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6)
“너무 오랜만에 마법을 써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지 않습니다, 교수님. 이쯤에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레오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컨디션이 안 좋다고?’
지금 저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저 미약한 마법은 고의다. 내보낼 수 있는 힘의 1/100도 내보내지 않았다.
아예 마법을 쓰지 않고 멀뚱히 서 있으면 모를까 한번 마법을 내보낸 지금 속일 수는 없다. 그 천부적인 재능은 어떻게 숨긴다 해도 숨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교수도 알 텐데?’
교수는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을 하다, 멍한 표정으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들어가 봐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허.’
레오가 기가 찬다는 듯 숨을 짧게 내뱉었다. 루카스는 은은한 미소를 띠며 인사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역사 같은 교양 수업에서는 굳이 나서서 대답까지 해 놓고, 마법 수업에서는 일부러 힘을 죽여?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야?’
레오가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루카스를 노려보았다.
* * *
나는 교수에게 인사하고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레오의 따가운 시선이 끝까지 들러붙었다.
한참이 지나 수업이 끝나갈 즈음, 레오의 자리를 흘끗 바라보았다. 레오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성공적이네.’
벌써 눈치챈 모양이다.
하긴, 레오의 경지라면 몸 주위로 흐르는 미세한 마력까지 감지할 수 있겠지.
당연히 내가 힘을 숨기고 거짓을 말했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저렇게까지 분노를 숨기지 못할 줄은 몰랐는데.
나는 슬쩍 호감도를 확인했다. -8이었던 수치는 어느새 -9를 찍고 있었다.
헛웃음이 날 만큼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쉽네.’
사소한 변화로 형이 교황령에서 이곳까지 달려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된’ 마법, 즉 내가 약을 먹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내가 약을 먹지 않는 것을 형이 알아도 되는 시기는 해독제를 찾아낸 뒤다.
대놓고 마법을 전부 드러내는 바보짓을 할 필요 없다. 내가 원하는 건 레오를 내 쪽으로 데려오는 것뿐이니까. 내 마법을 온전히 보는 이는, 지금으로서는 오직 레오뿐이어야 한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레오가 분을 못 이겨 나를 찾아오길 기다리면 된다.
나는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십 년 전 보았던 마법이 같은 형세를 띠고 눈앞에 나타났다. 꿈도 아니고 현실에서.
기숙사에 돌아온 레오가 문을 닫고 멍하니 서 있다 문에 기댔다.
오늘 하루가 대체 어떻게 갔는지도, 무슨 생각을 하며 보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에 남은 건 낮에 보았던 마법뿐이었다.
‘마법을 못 쓰는 게 아니었어.’
이제는 추측이 아니다.
하지만 놈의 마법을 보고 느낀 충격과 설렘은 금세 사라졌다.
놈은 마법을 못 쓰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안’ 쓰는 것이었다.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모두가 우러러볼 만한 마력을 가지고도 왜, 대체 왜 그렇게 숨기고 사는 건데? 폐인으로 사는 걸 즐기는 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2학년이 된 루카스는 작년과 완전히 달라졌다. 간단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이 마주치면 제게 해코지라도 할까 황급히 고개부터 숙였던 사람이 이제는 비웃음까지 띠며 상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렇게나 변한 사람이 왜 마법에 대해서는 그대로냔 말이다. 굳이 마법을 써 놓고, 컨디션이 나쁘다는 얄팍한 변명으로 자리를 피하는 이유가 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레오가 어두컴컴한 허공을 노려보았다.
전후 표정이나 태도로 보아서 그건 절대 실수가 아니었다. 의도가 깔린 행동이었다.
먼저 그 의도를 드러내지 않겠다면 방법은 하나다.
‘내가 직접 그 이유를 알아낼 수밖에.’
* * *
그날 학교는 나의 마법으로 떠들썩해졌다.
하지만 위력이 허접했기에 오래 이야깃거리로 남을 지속력을 갖지는 못했다.
따지고 보면 이 정도의 마법은 기본 중의 기본 수준이었으니까.
대단한 가문이 아니라고 해도, 작위 하나쯤 가진 집안이라면 이 정도는 누구나 타고 난다.
그렇기에 ‘저놈도 마법사 가문 출신이긴 하네’, ‘이제 학교생활 좀 제대로 하려는 건가’ 정도의 반응만 나왔을 뿐, 기부 입학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울 만한 여론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내가 플레로마에 속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을 펼치긴 했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딱 의도한 만큼 됐네.’
학생들의 관심은 빠르게 식고, 레오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형에게 소식이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레오를 도발하는 것.
그게 이번 내 목표이니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상태창.’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칭호: 제국 제일의 멍청이
체력: -5
정신력: -10
마력: ?
기술: +0.015 (+0.013)
인상: -10
행운: -9.985 (+0.013)
특성: 여명777, 신력
역시.
다행히도 이번 일로 인상 점수가 오르지는 않았다.
인상 점수가 오르는 것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인상 점수가 올라간다는 건 주변인들의 평가가 좋은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니, 명백히 좋은 현상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이미지를 개선시키느냐다.
마법 수업에서 내 실력을 100% 발휘하거나 플레로마 소문이 거짓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등 과감한 시도를 한다면, 내 인상 점수는 우스울 만큼 금방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당장 형의 손에 죽어 버리겠다는 뜻과 같다. 누구보다도 내 변화에 민감한 자가 우리 형이니까.
‘그렇다고 저 -10을 그대로 둘 생각은 아니지.’
대놓고 변화시킬 수 없다면, 남모르게 하면 된다.
레오를 포섭하고 내 실력을 키우고 나면 인상 점수를 개선해 볼 생각이다.
물밑에서,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오늘은 목요일.
지금까지 있던 마법 실습만 네 번째다.
지난 사흘 내내 희미한 빛만을 뿌리다, 오늘은 완드 끝까지 마법을 빼내었다가 도로 몸으로 돌려보냈다.
밖으로는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은 셈이었다.
나는 공중으로 들었던 완드를 내리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힘이 나지 않습니다.”
“그럼 들어가 보세요.”
교수의 관심도 어제부터 급격히 식었다.
변화가 없으니 당연했다.
다행히 원래부터 열정적인 교수도 아니었고, 루카를 마음에 들어 하는 교수도 아니었다.
자리로 돌아가며 주위를 훑었다.
여태 하던 만큼도 하지 않아 그런지, 레오의 시선이 더욱 따갑게 들러붙었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완드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시야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자 레오가 싸늘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 나 좀 보자.”
‘역시나.’
이즈음에서 행동에 옮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딱 들어맞았다.
소설에서 레오는 늘 그랬다.
마력도 약하면서―지극히 주인공 무리 기준으로―마법에 대한 고집 하나는 제대로였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걷지 않고 정도를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레오가 누군가 마법으로 장난을 치는 꼴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다.
그게 저를 마법의 길로 이끈 자의 행동이라면, 더더욱.
좀 미안하지만… 일단은 어쩔 수 없지.
나는 표정 변화 없이 간단히 물었다.
“왜.”
“자정에 훈련장으로 와.”
“왜냐고. 대답부터 해.”
그 말에 레오가 코웃음을 쳤다.
그걸 들어서 뭐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됐다. 안 와도 내가 끌고 나올 거니까. 알아서 나오든지 끌려 나오든지 고르기나 해.”
‘성깔 봐라….’
그래, 이 나이에는 이런 놈이었지.
이보다 더 순조롭게 풀릴 수 있을까.
제안: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를 당신의 동료로 만드세요. (0/1) (20시간 07분 44초)
‘20시간.’
충분하네.
나는 레오의 싸늘한 눈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 * *
자정이 되어 기숙사를 나섰다.
굴러들어온 기회를 유예할 이유가 없었다.
소설에서 느꼈던 레오의 성격이라면 정말 기숙사를 헐어서라도 말한 것을 지킬 테니, 바라는 대로 된 마당에 일을 키울 필요가 없지.
‘…나오란다고 군말 없이 나오는 것도 좀 이상하긴 한데.’
지금 놈에게 그런 점은 들어오지도 않을 테니 걱정은 말자고. 오히려 내가 자정을 넘겨서야 훈련장에 도착했다는 것에 짜증을 내면 낼 것이다.
나는 저 멀리 있는 시계탑을 바라봤다.
12시 11분.
대충 마법학과가 사용하는 훈련장 쪽에 도착했다. 레오는 개인 훈련장을 가지고 있으니 그쪽으로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놈은 내가 자기 훈련장을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나….’
기숙사에만 처박혀 산 루카는 당연히 그런 걸 알 턱이 없다.
상대가 뭘 알고 모르는지도 모르고 다짜고짜 오라고 하다니, 이건 자아가 큰 건지 거기까지 생각을 못한 건지.
어쨌든 내가 안 오면 찾아서라도 오겠다 했으니 이쯤 와 줬으면 알아서 찾을 것이다.
나는 훈련장 한가운데 위치한 운동장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누군가 목덜미를 낚아챘다.
“멍청하게 서 있긴. 당연히 안에 들어와야지, 뭐 하는 거야?”
“네 훈련장이 어디에 있는 줄 알고 들어가? 와 줘도 난리네.”
레오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나를 끌고 들어가 문을 잠갔다.
레오가 출입문에 잠금 마법을 연이어 설치하며 입을 열었다.
“너는 우리가 바보로 보여?”
“뭐?”
“모를 것 같아? 전부 모를 것 같아서 그딴 식으로 구는 거야?”
“뭐라는지 모르겠네.”
그 말에 레오가 싸늘한 눈빛으로 뒤돌았다.
“네가 일부러 마법 쓰다 마는 걸 모를 것 같냐고. 교수도, 친구들도!”
정적이 흘렀다.
레오가 치뜬 눈을 거둘 생각을 하지 않자, 나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교수는 확실히 아는 눈치긴 했지. 그런데… 애들은 모르던데?”
그 말에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추궁한 게 우스울 만큼, 힘을 조절했다는 걸 감추지도 않는다. 태평한 발언에 레오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이딴 식으로 굴 거면 이 학교에서 나가.”
“내가 왜?”
“여긴 마법을 배우는 곳이지, 그렇게 설렁설렁,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놀이터가 아냐. 기부 입학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면학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
“잘 아네. 수업에 진심으로 임할 게 아니면, 그냥 여기서 나가 버려. 너 같은 마음가짐으로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네가 무슨 상관인데?”
“뭐?”
레오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어 갔다.
나는 그런 레오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 이렇게 나오고 싶지는 않았지만, 역설적이게도 레오를 적으로 두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최대한 연기를 이어 나가며 쏘아붙였다.
“교수도 뭐라 하지 않은 문제에 왜 네가 나서냐고.”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야. 은퇴만을 기다리는 교수의 방임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해? 다 알면서도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그런 교수의 침묵이 뭐가 중요하지?”
레오가 목소리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음.’
이건 나와 뜻이 맞다.
교수가 무책임해 결과적으로 내게는 도움이 되었지만, 사실 바람직한 교수자 상은 아니었다.
‘주인공 친구답다.’
이 판타지 세계에서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이야.
하지만 내 가치가 놈과 일치한다 해서 그게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지금은 다르게 나가야지.
“학생뿐 아니라 교수도 학교의 주체에 해당해. 교수에게 네 의견을 표현해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무시부터 하는 게 옳은 일인가? 네가 정말 교수의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수업의 질을 바르게 유지해 달라고 직접 건의하는 게 맞겠지.”
“…….”
“이렇게 자정이 넘은 시간에 이유도 안 알려 주고 불러내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으로 보이는데, 안 그래?”
레오가 말없이 나를 노려봤다.
여전히 할 말은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지금 굳이 길게 대화를 이어 나가려는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니 잘됐네.’
놈의 급한 성미에 조금 불을 질러 볼까.
나는 한숨을 푹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해가 안 되네. 고작 이런 말 하려고 여기까지 불러낸 거야? 할 말 없으면 간다.”
“완드 들어.”
음산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말없이 고개를 돌려 레오를 바라봤다. 레오가 허리춤에서 완드를 뽑아 들고는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네가 이기면 뭘 하든 닥치고 있을게. 네가 수업에서 장난을 치든 어쩌든 전부 받아들이겠다고. 대신 내가 이기면, 당장 이 학교에서 나가.”
“…….”
“웃기네. 아까는 잘만 입 털더니, 이제는 자신이 없어?”
드디어.
바라던 바다. 내 입꼬리가 천천히 비틀려 올라갔다.
“그럴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