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0)
“그래? 역시 그렇지? 하하하!”
“그래, 오늘은 훈련보다는 이걸 말하러 온 거야.”
나는 보기 쉽게 훈련장 바닥에 종이를 펼쳤다.
한시름 놓은 듯이 웃던 레오가 그 내용을 확인하고는 다른 의미로 웃음 지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상식적으로는 그렇겠지. 하지만 비상식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어서 말이야. 지금부터 설명해 줄게.”
레오가 그 말에 손을 내저었다.
“잠깐, 말하기 전에 기다려 봐. 너, 네가 밖에 돌아다니면 소문부터 퍼질 게 뻔한 건 알고 있냐? 학교야 지금 네가 평소처럼 입 꾹 닫고 다니는 걸 아니까 별 이야기가 안 도는 거지, 바깥은 네가 이제는 사람다운 행색으로 다니는 것까지만 알게 될 거라고. 바깥사람들은 학교 친구들처럼 계속 마주치는 게 아니라서 네가 여전히 사회 부적응자처럼 군다는 걸 알아차릴 시간이 없어!”
“이거 걱정이야 뭐야?”
“걱정이지, 인마.”
딱히 사회 부적응자처럼 군 적은 없지만….
실력을 올리는 것이 시급한 상황에 굳이 누군가를 붙잡고 대화하지 않았을 뿐인데, 이놈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였나 보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 아무튼, 나도 당연히 알아. 그 정도 대책도 없이 이런 일을 계획하지는 않지. 자, 올해 들어 마수 피해 사례가 급증했다는 건 알지? 그래서 마법치안본부에서 개인에게 청소부 자격을 부여하기 시작했어.”
“거기까진 유명하지.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지원자가 많이 없는 걸로 아는데. ”
“그래, 맞아.”
마법사는 대부분 귀족 계층에 있다.
마력이 강할수록 보통 작위가 높다. 마력은 유전이고, 작위는 이미 선대에 부여받은 것이니까.
따라서 토벌 보수는 실력 좋은 마법사들에게 좋은 인센티브로 작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마법사들이 사는 곳까지 마수가 침입할 수는 없으니 위험에 둔감할 수밖에.
이런 잡일을 맡아 한다고 해서 명예가 드라마틱하게 높아지는 것도 아니니 더더욱 이 일을 할 이유가 없다.
결국 돈벌이가 시원찮은 비마법사들만이 이 일에 자원하는 구조가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 같은 동네 주민으로 구성된 각지의 사무소들은 그런 자들을 몰래 통과시켜 마수를 처리해 왔다.
아직은 그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때 레오가 난감한 얼굴로 종이를 헤집으며 말했다.
“사무소를 찾는 사람이 적으니 네가 더 눈에 띌 거야. 우선 이것 먼저 묻자. 너 혼자 갈 거야?”
“그래야지. 너한테는 아티팩트 장인 좀 물어보려고 말 꺼낸 거야.”
그 말에 레오가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 입을 열었다.
“일단 현실적인 문제 하나만 생각해 보자. 너는 네 이름으로 활동 못 하잖아. 학생 신분이라 신원 확인 꼼꼼히 할 거라고. 수도에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네 얼굴을 알 텐데 어떻게 넘기려고 그래?”
그래. 이렇게 생각할 만하지.
하지만 막상 가면 이 지극히 상식적인 예상이 산산이 부서지게 될 것이다.
“이미 조사했어. 네 예상하고 다르게 전혀 철저하지 않아. 그리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당연히 신분을 바꿔야지. 다 생각해 뒀어.”
“…세 번이나 말해서 미안한데 너 이미 제국에서 유명한 건 알지?”
“알지.”
그 대답에 레오가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듯 쳐다봤다.
“신분을 잘도 바꿀 수 있겠다. 얼굴을 가린다 해도 눈은 어떻게 가릴 건데? 네 눈동자 색은 제국 신민 전부가 알걸?”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가 가진 분홍색 홍채는 제국에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아니, 정확히는 플레로마의 전유물이다.
마력 색은 홍채 색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마찬가지로 분홍색에 가까운데, 이 역시 플레로마를 대표하는 색이다.
가문 사람들도 전부 옅은 갈색이나 하늘색 홍채를 가지고 있기에, 루카의 홍채 색은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다 가려 놓아도 사실상 눈동자와 쓰는 마법 색깔로 내가 누구인지 들킬 수 있는 셈이다. 레오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사실 당연했다.
‘사실 신력 특성이 있으니 마력은 이미 해결했어.’
그쪽에서는 그냥 마력 대신 신력을 쓰면 된다.
문제는 눈이다. 눈은 단순히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다고 해결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소설 주인공이 써먹은 방법을 안다.
“그래, 그것도 방법이 있어. 대신, 네가 수고 좀 해 줘야 해.”
“나? 왜?”
레오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 * *
나는 레오가 만들어온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레오가 팔짱을 끼고 의문스러운 듯 눈을 좁혔다.
“…너 이런 건 어디서 안 거야? 부작용이 있어서 집안 어른들도 잘 안 쓰려고 하시는데.”
눈 색을 바꾸기 위해 부작용을 이용했다.
저 약에는 마력의 색이 변하는 부작용이 있다.
당연히 단순 염색이 아니라 코어에 영향을 미쳐 생기는 문제기에 본래 힘과는 다른 힘을 내보내게 된다. 그러니 다들 기피하지.
나는 레오의 물음에 태연하게 대답했다.
“공부했어. 주변에 아는 황실 분 계시면 범죄에 악용될 수 있으니 규제 좀 고려해 보시는 건 어떠냐고 전달해 줘. 일단 한 내년 즈음에.”
주인공이 할 일을 선수 쳤으니 언급 한번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물론 어디까지나 주인공이 의심하지 않는 선에서.
“…얘는 뭐 써먹을 것만 다 써먹고 규제하자네…. 아무튼, 너 유학이라도 갔다 왔냐? 제국 내에서 이렇게 잘 알기는 어려운데. 아니면 마법 약학을 공부했다거나.”
“그런 셈이지. 약 준비해 줘서 고맙다.”
알아서 다 이야기를 만들어 주니 편리하다.
내가 화제를 돌리려 건넨 인사에 레오가 미소 지었다.
“고마워?”
“응.”
약에서 눈을 떼고 레오를 바라봤다.
내내 회의적으로 굴다가 갑자기 저런 표정을 짓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할 말 있으면 하라는 시선을 보내자, 레오가 본론을 꺼냈다.
“고마우면 내 부탁도 하나 들어줘.”
“뭔데.”
“아티팩트는 내가 알아서 의뢰해 줄게. 대신, 나도 같이 가. 보수는 신경 쓰지 말고 네가 다 가지고.”
‘이놈 뭐래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상관없는데 이게 왜 부탁이지? 시간 낭비야.”
“내 시간까지 신경 써 줄 필요는 없고. 나는 네 실력을 아직 믿을 수가 없어.”
“지난 일주일간 봐서 알겠지만, 마수 좀 때려잡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생각하거든. 안전하게 하급부터 시도할 거야.”
“너한테는 중급도 어렵진 않겠지. 그게 아니라 주변을 다 태워 먹을까 봐 무서워서 그런다.”
그 말에 나는 내심 동의했다.
확실히, 레오 정도의 실력자가 보기에는 내 처리가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 컨트롤을 배운 지금은 아예 초토화를 시켜 놓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사람 한 명쯤 더 있어서 나쁠 건 없다.
“그래, 나야 좋지.”
그렇게, 우리는 다음 날 곧바로 찾아 놓은 사무소로 향했다.
레오가 인상을 쓰며 옆으로 슬쩍 물러났다.
“…좀 떨어져라. 말로만 들었을 때도 이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더 이상하네. 뭔 도둑놈도 아니고….”
“나라고 이게 좋아서 이렇게 하고 다니는 줄 알아?”
나는 가면을 고쳐 쓰며 레오의 불평에 퉁명스레 답했다. 멀끔하게 입은 레오와 달리 나는 전신을 새까만 로브와 모자로 둘둘 감싼 상태였다.
레오가 꺼림칙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홍채는 제대로 바뀌었네.”
원래의 분홍빛과 대조되는 새파란 눈만이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흔하디흔한 색이라 이런 색으로 사람을 판별하기는 어렵다.
레오가 주위에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마법을 걸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기억해. 너는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고용한 수행원인 거야. 차림새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 얼마 전에 교황령에서 온 여행자라고 둘러댈 거니까 입 열지 마. 알겠지?”
“알아. 호칭은? 다른 사람 앞에서 신분 낮은 사람이 대놓고 네 이름을 부를 수는 없잖아.”
“흠… 쓸데없는 호칭 붙이지 말고, 최대한 생략해.”
한참을 걸어 숲 바깥쪽으로 나가자, 외벽이 손상된 목조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레오가 눈살을 찌푸리며 완드로 빛을 비추어 주변을 확인했다.
“잘못 왔나? 이쪽으로 오는 게 맞는데.”
“그래, 제대로 왔어.”
주인공이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했던 것이 기억에 있다.
이 건물이 여태 봤던 것 중 가장 폐허처럼 생겼으니, 이곳임이 틀림없다.
나는 자연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한참이 지나도 들려오는 소리가 없자 레오가 고개를 기울였다.
“반응이 없네. 사람이 없나?”
“아니, 있어.”
나는 힘을 실어 문을 두드렸다.
그때, 문 가운데 달린 작은 창이 신경질적으로 열렸다.
귀찮은 듯 인상을 쓴 두 눈이 내게 향했다.
“뭐요?”
“청소하러 왔습니다.”
쾅―!
창을 소리나게 닫는 소리에 레오가 어깨를 움찔거렸다.
생전 처음 겪는 문전박대에 레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무슨…!”
“기다려 봐.”
당황할 필요 없다. 주인공에게도 이랬으니까.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아까의 무시무시한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상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있었다.
상대가 낡은 수첩 하나를 내밀었다.
“이 시간에 일하러 오는 분들이 계실 줄은 몰랐네. 여기에 이름 적으세요.”
“신분증명서도 가져왔는데, 필요 없습니까?”
내 물음에 상대가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있어요? 있으면 보여 주시고. 알겠지만 그런 거 다 요구하면 저것들 잡을 사람이 없거든요. 그냥 잡겠다 하면 감사히 여기고 들여보내 줘야지.”
그 말에 레오가 안타까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기 사람이 많이 부족하다 들었는데, 맞나 보네요.”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그냥 아예 없지. 지난 일주일 내내 여기 문 두드리는 사람들 전부 길 잃어버린 사람들뿐이었어. 그런데….”
관리인이 둘을 위아래로 훑더니 기대를 버린 표정으로 허허 웃었다.
“패기가 좋네요. 보아하니 무기도 안 들고 왔나 본데, 여기 있는 거 쓰고 내일 아침에 돌려주러 오면 돼요.”
“아, 저희는 이미 있습니다.”
“응?”
관리인이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자 레오가 허리춤에서 완드를 꺼내 보여 주었다.
“오늘은 길게 있을 생각이 아니라서, 검은 필요 없습니다.”
“…마법사?”
관리인의 눈이 커졌다.
그 물음에 레오가 의아하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 마법사입니다. 마수를 처리할 자격을 가지는 건 애초에 마법사만….”
레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멍하게 서 있던 관리인이 이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여, 여기에 진짜 마법사가 온 적이 없어서 그만…!”
“아뇨,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기 마법사가 아닌 사람이 온다고요?”
“…….”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의 안전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인 걸 충분히 알고 있으니 어디에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그게, 보통은….”
상대는 당연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기울여 레오의 귀에 속삭였다.
“퍽이나 귀족 말 믿고 마음 편하게 말하겠다, 그치? 저분 말투부터 바뀐 건 눈치 못 챘나?”
“…나도 말하고 나서 알았으니까 비꼬지 마라.”
레오가 헛웃음을 지으며 나를 옆으로 밀어냈다.
본부가 바뀌지 않는 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니 어딘가에 말을 한다 해도 피곤해지기만 할 뿐. 적당히 상황을 잘라야 한다.
나는 말을 고르고 있는 레오 대신 입을 열었다.
“사정은 알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하도록 하죠. 우선 저희는 최근에 마수 출몰 빈도가 늘었다는 기사를 보고 이곳에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요.”
“아, 예. 그, 그럼 두 분 다 마법사이십니까?”
“예.”
레오의 대답에 관리인이 황급히 수첩을 확인하고는 나를 혼란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돌려보내지는 않겠지만, 온몸을 검은 로브로 칭칭 가리고 가면을 쓴 행색은 누가 봐도 좀 수상했다.
“이쪽 분은….”
“저는 교황령에서 왔습니다. 지금은 여기 옆에 계신….”
“제, 제 수행원입니다. 하하하! 제국을 여행한다고 하길래!”
내가 할 말을 예상한 레오가 나를 황급히 뒤로 밀며 대답했다.
“그러시군요. 이렇게 직접 와 주시니 감개무량합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예.”
“그럼 이 마석을 챙겨 가세요. 결계가 있어서 이게 없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이런저런 인사치레를 마치고 건물을 나섰다.
한참 걸어 결계 안까지 도착하자 나는 비웃음을 터트렸다.
“뭔 말을 그렇게 급하게 해? 내가 뭐라고 부를 줄 알고?”
“별로 제대로 말할 거란 기대가 안 되더라….”
놈이 시커멓게 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직 마수를 만나기도 전인데도 진이 전부 빠진 듯 수척해진 상태였다.
“잠깐만.”
그때, 잔잔한 바람 속에 이질적인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피 냄새.”
“음? 안 나는데.”
대답하지 않고 그쪽을 향해 걸음을 돌렸다.
낌새를 눈치챈 레오가 내 앞에 두꺼운 장막을 두르고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길수록 어떤 생물이 부지런히 무언가를 긁는 소리가 났다.
“…!”
까득— 까드득—!
“이런.”
우뚝 멈춰서 발치를 바라보았다.
보랏빛으로 오염된 쥐들이 서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아니, 이미 쥐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형태가 뒤틀린 상태였다.
고름과 피가 뒤섞여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났다.
“…젠장….”
비위가 상했는지 레오가 코를 틀어막고 뒷걸음질 쳤다.
“사람도 먹겠는데…. 한두 마리가 아냐. 주위에 서식지가 있나?”
“그래 보여. 그리고 대부분 폭주하게 생겼네.”
“그래.”
“곧 우리한테도 오겠고 말이야.”
“…그래, 이런 망할….”
레오가 눈을 꽉 감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서 완드를 휘둘렀다. 완드가 적당한 길이의 검으로 변했다.
“너무 불평하지 마. 시작부터 이런 놈들이면 환영이지.”
나는 미소지으며 완드를 뽑아 들었다.
벌써 사람 냄새를 맡았는지, 붉은 점들이 사방에서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