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643)화 (643/649)

   

   “그래, 바로 그거야!”

   

   타인의 전력과 행보를 유추하는 힘.

   

   무척이나 강력한 능력이었으나, 만일 이를 갖추고 있었다면 오늘의 도전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칠죄성 전원을 데려오더라도 승패를 장담할 수 있는 상대가 바로 ‘검공’이었으니까.

   

   전략적 무지나, 일순간의 광기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무리한 전술이었다. 이를 두고 합당한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진짜로 나를 맞상대할 전력을 감추고 있거나…….”

   

   “단순한 눈속임.”

   

   내 본능적인 읊조림에, 중년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우선은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해야겠지. 다만, 네게 묻고 싶은 부분이 하나 있구나.”

   

   내 눈이 멀뚱히 검공을 향했다. 그러자 검공은 한층 더 진지해진 낯빛으로, 내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너, 싸울 수 있더냐?”

   

   턱, 하고 일순 숨이 막히는 듯한 감각.

   

   검공이 일부러 일으킨 기세였다. 예전이었다면 진작 저항하고 빠져 나왔을 테지만, 지금 내 몸뚱어리는 정상이 아니었다.

   

   심상을 일으키면 내장이 꼬이고 피를 토하는 육체.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을 더듬었다. 차라리 본능에 가까운 행위였다.

   

   걸음마를 뗀 순간부터, 언제나 내 곁에 있었던 검.

   

   이를 쥐고 나서야, 내 마음은 풍랑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제 소꿉친구 아닙니까?”

   

   단언이었다.

   

   이를 악문 내 턱 관절 사이에서 모래 씹히는 소리가 났다. 근육에 지나치게 힘이 가해졌다는 의미였으나, 당장은 신경 쓸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애써 마력을 일으키지 않고 태연한 척을 해내고 있었다.

   

   “검공께서도 방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는 검공을 꾀어내는 함정일 수도 있다고.”

   

   “그래서?”

   

   “제가 우선 나서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검공을 대신해 나서고 싶었지만, 이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애초에 나는 검공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다. 심지어 심상조차 제대로 끌어내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었던가.

   

   그러한 마당에 검공을 대신한다고 말한다?

   

   결코 들어줄 턱이 없었다. 검공은 이미 내 몸 상태를 무척이나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제가 먼저 나서서, 적의 동태를 정찰해 보겠습니다. 그 이후에 검공께서 합류하셔도 되는 문제가 아닙니까.”

   

   “진정한 목적이 아카데미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황궁이라든가…….”

   

   “어르신께서 떠나시면 황궁도 한낱 건축물에 불과한 모양입니다. 그토록 걱정할 정도시라면.”

   

   또 다시 흐음, 하고 침음을 삼키는 소리.

   

   검공은 팔짱을 낀 채 톡, 톡, 하고 검지로 반대편 팔뚝을 두드렸다. 몇 초에 걸친 고민을 끝마친 그의 입이 비로소 열렸다.

   

   “하, 말도 안 되지!”

   

   제국의 황궁.

   

   그곳은 그야말로 개미지옥이었다. 알펜하우저는 고작해야 금화를 동원할 뿐이었지만, 제국 황실은 무엇이든 동원이 가능했다.

   

   오래 전에 잊힌 비술, 저주 받은 대가를 요구하는 금술, 더불어 그 한계를 가늠하기 힘든 ‘마스터’의 존재까지.

   

   수백 년에 걸쳐 방위에 몰두한 제국 황실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설령 마스터가 달려들더라도 함락을 위해서는 몇 날 며칠을 지새워야 하리라.

   

   이 ‘며칠’의 여유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제국의 마스터가 당도하거나, 최소한 이 소식을 들은 대륙 각지의 마스터가 당도하기 위해서는 채 하루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들이 오는 순간 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리라.

   

   따라서 제국 황실을 직접 습격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부디 자리를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르신을 습격할 줄 모르니까.”

   

   “흐음…….”

   

   검공은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무래도 고민에 빠진 듯했는데, 그 결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출되었다.

   

   서서히 정면을 향하는 검공의 시선.

   

   “솔직히 말해도 되느냐? 나는, 네 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강대한 적이 오더라도 내 칼이 베지 못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야말로 오만하다.

   

   만일 내 앞의 인물이 그 유명한 ‘검공’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를 단순한 허세로 치부하고 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보고 말았다.

   

   하늘과 차원을 가르던 그 검격을.

   

   그것은 분명 모든 검로의 종착점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검공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차마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믿어 보마.”

   

   어째서, 라고 되묻지는 않았다.

   

   물어봐야 부담만 가중되리라 생각했으니까.

   

   이를 모를 리가 없는 검공은 더욱 뜻 모를 소리를 덧붙였다.

   

   “슬슬 책임의 무게를 알 때가 되었으니까… 스스로 보고, 느끼거라. 네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평생 모르고 싶은 이야기라고.

   

   나는 그리 덧붙이고 싶었으나,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등을 돌리고 말았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이미 몇 번이나 선택을 하지 않았던가.

   

   길포드, 미트람, 레오릭, 유렌.

   

   내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살인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한 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고, 그날 밤.

   

   쾅쾅쾅!

   

   선반에서 싸구려 위스키를 꺼내고 있을 때였다. 마침 방문을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있기에, 나는 살짝 귀를 기울였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방문자가 많아진 내 방이었다. 대륙의 ‘떠오르는 샛별’인지 뭔지가 된 이후로, 나에 대한 관심은 급증했고 이는 곧 일그러진 접촉 시도로 이어졌다.

   

   끔찍하게도.

   

   오늘도 그처럼 일그러진 추종자가 방문했나, 했을 무렵이었다.

   

   “이, 이안 경!”

   

   울먹이는 목소리.

   

   이를 듣자마자 내 뇌리 위로 암청빛의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순박한 연회색 눈동자, 그리고 매번 눈물을 뚝뚝 흘리던 유약한 모습까지.

   

   제5황녀 시엔.

   

   얼마 전에도 눈물을 흩뿌리며 떠났던 여인이었다. 나는 사랑스러운 후배가 마음이 다칠까 싶어 문을 활짝 열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보았다.

   

   내 시선을 피하는 시엔 뒤에 선, 갈색 머리카락을 지닌 미소년을.

   

   그동안 애써 피하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이를 깨달은 나는 당장이라도 문을 닫고자 했다.

   

   콱, 하고.

   

   내 절친한 친구 레토가 문 손잡이를 쥐기 전까지는.

   

   “뒤질래?”

   

   나는 말없이 문 손잡이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려고 했다. 솔직히 말해서, 유약한 마법사 따위를 떨쳐내기 힘들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망설이는 까닭.

   

   이는 내가 레토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레토가 나를 파악하고 있는 만큼, 나 또한 레토의 성질머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아무런 대책 없이 이곳에 찾아왔을 가능성은 무(無)에 수렴했다.

   

   과연 레토라고 해야 할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기대를 그대로 충족해 주었다.

   

   손에서 팔랑이는 편지 한 장으로.

   

   “문 닫아 봐. 대신, 문 닫으면 이 편지는 바로 성도 시엔델로 전해지는 거야.”

   

   그 첫 줄에는 이러한 문장이 쓰여 있었다.

   

   ‘천신께서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딸이자, 살아계신 지상대행자이시며, 해와 달의 마땅한 주인이신 성 루시아께.’

   

   내 흔들리는 시선이 그 밑에 적힌 내용을 훑었다. 그곳에는, 구구절절한 사정이 쓰여 있었다.

   

   가령, 내가 곧 죽을 것 같다든지.

   

   나는 그 편지가 불러 올 여파를 떠올리고 몸을 파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미친 새끼… 야, 너 이 편지 보내기만 하면!”

   

   “그럼 문 열어.”

   

   문을 열라고?

   

   거부해도 됐다. 뻗대도 됐고, 당장 이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려도 될 문제였다.

   

   물론 그 모든 가능성을 레토가 고려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어떤 짓도 하지 못했다.

   

   그리 말하는 레토의 표정이 엄숙하면서도 너무 슬퍼 보여서.

   

   “……뒤지기 싫으면.”

   

   혹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하는 그 말에, 짙은 슬픔과 진심이 배어 있어서.

   

   나는 끝내 고개를 떨군 채 얌전히 문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셀린이 올 때까지, 단 이틀.

   구름이 달빛을 가린 밤이었다. 만물이 어둠에 잠기고, 모든 것이 비밀스러운 들숨과 날숨을 내쉴 무렵.

   

   등불 하나가 타닥, 거리며 타고 있었다. 흐릿하던 광원이 차츰 밝아져 오며 실내의 풍경을 비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야 응접용 탁자 위에 등불을 내려놓았다. 당연히 등유나 양초 따위로 작동하는 물건은 아니었고, 얼마 전에 새로 마련한 고성능의 마력등이었다.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귀물(貴物)이었다. 일평생을 시골 자작가의 차남으로 살아왔던 내가 아닌가. 지난 1년 사이 수많은 곡절을 거쳤다고 한들 내 본질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낮에는 밝고, 밤에는 어둡다.

   

   세상의 이치는 내 방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었다. 예전에 쓰던 싸구려 마력등만 쓰더라도 내 일상생활에는 조금도 지장이 없었다.

   

   하물며 하이 익스퍼트에 이른 뒤에야.

   

   초인적인 시력은 빛과 어둠의 경계를 허물어트린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밤에도 등불을 키는 까닭은 습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불어 흐릿한 조명만이 주는 아늑함도 있으니까.

   

   이처럼 등불에 딱히 구애 받지 않던 나였다. 그럼에도 내가 등불을 꺼낼 만한 사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손님이 찾아왔을 때.

   

   성녀가 내 방에서 지내던 며칠을 제외하면, 실로 오랜만에 꺼내 보는 등불이었다.

   

   물론 기껍지는 않았다.

   

   빛이란, 보고 싶지 않은 것마저 비추기 마련이니까.

   

   “이안.”

   

   가라앉은 낯빛에는 음울한 그늘이 져 있다.

   

   비단 등불이 밝기 때문만은 아니겠지.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난데없는 제안을 건넸다.

   

   “술이나 한 잔 할래?”

   

   “이안.”

   

   “황녀 전하께서는?”

   

   대답조차 기다리지 않고 내뱉어진 반문.

   

   두 번째의 호명마저 무위로 돌아가자, 레토는 한숨을 내쉬며 짜증스레 눈을 감아 버렸다. 불청객을 내게 데려온 황녀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내 눈치만 살피고 있는 실정이었다.

   

   울상을 지은 황녀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 이안 경…….”

   

   내 몸이 말없이 일으켜졌다. 그리고 능숙하게 찬장을 뒤적이고는, 다시 착석.

   

   싸구려 위스키와 잔 세 개가 탁자 위에 놓인다.

   

   레토는 불퉁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이내 혀를 차며 술잔 하나를 들었다.

   

   쪼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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