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629)화 (629/649)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 많았나 보네요.”

   

   “네, 꽤나…….”

   

   “연인도?”

   

   “네, 그야 당연히…….”

   

   삐쭉.

   

   황녀는 또 다시 입술을 모으며 불만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반응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지?

   

   다행스럽게도 그 이상 현상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하여튼, 이안 경을 위해 고용한 사람이 있어요.”

   

   “저를 위해서라니요?”

   

   “그 몸뚱어리, 정상이 아니죠? 신성력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잖아요.”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였다.

   

   내 몸이 육체와 심상의 불균형으로 붕괴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신성력 외에 무엇이 내 망가진 육체를 소생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대답은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연금술.”

   

   실로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내가 한동안 입술을 떼지 못하자, 시엔은 그새 멋대로 설명을 이어갔다.

   

   “영생학파의 선임 연구원 출신이에요. 의뢰비를 많이 받기는 하지만, 그 실력은 확실하다더군요.”

   

   “하지만, 영생학파는…….”

   

   “마지막 생존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내 입이 다시 한 번 꾹 닫혔다.

   

   ‘영생학파’.

   

   연금술계 최대의 학파였으나, ‘암흑교단’의 계락으로 인해 명맥이 끊긴 곳이었다. 대다수의 구성원이 사망했다고 들었는데 생존자가 있었다니.

   

   하기야 드문 일은 아니었다.

   

   ‘마지막 생존자’.

   

   나 또한 페르쿠스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이러한 비극이 대륙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새롭지도 않았다.

   

   다시 한 번 내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을 무렵이었다.

   

   “또 다시 쓸쓸한 낯을 하는군요.”

   

   안쓰러운 목소리.

   

   나는 황녀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려다가, 이내 하나의 의문을 떠올렸다.

   

   “그,  전하? 방금 전까지는, 주위를 피상적인 수준으로만 인식하신다고…….”

   

   그렇다. 주위를 피상적으로 판단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당연히 안면 근육의 미묘한 차이를 눈치 챌 리는 없었다. 그 정도로 정교한 시야라면 내가 손을 이끌지 않아도 괜찮았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그 해답을 듣는 일은 없었다.

   

   “어서 인사를 나누는 편이 좋겠네요.”

   

   짝, 하고 손뼉을 마주치며 마지막 층계를 내려오는 황녀.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리기로 했다. 주군이 그렇다는데, 또 심복이 이의를 제기하기도 우스웠다.

   

   다만 내가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을 때.

   

   핑, 하고 금빛의 동전이 하늘을 빙글빙글 회전한다.

   

   햇빛을 이리저리 반사하던 금화는 이윽고 새하얀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 그 주인의 낯빛이 망막 위에 맺히자마자, 나는 침묵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낯이 익은 여인이었으므로.

   

   “처음 뵙겠습니다. 황녀 전하, 그리고 명망 높은 ‘까마귀’ 경… 부디 비루한 출신이라 성이 없음을 이해해 주시기를.”

   

   적갈빛 머리카락, 연녹빛 눈동자.

   

   내 입이 개폐운동을 반복하다 닫힌다. 무어라 말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러는 와중에도 여인은 당당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 이름은, ‘엠마’.”

   

   새하얀 망토를 흩날리며, 그녀는 허리를 숙였다. 해와 달의 문양이 새겨진 그 망토야말로 영생학파의 선임 연구원 출신이라는 증거.

   

   대륙의 극소수만이 닿을 수 있는 진리의 상징이었다.

   

   “필요하신 일이 있다면, 거리낌 없이 불러 주시기를. 물론… 의뢰비가 충분하다는 전제 하에.”

   

   싱긋, 미소를 짓는 그 얼굴은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나는 비로소 깨닫고 말았다.

   

   오래 전의 인연이 다시금 나를 찾아왔다고.

   

   연금술사와의 재회였다.

   

   

   **

   

   

   흐억, 컥.

   

   나는 눈을 뜨자마자 눈이 넘어갈 듯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내 쿨럭, 쿨럭 하고 기침을 토해내자 핏물이 쏟아져 내린다.

   

   한참이나 가슴을 두드리던 내 눈이 멍하니 주위를 훑었다.

   

   이곳은 어디지?

   

   나는 분명……

   

   회의실에 있었던가. 그러다가 엎어졌던 것만 같은데.

   

   꿈과 현실의 기억이 뒤섞이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수분을 찾아 다급히 더듬더듬 머리맡을 훑었다.

   

   비로 그때.

   

   내 손에 걸리는 낯익은 감각이 있었다.

   

   종이를 집는 촉감.

   

   일순 몸뚱어리가 얼어붙는다. 나는 그 서늘한 느낌에서, 어떠한 불길한 예감을 받았는지도 몰랐다.

   

   멍하니 편지 봉투를 들고.

   

   당장이라도 물을 들이키고 싶다는 욕망조차 잊은 채, 나는 봉인된 봉투를 찢고 그 안에 위치한 새하얀 편지지를 펼쳤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낱말은 오직 하나.

   

   ‘유서’

   

   그것은 편지의 최상단에 위치한, 틀림없는 편지의 제목이었다.

   유서

   

   To. 사랑하는, 나의 이안 페르쿠스에게

   

    하염없이 기다리던 봄을 앞두었지만, 아무래도 봄은 나를 기다리지 않으려나 봐. 우리가 처음 만난 날로부터 몇 년이나 지났을까.

   

    벌써 3년 남짓? 조금만 지나면, 그 숫자를 가득 채우고 떠날 수 있었을 텐데.

   

    설마 네가 내 마지막 남은 미련이 될 줄은 몰랐어.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적당히 친한 사이에 불과했잖아. 다만 흐르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자그마한 계기 하나가 우리를 바꾸어 놓았을 뿐이지.

   

    네 고백을 듣고 조금 놀랐어.

   

    미래를 안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동시에 저주이기도 하지. 나도 이제는 알겠어. 네 몸이 불안정한 까닭이, 비단 네 비전 탓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얼마나 힘들었을까.

   

    요즘에는 눈만 감으면 낯선 풍경이 보여. 사실 얼마 전부터 그랬지만, 최근에는 꿈을 꾸지 않아도 때때로 정신을 잃을 것만 같기도 해. 그러다 보면 그림자가 내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거든.

   

    이만 포기하라고.

   

    너도 이만큼 힘들고 괴로웠겠지? 그러니까, 나는 아무렇지 않아.

   

    차라리 널 위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 어차피 죽어 마땅했던 하찮은 계집아이의 삶이, 만신창이가 된 너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제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너와 연인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너와 입술을 맞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 외에도 모든 기적 같은 만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오늘 밤이 마지막이구나.

   

    지금은 혼절해 있지만, 다시 눈을 뜬 너는 이 글을 읽고 있겠지. 부디 내가 없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지는 마.

   

    너는 할 만큼 했어.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나를 구하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이제는 견딜 수 없어 잠이 들었구나. 몇 번이나 피를 토하고 기절하면서도

   

     그럼에도 더는 수가 없다고 모두가 말하고 있잖아.

   

    단지 유일한  미련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네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는 점일까.

   

    그래서 편지로나마 인사를 남겨.

   

    안녕, 이안.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어. 오늘 밤은 너를 위해 기도할게.

   

    네 뜻을 이룰 수 있기를.

   

    혹시 내키면 내 무덤 위에 봄꽃을 올려줘. 너와 만났던 날을 기릴 수 있게.

   

    From. 널 사랑하는 평민 계집애가

   

    제국력 565년, 눈꽃의 달 스물여덟 번째 날에

   

    ——

   

    나는 한동안 침묵 속에서 글을 읽어 내렸다.

   

    당장이라도 편지를 떨굴 듯 떨리던 손은 이내 잠잠해졌다. 내 동공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줄글을 훑어 내리며 활자 하나하나를 뇌리에 박아대고 있었다.

   

    ‘유서’

   

    그 두 글자가 함의하고 있는 바는 너무나 명확했다. 아니, 편지에서도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죽는다고.

   

    도대체 누가?

   

    의미 없는 자문이었다. 그 오밀조밀한 필체를 본 순간부터, 나는 유독 야무지던 평민 소녀 하나를 떠올리고 말았으니까.

   

    사고의 여백 사이로 편지의 말미에 적힌 날짜가 침투한다.

   

    “제국력 565년…….”

   

    무언가 다르다.

   

    여태껏 도착했던 편지들은 7년 뒤의 미래로부터 도달해 있었다. 그래, 그새 해가 바뀌었으니 이제는 6년 뒤의 미래라 불러야 할까.

   

    그 연도는 제국력 571년.

   

    명백히 눈앞의 편지와는 쓰인 시점에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눈꽃의 달이라고 하면, 당장 달력이 가리키고 있는 날짜가 아닌가.

   

    나는 헐레벌떡 달력을 손에 들었다. 낯선 공간임에도 머리맡의 탁자 위에 놓여 있어 달력을 찾기 어렵지는 않았다.

   

    ‘스물여덟 번째 날’이라.

   

    남은 시간을 계산할 때까지 필요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대략 3주 남짓의 시간만이 남아있을 뿐이었으니까.

   

    즉, 이 편지는 3주 뒤의 미래에서 온 셈이었다.

   

    이를 깨달은 내 몸이 멋대로 일어나려 들었다. 당장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길지도 않은 편지였다. 그 안에 담긴 정보는 지극히 적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그러한 의문과 함께 몸을 들썩였을 찰나였다.

   

    “일어나셨습니까.”

   

    차분한 음색에, 나는 움찔 몸을 떨며 의문에 가득 찬 시선을 돌렸다.

   

    소리의 진원지는 노인이었다.

   

    새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은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살아왔는지 말해 주는 듯했다. 더불어 절제된 몸가짐과, 노구에 걸친 허름한 사제복은 노인의 평소 성품을 은근히 드러냈다.

   

    성직자.

   

    이대로 초상화를 그려 사전에 실어도 좋을 만큼 전형적인 사제였다. 다만 신경에 거슬리는 점이 하나 있다면, 비로 그 인기척.

   

    눈치 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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