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숨과 함께 두 손으로 낯가죽을 덮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면, 당연히 거짓말이겠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죽은 뒤의 사태가 두려웠다.
도대체 누가 암흑교단을 막을 수 있지?
미래를 알고 있는 나조차도 암흑교단을 막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나’라는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결코 암흑교단을 막을 수 없었다.
그 결과가 내가 꿈에서 보아 왔던 풍경들이 아닌가.
피와 시체가 엉겨 붙은 대지, 온갖 괴물들이 인육을 뜯어먹고 법률과 윤리를 잃어버린 세상.
불현듯 피 흘리는 여인들의 초상이 뇌리를 벼락처럼 달구고 지나갔다.
내 소중한 이들도 그렇게 죽겠지? 나는 도저히 그러한 미래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낯가죽을 쓸어내리는 손아귀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얼굴에 손톱 자국이라도 남기겠다는 듯이.
최후의 희망을 버리지 못한 내 입술이 멋대로 달싹였다.
“그래도 방법을 찾다 보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치료해도 육체가 무너져 내린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더욱이, 이안 님을 이전에 치료해 주셨던 분은 성 루시아께서 아니십니까?”
그렇다. 아인델 총주교 이전, 걸레짝이 된 몸을 손수 치료해 준 인물은 바로 성녀였다.
천신 앞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던 여인이었다.
당연히 나를 치료하는 데 진심을 다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다시 무너져 내렸다.
지나치게 명료한 결론이 뇌리를 파고든다.
“정 의심 된다면, 성 루시아께 기별을 넣어도…….”
“됐습니다.”
난 고민조차 없이 손바닥을 내밀어 아인델의 제안을 물리쳤다.
노사제는 흐음, 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다물었다. 내게 발언권을 넘기겠다는 듯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되죠?”
“우선 제국 황실에는 기별을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각국의 수뇌부도 곧 알게 되겠죠. 당신의 존재는 그만큼 특별하니까요.”
지당한 주장이었다. 특별한 존재는 죽음마저 특별해야 했으니까.
대륙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기 위해서라도 각국의 수뇌부는 나의 죽음을 알 필요가 있었다. 아인델 총주교의 반응을 보면, 아직 성녀에게는 알리지 않은 모양이지만.
내 머리가 복잡해졌다.
만일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무슨 혼란이 벌어질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특히 내 연인들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도대체.
토막 난 의문은 그 즈음에서 끝을 맺었다. 고민해 봐야 해답이 나오지는 않을 테니까.
단지 나는 아인델 총주교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유달리 의심스러운 인물 중 하나였다. 일단 레오릭의 유언이 그를 조심하라는 내용일 정도였으니, 마땅히 그에게는 경계심을 품는 것이 옳으리라.
하지만 그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성국 정치판에서 수십 년을 구른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상식적으로 금세 탄로 날 거짓말을 할 리는 없었다.
당장 제국 황실 측에서도 사실을 확인하려 들 테고.
고뇌, 갈등, 번민.
단숨에 뇌가 과열되며 옅은 두통이 느껴졌다. 도무지, 도주미 고민해도 출구를 찾을 수 없어서.
나는 일단 몸을 일으켰다.
어디든 가야 하리라.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이기도 하겠지.
언제나 그랬듯이.
이처럼 희미한 기대를 안고 등을 돌렸을 무렵이었다.
“……알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또 다시 나를 붙잡는 노사제의 물음에, 내 눈이 흘깃 등 뒤를 향했다.
노인은 깊이 가라앉은 푸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작 그 망막에 비치는 상은 없었지만.
그 기묘한 시선이 마치 내 속내를 파고드는 듯해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죽음은, 혼자서 감당 가능한 사건이 아닙니다. 당연히 주변 인물들까지 휘말리게 되죠. 마땅히 그들과 고민을 나누고 남은 시간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론.
파고들 만한 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최소한 노인은 나보다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 왔으리라.
이성적으로는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어째서인지 입술만 달싹이기를 반복하다가.
이내 매정히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제가 알아서 하죠.”
큭큭, 하고.
노사제가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린 건 그때였다. 그러지 않아도 마음이 복잡하던 터라, 욱하는 마음에 다시금 내가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차가운 불꽃을 보았다. 정념이라고 해야 할지, 생명력이라 해야 할지 모를 그것은 어느새 노인의 동공에 깃들어 있었다.
“이안 페르쿠스, 당신 말입니다…….”
그리고 슬쩍 휘는 노사제의 입꼬리.
어느덧 그의 낯빛에는 온화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방금 전에 보았던 모습이 거짓말이라도 된다는 양.
“오만하군요.”
오만하다고?
대답할 가치도 없는 소리였다. 나는 이윽고 고개를 돌려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든 발길이 닿는 곳으로.
당장은, 그래.
셀린을 찾아볼 차례였다.
*
그리하여, 내 앞에는 팔다리를 하나씩 잃은 애꾸눈 하나가 자리하게 되었다.
임시로 마련된 집무실에서 서류를 보던 여인의 입에 허, 하고 황당하다는 미소가 맺힌다. 은빛 머리카락과 은빛 동공을 가진 알펜하우저의 영애는 불신을 담아 재차 나를 추궁했다.
“뭐라고요?”
“미끼가 되어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에네 선배.”
내 막힘 없는 대답에 한동안 시에네 선배는 말이 없었다.
들고 있던 깃펜을 펜대에 세우고, 팔짱을 낀 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를 한참.
이내 그녀는 담백한 한 마디를 입에 담았다.
“미친 새끼.”
실로 오랜만에 듣는 비난이었다.
탁, 탁.
지팡이가 땅을 딛는 소리가 주기적으로 울려 퍼졌다. 나는 외다리 여인의 보폭에 맞추어 다소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곳은 드넓은 건물 안.
알펜하우저의 황금 요새가 불타 버린 이후, 시에네 선배는 집무실을 아카데미 구석에 위치한 옛 신전으로 옮겨 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흡혈귀의 희생자들을 모아 두었던 장소였다.
시에네 선배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보안.
오래 전부터 신전은 가장 중요한 시설 중 하나였다. 종교적으로 신성한 건물이기도 하거니와, 병자들의 치료를 전담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침입자를 물리치는 기능 또한 우수할 수밖에.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옛 신전 터에는 여전히 수많은 결계의 흔적들이 남아 있으며, 알펜하우저 가문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이곳의 방범 결계를 부활시켰다.
단 이틀만에 이루어진 기적이었다. 그야말로 알펜하우저의 황금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에네 선배는 여전히 신경질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그 ‘황금 요새’로도 막지 못했던 상대를 급조한 결계 따위로 막아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시에네 선배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수십에 이르는 중환자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은 몇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이것이 시에네 선배가 집무실을 옛 신전 터로 옮긴 두 번째 사유였다.
“아직도 정신을 차린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까?”
“보면 모르겠나요?”
내 순수한 의문에 돌아온 것은 짜증스러운 반문이었다.
예전에도 까탈스러웠지만, 팔과 다리를 잃은 뒤로 시에네 선배는 더욱 예민한 여인이 되어 버렸다. 낯가죽의 절반을 태운 화상이 끝없이 짓무르고 있다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나도 마음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인데.
그렇다고 멋대로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살짝 불쾌해지려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침착하게 시에네 선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녀는 지팡이에 기댄 채 제 주위를 눈짓했다. 어딜 보나 누워서 신음을 흘리는 기사들뿐.
눈을 뜨고 움직이는 이들은 환자를 간호하는 사제들밖에 없었다.
“기묘할 정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요. 상처도 끊임없이 덧나고, 때때로 화상 부위에서 불이 다시 지펴지기까지 해서… 솔직히 말해 곤란해요. 그리고 다들 이상한 환각에 시달리고 있어서…….”
“환각 말입니까?”
“제 몸이 녹아내린다든가, 전신이 불타고 있다든가. 잠꼬대 같은 소리라 명확히 분간할 수는 없지만요.”
흐음, 하고 나는 침음을 흘리며 좀 더 환자들의 신음에 귀를 기울였다.
“제, 제발… 안 돼, 내 몸이 녹아내리고 있어… 구해줘…….”
“아아아아악! 뜨거워, 뜨거워!”
이따금씩 발작처럼 비명을 내지르는 이들이 꽤 많았다. 과연 그들은 꿈 속에서 무슨 장면을 보고 있을까.
혹시 셀린을 보고 있을까.
정녕 셀린이 이토록 잔인한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내가 고질적인 두통으로 신음하기 직전이었다.
“영혼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도 있더군요.”
“영혼이라니요?”
난데없는 추측에 내 말끝이 자연스레 올라갔다. 시에네 선배는 다시금 지팡이에 의지해 걸음을 내딛으면서, 조곤조곤 설명을 이어갔다.
“영혼과 육체는 강한 연결을 지니고 있거든요. 그래서 양혼을 뺏긴 뒤에도, 육체가 멀리 떨어진 영혼에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나 봐요.”
“그럼 저들이 보고 있는 환각은……?”
“영혼이 보고 있는 풍경이겠죠. 불타고, 녹아내리고 있는… 도대체 어디에 갇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불길한 이야기였다.
영혼은 육체 이상으로 가치 있는 소재였다. 당장 한 사람의 영혼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그런데 이만한 실력자들의 영혼을, 수십이나?
심상을 단련한 기사와 마법사들의 영혼은 일반 양민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제물로서의 가치가 높았다. 고아 수백 명과 비교하더라도 저 수십 명의 영혼 쪽이 더 값비싼 대가를 받을 수 있겠지.
도대체 어디에 쓰기 위해서.
내가 고민에 빠진 와중에도, 시에네 선배는 특유의 싸가지 없는 어조를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아직은 가설에 불과해요. 하지만 만일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알고 있겠죠, 손도끼 경? 인류를 위해서라도 당신의 소꿉친구를 참하는 수밖에… 앗!”
찰나의 실수.
눈 하나를 잃어버린 여인의 시야는 다소 좁아져 있었을 터였다. 팔 하나와 다리 하나를 잃었다는 점도 균형 감각에 균열을 일으켰겠지.
지팡이가 삐끗 미끄러지며 여인의 몸이 자연스레 앞으로 기울었다. 이대로 두면 바닥 위를 구르는 미래는 필연적이리라.
물론, 내가 옆에 있는 이상 그럴 걱정은 없었지만.
내 손이 단숨에 여인의 하나 남은 팔을 단단히 붙들었다. 이윽고 평형을 되찾은 여인의 놀란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물었다.
“부축해 드릴까요?”
그러자 탁, 하고.
시에네 선배의 가냘픈 팔이 내 손을 뿌리쳤다. 예상 외로 거친 반응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