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네 망가져 가는 육체 관리까지?”
쓸데없는 덧붙임이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내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필요 없어. 전하의 쓸데없는 걱정이야.”
“에이, 무슨 소리를. 그리고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야. 당연히 고용주의 명령을 우선해야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엠마의 고용주는 황녀였고, 따라서 내 의견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고려 사항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이를 모를 만큼 내가 어리숙하지는 않았으나.
슬쩍 내 옆에 붙어 마음을 떠보는 엠마의 태도에는 불퉁한 표정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핏 보기에도 알겠는데? 네 몸, 정상이 아니라는 정도는… 왜 그렇게 무리하는 거야? 이미 충분히 강해졌다고 들었는데.”
뒷짐을 지고 슬쩍 내게 상체를 기울이는 여인의 낯빛에 옅은 장난기가 감돌았다. 진심으로 묻는 건지, 혹은 고용주의 의뢰 사항을 충실히 이해하고 싶을 뿐인지.
나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더욱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엠마의 질문 공세가 멈출 리도 없었지만.
“얼마 전에는 비전을 몇 개 더 요구했다며? 너, 그러다가 죽을지도 몰라. 나름 진지하게 하는 조언인데…….”
“아무것도.”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였다.
그 음색은 너절한 비애로 젖어 있어, 나는 속마음을 들킨 어린아이처럼 불편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엠마 또한 그 짤막한 대답에 담긴 진심을 알아챘으리라.
곧장 입을 다물고, 내 낯빛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으니까.
맑은 연녹빛 눈동자 앞에서 거짓을 말할 용기는 차마 내지 못했다. 대신 나는 시선을 끝까지 피한 채로, 한숨 섞인 답변을 이어갔을 뿐.
“더는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침묵.
몇 초나 지났을까, 어색한 공백 사이로 ‘흐응’하는 여인의 음색이 침투했다.
이윽고 연녹빛 눈동자가 살짝 가늘어졌다고 생각했을 찰나.
“이안.”
훅, 하고 여인의 낯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 가녀린 손가락이 슬쩍 내 뺨을 쓰다듬고 지나간 듯한 느낌도 들었다.
엠마는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눈과 입이 모두 호선을 그리고 있어, 도리어 그 속을 읽기 힘든 미소를.
“너, 꽤 오만하구나.”
이후로 대화는 한동안 드물게 이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또 엠마는 엠마대로 콧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기분이 좋아 보였던 탓이었다.
굳이 나 같이 재미없는 인간과 대화를 나눌 까닭은 없었다. 그래봐야 기분이나 망칠 테지.
그렇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때였다.
“도, 도와 주세요!”
어디선가 도움을 바라는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사실 한참 전부터 그 기척을 눈치 채고 있었으나, 적의 함정일지도 몰라 신중히 접근하던 대상들이었다.
인원은 총 둘.
하나는 땅에 누워 희미한 숨만을 내쉴 뿐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그 시체나 다름없는 사내를 붙잡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두 사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혹처럼 커다란 종양이 자라나고 있었고, 그 외에도 전신에 울퉁불퉁 융기한 부분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끊임없이 흘러 나오는 거무죽죽한 진물.
그나마 땅에 주저앉은 사내는 사정이 좀 나았다.
누워서 힘겨운 호흡을 이어가는 사내의 몰골은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네댓 개의 종양이 얼굴을 가득 메워 눈코입을 분간하기도 힘들었으며, 육신 곳곳이 풍선처럼 부풀어 터지기 직전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
무엇보다 생기 없이 푸석푸석한 흰머리와 자글자글한 주름까지.
‘오염’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나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형이, 형이 죽어가고 있어요… 제발 도와 주세요. 제발!”
한 줌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 절박한 목소리.
예전이었다면 이쯤에서 경계를 풀었으리라. 하지만, 시대는 잔혹해진 지 오래였다.
“시엔델이 ‘오염’에 당한 건 벌써 한참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들이 살아있을 수 있죠?”
“포션이 있었으니까!”
비교적 멀쩡한 상태의 사내가 피를 토하듯 외쳤다.
“우리는 성도에서 머물며 포션을 팔던 형제야! 그런데 ‘그 사건’이 일어났고… 우리는 지옥의 한가운데에서 저장해 둔 물자로 어떻게든 목숨을 연명했지. 하지만 이대로는 물자가 다 닳을 테니 얼마 전에 성도를 나섰는데……!”
절규하는 동생의 눈동자에서 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검붉은 진물과 뒤섞여 탁한 색의 눈물이었다.
“무장한 병사들을 만나 모든 물건들을 빼앗긴 거야! 우리뿐만 아니라, 아직 살아남은 성도 주민들의 물자들은 전부 약탈하고 있었다고!”
흐음, 하고 나는 침음을 삼키며 고민에 빠졌다.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
사실 어지간한 함정쯤은 나 혼자서도 돌파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지금 내게는 호위해야 할 대상이 있는 상황.
만일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의외로 내 갈등을 끝내 줄 이는 따로 있었다.
탁, 하고 여인이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내딛는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 발소리의 주인은 ‘엠마’.
내 팔이 그 진로를 방해하기에는 충분한 인물이었다.
“엠마!”
“괜찮아, 이안.”
엠마의 목소리는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이처럼 끔찍한 광경을 앞두었음에도, 그 나긋한 태도에서는 여유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고작해야 병자 둘이잖아. 무슨 짓을 더하겠어? 저렇게 애타게 애원까지 하는데.”
“하지만, 엠마. 상대는 암흑교단이야.”
“또, 잘 봐. 저 사람 ‘오염’ 말기잖아.”
예상치 못한 주장에 내 시선은 자연스레 엠마가 눈짓하는 곳을 향했다.
그곳에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사내가 위치하고 있었다. 아마도 저 인물이 바로 ‘형’이겠지.
“알고 있지? ‘오염’ 말기는 대부분 손을 쓰기도 전에 죽어 버려서 표본이 얼마 없어. 채취한다면 도움이 될 거야.”
과연 그 말대로였다.
임무를 우선한다면, 이대로 엠마를 보내 주는 편이 맞았다. 다소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내가 옆에 있으니 큰 일은 나지 않으리라.
다만, 내 뇌리를 문득 스치는 장면이 하나 있어서.
나는 일순 망설이며 팔을 거두지 못했다. 예전처럼 또 다시 병실에 누운 엠마를 보게 될까 두려워서.
물론 머뭇거림은 길지 못했다.
엠마는 슬쩍 힘을 주어 내 팔을 밀쳤고, 나는 그대로 못 이기는 척 팔을 치워 버렸으니까.
동생은 이를 구원이라도 되는 듯이 바라보았다.
“오염이 너무 깊숙이 파고들었어요.”
“오, 오오……!”
엠마의 등에서 펄럭이는 백색의 망토는 그 말에 권위를 더해주었다. ‘영생학파’의 선임 연구원이라면 어디에서나 알아주던 귀중한 인재가 아니던가.
여인의 손이 능숙하게 종양의 진물을 빼고, 핏물을 체취하고, 이윽고 병자의 육신을 멀리서 훑으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그렇게 몇 분쯤 지났을까.
엠마는 제 품에서 주섬주섬 한 병의 약을 꺼냈다.
“이 약을 환자한테 먹이세요. 그러면 훨씬 나을 거에요.”
“아, 아아아! 가, 감사… 감사합니다! 부디 천신의 영광이 있으시기를!”
동생은 엠마를 찬앙햐며 약병을 받아들었다.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는 눈앞의 여인이 마치 성녀라도 된다는 양.
정작 ‘성녀’는 얼마 전에…….
그렇게 내가 우울한 회상에 잠시 정신을 빼앗긴 사이.
툭, 하고.
힘없이 팔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리 넋을 잃고 있더라도 내가 이만한 거리의 인기척을 놓칠 리는 없었다.
이것은, 그래.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들며 내는 음성이었다.
가까스로 이어지던 숨결이 잦아든다.
“어, 으어……?”
동생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언어 능력을 상실하기라도 한 것처럼, 제 손에 들린 약병과 한때 형이었던 시체를 번갈아 보았을 뿐.
엠마는 변함없이 상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환자 분은 이미 늦은 상태였어요. 어떤 처방을 하더라도 무의미한 연명 치료일 뿐, 환자 분의 고통만 길어졌을 테죠. 그래서 편하게 해드렸습니다. 고통 없이, 죽어서는 악인의 손에 농락 당하지 않도록… 그럼 이만.”
그것이 끝.
엠마는 망설임 없이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왔고, 그 와중에도 동생은 ‘어, 으어’ 같은 소리만 내뱉을 따름이었다. 나 또한 다소 얼떨떨한 눈빛으로 내 앞의 여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자.”
그 짤막한 말에는 별다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음색. 어떠한 감정의 파도도 없어 더욱 낯선 목소리였다.
누구라도 죽음을 목도하면 동요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수천 명의 임종을 지켜 본 사제조차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마땅한 결단을 내렸더라도, 제 선택에 의해 하나의 생명이 사그라진다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아무런 심정의 변화도 없어 보이다니.
엠마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얼떨결에 뒤로 따라붙은 뒤, 몇 걸음을 더 내딛은 후에야 내게 물었을 따름이었다.
“놀랐어?”
“조금… 그렇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만.”
그러자 여인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의외네? 너라면, 나한테 왜 구하지 않았냐고 한 마디는 할 줄 알았는데.”
“나는 딱히 이상주의자가 아니야. 구할 수 없는 상대를 구하라고 요구할 만큼 뻔뻔하지도 않고… 다만, 궁금하기는 하네.”
“무엇이?”
“예전의 너라면, 이러지 않았을 테니까.”
옛 친구의 눈꼬리에 떠오른 호선이 더욱 구슬퍼졌다. 하지만 그 처연한 낯빛도 잠시, 이내 엠마는 짐짓 유쾌함을 가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뢰 내용이 아니었으니까!”
또 다시 상상도 못했던 대답이었다.
내 몸이 우뚝, 하고 멎자 엠마도 나와 함께 걸음을 멈추었다. 나를 돌아보는 여인의 낯빛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나 왠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왜 그래?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몸이라고… 당연히 돈도 받지 않고 추가 업무를 할 리가 없잖아?”
나는 일순 말문이 막혀 버렸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은데, 딱히 떠오르는 반론이 없어서.
혹은 더는 이 주제를 두고 토론하기가 싫었는지도 몰랐다. 잔인할 만치 거친 시대의 흐름은 모든 것을 바꾸었고, 나 또한 달라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유쾌하지는 않았다.
내 옛 인연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아프도록 실감해야 한다는 건.
그래서 나는 농담처럼 물음을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
“내 목숨값은?”
“응?”
엠마가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이자, 나는 헛웃음을 담아 말했다.
“내가 죽을 위기에 처해도 구하지 않을지 모르니까. 미리 의뢰비를 들어 보려고. 유사시에 내 목숨을 살리려면, 얼마나 필요해?”
“아하하, 글쎄…….”
그제야 내 말뜻을 이해한 엠마가 말끝을 흐렸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적이기를 잠시.
이내 여인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