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639)화 (639/649)

   

   “……1만 골드 정도?”

   

   묘하게 구체적인 금액이었다. 또 거금이기도 했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싸지 않냐고, 내가 투덜거리려던 찰나.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저 멀리에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굳이 시야에 담지 않아도, 그 정체는 명백했다.

   

   방금 전 ‘형’을 잃은 ‘동생’이리라.

   

   광분한 동생의 눈동자는 실핏줄이 터져 나가 잔뜩 충혈돼 있었다. 거적데기 같은 옷차림을 한 사내의 손에는, 어느덧 주위에서 주운 돌멩이까지 들려 있었다.

   

   그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나는 자연스레 엠마의 앞을 막아서려 그랬다. 만일 엠마가 내 옷자락을 붙잡고, 고개를 말없이 내젓지만 않았어도 그리 했으리라.

   

   하지만 엠마는 이를 거부했다.

   

   왜, 라고 묻기도 전이었다.

   

   딱!

   

   멀리서 날아든 돌멩이가 엠마의 이마를 치며 떨어져 내렸다. 그래봐야 엠마의 육신도 마력으로 강화된 탓인지, 찰과상밖에 남지 않았지만.

   

   동생은 우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울부짖었다.

   

   “이, 이 악마! 당신들이 형의 생명을 앗아갔어! 나는, 나는 평생 당신들을 저주할 거야… 당신들을 지옥에 보내 달라고! 우리 형의 목숨을 빼앗아 간 대가로!”

   

   지나친 비난이었다. 하기야, 가족을 막 잃어 놓고 제정신을 유지할 리는 없겠지.

   

   나는 혹시 추가적인 위협이 가해질까 싶어 손을 허리춤으로 움직였다. 얌전히 꺼지라는 경고의 의미였다.

   

   내 뜻이 통했을까.

   

   얼마간 씩씩거리며 분노를 토해내던 사내는 홱 몸을 돌려 멀어지기 시작했다. 무의미한 피를 묻힐 필요가 없어졌으니, 잘된 일이었다.

   

   그제야 나는 등 뒤를 돌아보았다. 괜찮냐고, 안부라도 묻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때.

   

   “……이안, 잘 봐.”

   

   여태껏 들어본 목소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이 가라앉은 음색이었다. 짙은 우울과 연민, 조롱이 뒤섞인 음성에 나는 일순 호흡을 멈추고 말았다.

   

   “저 등을 보라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리를 죽일 듯이 비난했으면서, 어느새 홀가분해졌다는 듯 이완된 저 어깨를.”

   

   그것은 지나친 억측이 아닌가?

   

   아무리 전문가라도 해도, 그처럼 사소한 징후로 사람의 심리를 읽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주장하며 사내의 변호라도 할 셈이었다.

   

   엠마의 표정을 목도하지만 않았다면.

   

   싸늘한 조소(嘲笑).

   

   한 점의 의심조차 없는 경멸이었다. 다만 그 감정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그러지 않아도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병에 걸린 환자를 옮기며 이동한다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야. 내심은 차라리 죽어 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품고 있었겠지… 그때 우리가 나타난 거야. 저 자의 죄를 대신 짊어져 줄 구원자로서.”

   

   나는 새파랗게 타는 연녹빛의 눈동자를 뒤로 하고, 저 멀리 떠나가고 있는 동생의 등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분한 듯 씩씩대며, 팔로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그럼에도 어째서일까.

   

   그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이던 까닭은.

   

   여인은 계속해서 속삭였다.

   

   “이안, 이게 바로 밑바닥이야.”

   

   재차 확언하듯이.

   

   “이게 바로 현실이라고.”

   

   나는 일순 그녀가 성녀라 생각하고 말았다.

   

   모든 돌멩이와 가래침을 감내할 오욕의 성녀.

   

   우습게도 말이다.

   

   

   **

   

   

   커헉, 하고 핏물을 토하며 눈을 떴다.

   

   늘 숨을 헐떡이며 눈을 뜨곤 했으나, 오늘의 기상은 조금 색달랐다.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분 나쁠 만큼 각인시켜 준다고 해야 할까.

   

   나는 흐,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시답잖은 잡생각을 떠올리는 스스로가 한심해졌던 탓이었다. 내 손이 더듬거리며 머리맡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물, 물, 물.

   

   그러다가 탁, 하고 걸리는 감촉이 있어 나는 곧장 그 내용물을 들이켰다. 정작 그 내용물은 기대와 달리 쓰기만 했지만.

   

   당장 입에 든 액체를 뱉으려던 나를 제지하는 손길이 있었다.

   

   “그대로 삼키세요. 그나마 내부가 안정될 테니…….”

   

   아직 정신이 흐릿했던 나로서는 그 지시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물약을 전부 삼켜 낸 내 눈이 슬쩍 측면을 향했다. 그러자, 흐릿한 시야 사이로 비치는 인영(人影)이 하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는 소녀의 낯이 눈에 익었다.

   

   제국의 제5황녀, 시엔.

   

   그새 어찌나 마음고생을 했는지 안색이 파리해진 채였다.

   

   지금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더듬거리면서, 나는 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제가, 제가 얼마나 혼절해 있었습니까?”

   

   “8시간 정도.”

   

   대답은 황녀가 아닌 다른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곳에는, 멋들어진 정복을 갖춰 입은 미중년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그의 표정도 착잡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누가 그를 이토록 심란케 할 수 있단 말인가.

   

   제국 황실의 수호자이자, 대륙에 단 셋밖에 없는 마스터 ‘검공’이 바로 중년이었다. 그를 근심케 할 존재는 대륙을 통틀어도 몇 되지 않을 터였다.

   

   설마 그중에 하나가 내가 될 줄은 몰랐지만.

   

   나는 우선 시간 손실이 이전보다 많지 않다는 점에 위안을 느끼기로 했다.

   

   “그럼, 다시 시작하죠.”

   

   비틀비틀 상반신을 억지로 일으키며, 나는 찌뿌둥한 어깨를 돌렸다. 어긋난 뼛조각이 우두둑, 하고 들어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착각이리라.

   

   하이 익스퍼트에 이른 신체는, 아무리 단련을 멈추더라도 녹슬지 않는다. ‘심상’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다.

   

   오래 누워 있었다고 치명적인 근손실이 발생할 확률은 없었다.

   

   다시 말해, 상처만 완치된다면 언제든 수련에 복귀해도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검공와 황녀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몇 번 혼절하든 간에, 심상을 수련할 수만 있다면…….”

   

   “못한다.”

   

   한숨과 절망이 뒤섞인 한 마디.

   

   내 눈이 자연스레 그 진원지를 향한다. 검공은, 벽에 기댄 채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한 손으로 제 낯가죽을 덮고서.

   

   “심상을 끌어올리자마자 내부가 뒤틀리며 토혈을 했어. 그게 무슨 뜻인 줄 아냐? 네 심상이 상상 이상으로 뒤틀어졌단 뜻이야.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목소리에는 자책뿐만 아니라 옅은 원망마저 담겨 있었다.

   

   어째서 이 꼴이 되도록 말을 하지 않았냐는 듯이.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시선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침대 옆을 지키고 앉은 시엔의 눈동자에서는, 맑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무슨 계기가 있었던 거냐, 응? 이전까지 멀쩡했던 몸뚱어리가 갑자기 붕괴할 정도야! 심상에 무슨 짓을 하면 그렇게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냐고!”

   

   검공의 책망을 듣고 나서야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흡혈귀를 상대했을 때.

   

   나는 일순 미래의 ‘나’와 동화되는 감각을 경험했다. 당시의 내가 낼 수 있었던 전력은 온전한 내 힘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때였나.

   

   힘을 빌리고, 몸뚱어리를 미래의 ‘나’에게 넘기고, 종래에는 기억까지 파고들다가.

   

   심상이 일그러져 버렸다.

   

   그러한 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련은 불가능하단 겁니까?”

   

   “그래, 이 놈아… 당연하지!”

   

   검공은 답답하다는 듯 연신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심상이 구현한 뒤에야 무얼 발전시켜야 할지 짚어 줄 수 있단 말이다… 그런데 심상을 끌어올리자마자 혼절하는 마당에, 내가 어찌 네 수련을 도울 수 있겠냐? 설령 심상을 구체화시켜도 뒤죽박죽이라 뭘 골라내야 할지 알 수도 없을 텐데.”

   

   “그렇군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내게 남은 마지막 수까지 지워졌다. 또 다른 방법이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겠으나, 최소한 죽음이라는 가능성이 이전보다는 내게 임박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설마, 내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이토록 많은데?

   

   내가 말없이 감상에 잠긴 도중에도 검공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일단 네가 맡은 임무는 전부 취소다. 네게 칠죄성을 맡긴다는 말도 취소야… 아카데미는 내가 맡으마. 너는 일단 이곳에서 정양하면서, 며칠이라도 수명을 더 늘릴 궁리를 해라. 그 사이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볼 테니.”

   

   “그, 그래요…….”

   

   덜덜 떨리는 두 손이 덥석 내 손을 쥔 것은 그때였다.

   

   이 온기의 주인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시엔이었다.

   

   소녀는 애처로울 만큼 오들오들 떨며 눈물만 주륵주륵 흘리고 있었다. 도저히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이.

   

   텅 빈 눈동자가 나를 마주하지 못하고 땅으로 추락한다.

   

   “우리, 우리 조금만 쉬어요. 이안 경. 네? 그동안 너무 무리한 탓이에요. 조금 쉬다 보면, 아니… 계속 쉬다 보면 분명히 괜찮아질 거예요! 그러다 보면 황실에서도 무언가 방법을 발견할 테고…….”

   

   “어떻게 수를 찾겠단 말씀이십니까?”

   

   딱히 누군가를 염두에 두고 던진 말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둘 중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대답이었으니까. 다만, 지금 황녀는 실질적으로 심신상실 상태나 다름없었으므로 답변이 나올 곳은 뻔했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다. 당연히 성국의 미치광이나, 대수림의 할망구한테도 연락을 해야겠지.”

   

   “그럼 성 루시아나 엘시 선배도 알게 되겠네요.”

   

   “알다마다… 그뿐만이냐? 필요하다면 유르디나 가문부터 온 대륙의 유력 가문한테도 첩보를 뿌려야지! 너같이 전례 없는 환자를 치료하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더는 들을 가치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비명을 내지르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그러자 내 손을 잡은 황녀의 손에 힘이 더해졌다.

   

   “이, 이안 경…….”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천천히 고개를 내저으며.

   

   “가지, 가지 마세요… 제발요… 죽을 수도 있다잖아요.”

   

   “얌전히 앉아 있는다고 살아남을 방도가 나오지도 않아요.”

   

   “조금, 흐윽… 조금만이라도.”

   

   눈물 어린 애원이었다.

   

   나는 차마 눈물을 흘리는 시엔을 보기 힘들어 살짝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시엔의 애끓는 간청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조금만이라도, 같이 있어요… 제발…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때까지만…….”

   

   “황녀 전하.”

   

   내 나지막한 호명에도, 황녀는 애써 나와 시선을 마주치기를 거부했다. 내게 설득 당할 일말의 가능성을 모두 제거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소용 없는 짓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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