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641)화 (641/649)

   

   실로 오랜만이었다.

   

   셀린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 것은.

   

   팍!

   

   목검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최소한 레토가 처음으로 목도한 장면은 그랬다. 뒤뜰에 있어야 할 셀린이 어째서 마당에 있는지,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오르긴 했으나 곧 사라졌다.

   

   셀린이 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으니까.

   

   이를 악물고, 투지를 불태우는 황갈빛 눈동자는 ‘텅 빈 인간’이 지닐 만한 것이 아니었다. 목검의 손잡이를 쥔 두 손이 이처럼 간절해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교과서에 나올 법한 올려베기.

   

   수천, 수만 번을 연습한 자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체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셀린의 목검이 처음 보는 소년의 목검을 하늘 높이 띄워 올렸다.

   

   그렇다고 소년이 얌전히 당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콱, 하고.

   

   뒷걸음질을 치던 소년의 발길질이 셀린의 명치를 직격한다.

   

   “큭!”

   

   온 힘을 다한 일격에 활짝 열려 있던 소녀의 몸이 곧바로 닫히고, 그대로 비틀비틀 뒷걸음질.

   

   하지만 목검을 들고 있는 쪽은 셀린이었다. 누가 봐도 승세는 기운 지 오래였다.

   

   소년이 땅을 박차고 달려들기 전까지는.

   

   팍!

   

   셀린의 검이 직격하자,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몸이 살짝 기울었다. 하지만 자세를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달려든 덕에 사정권을 꽤 파고든 상황.

   

   이만한 거리에서 검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될 턱이 없었다.

   

   결국 셀린의 일격을 버텨 낸 소년은 덮치듯이 셀린과 뒤엉켰고, 이후에는 그야말로 ‘개싸움’이 이어졌다.

   

   그러기를 얼마쯤.

   

   “……그만!”

   

   등 뒤로 팔이 돌아간 채, 셀린은 숨을 몰아쉬며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멈칫하는 소년의 손.

   

   “하악, 하악… 그, 그만.”

   

   뒤이은 셀린의 목소리에, 소년은 서서히 셀린의 팔을 붙들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몇 걸음 정도 뒤로.

   

   레토는 그때까지도 멍하니 두 사람이 싸우는 꼴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어느덧 주위로 몰려든 구경꾼들과 함께.

   

   그제야 소년의 눈이 아인스턴 가문의 식솔들을 향했다.

   

   검은 머리카락, 황금빛 눈동자.

   

   땀에 젖고 생채기가 난 몰골이었다. 모처럼 차려 입은 예복이 엉망진창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의 미소에는 묘한 힘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일행이 늦어져 혼자 소식을 전하러 온다는 게, 어쩌다 보니…….”

   

   “무슨 일인가?”

   

   엄숙한 목소리였다.

   

   셀린과 소년의 다툼을 지켜보고 있던 인물 중에는 아인스턴 남작 또한 있었다. 그는 저택의 주인으로서, 낯선 소년에게 사정을 듣고자 했다.

   

   그러자 소년은 어색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 별일은 아닙니다. 단순한 대련이었어요.”

   

   “먼저 내게 인사를 하러 오지 않고?”

   

   “죄송합니다.”

   

   소년은 두 번째 사죄의 말을 담으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레토는 헛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뇌가 근육으로 되어 있나?

   

   손님이 찾아오면 우선 가문의 주인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이 예의였다. 가문의 식솔과 대련을 하는 정도야, 인사를 끝마친 다음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아인스턴 남작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딱히 불쾌하지도 않다는 기색.

   

   아직 사춘기도 오지 않을 꼬마들이었다. 어른의 윤리를 무작정 들이대기도 너무하다 생각했는지, 아인스턴 남작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다음부터는 주의하게. 검을 수련하는 또래를 만나기가 쉽지 않을 테니, 이해는 하네만.”

   

   “감사합니다, 남작님.”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

   

   아인스턴 저택의 가솔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대로 돌아가 소년에게 일행이 늦어지는 사정을 청취하는 과정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소년이 소녀에게 손을 뻗지만 않았다면.

   

   “자.”

   

   멈칫, 하고 뒤돌아 서려던 아인스턴 남작의 시선이 되돌아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던 셀린의 눈동자가 의문을 담아 소년을 향했다.

   

   하아, 하아.

   

   아직도 오르내리는 가슴팍이 대련의 치열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소년은,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도 아인스턴 가문의 사람이잖아. 그래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니야?”

   

   그 순간.

   

   레토의 뇌리에 벼락처럼 어떠한 장면들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언제나 뒤뜰에서 수련을 하던 셀린, 그렇다고 저택의 떠들법석한 분위기를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둔감하지는 않을 테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셀린은 쭈뼛거리며 앞마당까지 찾아왔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색한 느낌을 지우지는 못하고.

   

   그때 낯선 소년을 마주친 것이다.

   

   소년은, 터무니없이 오지랖이 넓은 인물이었다. 화들짝 놀라 검을 휘두르는 척을 하던 소녀를 향해 이렇게 말했겠지.

   

   아무런 악의도 없이.

   

   “나랑 대련해 볼래?”

   

   그때까지도 소년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더욱이 소년의 의도를 짐작해 낸 사람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 또한 레토의 착각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맞아.”

   

   레토는 실로 오랜만에 식솔 외의 타인에게 말을 건넸다.

   

   셀린을 향하던 금빛 눈동자가 그를 향한다. 레토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갈 따름이었다.

   

   “우리 가족이야… 이름은 셀린 하스터.”

   

   그제야 소년은 시원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셀린은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소년의 손은 방향을 바꾸어 레토를 향한다.

   

   “그럼 네 이름은?”

   

   “레토 아인스턴.”

   

   반사적인 대답.

   

   고민조차 하지 않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얼마만인지. 레토는 단 몇 초 동안 수도 없는 내적 갈등을 빚다가, 이내 망설이듯 묻고 말았다.

   

   “……그러는 넌?”

   

   “이안 페르쿠스.”

   

   소년, 이안 페르쿠스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마를 비롯해 온갖 곳이 빨갛게 일어나 있었다. 생채기, 상처, 멍. 야만의 속성을 지닌 육체가 어찌 골방 샌님의 호감을 살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어째서.

   

   “앞으로 잘 부탁해, 레토.”

   

   레토는 직감하는 수밖에 없었다.

   

   돌이킬 수 없이, 일평생 동안 저 사내와 엮여야만 하리라고.

   

   그래, 그날이었다.

   

   셀린 하스터는 아인스턴 가문의 가족이 되었고, 레토 아인스턴의 인생은 영원히 달라져 버렸다.

   

   일대사건이었다.

   

   *

   

   쾅쾅!

   

   사내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꿈은 아무리 길어도 짧다.

   

   레토는 눈을 뜨자마자 옅은 두통을 느꼈다. 벌써 일출을 지나 태양은 중천, 오랜만에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 버렸나.

   

   딱히 불만은 없었다. 덕분에 그리운 기억을 떠올렸으니까.

   

   이안 페르쿠스와의 첫 만남.

   

   미청년의 입에 그믐달이 걸렸다.

   

   “머저리가…….”

   

   이제 와서 할 말은 없었다. 그날, 모든 책임을 알면서도 소년에게 말을 건 쪽은 그가 아니었던가.

   

   친구는 곁을 지키는 존재다.

   

   따라서 레토 또한 외로울 때 친구의 옆을 지켜야만 했다. 단 한 번도 그 사실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의 눈이 슬쩍 방 안의 유일한 책상 위를 향했다. 그곳에는, ‘시간’에 대한 이론을 정리해 둔 책이 수십 권이나 쌓여 있었다.

   

   좀 더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직도 친우의 불안정한 상태를 해명하기가 힘들었다. 직감을 따르자면, 아무래도 미래의 영향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으리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명확한 근거 자료가 없었다. 레토가 최근 ‘고대 마법’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 까닭 중 하나였다.

   

   ‘고대 마법’.

   

   딱히 논리도 없고, 명료한 인과관계도 존재하지 않는 술식이었다. 그럼에도 경험적으로 ‘가능’하다고 판명된 마법들이 자리 잡은 분류.

   

   당연히 그 시절에는 ‘윤리’조차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술식들이 ‘고대 마법’에 버젓이 남아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었다. 지식의 보고라는 아카데미가 아니었다면, 열람조차 못할 금서들이 바로 ‘고대 마법’을 다루지 않았던가.

   

   이제야 감이 좀 잡힐 듯하던 무렵이었다.

   

   쾅쾅쾅!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레토의 고막을 강타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시를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각오는 오래 가지 못했다.

   

   쾅쾅쾅쾅쾅!

   

   “무슨 일입니까!”

   

   그러지 않아도 예민한 레토였다.

   

   몇 분 동안이나 발작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감내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이 있었다면, 짜증스러운 대답에도 불구하고 소음이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쾅쾅쾅쾅쾅!

   

   “아니, 무슨…….”

   

   레토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마력을 움직였다. 혹시나 이안에게 폐가 될까 싶어 기숙사에 보안 마법을 설치한 지는 꽤 오래되었으니까.

   

   하지만 그 끝에 보인 광경이 너무나 의외라서.

   

   레토는 인상을 찌푸리며 문을 열어야 했다. 그 앞에는, 당장이라도 낙엽처럼 쓸려 내려갈 듯한 시엔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제국의 제5황녀를 대하는 태도치고 무척이나 건방진 어조였다.

   

   그럼에도 황녀는 별달리 레토를 탓하는 말이 없었다. 애초에 마법사 중에는 이러한 인물들 천지였고, 더욱이 그녀에게는 그만한 심적 여유가 남아있지도 못했다.

   

   소녀의 입술이 달싹거린다.

   

   “이, 이, 이안 경이…….”

   

   “제 알 바 아닙니다.”

   

   쾅!

   

   레토는 그렇게 문을 닫고, 돌아섰다.

   

   뻔한 이야기였다. 이안을 두고 치정 싸움을 벌이다가, 끝내는 가장 친한 동성친구인 레토를 찾아온다.

   

   그따위 상담을 해줄 시간은 없었다. 애초에, 이안이 누구를 명백히 고르지도 않았는데 친구가 옆에서 간섭하기도 웃기는 꼴이었고.

   

   이대로 방구석에 처박혀 책이나 읽으리라.

   

   그렇게 결심했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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