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5)
‘생존 가능성?’
여명777
―최종 결말 ‘Chapter X. 사망’까지 774일 0시간 1분 19초
―변경 가능성: 0.3% (+0.1%p)
0.1%p 올랐다.
‘옳게 가고 있다는 말이네.’
잘된 일이다.
당분간은 굳이 나서서 대답하지 않겠지만, 집에서처럼 후진 사회성을 연기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언제까지고 원래의 루카처럼 살 수는 없다.
하극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내 언행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금의 사회적 위치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
제국을 비롯해 주변국 모두에 명망이 높은 형을 따라잡으려면 나 역시도 하루빨리 움직여야 한다.
물론, 형이 언제까지고 내 변화를 가만히 참아 주지는 않겠지.
언젠가는 형이 감시인을 붙이거나, 날 직접 찾아올 것이다.
그럼, 그전까지 실력을 올리고 내 헛소문을 해소할 기반을 깔아 두면 되는 일 아닌가.
* * *
첫날 수업은 순조롭게 끝이 났다.
다행히 실습 수업도 오리엔테이션이었기에 마법을 쓸 일은 없었다.
약효가 떨어지기 전까지 마법 훈련은 미루는 게 낫겠다 싶어,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 동안은 도서관을 찾았다. 기술 점수를 조금이라도 올리려 신력 공부에만 몰두하고 있자, 주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드디어 월요일이 되어, 첫 마법 실습 수업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주말 동안 잘 쉬었나요? 오늘은 간단한 공격 마법을 연습하겠습니다.”
학생 모두를 훈련장에 부른 교수가 확성 마법을 켜고 안내했다. 지루한 도입이 지나고, 교수가 학생을 하나씩 불러 마법을 쓰게 했다.
‘다들 꽤 하네.’
제국 최고의 마법 교육기관이라 그런지, 학생들의 실력이 화려했다.
그리고… 레오의 차례가 되자 나는 그 후한 평가를 철회했다.
‘…주인공 친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소설 내에서 분명 레오는 주인공 그룹 내에서 마력이 강한 편이 아니라고 했는데, 다른 학생들과 있으니 그 말이 우스울 만큼 혼자 눈에 띄었다.
스무 살에 형 손에 죽는 엑스트라와는 모든 것이 다르다. 이왕 들어갈 거면 저런 인물에게 들어갔어야 했는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학생들의 이름이 불렸고, 화려한 마법이 눈앞에서 끊임없이 번쩍였다.
가혹하게도 마법 실습 수업은 아예 결석을 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의 열외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동안 루카는 아무것도 못 하고 나왔었지.’
그러는 중에도 저 레오라는 놈은 루카만 주시했고. 기억에 의하면 레오는 매시간마다 루카에게 한심스럽다는 눈빛을 보내 왔다. 정말 루카 입장에서는 매시간 자퇴 생각이 났을 것이다.
그때, 교수가 익숙한 이름을 불렀다.
“다음, 루카스 아스카니엔!”
* * *
“놀랐어. 그렇게 사람 같은 행색으로 돌아다닌 거 거의 처음 아냐?”
금요일, 새 학기가 시작된 날.
한 학생이 마법학과가 사용하는 훈련장에 들어서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주어 없는 말이었지만 누굴 지칭하는지는 뻔했다. 바닥에 앉아 쉬고 있던 다른 학생들이 격한 반응을 보이며 맞장구쳤다.
“어,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나 쟤 얼굴 오늘 처음 봤어. 학교 온 지가 언젠데 얼굴을 이제 처음 본 게 말이 되냐?”
“네가 학교를 제대로 안 다녔네.”
“뭔 소리야, XX.”
학생들이 저들끼리 웃음을 터트렸다.
친구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한 학생이 다시 루카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아예 다른 사람 같더라. 머리카락만 자른 게 아닌 것 같지 않아?”
“뭘 놀라. 방학 두 달 동안 집에서 걸음걸이부터 다시 배우고 왔나 보지. 눈깔 뜨는 법도.”
“아하하! 이제 똑바로 살 생각인가 보네. 수업 때 대답한 것도 진짜 놀랐어.”
그때 내내 학생들의 대화에 끼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던 학생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 학교에서 쥐 먹은 놈이 이제 와서 정상적인 척해 봤자.”
그 말에 한순간도 쉬지 않고 대화 아래 깔리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루카스를 비난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있었으니 그 때문은 아니었다.
적막이 한참 이어지고 나서야 한 학생이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듯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뗐다.
“그거 진짜 헛소문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왜 이렇게 안일해? 걔가 내내 거지꼴로 살다가 멀쩡하게 하고 온 게 다른 플레로마 놈들처럼 뻔뻔하게 피 처마시고 다니겠다는 뜻이면 어쩌려고 이딴 바보 같은 대화나 하고 있는 거야?”
“아니… 솔직히 얘는 학교에 묶여 있는데 대놓고 그러겠어? 그러면 황실에서도 잡으러 오겠지.”
“그래서 여태까지 황실이 성공한 적은 있고? 왜 다들 걜 피한 건데? 걔가 진짜 플레로마에 몸담은 놈일까 봐 그런 거잖아.”
“…….”
뒷말은 중요치 않았다.
황실이 성공한 적은 있냐니.
자칫하면 불경죄로 번질 수 있는 말에 다른 학생들이 잔뜩 굳은 채 시선을 교환했다.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내저으며 나섰다.
“아니, 얘들아. 우리 이런 얘기 하려는 거 아니잖아. 너도 진정 좀 해라.”
“그래, 너는 나가서 바람이나 쐬고 와라. 그냥 우리는 걔가 언제까지 그러고 살지 궁금했던 거라고.”
학생이 인상을 와락 구기며 소리쳤다.
“아니, 왜 이렇게 안일해? 이러다…!”
“쓸데없는 소리야.”
위에서 들려온 냉랭한 목소리에 학생들이 고개를 들었다.
내내 말없이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오가 차가운 얼굴로 답했다.
“겉모습 좀 바뀐다고 본질까지 바뀌는 건 아니야. 마법도 못 쓰는 게 뭘.”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입에 일절 담지 않는 레오가 할 법한 말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늘 웃음으로 상황을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레오마저도 루카스만큼은 늘 비난해왔으니, 이제 와서 이상함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학생 하나가 태연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건 그렇지. 어떻게 된 게 기초도 못 해? 아예 마법 발동 자체를 못 하는 것 같던데.”
“할 줄 안다고 해도 어차피 기부 입학생인 거 여기 있는 모두가 아는데 X 같은 마법 실력 보여 준다고 뭐가 나아지겠냐.”
“피 못 마셔서 마법 못 쓴다고 하지 않았나?”
“플레로마 놈들 전부 피 안 마셔도 똑바로 마법 쓸 줄 알아. 과정이 어쩌든 그놈은 결과적으로 마법도 못 쓰는데 여긴 대체 왜 온 거냐고.”
훈련하기로 한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학생들의 대화는 루카스의 험담에서 벗어나질 않았다.
이미 레오는 학생들의 말을 흘려 버리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었다.
* * *
‘…그래도 또 모르지.’
친구들의 수다를 듣는 둥 마는 둥 넘기고 허공만을 쳐다보던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겉모습이 바뀐다고 본질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루카스에게 아예 마법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게는 아직도 10년 전 보았던 화려한 마법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스카니엔은 제국 내에서 마법으로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가문이고, 다른 가문과 다르게 밝고 화려한 마법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내가 보았던 마법은 단순히 가문에서 전해지는 성질만을 담은, 그런 전형에 불과한 마법이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그의 마법을 본 자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마법에는 재능이 없던 내가 본격적으로 마법을 공부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루카스의 마법을 본 후부터였다.
놈이 지금의 폐인으로 변한 시기는 놈이 플레로마에 발을 들였다는 소문이 제국 전역으로 퍼질 즈음이었다.
놈이 이곳에 입학하기 전의 일이라 잘은 모르지만,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 시기부터 마법을 쓰지 않게 됐다고 들었다.
‘한심하기는.’
나였다면 그럴수록 마법을 펑펑 써댈 거다.
그딴 모욕적이고 불온한 소문 따위 내 귀에 들려오지 않게끔.
이 지독한 마법 지상주의 사회에서 마법 실력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권력이다.
누구도 입 벙긋 못하게 할 수 있는 화려하고 강한 마법을 가지고 왜 그렇게 저 혼자 죽을죄라도 진 것처럼 구냐고.
나라면, 내가 정말 플레로마가 맞다고 해도 절대 그딴 식으로는 안 산다.
생각하니 울분만 솟구쳤다.
내가 본 그 마법이 환상이었던 건가.
이쯤 되면 그런 가능성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면 그 자식이 제국에서 제일가는 멍청이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거나.
‘그래도.’
낮에 본 루카스는 모든 것이 평소와 달랐다.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른 정도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눈빛부터 걸음걸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바뀌었다.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아예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이제는 마음을 고쳐 먹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시 볼 수 있는 건가.’
문득 든 기대감에 레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곳에 처음 와 그놈 사는 꼴을 본 순간 얼마나 실망했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완드를 쥔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아무리 죽이려 해도 혹시나 하는 기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 * *
월요일, 첫 마법 수업 시간이 되었다.
“완벽하군요, 레오 학생. 다음!”
제 차례가 끝나자 레오는 자리에 돌아왔다.
주위에 모여 앉아 있던 친구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야, 멋지다. 작년보다 더 세진 것 같아.”
“그러냐.”
입에 발린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집안을 보고 하는 아부다.
어릴 적부터 저들은 쭉 그래 왔다.
레오의 시선이 자연스레 루카스에게 향했다.
다른 학생들과 멀찍이 떨어져 앉은 건 평소와 같지만, 어딘가 달랐다.
이전에는 잔뜩 겁에 질린 상태였다면 지금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저놈이 마법 수업 시간에 저렇게 평온하게 있을 수 있었다니, 솔직히 놀라웠다.
‘확실히 변했네.’
그렇게 여긴 건 레오뿐이 아니었다.
모두들 변화가 충격적이었던 건지, 주위에서는 루카스의 이야기만 들려왔다.
“곧 걔 차례지?”
“어. 한 세 번째 뒤? 아, 이제 두 번만 있으면 되네.”
차례를 계산한 학생들이 저들끼리 루카스의 마법 사용 여부에 대해 갑론을박을 펼쳤다.
‘기대하지 말자.’
레오가 이를 꽉 물었다.
저놈이 바뀌어도 얼마나 바뀌었겠냐.
마법을 쓸 생각은 없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정말, 소문처럼 그런 집단에 발을 들인 탓에 피를 못 마셔서 마력이 남지 않은 걸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나로서도 더는 할 말이 없다.
한숨이 푹 나왔다.
“다음! 루카스 아스카니엔!”
레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놈의 차례가 되어 있었다.
놈은 평소와 달리 상당히 일반적인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갔다.
“시작하세요.”
교수의 무미건조한 말에 루카스가 완드를 가슴께로 들어 올렸다.
‘…뭐야?’
레오가 미간을 구긴 채 루카스를 바라봤다.
별생각 없이 그를 보고 있던 교수도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지금쯤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어야 할 학생이 완드를 들다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학생들이 대기하고 있는 자리에서도 숨을 짧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직―!
그 순간, 완드 끝에서 붉은빛이 번쩍 일었다.
그리고, 곧바로 사그라들었다.
“…!”
“어!”
“뭐야?!”
곳곳에서 학생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곧 성인이 될 나이의 마법사가 쓸 법한 마법은 전혀 아니었음에도 강의실은 그 미미한 마법으로 충격에 빠졌다. 학생 몇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쟤 지금 마법 쓴 거야?!”
“뭐야, 어떻게 한 거야? 못 쓰는 거 아니었어?”
눈을 크게 뜬 채 굳었던 레오가 난장판이 된 강의실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럴 수가.’
잘못 본 게 아니다.
그날의 감정이 다시금 차올랐다.
제대로 된 마법사 가문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자신을 마법의 길로 이끌었던 그 순간이 기억 속에서 다시 재생됐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였다.
놈은 완드를 쥔 손을 살짝 흔들어 보더니, 더 이상 무언가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 고개를 푹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