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7)
내 대답에 레오는 곧바로 훈련장 끝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레오가 완드를 뽑아 간단한 기수식을 취했다.
그 모습을 보니 기억 어딘가에서 어릴 적 지나가듯 본 아버지와 형의 기수식이 떠올랐다.
‘우리 가문도 따로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하는지는 알았으나 딱히 가문의 것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대충 고개만 까딱이고는 완드를 고쳐 잡았다.
‘…!’
어느새 레오의 마법이 코앞까지 닥쳐 있었다.
반사적으로 구두 뒷굽을 돌려 옆으로 물러났다.
콰아앙―!
놈의 공격에 훈련장 벽이 일부 부서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양을 보고 있으니 식은땀이 절로 났다.
‘놀랍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정통으로 맞았을 것이다.
이기기 위해 편법을 쓸 사람은 아니다. 내 인사 이후부터 공격을 날렸을 텐데도 이런 속도라니.
재능도 충분치 않은 이가 이만한 실력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오랜 노력이 있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사실 레오와 겨룬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 없는 일이었다.
루카는 십 년 가까이 제대로 된 마법을 쓰지 못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갈고닦지 않는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능은 모자라도 십 년 동안 마법 하나만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달려온 이와는 결코 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나는 이기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 레오를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여기에 있으니까.
“피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레오가 주위를 둘러싸듯 공격을 날렸다.
푸른 공격이 주위로 퍼지자 마치 물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났다.
“윽!”
최소한의 마력만을 펼쳐 공격을 막았지만, 일부가 장막을 뚫고 침투해 피부를 찔렀다.
참기 힘들 만큼 위력이 강하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한 느낌인데.’
제대로 한번 와라. 그때 터트릴 거니까.
저 자식이 바라는 것은 내가 제대로 된 마법을 쓰는 것.
놈이 드러내지 않은 바람을 내가 알고 있는 이상, 이 경기의 진정한 승패는 진작 난 셈이다.
콰앙― 쾅―!
신경을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보이는 공격을 수없이 가까스로 쳐 냈다.
레오가 바라는 대로, 파워로 밀어붙여 봐도 좋겠지만 때가 일렀다.
여기서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방어만 하고 이렇다 할 공격을 쓰지 않자 레오가 경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나서서 하는 게 뭐지? 여기서 시간만 끌다 갈 작정인가?”
정확하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물론 대답할 필요도 없이, 시기는 금방 찾아왔다.
레오가 완드를 손가락 사이에서 굴려 길게 늘여 내고는 바닥을 내리쳤다.
콰앙―!
가시덤불 같은 것이 사방에서 닥쳐 거동을 방해했다. 재킷 팔 위를 감싼 줄기가 완드까지 뻗쳤다.
이제 끝을 보겠다는 건지, 퇴로가 막힌 상황에서 또다시 눈앞이 번쩍였다.
‘지금이면 되겠네.’
우드득―!
온 힘을 다해 팔을 덤불에서 뽑아내 완드를 놈에게 조준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출력을 심장으로부터 뽑아냈다. 팔을 뽑는 과정에서 살을 파고든 놈의 가시가 혈관에 흐르는 마력을 상쇄시켰다.
하지만, 이미 마법은 나간 후였다.
재킷이 찢기는 시간이 놈의 마법에 제동을 건 셈이었다.
콰아앙―!
레오의 공격과 맞닿아 생겨난 굉음이 들려왔다. 부수어진 훈련장 벽과 바닥에서 분진이 잔뜩 흩날렸다.
그런데….
‘진작 반격이 오고도 남았어야 했는데?’
설마….
완드를 휘둘러 먼지를 걷어 내자, 이마를 붙잡고 바닥에 쓰러진 레오가 보였다.
“…!”
피하지 않았다.
미세한 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헛웃음이 났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그대로 내버려 둘 줄이야.’
애초부터 놈이 날 불러낸 이유는 내가 전심전력으로 마법을 쓰는 걸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만큼 내기 결과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다 해도 이걸 직접 맞다니 보통 미친놈이 아니다.
“야, 괜찮….”
“…하.”
레오가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 순간을 타 재빨리 레오의 상태를 스캔했다. 다행히 바닥에 긁힌 이마 말고는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내 공격이 이미 놈의 공격에 거의 상쇄된 상태였나 보네.’
“하하, 하… 그래, 이거야. 이거라고!”
레오가 붉게 물든 이마를 붙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얼굴을 마주한 순간 소름이 훅 끼쳤다.
“뭔….”
“이걸, 이걸 다시 볼 수 있다니…. 난, 정말… 얼마나 이날을 바랐는지…. 이 정도면 난 곧 네 발끝도 못 따라가겠네. 역시, 네가 이겼어. 네가 이겼다고.”
놈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다 다시 바닥으로 푹 꺼졌다. 그러면서도 뭐 좋은 일이 있다고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총체적으로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당장 문을 닫고 나가고 싶지만, 내 공격으로 이렇게 되었으니 여기서 이 꼬맹이를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어깨 밑에 팔을 끼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미안하다. 좀 미친 것 같은데 빨리 치료나 받으러 가자.”
“아니, 더 해 봐. 더 써 보라고.”
‘미친놈.’
“응? 얼마든지 맞아 줄 테니까. 아니, 아니지. 부탁할게. 내가 본 게 현실이란 걸 못 믿겠어.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해 줘. 딱 한 번만 더 맞으면 이게 현실이라는 걸 납득할 수 있을 것 같….”
쿵―!
소름이 돋아 놈을 다시 바닥에 떨궜다.
열정이 과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확실히 소설에서도 마법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긴 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부상을 아무렇지 않게 여길 만큼인지는 몰랐네.
“정신 차려. 지금 이건 내 마법이 네 공격에 상쇄되어서 나온 결과야. 방어도 안 하고 아까처럼 맞으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거 몰라?”
질린 말투에도 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힘없이 바닥에 엎어진 레오가 좀비처럼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쓸 수 있었어.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어른들은 믿어 주지도 않고, 10년이 지났으니까 그냥 내가 착각을 한 건가, 그렇게 생각했는데. 전부 그날 그대로야.”
“…….”
그러고 보니 아까도 ‘이걸 다시 볼 수 있다니’ 따위의 말을 던졌지.
이거 원작에서는 결말부에 이를 때까지 아무한테도 말 안 하다 주인공한테만 털어놓은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나한테 직접 말해도 되나.’
아무래도 지나치게 흥분한 탓에 자기가 뭘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아니면 진짜 상관없거나.
혹시 모르니까 한번 말려 봐도 되겠지.
놈의 옆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놈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뭐야. 네가 플레로마에 속했다는 소문도 거짓말이었잖아. 그렇지? 소문이 진짜면 지금 나를 살려 둘 리가 없지. 그러니까, 지금 넌… 그런 소문에 대체 몇 년을….”
놈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갔다.
그 탓에 나 역시도 씁쓸해졌다.
나 때문에 마법을 시작했다는 사람의 말이기에 더 그랬다. 나는 분명 루카가 아닌데도, 루카가 느끼는 감정이 내게 오롯이 느껴졌다.
바닥만 보며 중얼거리던 레오가 아까와 완전히 달라진 눈으로 고개를 휙 들었다.
눈에 광기가 차 있었다.
“내가 뭘 해야 네가 그 마법을 한 번 더 보여 주지? 혹시 널 한 번 더 공격하면…!”
“자라.”
이건 뭐 오뚝이도 아니고.
방금의 감동이 싹 사라졌다.
바닥에 떨궈도 힘이 빠지지 않는 것 같아, 그냥 놈의 뜻대로 목덜미에 마법을 한 방 쏘았다.
나는 잠에 든 레오의 옆에 털썩 앉았다.
치료실로 옮겨 놓기 전에 좀 쉬었다 가야겠다.
투명한 훈련장 천장으로 새까만 밤하늘이 보였다. 여태까지 전부 비슷했으니 당연하겠지만, 하늘 역시도 내가 살던 세상의 것과 같았다.
방금까지 마법을 써대다 내가 살던 세상을 떠올리니 헛웃음만 났다.
어쩌다 이런 세계에 와서 엑스트라가 죽는 걸 막게 됐는지 몰라도….
“이걸로 끝이네.”
앞으로 가장 도움이 될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내 편까지는 아직 아니긴 한데.’
어차피 내가 마법을 쓰는 걸 봐 놓고 평소와 같이 행동하지는 않을 테니 미리 성공했다 말해도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귀찮아질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물론 그마저도 내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제 레오를 포섭했으니, 슬슬 내 실력을 올릴 때다.
물론 대놓고 마법을 연습해서는 안 된다.
이건 그냥 하루라도 빨리 죽여 줍쇼 하고 광고하는 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내가 직접 움직일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주위 인간을 200%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친구를 어떻게 써먹어야 좋을지는 진작 계산이 끝났다.
레오가 널브러진 쪽을 바라봤다.
10년간의 원이 풀려 그런지 긴장이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곤히 자고 있었다.
‘미래도 모르고 잘 자네.’
앞으로 친해져 보자고.
나는 소리 내 웃었다.
* * *
어릴 적 꿈을 꿨다.
매번 같은 상황에, 같은 마법이 나오는 꿈.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달랐다.
‘…평소 꿈보다 더 마법이 화려했던 것 같은데.’
눈을 뜨자 새하얀 햇살이 시야를 덮었다.
이 정도면 아침은 절대 아니었다.
레오가 고개를 돌리며 눈을 찡그렸다. 한쪽 이마가 당겨 왔다.
“윽….”
“깼냐?”
루카스의 짧은 물음에 레오가 눈을 굴려 옆을 빤히 쳐다보더니 힘없이 눈을 감았다.
“…꿈….”
“아니다.”
“그럼 내가 기억하는 게 전부….”
“진짜야.”
레오가 몸을 벌떡 일으켜 루카스를 스캔했다. 그러더니 혀를 찼다.
“쯧.”
저 쯧은 뭐냐?
아직 눈빛이 후진 걸 보니 인간적인 거리감은 크게 좁혀지진 않은 모양이다.
루카스가 저 표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레오가 눈살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
“천천히 해라. 어차피 수업 빠진 거, 시간은 많으니까.”
한참 정적이 이어졌다.
레오가 깊게 심호흡하더니 입을 열었다.
“너 피 안 먹잖아.”
“마시면 역겨워서 토할걸.”
“피를 못 마셔서 마법을 못 쓴다는 소문도 가짜였지. 그러니까… 플레로마 놈들이 항상 하는 그런 변명 말이야. 너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그러네.”
“아스카니엔의 둘째가 마법사로서 좋지 못한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소문도 틀렸어. 이건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진작 틀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던 레오가 미간을 구겼다.
“어제 네가 썼던 마법은 보통 마력이 아니었어. 절대로. 그건 너도 알지?”
“알아.”
루카스가 간단히 답했다.
솔직히, 두 눈으로 직접 봤는데 모르면 바보지.
물론 처음에는 놀랐다. 반사적으로 든 생각이 ‘형은 절대로 가주 자리에 앉지 못하겠구나’였으니 말 다했지.
“대체 왜 여태까지 마법을 쓰지 않은 거야?”
“…….”
루카스가 그를 빤히 보기만 하자, 레오의 목소리가 커졌다.
“왜 그런 헛소문에 굴복한 거냐고. 왜 이런 자질을 가지고 여태까지 그딴 식으로 살아온 거야?!”
“듣고 싶어?”
“당연한 거 아냐?”
레오의 날카로운 대답에 루카스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이렇게 나와 줘야지.
어제는 제대로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걸 확인받고 잔뜩 흥분해 마법 그 자체에만 집중했지만, 시간이 지나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지금은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 차례였다.
루카스가 여태 등받이에 기댔던 몸을 레오에게 가까이 가져갔다.
“그럼 약속해.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이건 내 목숨이 걸린 문제야.”
자, 이제 넘어와라.
지금 이 순간부터 원작은 완전히 비틀릴 거다.
물론, 좋은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