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13 - 7.5 계절은 가을(2)
대마녀가 수제자로 날 지명한 이후, 나는 자연스레 대마녀를 수행하게 되었다.
“하여간, 성질머리 하고는… 좋은 의체를 선물해 줬으면 감사해야지, 왜 화를 내?”
사락사락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대마녀는 나지막한 읊조림을 남기며, 한창 걸음을 옮기던 도중이었다. 정작 자그마한 체구 탓에 그 속도는 느릿했지만.
나는 스승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도록 조심스레 보폭을 맞추며 물었다.
“의체를 선물해 주셨다니요?”
“아, 말하지 않았었나? 그 소녀 의체 말이다. 아무래도 검 미치광이한테 너무 어울리는 것 같아서 말이지, 얼마 전에 선물로 보냈거든. 그랬더니 오늘 찾아와서 바락바락 목청을 높이는데……!”
그렇게 하소연하는 대마녀는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기색이었다.
귀한 선물을 주고 대접은커녕 푸대접을 받았다는 투에, 나는 무어라 반응을 해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그래봐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가지뿐.
“……검공께서 미적 감각이 부족하시군요.”
하늘 같은 스승에게 어찌 쓴소리를 건네겠는가.
나의 텅 빈 호응에, 대마녀는 신이 나서 흥흥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니까! 평생 검만 휘두르다 보니까, 머리가 어떻게 돼 버린 게지… 흥, 뭐. 좋다. 반품까지는 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하자꾸나.”
‘해야 할 일’이라.
그러지 않아도 바라마지 않던 소리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덧 그 자태를 드러낸 웅장한 건물을 눈에 담았다.
오래 전에 신전으로 쓰이던 곳이라 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아카데미에는 부상자가 많았다. 그러니 치료를 전담하는 신전의 규모도 클 수밖에 없었고, 이는 수백 년 전에 지어진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100명 남짓의 병자들은 수용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곳에 누워 있는 이들은 단순한 환자들이 아니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
이따금씩 들려 오는 신음이나 훌쩍이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곳을 신전이 아닌 공동묘지라 생각했을 터였다.
“들어가자꾸나.”
대마녀의 목소리는 평탄했다. 이미 무수한 비극을 목도한 여인다운 평정심이었다.
일말의 씁쓸함마저 지우지는 못했는지, 그 입에는 어느새 곰방대가 물려져 있었지만.
중독이 무섭기는 했다. 이제 피울 필요가 없음에도, 심심하다는 이유로 종일 곰방대를 떼어놓질 않다니.
이처럼 쓸데없는 감상과 함께 나는 낡은 문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끼이이이이익-
녹슨 경첩 특유의 불쾌한 마찰음이 고막을 찌르고, 이윽고 드러나는 내부의 풍경.
시체의 밭이었다.
아직 호흡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동조차 없이 옅은 숨결만을 내뱉는 존재들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친인으로 추정되는 이들만이 종종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발걸음을 내딛기가 망설여진다. 내가 머뭇거리고만 있자, 대마녀는 탄식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흡혈귀의 권속에게 물린 희생자들… 설마, 흡혈귀라는 계약의 주체가 소멸하자마자 이 꼴이 되다니.”
“원인은 아시겠습니까?”
“흡혈귀의 피에는 단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육체가 강화되고, 불사성이 강해지는 등의 혜택이 있지. 그렇게 개조된 몸뚱어리가, 힘의 원천을 잃는다면…….”
연녹빛 눈동자가 주위를 훑는다. 그 망막 위에 떠오른 풍경이야말로, 대마녀가 흐린 말끝에 들어갈 해답이리라.
“저렇게 되는 거지. 일 났군… 뇌 쪽이 맛이 간 모양인데.”
“어떻게든 안 되겠습니까?”
“됐으면 진작 해결하겠다고 나섰겠지.”
내 흐릿한 희망은 그렇게 좌절되었다.
하기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흡혈귀는 대마녀의 핏줄이 아닌가. 당연히 대마녀 또한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만일 해결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진작 해결에 나섰겠지.
당장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곰방대를 잘근잘근 씹는 모습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대마녀도 저들을 구원해 주고 싶은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고민에 잠긴 목소리가 이어진다.
“하필이면 ‘계약’이 걸려 있어서 곤란해. 암흑교단과 계약을 맺으면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 또한 귀속되거든. 단순히 몸뚱어리를 고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란 말이지…….”
“정녕 방법이 없겠습니까?”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저 꼴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되겠어?”
대마녀의 두 손이 제 머리를 꾸욱, 하고 짓눌렀다.
이윽고 눈살을 찌푸린 여인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옅은 신음.
“끄응, 이놈의 시간만 충분했다면!”
조용하던 공간에 나타난 소음의 근원이었다.
어느덧 곳곳에 서 있던 사람들의 눈과 귀가 나와 대마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래봐야, 대마녀를 알아 볼 만큼 지위가 높은 인물은 없어 보였지만.
무의미한 행위는 아니었다. 시선을 마주하니, 그들이 품은 슬픔과 절망이 더욱 절절히 와 닿았으니까.
내 동공이 무심코 어딘가를 향했다.
그곳에는 풍성한 금발을 지닌 소녀가 누워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지만, 그 곁에는 몇몇 친인들이 방문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적갈빛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도 병문안을 왔을 테지.
지켜 주겠다고 했었다. 더는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겠다고, 그렇게 속으로 맹세했는데.
정작 내 곁에 남은 이들은 얼마나 있는가.
엠마의 눈물, 셀린의 실종, 세리아의 자책.
모든 것이 내 책임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자꾸만 나를 채근하는 채찍질의 정체였다.
‘시간’, ‘시간’, ‘시간’.
나는 그저 멍하니 되뇌이며 뇌리를 가동시켰다.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그때였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인물이 있어서.
“……어라.”
내 입에서는 절로 멍청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마녀의 시선이 힐끗 나를 향한 것은 필연이었다.
“왜 그러느냐, 첫째야.”
“엘시 선배.”
느닷없이 꺼낸 이름을 이해할 만큼, 대마녀가 지니고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그러니 슬쩍 미간을 좁히며 반문을 던지는 수밖에.
“둘째 말이냐? 흥, 슬슬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해두라고 했지. 어차피 ‘졸업 시험’인지 뭔지를 봐야 한다는데, 내가 델레모어 놈한테 잘 말해서 대수림 파견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내 밑에서 몇 달 죽어라 구르면, 그래도 쓸 만해져서…….”
“그 ‘엘시 선배’ 말고요.”
대마녀의 눈동자에 맺힌 의혹이 더욱 깊어졌다.
무슨 소리냐는, 마땅히 이어질 의문이 터져 나오기 직전.
“엘시 선배를 만나봐야겠어요.”
내 몸이 곧장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대마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질풍처럼 내달리며 기억 속을 뒤적였다.
엘시 선배는 지금 어디 있을까?
만난 지는 이제야 몇 개월이 넘었을 뿐이지만, 그동안 함께 수많은 사선을 넘은 사이였다. 약혼까지 앞두고 있는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대마녀는 엘시 선배가 이별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대수림에서 수련을 받기 시작하면 최소 수 개월은 바깥 공기를 마시지 못하겠지. 그렇다면 작별 인사를 전하고자 할 텐데, 그 엘시 선배가 지독히도 아끼는 인물은 무척이나 드물었다.
심지어 나까지 제외한다면, 그래.
오직 하나뿐이었다.
찾아야 할 인물이 정해지자 탐색은 한층 수월해졌다. 나와 함께 다니면서 이전의 인간관계를 정리한 엘시 선배와 달리, 그 남자는 여전히 아카데미 곳곳에 친구를 두고 있었으니까.
단 몇 분.
내가 엘시 선배를 찾아낼 때까지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가을이 찾아온 산책로의 의자 위에 짝 지은 남녀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달달하고 풋풋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지만, 유독 이질적인 관계를 보이는 이들도 존재하기는 했다.
엘시 선배와 루핀 라이넬라.
서로 남매지간인 두 사람은 기묘한 광경을 연출 중이었다. 남자 쪽은 질질 짜고 있고, 여자 쪽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 구도.
누가 보면 결별을 앞둔 풋내기들로 보일 정도였다.
정작 그 내막은 따로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헐떡이며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엘시 선배는 곧장 화색을 지어 보였다.
“어라, 주인님? 마침 잘 됐다! 아니, 글쎄… 루핀 이 놈이 죽어도 대수림으로는 보내지 못하겠다고 우는데…….”
“내, 내가 언제!”
절찬리에 눈물을 흘리고 있던 루핀이 펄쩍 뛰며 외친 소리였다.
당연히 설득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반론을 이어갔다.
“단지,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 가도 상관 없지 않냐는 말이었지! 라, 라이넬라 가문의 공자가 그깟 일로 눈물을 흘릴 것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이안… 히이이익! 가까이 오지 마!”
물론 나는 루핀의 헛소리에 어울려 줄 시간이 없었다.
내 발걸음이 망설임 없이 내딛어진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리고 어느덧 내 몸은 라이넬라 남매의 눈앞까지.
루핀은 무슨 상상을 했는지 비명을 내지르며 잔뜩 몸을 움츠렸다. 아무래도 오래 전의 악몽이 떠오른 모양이었는데, 내가 용건이 있는 쪽은 따로 있었다.
턱, 하고 소녀의 어깨를 덮는 내 손.
나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지금 내 낯빛은 한없이 진지하리라. 이는 얼빠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엘시 선배만 보더라도 짐작이 가능했다.
느닷없이 찾아와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엘시 선배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는 ‘엘시 선배’밖에 들어 줄 수 없는 부탁이라, 나는 한껏 내려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엘시 선배… 한 대만 때려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침묵.
내 약혼자는 눈을 깜박이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루핀과, 난데없는 유명인사의 등장에 우리를 주목하고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좌중의 눈과 귀가 나를 겨눈다.
그러기를 얼마쯤.
“야, 이… 미친 새끼야!”
루핀은 눈을 까뒤집으며 내게 달려들었으나, 그의 가녀린 주먹은 내 육체에 유의미한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구슬픈 계절이었다.
*
아카데미의 정문.
그곳에는 한껏 긴장한 표정의 위병이 하나 서 있었다. 평소라면 하품을 내쉬며 시간을 죽일 방법을 고심하고 있었겠으나, 최근의 아카데미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라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였다.
새로운 영웅의 등장.
그리고 잇따르는 암흑교단의 음모와, 그 뒷수습을 위한 권력자들의 방문은 잃어 버렸던 사명감을 되찾게 하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얼마 후에는 중요한 운송품이 온다는 소문이 돌던 참이 아닌가.
아마 이보다 더 긴장한 채 경비를 설 수는 없으리라.
위병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그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햇볕을 등지고 나타난 여인 하나에 의해서.
“저, 그, 아…….”
위병의 사고가 굳는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사내라면 누구나 그럴 터였다.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와, 장인이 공들여 세공한 듯한 이목구비. 그리고 순은을 녹여 짜냈다고 해도 믿을 만한 은빛의 머리카락을 마주한다면.
신이 만든 절경 위에 연분홍빛 점이 찍혀 있다. 그마저도 지독히도 어울리는 색이라, 위병은 일순 하나의 예술품을 앞둔 관객의 심정이 되고 말았다.
급히 달려온 탓일까.
여인의 호흡은 거칠었고, 신색이 온전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티끌 만한 흠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외모라니.
예쁘다. 아름답다. 그 외의 온갖 찬사들이 뇌리를 떠돌고 있었으나, 여인의 입술이 달싹이는 순간 모든 사고회로가 새하얗게 표백됐다.
“어디 있죠?”
“……네?”
위병은 진심으로 그렇게 되묻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떻게든 상대를 돕고 싶었다. 이는 비단 여인의 미모 때문만은 아니리라.
작은 태양이 여인의 정수리 위에 떠 있다.
헤일로(Halo).
천신의 대리인,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자들만이 지닐 수 있는 상징.
여인의 입술이 재차 달싹였다.
“이안 페르쿠스.”
어느 사내의 이름을 꺼내는 여인의 낯이 자연스레 미소를 머금었다. 심장이 마비될 만큼 아름다운 호선이었으나, 어째서일까.
가슴 한 켠이 싸늘해지는 까닭은.
위병의 이마가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들었다.
이윽고 으스러져라 주먹을 쥐는 소리.
“……내 남편.”
바야흐로, 때는 집 나간 아내가 돌아온다는 계절.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