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낯빛에는 별다른 의문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되었냐는 탄식과도 같은 감상뿐.
유일한 예외는 나뿐이었다.
“……착각 아닙니까?”
일순 좌중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오랜 정적을 깬 참이었다. 당연히 각오하고 있던 반응이었으나, 그 눈빛에 담긴 감정만큼은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동정, 혹은 연민.
나는 울컥하는 심정을 참지 못해 쾅, 하고 책상을 내리쳤다.
“셀린이 느닷없이 알펜하우저의 직계를 습격했다뇨!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로 얼마 전까지 암흑교단과 칼을 맞대고 있던 아이였는데… 그래, 기만책! 기만책일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여전하군요. 손도끼 바보바보 경.”
탁, 하고 지팡이로 땅바닥을 두드리면서.
시에네 선배는 조롱도 한탄도 느껴지지 않는 어조로 그리 일평했다. 내 달구어진 시선이 곧장 그녀를 향했지만, 이윽고 나는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아리따웠던 얼굴을 반이나 가린 붕대가 샛노란 진물로 젖어 들고 있었으니까.
영원히 낫지 않는 화상.
그것은 지독한 저주였다. 통증으로만 따지자면 부상 중에서도 수위권을 넘나드는 상처가 바로 화상이었다.
시에네 선배는 그 아픔을 계속해서 겪어야만 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낯가죽의 반절을 가리면서까지.
그토록 처참한 신세의 여인이었다. 아무리 내가 흥분했다고 한들, 함부로 목소리를 높이기는 힘들었다.
시에네는 내 침묵을 빌미로 낮은 으르렁거림을 토해냈다.
“그 여자는 하스터 가문의 원한을 꺼냈어요. 어떻게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셀린 하스터가 인류를 배반할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이미 예전부터 암흑교단과 접점이 있기도 했고, 납치를 저지른 세력도 잠정적으로는 그쪽이라 결론 내렸잖아요?”
“그 원한은!”
쾅, 하고 재차 책상을 내리치는 손바닥.
감정을 제어하기 힘든 탓에 탁자의 다리 중 하나가 우지끈, 하고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그럼에도 나를 탓하는 목소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단지 데렉 교수님만이 한숨과 함께 시선을 돌렸을 뿐.
나는 이내 핏발 선 눈동자로 외쳤다.
“알펜하우저의 잘못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 그리 뻔뻔하게……!”
“뻔뻔?”
흐, 하고 되다 만 웃음 소리를 터트리면서.
여인의 은빛 시선이 섬광처럼 심장에 내리꽂혔다. 그 구슬픈 표정이 다시금 내 끓어오르던 가슴에 얼음을 투하하고 있었다.
“맞아요, 그럴지도 모르죠. 어쩌면 우리 알펜하우저의 잘못일지도 몰라요. 조금 더 좋은 해결 방안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까짓 게 무슨 상관이죠?”
“셀린도 그럴 만한 사정이……!”
“인류를 등지고, 세상을 불태울 만한 사정이 말인가요? 참으로 합당하군요.”
나는 재차 반박에 나서고 싶었으나, 이내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는 수밖에 없었다.
그 말대로였다.
인류를 배신하고, 세상을 불태운다.
셀린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의 멸망’이라는 결말까지 이어져서야.
내 반론이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를 모를 리가 없는 시에네 선배는 재차 비수를 꽂아대고 있었다.
“그래요, 알펜하우저가 잘못을 했다고 칩시다. 제 여동생은 식물인간이 돼서 눈도 뜨지 못하고, 저는 반병신이 돼서 평생 낯가죽이 녹아내리는 고통에 시달리며 흉측한 얼굴을 감추며 살아가야 하는 신세지만… 그래요, 그럴 만한 죄를 졌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 여자가 우리 알펜하우저만 불태우고 만족할 것 같나요?”
그럴 수도 있다고.
나는 빈말으로나마 셀린을 옹호하고 싶었으나, 차마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알고 있었으니까.
암흑교단이 어떤 존재들인지.
만일, 셀린이 진정으로 암흑교단의 편에 섰다면 그 결말은 정해져 있다는 사실조차도.
다만 믿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 두 손으로 낯가죽을 감싸쥐었다.
“이미 그 여자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명확해졌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나요, 손도끼 바보바보 경?”
탁, 하고 다시금 땅바닥을 지팡이로 두드리면서.
시에네 선배는 ‘손도끼 바보바보’라는 장난스러운 호칭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소꿉친구는, 이제 우리의 적…….”
“그만!”
더는 견디지 못한 내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내 발이 멋대로 자리를 박차고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이마를 짚고 비틀거리면서, 악문 잇새로 어떻게든 의사를 전달했다.
“아직,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안.”
이제는 시에네 선배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이미 이곳에 자리 잡은 모두가 나를 만류하고자 했으니까. 당장 데렉 교수님만 하더라도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을 정도였다.
“정 힘들다면 나중에 이야기 하자꾸나. 나중에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서 알려줄 테니…….”
“제가!”
그렇게 외치면서. 나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좌중을 훑었다. 시에네 선배는 뜻 모를 눈빛을 한 채 나와 시선을 마주치고 있었다.
“제가 한 번 가보겠습니다… 해 보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이안.”
“지금 당장 제국 첩보부를 동원해서……!”
그렇게 엉망진창인 계획을 정리하며, 한 걸음을 내딛었을 찰나.
나는 일순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어라, 도대체 왜.
그러한 의문조차 채 이어지기도 전.
쿨럭, 하고 내 입에서 한 바가지의 핏물이 토해졌다. 이윽고 당황한 목소리들이 시끌벅적 고막을 울리기 시작했다.
“이안? 이안!”
“아니, 이게 무슨…….”
“당장 사제를 불러!”
우당탕, 하고 몸뚱어리가 볼품없이 마룻바닥 위를 구른다.
하아, 하아.
숨결을 따라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 올렸다. 어느덧 몸의 부상 부위를 감고 있던 붕대를 흠뻑 적시는 뜨뜻한 온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이게 뭐지.
나는, 가야만 하는데.
셀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은근히 눈물도 많고 마음도 여리던 그녀였다. 지금쯤 내가 없어져서 울고 있을지도.
그래, 가야만 하는데.
문득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셀린과 맺었던 약속.
하지만 의식이 흐릿하다.
손을 뻗었지만, 몸이 도저히 말을 듣지가 않았다. 흐릿한 시야가 사물의 윤곽을 뭉개며 점차 어두워진다.
암전하는 의식의 틈새로 목소리들이 부유한다.
“하지만 명심해라.”
어느 사내의 경고.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괴물의 광소.
“아하, 크흐… 쿨럭, 크흑… 아하하! 이게, 이게 네가 치러야 할 ‘대가’였다니… 케엑, 케… 아하하하학!”
어느 날은 사내가 내게 짜증스레 말한 적도 있었다.
“늦었어.”
그리고 무어라 말했더라.
“이제는 멈출 수 없다.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는 수밖에.”
“무슨 마음의 준비?”
“대가를 치를 준비.”
그래.
기억, 기억, 기억.
과거의 화상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이고 있었다.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단서들이 문득 기지개를 피면서, 내게 말했다.
모든 비전들을 익힌 꿈의 무인.
그 괴물을 만들기 위한 황실의 비원을, 아이리스 황녀는 무어라 불렀더라.
“통칭, ‘만들어진 신(Deus ex machina)’ 계획입니다.”
그랬다.
나는 그 계획의 터무니 없음에 대해 열변을 토하지 않았던가. 비전을 마구잡이로 익힌 이들의 결말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파멸(破滅).
그렇구나. 눈을 감으면서, 나는 그렇게 직감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내가 치러야 할 대가였구나.
그리고 암전.
과거와 미래가 반전된다.
*
“……이안 오빠? 이안 오빠!”
“어, 어어?”
드물게도 나는 멍청한 반문을 토해냈다.
내 앞에는 제 몸집 만한 도끼를 나뭇가지라도 된다는 양 어깨에 진 여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등 뒤로 거칠게 정리되어 내려앉았고, 황갈빛 눈동자를 의혹으로 빛내는 소녀.
그 모습을 마주한 내 낯빛이 일순 멍해졌다.
셀린 하스터.
그래, 나는 분명…….
바로 그때였다. 콱, 하고 소녀의 팔꿈치가 내 옆구리를 강하게 찌른 것은.
내가 옅은 신음을 토하기도 전이었다.
“뭘 자꾸 멍을 때려? 전투 끝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훗, 아니면 새삼 내 미모에 반해 버렸다던가?”
그렇게 우쭐한 미소를 짓는 셀린을 보고, 나는 메마른 웃음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도끼로 마수의 두개골을 폭죽처럼 터트리는 모습에?”
“흐응, 어때. 멋있었지?”
황갈빛 눈동자가 찡긋, 하고 감기며 내게 애교를 떤다.
그러자 기억이 되감긴다. 말을 탄 여인의 손에는 커다란 도끼가 쥐어져 있었고, 그것이 벼락처럼 오고 갈 때마다 핏물은 빗물이 되어 흘러 내렸다.
멋있었냐고?
멋있기는 했다. 그것이 일방적인 살육의 장면만 아니었다면.
내 부관이자, ‘까마귀’ 중 최고의 돌파력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 여인은 그러한 무인이었다.
별말 없이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셀린은 끝없이 까불거렸다.
“아아, 아쉽다. 아쉬워! 만일 내가 좀 더 일찍 적성을 발견했다면, 이안 오빠를 넘어섰을지도 모르는데…….”
“지금도 늦지 않았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