죽을 만큼 싫고, 괴롭고, 또 그럴 때마다 이안의 옆에 선 여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지독한 열등감에 빠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원망스럽지만.

셀린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세상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마저 앗아가 버린 운명이 너무나도 싫고 증오스러웠지만.

참는다. 참고 참았다.

스스로가 초라해서 눈물이 흘렀다. 심장이 불타듯이 아프고, 벌써 몇 달이나 자책과 열등감이 뇌리를 벌레처럼 파먹으며 셀린의 정신을 망쳐도 인내했다.

다름 아닌 이안을 위해서.

“약속, 했다고……!”

이슬 한 방울을 또르르 흘리면서, 셀린은 그렇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아직 잊지 않았다. 결코 잊을 리가 없었다.

세피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들판에서, 이안과 나누었던 약속을.

붉은 눈의 여인 또한 굳이 셀린의 믿음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턱을 괸 채 말없이 신음을 흘리는 셀린을 보다가, 툭 던지듯 물었을 뿐.

“정말?”

“그래, 몇 번이나 말했지만……!”

“환상이 아닌 진실을 보고 싶다고 했지.”

훅, 하고.

여인의 낯이 다가온다. 서로 숨결이 뒤섞이는 거리, 셀린은 감미로운 향기에 일순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붉은 눈동자가 초야의 등불처럼 일렁인다.

“보여줄까?”

숨이 멎는다.

그렇게 권하는 여인의 눈동자는, 거짓이나 위선 따위보다 두려운 감정을 담고 있었다.

진실.

한 점의 의심조차 섞을 수 없는, 올곧은 눈동자.

거짓말이 아니었다. 셀린은 가슴 깊숙이 그 사실을 직감했다.

“선택은 언제나 너의 몫이야, 셀린 하스터… 보고 싶니? 진실을?”

“무, 무슨 소리를…….”

“네가 사랑하는 사내.”

그러면서 여인은 싱긋 웃었다.

순수한 선의로 물든 호선이었다.

“보여 줄게. 하지만, 보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나는 이안 오빠를 믿어의심치 않는다고, 그렇게 외치려던 찰나.

셀린의 귓가에 낯익은 목소리가 재생된다. 몇 번이나 들었던 환청이었다.

‘무능해.’

‘쓸모없어.’

‘짐덩어리.’

어째서일까.

셀린은 덜컥 겁이 나서, 눈가를 파르르 떨 뿐 즉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여인의 속삭임은 이어진다.

“자, 선택해. 보여 줄까? 아니라면, 이대로 눈을 감을래.”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무엇을 택하더라도 이안을 향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그래, 그러니까.

“보, 보…….”

“응?”

“……보여 줘.”

여인의 선의를 받아들이더라도 나쁘지 않으리라.

셀린의 대답에, 여인은 아리따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웃음이었다.

**

상학부의 교수 사무실 중 하나.

나는 전후처리를 의논하기 위해 이곳에 방문했다. 온몸에 붕대와 부목을 둘둘 두른 채이기는 했지만, 그만큼이나 시급한 문제도 있었으니 말이다.

내 맞상대는 이미 몇 번이나 얼굴을 보았던 인물이었다.

“……오랜만이네요, 아인 쿠르쿠르 경.”

“반갑습니다, 리에라 엘핀하우저 선배.”

내 평온한 인사에 먼저 발끈한 쪽은 상대 쪽이었다.

알펜하우저의 쌍둥이 중 언니, 시에네 알펜하우저.

그녀는 고질병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않고 멋대로 부른다는 점이었는데, 용케도 제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 이름은, ‘시에네 알펜하우저’입니다!””

“우연이네요, 제 이름도 ‘이안 페르쿠스’인데.”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시에네 선배의 뒤편에 시립해 있던 여인의 인도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루나 알펜하우저.

알펜하우저의 쌍둥이 중 동생으로, 상대적으로 정상인에 속한 인물이었다.

당장 팔짱을 낀 채 툴툴대는 언니보다 몇 배는 나았다.

“흥, 시골 자작가의 차남 주제에… 본래라면 이 시에네와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실종자를 찾아주십시오.”

이제는 미운 정까지 들어 가는 상대였다.

상대해 봐야 나만 손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꺼내기로 했다. 그래야 시에네 선배도 딴소리를 하지 못할 테니까.

과연 내 예상이 맞았는지, 시에네 선배는 볼을 부풀리며 새침한 반문을 흘렸다.

“……실종자라니요?”

“셀린 하스터.”

흐응.

그 이름이 나오자마자, 시에네 선배는 묘한 소리를 흘리며 쥘부채로 입을 가렸다.

“제 소꿉친구를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인력이 많이 필요한지라…….”

“우리가 왜요?”

“아이리스 전하께 직접 말씀을 올릴까요?”

내 막힘없는 대답에 시에네 선배는 쯧, 하고 혀를 차며 시선을 피했다.

그 말대로였다.

아이리스 황녀는 내 재능을 탐내고 있었고, 따라서 내 환심을 사기 위해 안달이 난 상태였다. 내가 요청한다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 줄 가능성이 농후했다.

인력이든, 재물이든.

이를 알고 있는 시에네 선배가 내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었다. 만일 그 소식이 아이리스 황녀의 귀까지 들어간다면, 주군의 마음조차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심복이 되고 말 테니까.

시에네 선배는 항복이라는 듯 살짝 두 손을 치켜들었다.

“좋아요, 특별히 황녀 전하의 면을 봐서…….”

“그리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양 찻물을 홀짝이면서, 슬쩍 가라앉은 시선을 건너편으로 던졌다.

“개인적인 은원도 있지 않습니까? 속죄의 일환이라 생각하시죠.”

앞으로 계속해 나가야 할.

뒷말은 생략했으나, 내 눈빛만 보더라도 의도는 전달되었을 터였다.

이것은 일종의 떠보기였다.

알펜하우저 가문은 하스터 영지의 금광을 빼앗고, 결과적으로 하스터 가문을 몰락시켰다. 셀린은 그 이후로 고위 귀족에 대한 강한 증오를 품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가문의 원수.’

또한 셀린의 원수라면, 나의 원수나 다름없는 법.

보복의 대상과 정도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과정은 필수적이었다.

시에네 선배는 예상대로의 반응을 보였다.

“개인적인 은원? 글쎄요, 그까짓 한미한 가문과 무슨…….”

“인명이나 지명은 외우지 못해도, 돈이 흐르는 곳은 귀신 같이 안다는 알펜하우저의 태양.”

우뚝, 하고 시에네 선배가 어깨를 으쓱이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어지는 굳이 덧붙인 한 마디.

“……아닙니까?”

“후우.”

시에네 선배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못 말린다는 태도였다.

“손도끼 바보바보 경…….”

“이안 페르쿠스입니다.”

“세상에는, 때때로 몰라야 좋은 진실도 있는 법이에요. 그동안 우리 사이 좋았잖아요?”

“한 번도 좋았던 적 없는데요.”

“그러니까, 굳이 아픈 상처 들쑤시지 말고… 에에잇! 무슨 남자가 이렇게 속이 좁아!”

어떻게든 나를 타일러 보려던 시에네 선배는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다만 그 장난스러운 시도에도 진심이 섞여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이마를 짚으며, 마지막까지 설득에 나서는 걸 보면.

“……알면 돌이킬 수 없어요.”

“들어야겠습니다.”

한 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설득의 여지는 없었다. 마지막까지 머뭇거리던 시에네 선배의 어깨 위에, 루나 선배의 손이 얹어졌다.

“언니, 어차피 곧 숨길 수도 없는 사실이니…….”

그것이 결정타였다.

한동안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던 시에네 선배는, 이윽고 한숨을 푹 내쉬고 말았다.

“좋습니다. 이야기해 드리죠.”

“도대체 무슨 사정이 있길래…….”

“하스터 가문을 알펜하우저 가문이 몰락시켰다고 했죠?”

시작부터 본론.

시에네 선배답지 않은 화술이었다. 그래서 일순 내 말문이 막힌 사이, 시에네 선배는 거침없이 말을 덧붙여 나갔다.

“그거, ‘사냥’이에요.”

“그게 무슨 소리…….”

“알펜하우저 가문의 별명, 몰라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제국의 오대 명문가.

그중에서도 금권과 중앙을 상징하는 알펜하우저 가문의 별명은.

답을 읊으려던 내 입술이 멈칫했다. 문득 목이 타고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올 지경이었다.

만약 이 대답이 오답이라면?

나는 대단한 불경을 저지르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시에네 선배는 무언의 압박을 계속하고 있어서.

결국 내 입에서 자신 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황제의 사냥개’.”

그리고 이에 대한 시에네 선배의 답변은.

“정답.”

탁, 하고 쥘부채를 접으면서 상쾌하기까지 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스터 가문은, 황제 폐하의 뜻에 의해 몰락한 거예요.”

그제야 나는 시에네 선배의 경고를 온전히 이해했다.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직 이야기는 끝이 아니었다.

시에네 선배는 하스터 가문에 얽힌 비사를 밝히기 시작했다. 차분하고 조곤조곤한 어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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