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642)화 (642/649)

   

   “……죽어요.”

   

   사내의 발걸음이 우뚝 멎는다.

   

   레토의 미간이 좁아졌다가, 펴지다가, 이내 다시 좁아지고.

   

   그가 다시 뒤를 돌아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컥 문을 열 때까지는 단 몇 초.

   

   “뭐라고요?”

   

   “이, 이안 경이… 죽는대요.”

   

   훌쩍, 훌쩍.

   

   호수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콧물을 삼키며 황녀는 말했다.

   

   “이안 경이 죽는다고요!”

   

   레토는 생각했다.

   

   이런 씨발.

   

   역시나, 이안의 친구가 된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

   

   

   지하.

   

   그야말로 ‘땅 밑’이었다. 어떤 위치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공간전이 마법진을 몇 번이고 넘어 온 뒤에야 찾아올 수 있는 장소가 눈앞에 있었다.

   

   어두운 동공을 밝히는 붉은 조명이 불길한 빛을 내뿜었다. 내가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자, 시에네 선배는 헛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손도끼 바보바보 경, 우리는 이곳에 아무런 손도 대지 않았어요.”

   

   나는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곧장 덧붙여지는 부연설명.

   

   “이 붉은 빛은 단지 그 ‘하스터 가문의 유물’이 지닌 힘의 일부에 불과해요. 존재만으로 일대의 지형을 오염시키는 거죠.”

   

   내 고개가 얌전히 끄덕여졌다.

   

   사실, 이 유물을 볼 생각은 없었다. 단지 걸음을 옮기다 시에네 선배를 마주치고 어쩌다 의도를 착각당해 이곳까지 끌려왔을 뿐.

   

   오늘은 각국의 대표자들이 모여 유물의 실체를 확인하는 날이라나 뭐라나.

   

   솔직히 궁금하기는 했다.

   

   과연 얼마나 대단한 유물이길래, 내 소꿉친구의 가문을 망치고 대륙의 운명마저 좌우한단 말인가.

   

   그렇게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들어갔을 때였다.

   

   [키익, 킥… 킥킥킥…….]

   

   금속과 금속이 긁히는 듯한 불쾌한 소음.

   

   그것이 뇌리를 때리고, 중앙에 둥둥 뜬 핏빛의 수정 안에서 옅은 안개가 살짝 떨리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이를 신경조차 쓰지 않는 이들까지도.

   

   아인델 총주교는 팔짱을 낀 채 수정을 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남부 열왕국은?”

   

   시에네 선배의 어조가 간결해졌다. 최소한의 가식이나 예의조차 차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만큼 예민해진 탓이겠지.

   

   본래 삼국의 대표들이 모여야 할 장소에, 일국의 대표만이 기다리고 있다. 이에 경계심을 품지 않을 인간이라면 국가의 대표로 뽑힐 리도 없었다.

   

   더불어 그 경계심을 이해하지 못할 인간도.

   

   “하하하,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 수정을 좀 보다 보시면 아실 듯하군요.”

   

   그러자 나와 시에네 선배의 시선이 수정을 향했다.

   

   정작 아인델 총주교와 거리를 좁히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이를 문제 삼고 싶은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이 수정을 지켜보다 보면… 이상한 속삭임이 들린다고 할까요.”

   

   “아하, 그런데 성국의 대표께서는 안전하신 모양이군요.”

   

   “저도 슬슬 어질어질해지던 참이었습니다. 원, 워낙 끔찍한 원혼이 달라붙은 듯해서요…….”

   

   아인델 총주교는 그러면서 서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바깥으로.

   

   끝내는 나와 몸과 몸이 교차하려던 찰나.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아인델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맺혀 있었다.

   

   “악마는 언제나 달콤한 말로 당신을 속이거든요.”

   

   무슨 소리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 전에 아인델 총주교는 떠나갔고, 시에네 선배도 1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창백한 얼굴을 했기 때문이었다.

   

   “돌아갑시다.”

   

   정작 수정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 사람은, 오직 하나.

   

   나뿐이었다.

   

   *

   

   나는 시에네 선배와 나란히 걸었다.

   

   지하에서 ‘하스터의 유물’을 마주한 직후, 시에네 선배는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반응이었다.

   

   도대체 무슨 속삭임을 들은 거지?

   

   이에 대해 물을까, 말까 하다가.

   

   우선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시에네 선배는 그만큼이나 불안정해 보였으므로.

   

   내 추측은 곧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시에네 선배는 숙소가 아닌 옛 신전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으니까. 마음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안해지면, 시에네 선배는 늘 혼수 상태의 루나 선배를 보러 갔다.

   

   하지만 의식을 잃은 루나 선배가 상담에 응해 줄 리는 만무.

   

   시에네 선배는, 끝내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토해냈다.

   

   “무, 무언가 잘못됐어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팔짱을 낀 채로, 시에네 선배와 함께 루나 선배를 내려다 보았을 뿐.

   

   파리한 입술에는 여전히 혈색이 돌지 않는다.

   

   “저 ‘유물’은 위험해요. 당장이라도 폐기해야만……!”

   

   “어째서요?”

   

   내 물음에 시에네 선배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어째서입니까.”

   

   재차 던진 물음에 시에네 선배는 입술만을 달싹였다. 그러기를 얼마쯤.

   

   “그, 그, 그게… 미래를……!”

   

   바로 그때였다.

   

   아- 우- 어-!

   

   울음 소리.

   

   대규모 늑대 떼가 한꺼번에 울부짖듯이, 옛 신전에 누운 병자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지 않아도 바짝 겁을 먹고 있던 시에네 선배가 내 품에 안겨 벌벌 떨기 시작했다.

   

   습격인가?

   

   내 눈이 침착하게 주위를 훑었다. 하지만 병자들은 누운 채로 소리를 토해낼 뿐, 일어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환자들이 일제히 입을 벌린다.

   

   [나- 으-]

   

   허술한 언어였지만, 나는 알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나- 나- 으- 의-]

   

   더듬거리기를 끝내고.

   

   [나의- 것을-]

   

   불꽃의 노예들을 선언한다.

   

   [찾으러- 가겠다- 이틀 뒤-]

   

   이곳에 쳐들어 오겠다고.

   

   [나의- 정당한 몫- 누구든 오라-]

   

   셀린의 선전포고였다.

   

   검공이 있고,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도.

   

   터무니없는 자살 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손아귀에 스며드는 식은땀을 막을 길이 없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셀린을 만날 시간이었다.

   “정신이 나간 모양이군.”

   

   셀린의 예고를 듣고 검공이 내뱉은 감상이었다.

   

   그렇게 답하는 검공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당혹이나 두려움조차 엿보이지 않았다. 대륙 최고의 검객이자, 단 셋밖에 없는 마스터 중 일좌(一座)를 차지하고 있는 강자다운 자신감이었다.

   

   나는 그 시큰둥한 반응에 잠시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검공이 옳았다. 셀린이 계약을 통해 모종의 힘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 실력에 마스터에 이를 턱은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아카데미는 진작에 쑥대밭이 되었으리라.

   

   아니, 당장 얼마 전에 있었던 알펜하우저의 ‘황금 요새’ 습격 사건을 보더라도 그랬다. 시에네 선배는 그때 건물 아래에서 병장기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마스터에게는 불필요한 행위였다.

   

   검공이나 대마녀, 성자였다면 외부에서 건물 자체를 소멸시켰을 테니까.

   

   그만한 괴물이 검과 주먹을 맞댈 만한 까닭은 오직 하나, 순전히 흥미 본위에 따른 ‘놀이’ 정도밖에 없었다.

   

   따라서 검공의 감상은 틀리지 않았다. 셀린은 마기(魔氣)가 뇌까지 치달아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분명, 그럴 가능성이 더 클 텐데도.

   

   어째서 희미한 불안을 지우기가 힘든 걸까.

   

   결국 내 입술이 달싹이며 소심한 반론을 토해냈다.

   

   “만일을 대비해도 나쁠 건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겠지… 애초에 상대는 암흑교단이 아니더냐. 네 소꿉친구가 단독 행동을 하고 있다기에는 애매한 점도 많고.”

   

   그러면서 검공은 흐음,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마침 무언가를 떠올렸다는 표정이었다. 이윽고 낮은 목소리가 미중년의 입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까닭을 알겠나?”

   

   왜 내 의견을 굳이 묻는 걸까.

   

   검공이 깨달은 바가 있다면 이를 공유하면 그만이었다.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검공의 표정이 꽤 진지해 보였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얼마간 고민하던 내 입이 서서히 열렸다.

   

   “정보의 출처가… 애매하군요.”

   

   “무슨 정보?”

   

   “셀린의 습격 말입니다.”

   

   내 의문에 검공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어디 한 번 말해 보라는 양, 팔짱을 낀 채 푸른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을 뿐.

   

   나는 좀 더 신중한 대답을 입에 담기로 했다.

   

   “알펜하우저의 ‘황금 요새’는 아카데미의 누구나 알고 있던 장소였습니다. 그러니 단독으로 습격을 하더라도 딱히 이상하지는 않죠. 셀린도 아카데미 재학생이었던 이상 그 존재를 알고 있었을 테니… 다만, 아이리스 전하께서 습격 당한 정황은 다릅니다.”

   

   그러자 쓰윽, 하고 슬그머니 올라가는 검공의 입꼬리.

   

   우선은 합격이라는 뜻이었다. 그가 계속해서 침묵을 지키자, 나는 계속해서 추론을 이어갔다.

   

   “유력한 황위 계승자의 행보는 극비로 취급됩니다. 저 또한 아이리스 황녀 전하가 아카데미로 오고 계시단 사실을 몰랐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셀린은 그 경로와 시점을 정확히 맞혔습니다.”

   

   “그 말대로다!”

   

   검공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는 고개를 까닥이며 내 의견에 강한 동조를 표했다.

   

   “물론, 네 소꿉친구가 ‘계약’으로 특수한 힘을 얻었을 수도 있겠지. 타인의 전력이나 행보를 예언할 수 있다든가… 다만,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다.”

   

   “어째서 현격한 전력 차를 무시하고 도전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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