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흐흐… 내, 내가?”
내 영혼 없는 맞장구에 셀린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어가 웃긴 건지.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셀린은 더욱 폭소를 터트렸다.
“제국 암부의 까마귀 중에서도 역대 최강, ‘이안 페르쿠스’를 이긴다고? 됐어, 됐어… 난 오빠 부관으로 족해.”
“혹시 원한다면 좀 더 안전한 부대로…….”
“오빠, 됐다고 했잖아.”
단언하듯이 소녀는 내 제안을 자르면서, 손을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안 오빠는, 내가 제일 힘들 때 곁에 있어줬지.”
대답은 돌려주지 않았다.
내게는 용건이 있었고, 소녀와의 문답은 걸음을 내딛으며 나눌 만큼 가볍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셀린은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말했잖아. 그날 이후로 내 목숨은 이안 오빠한테 맡긴다고… 난, 이안 오빠를 위해서는 죽어도 돼.”
“그러다 레토한테 혼난다.”
“응, 안 들려~”
셀린은 그러면서 제 귀를 두 손바닥으로 막는 시늉을 했다. 베에, 하고 제 혓바닥을 내밀기는 덤으로.
하여튼 예나 지금이나.
나는 묘한 감상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용건을 셀린에게 말해 주지 않았던가.
슬슬 새로운 화제를 입에 담을 차례였다.
내 입이 망설임 없이 본론을 뿜는다.
“지금부터 아이린 경을 만날 거야.”
“그래, 그래. 당연히 전투 결과는 보고… 뭐?”
그러자 급격히 굳기 시작하는 셀린의 낯빛.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을 이어갔다.
“이곳은 제도잖아. 당연히 전하를 뵙기 전에 거쳐야 할 절차가 있지.”
“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여자를? 나, 난 그 여자 싫어!”
“아이린 경은 잘 부탁할게.”
꺄아아아아아악.
셀린이 비명을 뒤로 하며, 나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내딛었다. 덕분에 시간을 뺏길 요소가 줄어들었으니까.
내심으로는 셀린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그녀는 고위 귀족 출신들을 싫어하지 않았던가.
‘아이린 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루페미온 가문의 직계, 진짜배기 귀족 중 하나.
그럼에도 나는 셀린이 아이린 경과 만나 서로를 이해하기 바랐다.
이미 셀린이 복수할 상대는 사라졌다.
그들은 셀린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지독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러던 와중에 만난, 가문을 잃은 마지막 생존자들이었다.
부디 좋은 인연이 되기를.
나는 흐릿한 기도를 남기고 남은 길을 걸어갔다. 그 끝에는, 내 주군이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나마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
밤하늘.
그 암청빛 머리카락을 본다면, 누구나 이 낱말을 떠올릴 터였다. 뒷짐을 진 채 우뚝 선 절벽의 너머를 내려다보는 여인의 분위기는 깊고 묵직하기만 했다.
사실, 제국 첩보부에 속하기 전부터 그 이름이야 귀가 아프도록 들어오기는 했다.
‘눈 먼 뱀’.
제국의 제5황녀에 불과하지만,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 받는 여인이었다. 오죽하면 눈을 뽑힌 대신 천리를 내다보는 시야를 얻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일까.
그 이름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내 무릎이 굽혀지기도 전에, 여인의 환대가 돌아왔다.
“오셨군요.”
등 뒤를 돌아볼 필요조차 없었다. 애초에 여인의 눈은 멀어 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앞에서 기척을 속일 수 있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스터’란 그러한 괴물들이었다.
규격 외.
이들 앞에서 상식 따위는 통용되지 않는다. 나 또한 한때 ‘마스터’를 스승으로 모신 적이 있기에 알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이 취해야 할 최선의 선택지는 오직 하나뿐.
그저 무릎을 꿇을 따름이었다.
“전하.”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가 자세한 보고를 읊기도 전에, 황녀는 나를 치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잠시.
“성도에 남은 오염을 처리하셨군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인류 사이에 숨은 칠죄성의 흔적은 찾아내지 못했다… 이 사실에 틀림이 없나요?”
나는 무어라 변명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여인을 상대로 핑계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오직 결과.
그것만이 내 주군이 추구하는 전부였으니까.
이윽고 내 고개가 더욱 깊이 숙여졌다.
“송구합니다. 다만…….”
“다만?”
“혹여 제게 더 많은 비전이 전수되었다면.”
흐응, 하고.
내 조심스러운 반론에 황녀는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굳게 닫힌 눈꺼풀 사이로 날카로운 시선이 저절로 스며드는 듯했다.
그럼에도 나는 들끓는 마음을 멈추지 못해 외쳤다.
“그랬다면, 좀 더 성공적인……!”
“걷죠.”
단 한 마디.
더 이상의 반론 따위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어조였다. 내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여인은 손가락을 퉁겼고.
이윽고 기적이 일어났다.
흙과 바위가 멋대로 소용돌이치며 고풍스러운 징검다리를 만들었다. 절벽의 아래로, 아래로.
제국의 마지막 군영이 위치한 장소까지.
못해도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였다. 이만한 위치를 각도까지 조절해서, 아무런 마력도 깃들지 않은 자연물을 조정해서 길을 만든다고?
얼떨떨한 마음에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여인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묻기 전까지는.
“혹시, 항명인가요?
“그럴 리가요.”
나는 즉시 그리 대답하며 여인의 뒤를 따랐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나와 여인이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판으로 자리한 바윗덩어리가 경쾌한 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쯤.
“이안 경.”
여인은 마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한다는 양, 그리 가벼운 호명을 건넸다.
“분명히 말씀드릴게요. ‘만들어진 신(deus ex machina)’ 계획은, 광인의 헛소리에 불과해요.”
“하지만, 저는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내 반문 따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막힘없는 주장이었다.
황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제 언니의 멍청한 계획에 수백이나 되는 젊은 기사들이 희생되었죠. 사실,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성공 확률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망상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성공작이 하나 나타났죠.”
더는 입술을 달싹일 까닭이 없었다.
이미 황녀는 결론을 내렸고, 나는 이를 청취할 뿐이다. 이것이 군신관계의 올바른 구도였다.
“이상하지 않나요? 왜 하필, 모두가 포기하려고 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존재가 나타났는지… 심지어 아직도 왜 그 사내 하나만이 살아남았는지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고.”
“혹시, 절 의심하고 계신다면…….”
“아니요.”
내 조심스러운 반문에, 여인은 내 말을 단숨에 끊었다.
어느덧 여인의 목소리에서는 옅은 열기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중요한 건, 그 남자도 제 자신이 살아남은 까닭을 모르면서 멋대로 힘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알겠나요? 당신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계획의 유일한 생존자에요. 더 이상 비전을 받아들이다가는, 필연적으로 ‘실패작’이 될 수밖에 없다고요.”
전에 없이 달구어진 어조.
언제나 냉정하던 주군의 색다른 모습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여인은 이내 볼이라도 부풀릴 듯이 내게 핀잔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더 비전을 받아들이고 싶나요?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강하잖아요. 이제 더는 그렇게 아플 필요가……!”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숨김 없는 진심이었다.
한숨조차 말라붙어 잔향만이 느껴지는 내 목소리에서는, 지친 기색이 물씬 느껴졌다.
“더는, 아무것도… 그러니 허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사실 내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황녀가 지적한 대로, 비전을 수십 개나 몸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육체가 버티더라도 심상이 버틸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 끝은?
육체의 붕괴.
하이 익스퍼트에 이르면 육체는 더는 물리적인 세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개념의 세계에도 속하기 때문에, 심상이 무너진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황녀도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그러니 내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많은 비전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때로는 죽음보다 두려운 미래가 있는 법이었다.
나는 이미 소중한 사람을 잃을 대로 잃었다. 사랑하던 연인들만 하더라도, 벌써 몇 명을 보내야 했던가.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러한 내 마음을 읽는 걸까.
황녀는 한동안 침묵하며 내 낯빛을 살피다가, 이윽고 살짝 입술을 삐쭉거렸다. 그러면서 살짝 손을 내밀기까지.
“이끌어 주세요.”
“……?”
내 의문에 찬 시선이 황녀를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마스터 중 하나였다.
눈이 멀었더라도 일상 생활에서 불편을 호소한 적은 없었다. 여태껏 누구에도 길잡이를 맡긴 적은 없었을 텐데.
그럼에도 주군의 뜻은 요지부동이었다.
“어서. 눈을 잃은 이후, 저는 마력으로 주위를 파악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수준에 불과해요. 지금처럼 공중에 떠 있다면 당연히 기사의 에스코트가 필요하겠죠?”
“……정 그러시다면.”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주군의 명령이 떨어진 참이었다.
이래저래 따질 이유가 없었기에 나는 얌전히 여인의 손을 이끌었다. 가늘고 차가운 손가락이 살갗에 닿으니 가슴에 괜한 고동이 일었다.
황녀는 그새 기분이 꽤 나빠진 기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