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11 - 7. 질투는 나의 힘(完)
먼 옛날, 천신을 따르는 무리와 악신을 따르는 무리의 전쟁이 있었다.
수백 년이나 지속된 전쟁은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룰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하늘의 뜻을 받들어 ‘천검(天劍)’을 지닌 사도가 델피렘의 목을 참하기 전까지.
오랜 전쟁을 거치며 인류는 깨달았다.
델피렘과 칠죄성은 너무나 위험하다고.
강인한 힘은 그 자체로 사람을 홀리는 마력을 지닌다. 칠죄성의 육신을 참했으나, 그들의 권능은 천공의 별로부터 발원하고 있었기에 사라지지 않는다.
이대로 두면 언젠가는 인류의 욕망을 먹고 칠죄성이 부활하리라.
그래서 인류는 남은 칠죄성의 시체를 나누기로 했다.
‘폭식’의 시체는 동부에 뿌려져 풍족한 대지를 이루었고, ‘나태’의 시체는 서부에 뿌려져 메마른 황야를 이루었다. 또한 ‘탐욕’의 시체는 남부에 뿌려져 수풀과 생명이 무성해졌고, ‘질투’의 시체는 북부에 뿌려져 설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나누고 나누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죄악이 하나 있었으니.
들불과도 같아 끝없이 옮겨 붙으며, 자그마한 불씨로도 온 세상을 태워버릴 힘이었다.
인류는 그 죄악을 외딴 곳의 지하에 파묻어 버렸다. 영원히 누구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리고 그 끔찍한 죄악의 불씨가 다시는 지상에 옮겨 붙지 않도록.
하지만 악이 어찌 영원히 그림자 속에서만 도사리고 있으랴.
깊숙한 지하에서 수천 년, 기회를 노리며 힘을 회복하고 있던 죄악은 끝내 산을 파내던 광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무엇보다 찬란하고 빛나는 자태로.
그것이 누대에 걸쳐 발견되지 않던 금광이 느닷없이 뒷산에서 발견된 내막이었다.
또한 위대한 악은 언제나 사람을 홀리는 법.
그 속삭임에 넘어가, 저도 모르게 잠식되어 가던 인물이 하나 있었다.
“당장 금광을 파내라.”
하스터 남작.
금광을 빼앗긴 이후, 그가 쇠약해져 쓰러진 까닭도 그 탓이었다.
그의 온몸을 잠식하고 있던 칠죄성의 힘이 사라졌으니까.
*
침묵.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야기가 끝났지만 나는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상상치도 못했던 내막이었다. 돌이켜 보면 단서는 존재해 왔다.
알펜하우저 가문은 황제의 뜻을 따른다. 시골 영지의 금광을 노리고 느닷없이 대귀족들이 그만큼 연합했다는 점도 수상했다. 더불어 쓰러진 이후 아직도 차도가 없는 하스터 남작까지.
하지만, 왜.
나는 참지 못하고 의문을 토해내고 말았다.
“그렇다면, 사정을 설명할 수도……!”
“수천 년 전, 인류를 멸망시킬 뻔했던 거악(巨惡) 중 하나가 깨어나고 있다고? 이안 페르쿠스… 진심이에요?”
울컥, 하고 무어라 반박이라도 하고 싶었으니.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결국 나는 신음을 삼키며 시선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황제 폐하와 검공께서는 대륙 각지의 이상현상에 주목하고 계셨어요. 그 과정에서 우연과 행운이 겹쳐, 칠죄성의 씨앗 중 하나를 미리 확보해 둘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래서는 셀린이 너무 불쌍…….”
“복수하시겠어요?”
그 물음에, 말문이 턱하고 막힌다.
내 묵묵한 시선이 시에네 선배를 향했다. 알펜하우저 가문의 적녀답게, 시에네 선배의 은회색 동공은 흰자위와 분간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당연히 그 눈빛에 담긴 함의를 읽는 것도 불가능했다.
복수를 해야 한다면?
그 칼끝은, 당연히 알펜하우저 가문을 넘어 황가까지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녕 옳은 일이란 말인가?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붙는다. 시에네 선배는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고, 끝내.
대답은 나의 몫이었다.
늘 그랬듯이.
**
“안 돼, 안 돼, 안 돼…….”
덜덜 떨리는 애원.
간절한 목소리였다. 셀린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눈물을 맺은 채로 그렇게 빌었다.
그러지 마, 제발.
진실?
셀린은 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원망과 증오가 사그라들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오직 복수 하나만을 보고 살아온 삶이다.
그 분노를 어찌 간단히 저버릴 수 있단 말인가.
셀린이 두려움을 느낀 부분은 따로 있었다.
황제가 하스터 가문을 몰락시켰다.
그 사유 또한 완벽했다. 칠죄성의 재림을 막기 위해서, 이 사정을 듣고 나서 셀린의 편을 들어 줄 이가 세상에 존재하기는 할까?
아무것도 모르고.
힘이 없어서, 악의조차 품지 않고 저지른 짓일 뿐인데 아버지는 혼수 상태에 빠졌다. 어머니는 나날이 재정난으로 괴로워하고 있으며, 영지민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다.
또한 셀린은 고아나 다름없이 자라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진실을 들었다 해서 셀린의 증오가 희석될 리는 만무했다. 애초에 제정신도 아닌 와중에, 남의 사정을 헤아릴 만큼 셀린은 초인적인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다만 직감했다.
온 세상이 나의 적이라고.
황제가, 제국이, 그리고 암흑교단을 규탄하는 모든 이들이 하스터 가문의 몰락을 정당화시킬 것이다.
셀린의 복수를 어리석은 치기로 낙인 찍을 것이고, 반론이라도 하려 들면 대역죄인을 당장 광장에 효수하라고 날뛰겠지.
도대체 왜?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잖아. 나는, 단지 운명의 장난에 놀아났을 뿐이라고.
따지자면, 그래.
세상이 잘못된 거잖아.
셀린의 충혈된 눈동자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망막이 따가워 눈이라도 한 번 감을 법했지만, 셀린의 눈동자는 부릅떠진 채 감길 줄을 몰랐다.
“안 돼, 안 돼… 이안 오빠, 제발…….”
오빠만큼은 안 돼.
온 세상이 돌아서도 좋았다. 셀린의 복수를 부정하고 하스터 가문의 몰락이 온당하다고 외쳐도 괜찮았다.
오직 한 명.
이안만 돌아서지 않는다면.
약속했으니까. 이안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이안 페르쿠스는, 절대 셀린 하스터를 버리지 않으니까.
이가 딱딱 부딪히며 극도의 불안감을 노래한다. 이미 몇 달 동안 자책과 열등감에 물든 정신은, 몇날며칠이나 지속된 환상으로 망가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를 버틸 수 있었던 까닭 또한 하나.
이안 페르쿠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는…….”]
환상 속에서 사내가 서서히 입을 연다.
셀린의 숨이 멎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소리가 고막을 미친듯이 때려댔다. 이대로 심장이 부풀어서 터져 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시간이 멈춘다.
느리게, 사내의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고.
혀가 입천장과 치아를 오가며 운율을 형성한다.
[“복, 수… 하지 않습니다.”]
“흐악.”
비명조차 아니었다.
바람 새는 소리와 함께, 셀린의 망막을 물들이던 풍경이 점멸한다. 셀린은 그러고도 한참 동안이나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기를 얼마쯤.
“흐으, 아으, 아… 으으으으으, 아아아아아아아아아…….”
투둑, 툭.
셀린의 손목을 묶고 있던 핏빛의 실들이 서서히 뜯어진다. 평소의 완력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셀린에게 이를 눈치 챌 정신은 남아 있지 못했다.
다만 셀린의 뇌리에 틀어박히는 속삭임은 몇 번이나 들어왔던 촌평.
‘무능해.’
버려졌다.
‘쓸모없어.’
이안에게마저, 버려졌다.
‘짐덩어리.’
그럼 나는 도대체 무얼 위해 살아가는 거지?
온 세상이 셀린을 버렸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서,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사내를 눈앞에서 빼앗긴 것도 모자라.
도움도 되지 못하고, 끝내는 버려지고.
왜?
차마 언어화 되지 않은 의문들이 마구잡이로 뇌 혈관 속을 헤집는다. 셀린은, 그래.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폭죽.
펑, 하고 감정이 불꽃이 비산한다.
“아아아, 으으, 흐으, 아, 끄으, 아, 아아아아아아아악!”
셀린의 손이 마구잡이로 제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모자라서, 제 낯가죽을 긁고 가슴을 두들기다가 비명을 내지르기까지.
신경 다발 하나하나에 불꽃이 옮겨붙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심장이, 머리가, 너무나.
너무나도 아팠다. 눈물 따위는 이제 얼마든지 흘려도 좋을 만큼.
“아, 안 돼… 으흐, 아아, 으극, 으으으으으으으으으!”
그렇게 부들부들 떨기를 얼마쯤.
몇 분이나,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이제 몸부림을 칠 기력마저 잃어버린 셀린의 눈동자에서는 눈물만이 방울지고 있었다.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타고 차가운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무능해.’
‘쓸모없어.’
‘짐덩어리.’
“나, 도…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어…….”
손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노력했다. 그렇지만 재능의 격차는 냉혹했고, 신분이나 재력조차 대단치 않은 셀린은 결국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러다 끝내는 버려지고.
“으으, 아으, 흐으으, 끄윽……!”
가슴이, 가슴이 너무 아팠다.
산성 액체를 식도에 잔뜩 쏟아부으면 이러한 통증이 일까.
아니, 그보다도 심했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을 불꽃이었으므로.
그때였다.
“소원.”
고혹적인 목소리가 와 닿는다.
셀린의 텅 빈 눈동자가 서서히 그 진원지를 향했다. 그곳에는, 요사스러운 붉은 눈이 셀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들어줄게. 적절한 대가만 바친다면.”
‘대가’라.
가문도 몰락했고, 재물도 없어, 가진 바 재능도 없는 인간인데.
하지만 셀린에게는 망설일 기력조차 남아있지 못했다.
단지 눈을 감으면서, 유일한 소망을 읊었을 뿐.
“이제, 아프지 않게 해줘…….”
이 가슴 속의 불을 꺼달라고.
여인은 언제나 그렇듯 가슴 떨리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땅히 그래야지. 나는, 델피렘.”
거칠던 셀린의 호흡이 잦아들고, 스르륵 닫힌 눈꺼풀은 뜨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신이 사랑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니까.”
그날, 소녀의 심장에 붙었던 산불은 진화되었다.
모든 감정을 잿더미로 만든 채로.
셀린 하스터가 계약의 대가로 바친 것은 ‘감정’이었다.
오직 한 가지를 제외하고서.
새로운 칠죄성의 탄생이었다.
**
“……다만, 대가는 치러야겠죠.”
내 이어지는 조건에, 인상을 찌푸린 쪽은 시에네 선배였다.
당연했다. 제국과 알펜하우저 가문은 누가 보아도 올바른 판단을 내렸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
절대로 그 선택을 납득할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더라도, 추후에 황실과 알펜하우저 가문의 사과는 기필코 받아낼 겁니다. 더불어 적절한 보상과 하스터 가문의 명예회복까지…….”
“이안 페르쿠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줄 알아요?”
황실에게 사과를 요구한다.
그것은 제국의 정점이 잘못을 시인하라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 지극히 민감한 요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나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따위 소리를 해요? 못 들었어요? 우리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하스터 가문은 아무 죄도 없이 희생되었죠. 아무것도 모른 채로, 단지 운이 나빠서.”
그러면서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루나 선배가 깜짝 놀라 나를 붙잡으려 들었지만, 내 손이 치켜들어지는 쪽이 먼저였다.
“제 요구사항은 이상입니다. 황제 폐하께 진언하더라도 상관없어요.”
“미친놈.”
시에네 선배의 담백한 평가가 뒤따랐으나, 굳이 반응해 주지는 않았다.
단지 궁금한 점이 하나.
나는 발걸음을 옮기다 말고, 슬쩍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차피 더는 숨길 수 없다는 말은 무슨 소리…….”
“그 칠죄성의 파편, 곧 아카데미로 옮길 예정이에요.”
너무나 뜻밖의 소리라, 얌전히 방을 나서려던 내 시선이 일순 멍해졌다.
입술을 달싹이고 있는 쪽은 루나 선배였다.
“이곳에 최고의 권위자들이 모여 있거든요. 또, 지금은 아니라도 유서 깊은 중립지대이기도 하고… 각국의 전문가들이 파견되어 유물을 분석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파란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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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하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