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초라해졌다고 해야 할까?
정갈한 멋을 풍기던 고픙스러운 가구들과 은으로 만든 십자가 등이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구석진 목공소에서나 보일 법한 싸구려 책상과 철 십자가뿐.
마침 인사치레가 필요했던 나로서는 자연스레 이를 화제로 올릴 수밖에 없었다.
“집무실이 조금 달라졌군요?”
“달라졌다니, 그대로입니다… 단지 쓸데없는 낭비를 조금 줄이기는 했지요.”
그러면서 흐흐, 하고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노사제.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어갔다.
“신의 종에게 좋은 원목으로 만든 가구며 은으로 만든 십자가 따위가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도리어 성도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사게 할 뿐이지… 그래서 전부 팔아치웠습니다.”
“어차피 신전의 재정은 넉넉하지 않습니까?”
“그 재물이 어찌 우리의 것이겠습니까? 신께 봉양해야 할 공물이거늘… 더욱이 신전을 찾아오는 환자 중에는 기부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야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신전이 돈이 많다는 사실 또한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대륙 어디를 가더라도 신전의 고급스러운 설비는 주목을 받기 십상이었다.
마침 의료를 관장하는 주요 시설 중 하나라 명분이 충분하기도 했고.
한데 이제 와서 집무실 따위를 신경 쓰는 사제가 남아있을 줄이야.
그러한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아인델 총주교는 제 신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고작해야 집무실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비싼 가구라고 해봐야 신전의 유지 비용에 비하자면 밀 한 톨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기준’입니다.”
“’기준’… 말씀이십니까?”
“네, ‘기준’.”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는 즉답.
아인델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성경은 우리에게 세속적 가치로부터 멀어지라 가르칩니다. 하지만 우리가 구제해야 할 어린양들이 속세에 있거늘, 어찌 그곳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기부금’이라는 명목으로 치료비를 받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신전의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야 누구나 아는 사정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떠올랐으나 이를 언어로 옮기지는 않았다.
성직자 특유의 버릇이었다. 일단 말문이 트이기만 하면, 제가 아는 지식을 전부 쏟아붓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이미 성녀를 비롯한 수많은 사제를 만나며 깨달은 바 있던 사실이었다.
“그러니 ‘기준’이 필요한 겁니다. 육신은 간사해서, 자꾸만 주님의 뜻을 잊고 멋대로 굴려 하죠. 율법은 그렇기에 존재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받들어 현실에 맞는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죠.”
“율법이 달라질 때도 있는 모양이군요.”
“진리는 돌과 같아서 변함이 없지만, 세상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늘 달라지니까요. 그럼에도 근본에 성경을 두지 않으면 우리는 방종하게 되겠죠. 제가 집무실을 치운 까닭도 이와 같습니다.”
노사제의 눈이 말없이 철로 된 십자가를 향했다. 순은으로 만든 십자가에 비하자면 볼품없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아인델의 눈동자에는 옅은 만족이 서려 있었다.
“신전의 운영비에 비하자면 사소한 소비에 불과하겠지만, 기부금의 사용처는 명확해야 하니까요. 단 몇 푼이라도 사제의 개인적인 사치에 의해 쓰여서는 안 됩니다.”
과연 성국 보수파의 원로다운 발언이었다.
깐깐하고, 엄격하다. 그리고 스스로 그 기준에 맞춰 생활하는 독실한 성직자.
하지만 왜?
만일 아인델이 신앙심 깊은 사제이기만 했다면, 레오릭은 결코 죽어가면서 그를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지 않았을 터였다.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가.
“하하, 너무 제 이야기만 떠들었군요. 개인적인 용무가 있다고 하셨던가요?”
레오릭의 질문을 받고 문득 생각이 닿는 지점이 있었다.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금지된 주술에 손을 대서, 아인델이 직접 제 손으로 자식의 목숨을 거두었다고 했던가.
나는 본능적으로 입을 열었다.
“금지된 주술에 대해서…….”
‘금지된 주술’.
그 열쇠고리가 나오자마자, 아인델 총주교의 움직임이 일순 멎었다. 그래봐야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었지만.
하이 익스퍼트의 눈썰미를 속일 수는 없었다. 나는 일부러 조심스러움을 가장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시다시피, 제가 최근 암흑교단을 상대하면서 온갖 주술을 상대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관련된 지식이 없다 보니 허를 찔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아인델 총주교께서 그에 대한 전문가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제 아들 이야기는 알고 계시는지요?”
의외로 담담한 반문이었다.
이대로 모르는 척을 한 번 해볼까, 하다가 나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어찌 보면 아인델 총주교의 해 묵은 상처를 들쑤시고 있는 셈이 아닌가.
상대가 의심스러운 존재라는 점을 제외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예의는 지켜야 했다. 나는 최저한의 속죄로 말없이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이윽고 노사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애달픈 한숨.
“……잔인하시군요.”
“죄송합니다. 실례라는 건 알고 있지만… 당장 내일만 하더라도 정체 모를 수법을 쓰는 적을 마주해야 할 판이라.”
자식 잃은 아비는 한참 동안이나 눈을 감은 채 침묵을 지켰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는 이내 천천히 눈을 뜨고, 시선을 창문 밖으로 돌렸다. 뒷짐을 진 노인의 손이 유독 주름져 보였다.
“금지된 주술의 종류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네? 그것도 종류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비술마다 뿌리가 다르고, 금지된 까닭도 다르니까요. 예를 들어, ‘키메라’는 생명을 경시하고 물건처럼 다룬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금지되었습니다. 다만, 이안 님께서 궁금해 하시는 부분은 주로 ‘암흑교단’ 쪽일 테니까…….”
아인델 총주교는 그 즈음에서 뜸을 들이다가, 뒷짐을 풀고 제 수염을 쓰다듬었다. 고민하듯이.
“아무래도 ‘계약’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들어본 적이 있는 낱말이었다.
최소한 한때는 내 여동생이었던 인물로부터도.
“’계약’은 금지된 주술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축에 드는 비술입니다. 주로 암흑교단 쪽에서 다루는 술법이죠.”
나는 침묵 속에서 과거를 되짚었다. 돌이켜 보면, ‘계약’을 입에 담는 암흑교단의 인물들은 꽤 많았다. 만일 ‘거래’라는 우회적인 표현까지 포함한다면 거의 전원이라 봐도 무방하겠지.
그 방식 자체는 무척이나 단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가를 바치고, 힘을 얻는다.
마인부터 칠죄성까지 빠짐없이 거치는 과정이었다. 심지어 신화에 따르면 델피렘조차도 최초의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야 오메로스로부터 권능을 얻었다고 하지 않는가.
암흑교단의 첫 번째 제물이란, ‘죄악’ 그 자체였던 셈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한계조차 짐작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일설에 따르면 죽은 자를 되살린다든가, 일대의 기후를 영구히 바꾸는 등의 이적도 행할 수 있다더군요.”
“어떻게요?”
내 반문에 노인의 시선이 다시금 나를 향했다. 나는 그 푸른 눈동자를 응시하면서, 천천히 말을 골라야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영혼은 육신이 죽은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떠나버리잖습니까. 심지어 기후는 대륙 단위의 환경적 요인에 의해…….”
“이 세상의 규칙을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침묵.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라, 나는 몇 초 동안 혼란에 빠져야 했다. 정작 도출된 답은 의외로 간단했지만.
“당연히 천신 아루스께서 만드시지 않으셨겠습니까? 세상을 지은 분이 그분이신데.”
“바로 그겁니다.”
딱, 하고 손가락을 퉁기면서.
노인은 어쩐지 살짝 상기된 낯빛으로 설명을 계속했다.
“이 세상의 규칙은 바로 아루스께서 지으셨죠. 그렇지만 ‘세상’은 단 하나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메로스가 다스리는 세상도 있지요.”
“그 ‘추방된 그림자의 세상’ 말입니까? 영원히 빛이 들지 않는다는…….”
“흔히 ‘마계’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그곳의 법칙은 이 세상과 상이하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아인델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직전까지 부쩍 늙어 보이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그래, 예를 들어… 이안 님의 소꿉친구가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짓을 해도 꺼지지 않는 불길… 필시 ‘마계’에서 온 힘이겠지요. 그렇지 않다면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끝내 내 입술 사이로 침음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노인이 굳이 셀린이 내 ‘소꿉친구’라는 사실을 각인시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곧장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들이 있기도 했던 탓이었다.
신음과 비명을 내지르던 환자들. 그들의 몸뚱어리에는 하나같이 화상이 남아 있었고, 아직도 화염이 남아 있기라도 한 양 불티마저 흩날리지 않았던가.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현상이었다.
심지어 마력을 동원하더라도, 신성력과 상쇄되어 화상의 정도가 차츰 나아져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셀린이 입힌 화상은 아무리 신성력을 퍼부어도 치유가 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것이 마계에서 온 힘이라면?
명쾌한 해설이었다. 그리고 이에 더해, 분명해지는 또 하나의 사실이 있었다.
셀린이 암흑교단과 ‘계약’했다는 것.
이전에도 유력한 가설이었고, 내심은 그러지 않았을까 짐작은 했었지만 이를 확정 짓는 문제는 궤가 달랐다. 침착을 유지하고 있던 내 손이 살짝 떨리기 시작한 것이 그 증거였다.
도대체 왜?
주어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의문이 멋대로 뇌리를 헤집는다.
“주의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아마도 무척이나 큰 대가를 바친 모양인데…….”
“어째서입니까?”
우묵한 푸른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럼에도 나는 차마 그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돌렸다.
충동적인 의문이 어물어물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 이 세상은 이미 주께서 승리하신 세상이 아닙니까? 한데 어째서 악신의 간섭을 보고만 계시는 건지… 전지전능한 분이라면 마땅히 이 또한 물리칠 수 있어야……!”
그랬다면, 셀린이 그렇게 되지도 않았을 텐데.
조심스레 시작됐던 의문이 점차 그 열기를 더해 가기 직전.
“이안 님.”
툭, 하고 안개가 개듯 제정신이 되돌아왔다.
어느덧 나는 주먹을 꽉 쥔 채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 반해,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나지막이 불렀을 뿐이었다.
다만 그 푸른 눈동자에 기묘한 불길을 담은 채로.
“위험한 의문을 품으시는군요.”
“아니, 그… 저…….”
무어라 변명이라도 주워섬겨야 할 듯한데, 마땅히 떠오르는 핑계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멍청한 짓이었다.
고위 성직자 앞에서 감히 천신을 의심하는 듯한 언행을 하다니.
명백한 실책이었다. 결국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잘못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결코, 천신을 의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최근 좀 피곤하다 보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러나 아인델 총주교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상상 이상으로 관용이 넘쳐서.
나는 일순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내야 했다. 정작 그 문제의 발화자는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왜 그러십니까? 설마, 제가 그까짓 발언을 가지고 책이라도 잡을 줄 아셨습니까?”
“아니, 그… 율법을 중시하시는 편이 아니셨습니까?”
“어찌 불쌍한 어린양이 품은 의문을 단죄하겠습니까. 심지어 저조차도 그러한 의문을 품은 적이 있지요.”
노인의 주름진 눈꺼풀이 닫히고, 그의 고개가 치켜들어졌다. 무척이나 오래된 기억을 뒤적이려는 듯이.
“아시겠지만, 제 아들은 오래 전에 금지된 주술을 손에 대고 말았습니다. 며느리와 손주들을 역병에 잃은 직후였죠.”
난데없는 과거사 고백이었다. 그 내용도 워낙 무거웠던 터라, 나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 고개를 떨구는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못난 아들이 아닙니까? 그 아이를 낳은 직후 아내는 천신의 품에 안기고 말았습니다. 아들이야말로 제 인생의 절반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였죠. 그런데, 며느리와 손주를 잃은 걸로 모자라 아들마저 잃어야 할 판이라니…….”
“원망하셨습니까?”
누구를, 이라고 딱히 덧붙이지는 않았다. 노인의 입가에 떠오른 씁쓸한 미소가 목적어를 대신하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네. 그랬습니다. 결국 저는 율법을 위해 아들을 제 손으로 처단해야 했으니까요.”
“혹시, 악신과 맺은 ’계약’을 해지하거나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단언이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내 숨도 저절로 가빠져 왔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가능성.
셀린을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답이, 가장 두려운 형태로 내던져진 셈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