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21 - 7.5 계절은 가을(10)
가을의 하늘은 높고 청명하다.
말이 살찌고, 농민들이 풍작을 자축하는 계절의 밤은 당황스러울 만치 고요했다. 여름 내내 귀를 울리던 풀벌레 소리가 잠잠해진 탓일까.
혹은 내가 찾아온 장소가 그만큼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럴지도 몰랐다.
천문대.
마법이나 연금술, 점성술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건물이었다. 오래 전부터 별의 운행은 하늘과 뜻과 관련지어 인식되곤 했으니까.
다만 천체를 제대로 관측하기 위해서는 몇몇 조건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시야나 광량이라든가. 나는 칼잡이라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일전에 듣기로 그 외에도 까다로운 입지 조건을 따진 끝에 천문대가 지어졌다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천문대는 무척 외진 곳에 위치하게 되었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문명이 존재하는 곳에는 빛이 탄생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빛을 최대한 피해야 하는 천문대는 야생으로 쫓겨날 수밖에.
아카데미의 천문대가 당혹스러운 위치에 지어지게 된 내막이었다.
사실 ‘아카데미’조차도 아니었다. 천문대는 아카데미의 바깥, 오래 전 현자가 은거했다는 야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으니까.
만일 전이 마법진이 없었다면 평생 발 한 번 들일 일이 없었으리라.
설마 약속 장소로 이처럼 먼 곳을 지정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물론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기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만큼이나 천문대를 찾는 재학생은 드물었고, 설령 찾더라도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만 했으니까.
이를 가뿐히 무시할 만한 권력을 지닌 존재라면 이곳을 고를 만도 하겠지.
다시 말해, 오늘 나를 불러낸 상대는 최소한 아카데미의 행정 절차를 무시할 만한 인물이란 뜻이었다.
“……왔느냐.”
후우, 하고 새하얀 담배 연기가 꼬리를 그린다.
부쩍 날씨가 쌀쌀해진 탓일까. 소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흰 증기가 입김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곰방대를 물고 있는 여인의 생김새 때문에 더욱 그리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고작해야 사춘기를 막 넘겼을까.
자그마한 체구와 여린 살결은 여인의 연령대를 더욱 헷갈리게끔 했다. 분위기나 행동거지는 영락없는 어른 같은데, 겉모습만큼은 어린 시절 그대로라니.
이제는 낯이 많이 익은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제자가 어찌 스승의 얼굴을 몰라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곧장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표했다.
“스승님.”
“오늘은 달이 참 밝구나.”
찬사인지, 한탄인지.
한숨과도 같은 여인의 말에 담긴 감정은 깊고 진했다. 나는 일순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스승과의 거리를 좁혔다.
대마녀의 시선이 슬쩍 나를 향하다 하늘을 겨눈다. 열대의 바다 같은 눈망울에 별들이 함뿍 빠져 있었다.
“내가 예전에 말한 적이 있던가? ‘마스터’들이 마냥 자유로운 존재는 아니라고.”
“예전에 검공께 들은 적이 있던 것도 같고…….”
너무나 오래된 이야기였다.
그동안 많은 사건을 겪은 탓인지, 그처럼 사소한 언급은 잊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나는 최대한 스승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머릿속을 뒤적였다.
검공이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던가?
확실하지 않았다. 대마녀도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던 듯했다.
그러니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겠지.
“우습지 않더냐? 인간을 초월했다는 존재들이, 정작 과거에 묶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다니요?”
“성국의 천신쟁이는 성도.”
성도 시엔델.
나는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 움찔, 몸을 떨고 말았다. 그날 산상법정에서 있었던 치열한 사투를 몸이 잊지 못한 탓이었다.
성자는 강했다.
삶과 죽음마저 자유자재로 다루는 괴물이 강하지 않다면, 누가 감히 ‘강함’을 칭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토록 강했던 성자조차도 멋대로 나서지는 못했다.
오랜 전통과 율법을 지켰을 뿐.
“제국의 검 미치광이는 황실.”
검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때는 온 대륙을 주유하며 수많은 전설을 써내려 갔던 인물이었다. 지금도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가.
그럼에도 그는 황실에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대수림.”
“답답하지 않으십니까?”
문득 떠오른 의문이었다.
성자도, 검공도, 대마녀도.
최소 수십 년 이상 목줄에 묶인 삶을 살아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토록 강한데도, 어째서.
그러자 대마녀는 흐, 하고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당연히 답답하지. 사실, 우리 셋 다 내심은 이 오랜 구속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 다만 홀가분하게 내던지기에는, 짐이 너무 무거울 뿐.”
“세 분 전부 말입니까?”
“그래, 우리 셋 다… 아니, 이제 둘인가.”
대마녀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슬쩍 나를 향한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동안은 늘 피로에 찌들어 있거나, 혹은 엄숙한 얼굴만 보아 왔는데.
이처럼 천진한 낯을 할 수 있다니.
놀란 탓일까, 내 심장이 한 차례 고동쳤다.
“나는, 이제 자유로워지지 않았느냐… 다름 아닌 네 덕분에.”
“과찬의 말씀입니다.”
“수백 년 동안 나는 스스로를 학대해 왔다.”
내 겸양의 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대마녀는 그렇게 이야기를 재개했다.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지. 내심은, 좀 더 좋은 선택이 있지 않을까 하고… 못난 언니를 내 손으로 죽이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랬어.”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다… 다만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아서, 나는 매일 같이 고통에 나를 밀어 넣었지. 일부러 결계의 핵을 내 몸뚱어리로 삼으면서까지.”
옛날 이야기를 털어놓는 대마녀의 표정은, 뭐라고 할까.
홀가분해 보이기도 했고, 허무해 보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섭섭해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마음이리라.
수백 년에 걸친 악연을 정리한 이후의 감상은.
대마녀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스스로의 감정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인지.
다만 끝내 짜낸 한 마디는 있었다.
“……고맙다.”
진한 감정이 농축된 말이었다.
대마녀는 살짝 볼을 붉히며, 내 시선을 피했다. 오늘따라 스승의 희귀한 표정을 자주 목격하는 듯했다.
부끄러워하는 대마녀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 나를 구해 줘서… 실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거든. 이런 날이 찾아오기를… 단지, 나 혼자서는 그럴 수 없었을 뿐이지.”
나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무심코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자 나와 여인 사이에 놓인 거리는 단숨에 반절 이하로.
내 무릎이 말없이 굽혀지고, 연녹빛 눈동자가 내 시야에 가득 담겼을 때.
그제야 내 입술이 호선을 머금었다. 이를 본 대마녀의 숨이 턱, 하고 막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그랗게 뜨인 눈동자 위로 내 상(像)이 맺힌다. 주렴처럼 나를 내리쬐는 달빛까지도.
“……영광입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뿐이었다.
대마녀는 한동안 입술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은은히 달아오른 뺨이 매혹적인 빛을 품는다.
“수백 년만에 당신을 구해 드릴 수 있어서.”
“흥, 누가 보면 내가 동화 속의 공주라도 되는 줄 알겠구나.”
“왜 안 됩니까? 예전에는, 귀한 집의 영애였다고 들었던 것 같은… 악!”
결국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대마녀의 발길질이 내 무릎을 걷어찼다.
아무리 마도사라고 해도, 마스터는 마스터.
육체 능력이 평범할 리는 없었다. 최소한 익스퍼트에 이른 무인이 일순 비명을 내지를 정도는 되었다.
내가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키자, 대마녀는 손부채질을 하며 툴툴대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어린 놈이 까불기는… 제자를 잘못 뒀어, 쯧쯧. 스승을 놀리기나 하고 말이야.”
“티 났습니까?”
그리고 또 다시 터져 나오는 악, 소리.
대마녀의 자그마한 발이 또 다시 내 무릎을 강타한 결과였다.
“그래, 이놈아. 나다마다!”
내 농담에 당한 것이 서러웠는지, 대마녀는 한참이나 씩씩대며 기분을 풀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안심이 되어 마음 놓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래야지.
이제야 미래에서 온 사내의 기억에서 보았던 얼굴이 되돌아 온 듯했다. 그늘을 떨쳐 내고, 아무 걱정 없이 울고 웃던 그 시절의 표정이 말이다.
나는 다소 느슨해진 분위기를 틈타 궁금했던 점을 물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스승님.”
“뭐냐.”
입술을 삐쭉 내밀면서, 곰방대를 문 여인이 뱉은 어조는 부루퉁하기까지 했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물음을 멈추지 않았다.
“왜 아직도 그 모습입니까?”
그러자 움찔, 하고 살짝 몸을 굳히는 대마녀.
또 다시 여인의 눈이 슬그머니 측면을 향했다. 명백히 수상한 조짐에, 나는 더욱 고개를 갸웃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흡혈귀는 죽었지 않습니까? 굳이 어린 시절의 체형을 유지해야 할 까닭이 없을 텐데…….”
“첫째야.”
난데없이 진중해진 음색이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일단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나를 바라보는 대마녀의 눈빛이, 유독 진지해 보였다.
“너는 둘째를 사랑하냐?”
“아니, 뭐… 그야 당연하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랑 약혼을 하겠습니까?”
심지어 아내도 있는 판에.
물론 굳이 뒷말을 꺼내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일이었으니까.
그러자 대마녀는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네 주변에는, 그… 어른스러운 여인들이 많더구나.”
“……?”
이게 무슨 소리지.
일순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였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과연 대마녀의 말이 옳았다.
성녀는 물론이고, 리아나 델핀 선배도 몸매가 훌륭한 편이 아니었던가. 이는 엠마나 세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돌이켜 보니 엘시 선배 같은 체형이 오히려 희소하다 싶긴 했다.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해답을 찾지 못해서, 나는 이내 턱을 쓰다듬으며 되물어야 했다.
“그래서요?”
“무얼… 그냥, 그렇다는 게지.”
“그게 도대체 스승님의 체형이랑 무슨 상관…….”
“스승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얼굴을 붉히며 빽, 하고 내지르는 말에 난 그만 기가 죽어 버리고 말았다.
실로 무시무시한 기술이었다.
‘어디서 스승한테 따박따박 말대꾸야?!’
이에 반론하는 순간, 또 다시 ‘말대꾸’가 되어 버려서 반박이 불가능한 무적의 논리.
결국 나는 다시 침묵을 지키며 슬그머니 대마녀의 눈치를 살피는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대마녀는 이성을 되찾았는지, 또 다시 헛기침을 하며 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기를 얼마쯤.
대마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지, 아니야… 사실 오늘 부른 까닭이 따로 있었는데.”
“본론이 남아 있다고요?”
“그래.”
의아한 낯을 한 나에게, 대마녀는 살짝 씁쓸한 음색으로 말했다.
“네 후배 말이다…….”
세리아가 나를 떠나야만 한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미친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내 후배가 머물고 있을 방으로. 제발 늦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하지만 쾅, 하고 발로 문짝을 날리면서까지 도달한 세리아의 방에는.
‘이안 선배에게 올리는 글월’
편지 한 장이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편지를 집어 들었다.
새하얀 종이 위에는 유려한 필체가 흑색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아마도 꾹꾹 진심을 담아 눌러 썼으리라.
그렇게 첫 줄.
[그간 사랑해서 죄가 많았습니다.]
나는 마치 형벌을 받는 기분으로 편지를 읽어 내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