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래에서 온 연애편지 (648)화 (648/649)

   

   “미친 듯이 금지된 주술을 연구했습니다. 혹시나 아들을 되돌릴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존재할까 싶어서… 하지만, ‘계약’을 맺기 전이라면 몰라 맺고 나면 도저히 수가 없습니다. 그 이후부터 계약을 맺은 당사자는 오메로스의 세상에 반쯤 속하게 되거든요.”

   

   “다시 말해, 이 세상의 법칙으로는 간섭이 불가능하다는……?”

   

   “바로 그렇습니다. 사실, 암흑교단이 지닌 불사신 같은 회복력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삶과 죽음’이라는 이 세상의 법칙으로부터 반쯤 비켜서 있는 셈이니까요.”

   

   강한 확신을 담은 말이었다. 마치 일말의 반론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양.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비가 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이 없었다면 정말 없다고 보아야 했다.

   

   입술이 바싹바싹 말라온다. 내가 마른침을 삼키는 사이, 아인델 총주교는 깊은 숨을 내쉬며 서서히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은 자석에 이끌리듯 또 다시 창밖을 향하고 있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날의 상처가 많이 아문 듯하군요. 다만, 궁금한 점이 하나…….”

   

   비관적 전망을 떠올리던 내 눈이 슬쩍 아인델 총주교를 향했다. 그토록 오래 전의 일인데,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수수께끼가 남아있단 말인가.

   

   창밖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려 노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차분한 목소리만이 내 고막을 두드렸을 따름이었다.

   

   “도대체 제 아들은 무엇을 대가로 바쳤을까요. 암흑교단의 ‘계약’은, 무척이나 잔인합니다. 무얼 내주든 간에 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요구하죠. 결코 내주어서는 안 되는 것, 너무나 소중해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가장 소중한 것’.

   

   셀린도 이를 대가로 바쳐야 했을 터였다. 결코 내주어서는 안 되고, 너무나 소중해서 벗어날 수조차 없던 무언가를.

   

   도대체 그게 무엇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어쩐지 마음이 답답해서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껴야 했다.

   

   “그걸 내놓아야 했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리고 또, 내놓고 나서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혹시…….”

   

   하늘에서 기울던 태양의 각도가 창틀을 지나 유리창에 닿은 건 그 무렵이었다.

   

   단숨에 쏟아져 내리는 햇빛에, 나는 그만 눈살을 찌푸리며 슬쩍 시야를 가리고 말았다. 그래서 환각을 보았는지도.

   

   노인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간 듯한 착각.

   

   “홀가분하지는 않았으려나요?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면서… 하하, 그럴 리는 없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아인델 총주교는 이제 하고 싶은 말이 끝났다는 듯, 처음과 같이 인자한 미소를 짓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설교를 마친 담임사제처럼 내게 물었다.

   

   “혹시 궁금한 점이 더 남았습니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아차, 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나는 아인델 총주교의 비사(秘史)를 듣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금지된 주술’을 통해 내 몸을 치료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내 입이 급히 의문을 내뱉었다.

   

   “그렇다면 그 ‘계약’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맺어지는 겁니까?”

   

   “허허, 글쎄요… 물론 강제로 매개를 호출하는 방식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법진 따위를 통해서 말이죠. 다만,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노인은 푸른 눈동자로 나를 찬찬히 뜯어보다가,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알기 싫어도, 그때가 되면 자연히 알 수밖에 없는… 물론, 저도 들은 소리지만요.”

   

   여전히 그 속내를 짐작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대답도, 눈빛도, 그 표정조차도.

   

   나는 곧 아인델 총주교를 일별하고 신전을 나섰다. 비록 제대로 된 단서는 얻지 못했지만, 더는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태양이 저물고 있었으니까.

   

   그래, 셀린이 오고 있었다.

   

   

   **

   

   

   셀린이 예고한 날을 하루 앞둔 밤.

   

   나는 레토와 대략적인 정보를 교환하고 방으로 돌아온 뒤였다. 내게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들이었지만, 레토는 아인델로부터 캐낸 정보를 꽤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구할 가치가 있다.’라나.

   

   어차피 마법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당장 내일의 전투를 준비해야 하기도 했고.

   

   그렇게 명상이나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을 때였다.

   

   “……하.”

   

   헛웃음이 저절로 목젖을 치고 올라왔다. 생각해 보니, 별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심상만 끌어 올려도 핏물을 토하는 주제에 무슨 전투를 준비한단 말인가.

   

   참전과 동시에 혼절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내일 그토록 기다리던 셀린이 오는데, 내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내면으로 침잠하던 정신이 풍랑을 만난 듯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불길과 같은 심마가 멋대로 온몸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퍼나르고 있었다.

   

   이러면 안 된다.

   

   어떻게든 전투가 가능한 수준까지는 몸을 안정시켜야만 했다. 내 몸뚱어리가 이 꼴이 된 원인은 ‘심상’이었으나, 명상을 통해 임시로나마 심상을 붙들어 봐야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

   

   어차피 심상을 불러 일으키지도 못하는 마당에, 명상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만 뇌리를 파먹기 시작했다.

   

   짜증, 초조, 분노. 그 외에도 많은 감정들이 종이를 태우는 촛불처럼 서서히 검은 면적을 늘려나갈 찰나.

   

   똑똑.

   

   나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이 야심한 밤에 나를 찾아올 만한 손님이 있던가?

   

   내 몸이 저절로 일으켜지며 걸음이 문을 향했다. 명상에 막 깬 터라 잠잠하던 기감이 곧 펼쳐지며 문 너머의 인물을 대략적으로 짐작케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문 손잡이 앞에서 멈칫하고 말았다.

   

   도대체 왜?

   

   하지만 내 의문은 길지 못했다.

   

   “이안, 나야.”

   

   그 상냥한 목소리를 들은 직후, 내 손이 멋대로 문 손잡이를 잡아당기고 있었으니까.

   

   후드를 푹 눌러쓴 여인의 상이 내 망막에 맺힌다.

   

   어슴푸레 밝아 온 달빛이 복도의 창을 타고 흘러내렸다. 빛을 등진 여인의 낯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유독 그 눈동자만이 눈에 띄었다.

   

   마치 야광처럼 빛나는 연녹빛 동공.

   

   “안녕.”

   

   여인은 늘 그렇듯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아주었다. 당장이라도 어딘가로 사라져 버릴 듯이.

   

   그날 밤, 엠마가 나를 찾아왔고.

   

   다음날 아침, 원인불명의 화마(火魔)가 동시다발적으로 아카데미 곳곳에서 치솟았다.

   

   셀린, 아니.

   

   '분노'라는 이름의 복수귀가 피워 올린 봉화(烽火)였다.

   동굴이 핏빛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전이 마법으로 이동한 탓에 정확한 좌표는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내가 지금 지하 깊숙한 곳을 거닐고 있으리라 짐작해 볼 뿐.

   

   그 까닭은 단순했다. 하이 익스퍼트의 발달한 기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

   

   탐지 범위를 아무리 넓혀도 생명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것도 없던 고대의 공동을 개조한 장소일지도 모르고.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문제였다. 어떻게 이러한 장소를 발견했는지, 또 어떤 목적으로 이곳을 개조해 두었는지도.

   

   분명한 사실은 하나였다. 이 은신처를 누가 만들었든 간에, 그 위치가 발각되기를 극도로 꺼리고 있다는 것.

   

   당장 시야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전이진만 수십 개가 넘었다. 대기를 순환시키는 용도로 보였는데, 그 탓에 ‘진짜’ 바람의 흐름을 탐지하기가 무척 난해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바람이란 곧 ‘출구’를 의미했으니까.

   

   그 정도로 공을 들여 숨겨야 하는 곳이었다. 나조차도 대륙에서 몇 안 되는 자격을 얻어 이 자리에 서지 않았던가.

   

   내 눈앞에는 악마의 씨앗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칠죄성의 유물’.

   

   하스터 가문의 금광에서 발견된 핏빛의 구체는 어느새 일대를 제 색으로 물들인 뒤였다. 혈관처럼 촘촘히 뻗어나간 마력 회로가 주기적으로 불길한 빛을 흩뿌렸다.

   

   마치 그 중심에 위치한 유물이 심장이라도 된다는 양.

   

   빈 말로도 유쾌한 광경은 아니었다. 핏빛의 구체 밑으로, 그 선연한 색을 닮은 물방울이 떨어져 내려서 더더욱.

   

   뚝, 뚝.

   

   자그마한 웅덩이를 이룬 액체, 눈이 아프도록 강렬한 선홍빛의 조명, 묘하게 끈적거리는 대기까지.

   

   불쾌하다 못해 정신이 살짝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물론, 이러한 감상을 품은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흥, 아무리 씨앗이라도 괴물의 종자는 다른 모양이군.”

   

   검공의 감상이었다.

   

   냉소적인 어조였지만, 그 음색에는 흐릿한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나는 말없이 검공을 비롯한 좌중의 낯빛을 훑었다.

   

   오늘은 셀린의 방문이 예고된 날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높은 확률로 이 ‘유물’을 노리고 있으리라. 따라서 ‘유물’을 관리하기로 한 각국의 대표들이 회담을 개최하기로 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어떻게든 이 ‘칠죄성의 씨앗’만큼은 빼앗기지 않아야 했으니까.

   

   그 덕인지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제국의 대표인 시에네 선배나, 성국의 대표인 아인델 총주교야 이미 구면이었으나 구릿빛 피부를 지닌 청년만은 초면이었다.

   

   나와 검공의 시선이 닿자마자 청년은 화들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명망 높은 제국의 수호자이자, 대륙 최고의 검객이신 검공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더불어 어둠을 몰아내는 샛별이시며, 성도 시엔델에서 그 빛나는 명예를 증명하신 이안 경 또한…….”

   

   “그만, 그만.”

   

   물론, 그 기나긴 인사는 무사히 끝을 맺지 못했다.

   

   검공은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인물이었다. 더욱이 우리에게 낭비할 시간은 남아있지 않았고, 따라서 남국의 청년은 이윽고 한껏 긴장한 낯빛으로 목을 움츠려야만 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그의 심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봐야, 검공은 조금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지만.

   

   투박한 어조의 타박만이 이어진다.

   

   “쓸데없는 말은 됐네. 초면인 것 같은데, 자기소개나 하지.”

   

   “무, 물론입니다. 검공 합하… 제 이름은 ‘호얀 쿠샨’입니다. 남부 열왕국의 ‘원탁’이 파견한 다섯 대표 중 한 명이기도 하고요.”

   

   ‘호얀 쿠샨’이라.

   

   흔히 들어볼 수 있는 어감은 아니었다. 이는 검공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호얀의 이름을 듣자마자 곧장 그 출신을 간파해냈다.

   

   “호얀 쿠샨? 데바 왕국 출신인가 보군.”

   

   “네,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남부 열왕국의 ‘원탁’에는 여러 나라가 소속되어 있으니까요.”

   

   남부 열왕국의 지도부, ‘원탁’.

   

   그곳에는 남부를 지배하는 다섯 왕국의 군주들이 속해 있었다. 남부 열왕국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마다 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여 표결권을 행사한다 했던가.

   

   먼 옛날 흡혈귀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의체였다. 일국의 힘으로는 상대하기 힘든 재앙이었으니, ‘생존’이라는 지상과제 앞에서는 이해관계를 불문하고 연합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 또한 수백 년 전의 이야기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남부 열왕국 사이의 연대감이 많이 옅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평화의 시대가 너무 오래 지속된 탓일지도 모르지.

   

   그나마 구심점이라 할 만한 ‘대마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제국과 성국에 마스터가 존재하는 이상, 남부 열왕국은 대마녀를 포기할 수 없을 테니까.

   

   내 감상은 그 정도가 끝이었다.

   

   검공 또한 나와 별반 생각이 다르지 않아 보였으나, 우리와 달리 위정자들은 아직 의문이 남아있는 듯했다.

   

   “왜 혼자 오셨죠?”

   

   “네?”

   

   곧장 내리꽂히는 시에네 선배의 지적.

   

   한창 뻣뻣이 굳어 있던 호얀은 그 의도를 일순 이해하지 못했다. 청년의 고개가 갸웃 기울자, 시에네 선배의 추궁은 더욱 매서워졌다.

   

   “남부 열왕국의 대표는 다섯 명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오늘 같이 중요한 날에, 단 한 명만 대표로 나왔다고요?”

   

   “저, 그게…….”

   

   그러자 슬쩍 측면을 향하는 청년의 시선.

   

   누가 봐도 대답하기를 꺼리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시에네 선배의 배후에는 나와 검공이 서 있었고, 호얀은 우리 둘의 권위를 무시할 만큼 대범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

   

   결국 한숨 섞인 목소리가 청년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사실, 남은 대표들과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요. 각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애매합니다. 일단 돌아가면서 이곳을 지키고 있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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