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8)
그런 말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레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체 뭐길래.”
“그러니까 약속부터 해.”
약속 같은 걸 하지 않아도 남의 이야기를 퍼트리고 다닐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까 십 년이 넘도록 주인공의 곁에 있었지.
그래도 지금 들을 이야기가 어떤 무게를 지닌 이야기인지 알 필요는 있다.
레오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약속할게. 신의 이름으로.”
“신까지 들먹일 필요가 있나 싶지만, 좋아. 간단히 설명할 테니까 잘 들어.”
레오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우리 가문에서 가장 센 마력을 가지고 태어났고, 우리 형님은 아버지의 작위를 계승 받고 가주 자리에 오르길 바라.”
“…끝?”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레오는 이미 어떻게 된 상황인지 눈치챈 듯 얼굴이 어둡게 변해 있었다.
나는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마력이 센 순서로 계승권이 주어진다는 건 알지? 이 정도면 상황이 어떻게 굴러갔는지 알겠지.”
“…네 말은, 형님 때문에 마법을 쓰지 못했다는 거야?”
“그래, 쓰면 죽거든.”
“형님께서 널 죽이러 오기라도 해?”
레오는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는 의미에서 저 말을 꺼냈지만, 정말로 형 손에 죽임당하는 미래를 아는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새벽에 기숙사에 들러 챙겨온 가방에서 크리스털 병을 꺼내 레오의 눈앞에 들이댔다.
“무슨 약인 것 같아?”
병을 받아 빛에 이리저리 비춰 본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약? 뭘 추출했길래 이런 빛이 나지? 꼭 잉크 같네.”
“형님께서 내게 매달 보내 주는 약이야. 제국에 정식으로 유통된 적 없는 재료로 만들었으니 너도 모르겠지.”
그 가주가 되고 싶으시다는 형님께서 보내 주는 약이 대체 왜 제국에 정식으로 유통된 적 없는 물질로 만들어져 있는가.
누가 봐도 불길한 조합에 레오의 미간이 좁혀졌다.
“설마….”
“그래. 이걸 마시면 코어가 완전히 틀어막혀서 마법을 쓰는 순간 충격이 와.”
“잠깐,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잖아. 마법사는 몸에 마력이 안 돌면 죽는데 그걸 막으면 어떻게 살란 말이야?”
“뭐겠어. 형님은 하루라도 빨리 내가 죽길 바라. 이런 약을 먹이는 것부터 내가 죽길 바라고 있다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레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다는 듯한 저 얼굴.
언제나 따스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온 레오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던 레오가 병뚜껑을 열고 천천히 바람을 일으켜 냄새를 맡았다.
“이걸 언제부터 마신 거야?”
“열 살이었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성장기잖아. 마법사한테 제일 중요한 시기에, 이런….”
“…….”
레오가 약을 먹은 당사자보다도 더 억울한 듯 이를 뿌드득 갈았다.
나는 어이없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놈은 다른 무엇보다 내가 마법 면에서 성장하지 못한 것이 제일 심각한가 보다.
대체 어릴 적 봤던 루카의 마법이 얼마나 강력하게 남았길래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안 마실 수는 없었던 거야? 네 아버지께서는….”
“열두 살 때 일주일 거른 적이 있었어. 그러다 어느 순간 기절했는데, 눈을 떠 보니 형님께서 내가 이리를 잡아먹었다고 하시더라. 그 뒤로는 뻔하지.”
“어떻게 됐는데.”
“마시기 싫은 티를 낼 때마다 방에 갇혔어. 식사도 안 주던데. 형님과 아버지의 명령이었으니까.”
기억으로는 그랬다.
레오가 미친 상황을 들었다는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 상황에 이런 질문 좀 미안한데, 정말 이리를 먹었어?”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야. 정신을 잃은 뒤의 기억이 전혀 없으니까.”
“좀 주제넘은 추측일 수도 있는데, 형님께서 거짓말을 하셨을 가능성은? 솔직히 마법을 쓴다고 해도 그 나이 어린애가 그걸 어떻게 잡아먹어. 진짜처럼 상황을 꾸미는 것 정도는 문제도 아닐 거 아냐.”
“충분하지.”
“그럼 흡혈을 한다는 소문도, 플레로마에 연관되어 있다는 소문도… 네 형님께서 퍼트렸을 가능성이 있는 거네.”
“그래.”
레오가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참을 신음하더니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건 미쳤어. 당장 황실 조사단에 보고해야 할 문제라고.”
“보고 안 할 거잖아.”
“그래, 아직은 섣불리 움직이면 안 돼. 네 형님께서 그런 대비도 하지 않았을 리가.”
“잘 아네.”
역시 주인공 친구는 달라도 다르다.
말이 잘 통해 편리했다.
“대체 여기서 뭘 해야…. 너도 형님한테서 벗어나고 싶은 거지? 확실히 변하긴 했어. 이번에… 음, 행색도 좀 고치고, 마법 쓰는 거 보니까 약도 끊은 것 같고. 솔직히 너랑 이렇게 말 안 끊기고 대화해 본 것도 처음이고 말이야.”
“당연하지. 난 살고 싶어.”
“네가 힘을 조절한 것도… 변하고는 싶은데 형님께서 알아챌까 무서워서 그런 거겠지. 맞아?”
“그래. 그것도 이제는 끝이야. 더 이어갔다가는 형님께 의심을 살 수 있어.”
“…그것도 모르고 난 너한테 무슨 말을 한 거야….”
레오가 또다시 좌절스럽게 얼굴을 손에 파묻고 지난 일을 돌아보았다.
한번 기억을 헤집자 루카스에게 잔뜩 눈치를 주어 왔던 1학년 때의 일이 전부 떠올랐다.
그때는 사정을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지만, 또, 혼자 자책할 사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나는… 저놈이 제대로 마법을 쓰길 바랐는데.’
내가 평생을 동경해 온 사람이, 나의 미래를 바꿔 놓은 사람이 남들에게 짓밟히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고난에 너무 쉽게 좌절했다고 생각했다.
여론을 엎어 버릴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약하게 군다고 생각했다.
뒤늦게서야 얼굴이 후끈거렸다.
남의 삶을 너무 쉽게 판단했다.
안 그래도 집안 문제로 고통받았을 친구에게 학교마저 고통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전교생이 루카스를 싫어하니 나 혼자 그리 만든 것은 아니라 해도,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레오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사과했다.
“미안. 그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난….”
“정확히 뭐가 미안한지 듣고 싶은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난 학년 내내 함부로 대한 것도 그렇고, 어제 갑자기 널 불러내서 싸움을 건 것도 그렇고, 전부.”
나는 루카의 기억을 찬찬히 더듬었다.
루카의 학교생활이 더욱 삭막해진 데에는 레오가 큰 역할을 하기는 했지.
인기 좋은 학생의 미움을 받는 이가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레오가 티를 내지 않았어도 루카는 여기서 똑같은 이미지였겠지만….’
안타까운 현실에 헛웃음이 났다.
레오가 루카를 한심하게 여기는 걸 티 내고 다님으로써 불에 기름을 붓기는 했다.
하지만 그 불은 입학 첫날부터 이미 보기 좋게 활활 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처를 아예 안 받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
가만히 레오를 보고 있자 레오가 고개를 떨궜다.
“미안해. 늦었지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도울게.”
“글쎄, 용서는 나중으로 미뤄도 되나?”
나는 루카가 아니다. 여태 눈칫밥을 먹고 살아온 쪽은 내가 아니라 루카다.
내가 언젠가 이 몸을 떠난다면 그 이후는 이놈이 알아서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루카가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남겨 주고 싶었다.
그 말에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받아 주지 않아도 돼. 부담을 주려고 한 사과는 아니었어. 그냥, 사정이 뭐든 네게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던 이유가 당연히 있었을 텐데… 그동안 싫은 티를 낸 게 미안해서.”
점점 말을 횡설수설 내뱉는 레오를 가만히 바라봤다.
사실 이 시기가 10년 뒤에, 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와야 하는데.
흐름을 바꾼 덕분에 루카가 살아 있을 때 진심 어린 사과를 들을 수 있게 됐네.
지금은 온갖 감정이 다 들겠지만, 무덤에 대고 사과하는 것보다는 상대가 살아 있을 때 마음을 털어 버리는 게 레오 입장에서도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교의 분위기에 묻어갈 수 있음에도 혼자 그런 행위에 가책을 느끼고 사과하는 것만 봐도 이미 싹이 나쁘지 않았다.
나는 레오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너무 오래 침체되어 있는 느낌인데.
이제 적당히 분위기를 풀어 줄까.
“됐다. 말을 안 해 줬는데 어떻게 아냐?”
“그러니까, 말을 안 했어도 당연히 사람이 그런 꼬락서니로 사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내 감정만 앞세웠다는….”
“…알아, 인마. 그만 생각하라고 한 말이야.”
어제 말을 고르지 않고 마구 쏟아부었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게 이놈 특징인가 보다.
한 대 때려 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레오의 얼굴은 여전히 흙빛이었다.
‘이거 안 되겠네.’
이렇게까지 파고들면 이제는 너뿐 아니라 나도 곤란하다.
이걸 꺼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번 일은 너무 자책하지 마. 사실 수업 태도고 뭐고 그냥 내 제대로 된 마법이 보고 싶었던 것뿐이잖아. 그치?”
그 말에 레오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네가 마법을 쓸 수 있으면서 다른 애들이 무시하는 걸 받아 주는 게 짜증 났으니까. 사실 어릴 때 네 마법을 봤거든. 그런 마법이라면 전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서….”
“내가 아는 거랑 다르네.”
“음?”
“이걸 다시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이날을 바랐는지… 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놈의 눈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역시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네.’
“말이 좀 헛나왔나 보네. 그렇게까지는….”
“아니, 너 마법 나 때문에 시작했다며.”
“어?”
침묵만이 이어졌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레오가 당황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잠깐. 그, 그걸 누가….”
“…이렇게까지 당황할 거면 그냥 바로 아니라고 잡아떼지 그랬냐.”
내가 먼저 던져 놓고도 저 충격적인 반응을 보니 헛웃음과 함께 안타까움이 우러나왔다.
잡아떼 봤자 의미는 없었겠지만.
하여튼 책에서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 일단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네가 어제 쓰러지기 직전에 말해 줬는데. 알면 안 되는 건가?”
그 말에 레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레오가 최대한 평소처럼 대답하려 노력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냐. 알아도 돼. 대신 다른 애들한테는 말하지 마.”
“말 안 해. 그나저나 영광이네. 네가 나 때문에 마법을 시작했다니.”
이걸 루카가 알아야 하는데.
진짜 루카가 알았다면 여기에 대체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웃음 짓자 놈이 저를 비웃는 줄 알았는지 열이 뻗친 얼굴로 쏘아붙였다.
“수업 안 가냐? 그리고 정확히 말하면 네가 아니라 네 마법 덕분에 시작한 거야. 넌 얼굴도 기억 안 났어. 그냥 이름 보고 기억한 거지.”
내 마법은 어디 허공에서 그냥 발생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일단 가볍게 넘겼다.
“그래, 알겠다. 이제 이런 건 됐고, 부탁 두 개만 하자. 네 도움이 필요해.”
“개수까지 정할 건 또 뭐냐. 그냥 말해.”
레오가 퉁명스럽게 답했다.
내용과 안 맞는 말투는 그냥 모르는 체했다. 어쨌든 놈이 내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의사가 있다는 좋은 신호였다.
“내가 찾는 약이 있어. 그걸 좀 구해다 줘.”
“제국에 있는 거야?”
“응.”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건넸다.
소설 속 약 이름까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했기에 틈이 날 때마다 책을 뒤졌다. 그나마 약초 서적에서 익숙한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쪽지를 받아 든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흔한 거라 일주일이면 받을 수 있겠네. 집에다 말해 놓을게. 두 번째는 뭔데?”
“나랑 매일 대련해 줘.”
“어?”
레오의 얼굴이 한순간에 밝게 펴졌다.
본인도 아차 싶었는지 표정을 정리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흡….”
“…뭔가 자꾸 비웃는 것 같은데, 그냥 수준 맞는 친구를 여태 못 만나서 그런 거야. 알아?”
“내가 너랑 수준이 맞다고 생각하냐? 변명하지 마. 그래서, 들어줄 수 있는 거지?”
레오가 그 말에 눈을 피하며 입을 닫았다.
사실 아무리 빈말이라도 수준이 맞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마력이 남다른 거지, 마법 실력이 뛰어난 게 아니었으니까.
레오가 지난해의 기억을 떠올렸다.
나를 이 길로 가게끔 만든 사람과 함께 실력을 키워 나가는 것.
놈이 이곳에 입학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바라 왔던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십 년 전부터 바랐던 일일지도.’
루카스의 마법을 본 그날부터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실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던가.
그러니 이건 놈이 해야 할 부탁이 아니라, 사실 내가 해야 할 부탁이었다.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당연하지.”
띠링―!
레오의 대답과 동시에, 나의 눈앞에 새하얀 글씨가 반짝였다.
축하합니다!
‘제안: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를 당신의 동료로 만드세요.’ 성공!
‘Chapter 2. 너 자신을 도우면, 신도 너를 돕는다 (2)’ 완료!
‘Route 1 — 〈Chapter 3.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1)’ 〉을 확정합니다.
「 Chapter 3.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1) 」
‘흠.’
좋아, 만족스럽다.
이걸로 초석은 깔린 모양이다.
이번 제안은 상당히 중요도가 높아 보였는데, 뭔가 달라진 것 없나.
나는 상태창을 불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