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9)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칭호: 제국 제일의 멍청이
체력: -4.8 (+0.2)
정신력: -9 (+1.0)
마력: ?
기술: +0.015
인상: -10
행운: -8.985 (+1.0)
특성: 여명777, 신력
‘정신력이 1이나 올랐어?’
분명 -10이었는데?
-9.985였던 행운 역시 마찬가지다. 1/1000씩 오르던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발전이다.
체력도 0.2 올랐다. 체력이 오를 상황이 아닌데도 값이 커진 걸 보면 정신력과의 연관이 있는 듯했다.
지금 이놈 친구 하나 사귀었다고 이렇게 변한 건가?
아주 어릴 적을 빼면 사실상 레오가 첫 친구이니, 굉장히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
안타까워서 못 봐 주겠다.
‘잠깐.’
이쯤에서 확인해야 할 게 또 있지.
시선을 옮기자 창 하나가 나타났다.
[여명777]
— 최종 결말 ‘Chapter X. 사망’까지 767일 23시간 18분 01초
— 변경 가능성: 5.3% (+5%p)
5.3%.
동료 하나 만든 것으로 5%p가 오르다니, 만족스러웠다.
그만큼 앞으로 레오가 내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겠지.
‘음, 궁금한데 레오 것도 좀 볼까.’
생각해 보니 그동안은 시선이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호감도를 확인해야 했기에 상태창까지 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레오의 눈을 바라보며 상태창을 불러냈다.
레오나르드 비텔스바흐
호감도 0
칭호: ?
체력: +7.5
정신력: +9
마력: +7
기술: +8.5
인상: +10
행운: +9.5
특성: ?
‘…이 미친 수치는 또 처음 본다.’
호감도가 한순간에 -9에서 0까지 9점이나 오른 것도 놀랍지만… 일단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궁금해서 한번 들여다본 몇몇 교수의 상태창보다 종합적으로 나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소설에 들어갈 거면 이런 인물이 되어야 했다.
“뭐해?”
레오가 내 멍한 시야에 손을 흔들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나는 약간의 현타를 지우고 고개를 저었다.
그 이후에는 레오의 시시콜콜한 질문들에 답해 주다, 적당히 첫 수업이 끝날 시간에 레오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주위를 보니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아는 척하지 마.”
“뭐?”
레오가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갑자기 나한테 호의적으로 굴면 애들이 이상하게 볼걸. 할 말 있으면 학생들 눈 없을 때만 찾아와.”
그 말에 레오가 턱을 쓸더니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 그럼 잘 가라. 네가 말한 약은 집에 구해 달라 말씀드릴 테니 걱정 말고.”
“그래, 고맙다.”
생각보다 쿨하게 끝이 났다.
마법에 대한 집착을 보아하니 인간 자체도 질척거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나와주면 좋지.
평범하게 가자고.
‘이제 해야 할 건 실력을 늘리는 것.’
10년의 공백을 이제부터 메워야 한다.
문제는 마법은 독학이 어렵고, 나는 학교에 개인 훈련장이 없어 공용 훈련장을 써야 한다는 점인데… 이미 해결했다. 레오와 함께 대련하기로 했으니까.
학교는 레오처럼 좋은 성적을 내는 학생들에게 개인 훈련장을 제공한다.
장부에 이름을 적을 필요도, 다른 이가 들어올 걱정도 없다.
물론 장소 하나만을 보고 대련하자는 부탁을 한 건 아니다.
레오에게 부탁을 한 건 레오의 움직임이 가장 교과서적인 만큼 배울 가치가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술 점수 8.5점이면 이곳 교수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모든 항목 공통으로, 일반인은 보통 -1에서 3 사이를 오가고, 이곳 학생들은 보통 3-5점 정도에 위치했다.
‘얼마나 올릴 수 있을지 궁금하네.’
그렇게, 레오와 훈련을 시작한 지 어느새 일주일이 되었다.
효과는 좋았다. 지난 10년간 제대로 마법을 쓰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컨트롤이 빠르게 정교해졌다.
“좋아! 이 정도면 실수로 민간인 목숨을 위협하지 않을 수준은 됐어.”
7일째 훈련을 마치고, 레오가 땀을 닦으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지금까지 내 마법의 문제는 너무 강해서 조절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웃으면서 저런 소리를 하는 것이 섬뜩하긴 해도, 레오의 말은 비유나 과장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수업 때처럼 마력을 아예 약하게 내는 법은 알지만, 적당한 수준으로 마법을 오랫동안 내보내는 것은 아직 어려웠다.
내 마법으로 사람을 해치는 꼴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보고 싶지 않았기에 지난 일주일간 레오의 광적인 부름에 응한 것도 있었다.
‘처음에는 좀 당황하긴 했지만… 형을 상대하려면 이 정도 마력은 되어야지.’
기본이 이 정도라니 만족스러운 재능이었다.
“아, 네가 말한 약은 좀 늦어진다더라. 나흘 정도만 기다리면 올 거야. 그때 가져다 줄게.”
“그래, 고맙다.”
“내일 보자.”
레오가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순조롭네.’
학기 초 잠시 늘어났던 관심은 내가 아예 마법을 쓰지 않으면서 차차 사그라들었고, 형에게서는 별다른 연락이 없다.
나는 상태창을 불러냈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칭호: 제국 제일의 멍청이
체력: -3.8 (+1.0)
정신력: -8.7 (+0.3)
마력: ?
기술: +0.515 (+0.5)
인상: -10
행운: -7.485 (+1.5)
특성: 여명777, 신력
일주일 훈련하고 늘어난 양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훈련장에 남아 마지막으로 좀 더 연습하다, 셔츠 안에서 펜던트를 꺼냈다.
실물로 있던 돈을 모조리 털어 산 장소 이동 아티팩트였다. 훈련장을 드나드는 것 자체도 남의 눈에 띄면 좋을 것이 없어, 아예 기숙사에서 곧바로 이곳으로 이동하도록 연결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구매자 명의도 레오의 이름으로 적어 전달받았다.
‘대비는 철저히 하면 좋지.’
나는 펜던트에 마력을 훅 불어넣었다.
눈을 감았다 뜨자, 평소와 같은 기숙사 방의 풍경이 펼쳐졌다.
쿵―
“…!”
코어 상태가 어딘가 평범치 않았다.
코어는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통은 그 둘이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된 일인지 코어가 붕 떠 덜걱거리고 있었다.
‘설마 약물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소설의 루카는 나이를 먹을수록 쇠약해졌으니 일리가 있다.
코어 상태가 양호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일주일 만에 반응이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슬슬 이것도 생각해야겠네.’
나는 달력을 펼쳤다.
우선은, 약재는 구했어도 지금의 레오는 미래의 레오가 아니기에 그걸 코어 강화제로 전환할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가진 소설의 지식을 바탕으로 배합 비율과 기타 조건을 조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강화제를 꾸준히 마신다 해도, 이미 10년간 코어를 억제당한 몸이 단번에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수는 없다.
형이 언제 알아챌 줄 알고 태평하게 기다릴 수는 없으니, 보조도구를 이용해서라도 더욱더 안정적인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붉게 빛나는 펜던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보조도구를 하나 더 구하는 게 좋겠는데.’
코어 강화하고 나면 다른 물건도 좀 보고.
거금이 들지만, 특정 마법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그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도구도 있다.
이런 마법 도구는 황실에 사용 등록을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인당 보유할 수 있는 최대 수량에 제한도 있었으나 다행히 성년 아래의 학생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형이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일 때는 유용하게 쓰일 테니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해 물건을 알아 둘 필요는 있었다.
나는 서랍에서 교내 은행의 거래명세서를 꺼내 들었다.
“음.”
인출 가능 금액란에 한눈에 세기도 힘든 숫자가 적혀 있었다.
아버지는 버린 자식이라도 일단 힘들이지 않고 해줄 수 있는 것은 해 주는 편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건 못 쓴다.
내 방 금고에 있던 돈이라면 몰라도, 은행 금고에 들어간 돈은 절대로.
루카는 1학년 때 식비나 학비를 제외하고서 우리 돈 가치로 100만 원도 채 쓰지 않았다.
‘방 안에만 있었으니 당연하지만.’
쓸 만한 도구는 적어도 오백부터 시작하고, 꽤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려면 적어도 천은 준비해야 한다.
그만한 돈을 인출하는 순간 형이 당장 이곳으로 날아오는 건 안 봐도 당연한 일이었다.
매일 뽑아 준비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1년 동안 백도 안 쓴 인간이 나눠서 뽑든 통째로 뽑든 단기간에 천을 인출하는 상황이 의심스럽지 않을 리가.
그럼 할 수 있는 건 하나지.
내가 직접 번다.
나는 신문을 책상 위에 펼쳤다.
‘아직 주인공이 활동할 시기는 아니지만, 이 시점이면 서서히 세상에 이야기가 나올 법한데.’
지난달에 발행된 일간지 묶음부터 오늘 자 일간지까지 한참 신문을 넘기다, 손을 멈췄다.
‘여기 있네.’
[월평균 6건 → 15건… 수도 외곽 행정 구역별 ‘마수 피해’ 건수 150% 증가]
최근 마수로 인한 피해가 늘었다는 기사.
원작에서 주인공은 황실 구성원으로서의 신분을 숨기고 직접 마수를 죽이러 다닌 적이 있었다.
올해 들어 마수 피해 사례가 급증했기에, 황실 산하 마법치안본부에서는 마수에 현상금을 붙인 뒤 마법사 개개인에게 토벌 자격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만 보면 할 수 있을 법한 대응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은 민간에 외주를 줄 만큼 수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아니다.
그럼에도 마법치안본부가 개인에게 마수 ‘청소부’ 자격을 위임한 이유는, 본부의 고급 인력을 그런 잡다한 일에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주인공이 나서지.’
아무튼,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둘.
‘마수에 현상금을 붙인 뒤 마법사 개개인에게 토벌 자격 부여’, ‘신분을 위조했던 주인공’.
최적의 상황이다.
하지만 제국민 대부분이 내 이름을 아는 상황에서 대놓고 활동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이것 또한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이때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이 본부가 상당히 썩어 빠졌다는 점이다.
본부는 마수 각각에는 나쁘지 않은 금액을 걸었으나, 각지의 관리 사무소 운영 예산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게 설정했다.
시설의 유지비용을 제하면 기껏 해 봐야 활동 보조비 수준밖에 나오지 않았다.
‘애초에 본부는 사람을 제대로 고용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본부는 마을 일이니 굳이 돈을 쓰지 않아도 마을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서 운영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는 뻔하다.
작중 주인공은 위조한 신분증명서를 내밀고 단 10초 만에 통과한다. 증명서를 맡아 두거나 마법사 등록 명부에 기록된 인명을 대조해 보는 과정도 없었다.
주인공이 하도 어이없어했기에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내가 독자였을 때는 그 일 처리에 주인공뿐 아니라 내 어이까지 같이 날아가 버렸지만, 지금으로서는….
‘괜찮은 상황이지.’
* * *
“그래, 도구의 힘을 확실히 빌리는 것도 좋지. 예산은 어느 정도로 잡았어?”
훈련장에 도착해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자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쓸었다.
레오가 직접 목록을 짜 줄 생각인지 가방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훈련장 바닥에 앉았다.
“고정해 두지는 않았고, 벌이에 따라 유동적으로 생각하고 있어.”
“유동… 응?”
“지금 돈이 전부 은행에 들어가 있어서 빼기 곤란해. 그래서 생각한 게 있어.”
“뭐가 없어?”
“없다는 말은 안 했는데. 아무튼, 한마디로 현금이 없…. 언제까지 이걸 내 입으로 말해야 하지?”
나는 웃으며 레오를 바라봤다.
레오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영혼 없이 웃음 짓고 있었다.
‘이해는 하지만 아직 제대로 말도 꺼내지 않았다.’
나는 가방에서 두툼한 종이 뭉치를 꺼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당연히 대책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