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와서, 수염을 쓰다듬으며 내게 말을 걸기 직전까지도.
내가 상대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노사제는 조용한 걸음을 옮겼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완전한 무음.
덧붙여 허허로운 기도가 인상적이었다. 오랜 수련을 걸친 무투가라도 되는 걸까.
내 시선이 슬슬 경계의 빛을 띠기 시작하자, 노사제는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 경계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저는 당신의 치료를 전담하고 있으니까요.”
“도대체 누구시길래…….”
“모르시겠습니까?”
내 의문에 돌아온 건 반문이었다.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아무리 봐도 초면인 듯한데, 나를 알지 못하냐니.
그만큼 유명한 인물인가?
하지만 아무리 대륙에서 명망 있는 인사라 하더라도 자세한 용모파기가 돌아다니는 경우는 드물었다. 최소한 각국의 지도자쯤 되지 않는 이상, 대중이 그 낯을 보고 익숙하다고 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우리 둘이 어디선가 마주친 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도무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침묵을 지키자, 노인의 입꼬리가 슬쩍 호선을 그린다.
“먼 발치에서나마 뵙지 않았습니까. 하기야, 너무 잠깐이기는 했지요.”
바로 그때.
벼락같이 정수리를 관통하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성국의 성도 시엔델, 그곳에서 깎아지른 절벽만큼이나 드높은 권위를 자랑하던 산상 법정.
그곳의 정상에 뒷짐을 서고 있었던 노인이 하나 있지 않았던가.
“혹시……?”
“맞습니다.”
내가 막 떠오른 이름을 내뱉기도 전에, 노사제는 시원스러울 만큼 즉각적인 수긍을 표했다.
“제가 바로 아인델 총주교입니다, 이안 님. 그간 이안 님께서 보여 주신 영웅적인 활약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지요.”
아인델 총주교.
그 이름이야 오래 전부터 들어 온 바 있었다. 성녀와 대립하는 파벌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가, 벌써 작년이었던가.
하지만 나는 노인의 이름을 듣고 살짝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북부에서 벌였던 레오릭과의 일전, 그 끝에서 들었던 이름 또한 ‘아인델’이었으니까.
‘아인델 총주교를 조심하라.’
그것이 레오릭의 유언이었다. 이를 잊지 않고 있던 나로서는, 다분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대였다.
내 부정적인 반응에도 아인델은 딱히 섭섭해 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너무 경계하지 마시죠. 사제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동안 함께해야 할 동지이기도 하고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스터 가문의 금광에서 발견된 유물.”
불현듯 뇌리를 송곳처럼 찌르는 화제였다.
내 입에서 옅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엠마의 유서 탓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지만, 당면한 문제는 미래에서 온 유서뿐만이 아니었다.
셀린, 나의 소꿉친구.
알펜하우저 가문의 흉수로 지목된 인물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무력이 이전과 궤를 달리할 수준까지 성장했다는 증언은 사실인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알펜하우저의 황금 요새를 단신으로 박살 내지는 못했겠지.
아인델 총주교가 말한 ‘유물’ 또한 내 소꿉친구와 연이 깊었다. 다름 아닌, 하스터 가문의 영지가 풍비박산이 난 원인이 되는 물건이었으니까.
두개골이 지끈거리며 맥박 친다. 그 와중에도 아인델 총주교의 설명은 이어지고 있었다.
“제국 측에서 특별 감사원으로 이안 님을 지목했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는 그 의무를 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기절한 지 며칠이나 지났죠?”
대답 대신 던진 의문이었다.
당장 편지를 읽자마자 달력을 보았던 나였다. 당연히 며칠이 지났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내 질문의 의도는 다른 곳에 있었다.
미래에서 온 ‘나’의 존재.
엠마의 유서에는 휘갈겨 쓴 메모가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말해, 내가 기절한 사이 미래에서 온 ‘나’ 또한 활동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내 추측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이제 막 눈을 뜨셨으니, 대략 이틀 정도 기절해 계셨군요.”
내가 기억하고 있던 날짜와 정확히 일치하는 간극이었다.
아무래도 이틀 동안 내가 일어나서 멋대로 활동을 개시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듯했다. 그렇다면 사내의 도움을 더는 바랄 수 없다는 의미일까.
온갖 문제들이 사고의 댐을 무너트리며 범람했다.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난제들이었다.
책사를 찾아야만 했다.
성녀, 시엔, 그리고 내 친구 레토.
뇌리 속을 부유하는 인물 중 누구라도 좋았다. 나는 당장이라도 고민을 털어놓고,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으니까.
내가 다시금 몸을 일으키려 들자, 아인델 총주교는 예의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떠나시렵니까?”
“네, 시급한 용무가 떠올라서.”
그는 딱히 나를 만류하고자 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사제치고 태만한 태도였다. 만일 성녀였다면 벌써 난리가 났을 텐데.
내게는 오히려 이 편이 더 나았다. 믿지도 못할 사람에게 내 몸을 맡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바로 그때.
“그럼 몇 초만 더 말미를 주시지요. 반드시 전해야만 할 사실이 있어서.”
“……?”
느닷없이 나를 붙잡는 말에, 나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의문에 가득 찬 시선을 보내야 했다.
반드시 전해야만 할 사실이라니.
내 소꿉친구가 인류의 적으로 돌아섰고, 내 연인이 죽기 직전인데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나중에 말하자고 하려던 찰나.
“이안 페르쿠스 님.”
지나치게 진중한 낯빛으로, 노사제는 말했다.
“당신은 죽습니다.”
정면을 향하던 내 눈이 다시금 멀거니 돌아섰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혹시 살해 예고라도 되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노인의 안색이 지나치게 침중했다.
범죄자가 할 얼굴이 아니었다. 그래, 사제라면 몰라.
그래서 더더욱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한 달 이내로.”
“그게 무슨…….”
“이것이 제 사제로서의 소견입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토록 단호히 말할 수 있는 건지.
입술이 달싹이며 무어라 반박을 토하기도 전에, 노인의 주름진 손이 내 어깨에 턱 얹어졌다.
노사제의 눈은 푸른 불길처럼 타고 있었다. 한 치의 의심조차 허용하지 않는, 강한 확신을 지닌 자 특유의 안광이었다.
“부디, 마지막 남은 시간을 소중히 쓰십시오.”
이날, 나는 시한부가 되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토막 빼기 놀이’와 비슷한 상태입니다.”
아인델 총주교는 그렇게 운을 뗐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내 요망에 응하기 위해서였다.
어느덧 그의 앞에는 직사각형으로 다듬어진 나무 토막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들이 하나둘씩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탑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는 대륙에서 보편적인 놀이 중 하나였다.
저 토막을 순서대로 하나씩 빼다가 끝내 탑을 무너트리는 사람이 패배.
간단한 규칙이었지만, 그것이 내 목숨과 관련되니 괜히 간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자, 토막이 전부 들어차 있는 탑은 무척이나 안정적입니다. 토막 몇 개를 뺀다고 해서 이 안정성이 크게 위협 받지는 않겠죠.”
물론, 예외는 존재하지만.
그 덧붙임의 의미를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탑의 하부에 위치한 나무 토막을 빼면 단숨에 균형이 어그러질 테니까.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아인델 총주교도 이에 대해 딱히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침착한 손짓으로 탑을 이루고 있는 나무 토막을 하나둘씩 빼낼 따름이었다.
“모든 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입니다. 특히 ‘비전’과 같은 기술은 한 인간이 걸어 온 삶의 정수나 마찬가지, 당연히 이를 익히기 위해서는 심상의 일부를 떼어주어야만 합니다.”
“그 ‘일부’가 나무 토막이란 말씀입니까?”
“너무 싸구려 비유인가요? 무얼, 마침 이곳에 ‘토막 빼기 놀이’가 있어서 그에 빗대었을 뿐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력한 마법 재료를 마구잡이로 집어넣은 연금술 솥이라든가…….”
“본론을 이어가 주시겠습니까.”
내 요구에 노사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도 사제였고, 당연히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들의 심정 또한 곁에서 몇 번이고 지켜봐 왔겠지.
노인은 한 마디의 불평조차 없이 담백한 사실만을 전달했다.
“이안 님, 당신의 심상은 이미 너무 많은 비전을 담고 있어요. 말하자면 나무 토막이 대부분 빠져 듬성듬성 형상만 유지하고 있는 탑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누구도 탑이 어떻게 무너질지는 알지 못하죠. 탑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와르르.
하나둘씩 토막을 빼앗기던 팁은 이윽고 시원스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나는 그 흐트러진 나무 토막을 보며,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각을 느껴야 했다.
싸늘하다고 해야 할지, 아리다고 해야 할지.
아인델 총주교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하이 익스퍼트, 혹은 대마법사에 이른 존재는 심상에 강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마스터의 육체가 곧 심상과 같아지는 것과 유사한 이치죠. 따라서 심상이 무너지면, 당신의 육체도 무너지게 됩니다. 피를 토하면서요.”
“하이 익스퍼트에 이른 대가란 말입니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많은 비전을 배운 탓이죠. 그러지 않았다면 애초에 하이 익스퍼트에 도달할 일도 없었겠지만.”
그야 그렇겠지.
나처럼 단기간에 실력이 성장한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미래에서 온 ‘나’로부터 힘을 너무 많이 빌린 덕이리라.
지금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일 뿐이고.
내가 침음을 삼키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아인델 총주교는 덧붙여 설명했다.
“그러니 아무리 고쳐도 육체가 다시 붕괴할 수밖에요.”
“끊임없이 치료하다 보면, 연명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너무 늦었어요.”
그러면서 아인델 총주교는 주름진 손으로 다시금 나무 토막을 쌓아 올렸다.
처음과는 달리 어설프게, 빈 자리를 만들어 가면서.
그 끝은 뻔했다.
와르르, 하고 또 다시 붕괴.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탑의 붕괴는 필연적입니다. 아무리 치료를 반복하더라도, 심상이 완전히 붕괴되어 육체가 죽음에 이르면 누구도 손을 쓸 수 없어요.”
“그 시한이 대략…….”
“한 달 정도. 지금 당신의 육체를 보자면 그렇습니다.”
내 죽음을 말하는 노사제의 태도는 담담하기만 했다.
그야말로 한 줌의 가망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