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1)
[키에엑―!]
쾅―!
“그냥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데?”
그 자리에서 쥐를 처리하기 시작한 지 30분째, 놀라울 만큼 아무 문제도 터지지 않았다. 이만하면 청소한다느니 하는 말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레오가 죽은 식인 쥐를 조심스레 들어 자루에 넣었다.
다리를 타고 미친 듯이 오르는 쥐들은 그 기세와 달리 손짓 한번에 쉽게 나가떨어졌다.
이제는 사체를 정리하는 것이 더 번거로운 상황이었다.
나는 장막 위를 불태워 쥐를 전부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간단히 대답했다.
“네가 강해서 그런 거지.”
“그런가…. 너도 자루 다 채웠냐?”
“어.”
“그럼 이제 정리하고 가자.”
레오가 장화 끝에 걸리는 쥐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전날 비가 와 질척이는 흙바닥에 손바닥만 한 쥐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레오가 혀를 찼다.
“처리해야 하는 건 알지만 이렇게 많으니 좀 불쌍하네. 치료제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마수들은 평범한 동물에 후천적으로 마력이 깃들어 인간처럼 코어를 가지게 된 경우로, 계속해서 마력에 갈증을 느낀다.
신력을 주기적으로 불어넣어 주는 것 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다. 그걸로라도 완치가 되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확실히 그런 점을 보면 불쌍하긴 한데.’
어떻게든 살점을 파먹으려고 발악하는 쥐 떼를 눈앞에 두고 그런 감상을 느끼다니, 아주 여유로웠다. 보통은 살기 바빠 식인 쥐를 생각해 줄 시간은 없지.
레오는 소설에서도 이런 사람이었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젠가 마수 전용 치료제를 개발하기도 했다.
나는 꽉 찬 자루를 묶어 허공에 띄우고 입을 열었다.
“치료제는 만들면 되지. 나중에 네가 만들어 보지 그래?”
“내가? 에이, 어른들도 못 하신 걸.”
“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되짚어 보니 내가 읽은 그 부분은 지금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일이었다.
어쨌거나 미래의 레오가 뭘 만드는지 아는 입장에서는 웃음만 났다.
나는 발걸음을 돌려 출발지로 돌아가며 레오의 어깨를 툭 쳤다.
“네가 안 하면 내가 만들 테니까 너희 집 연구실 빌려줘라.”
“우선 넌 살고나 말해.”
한참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장소에 도착했다.
마침 바깥에 나와 있던 관리인이 둘을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빠르게 끝내셨군요.”
“이것만 두고 다시 돌아갈 겁니다.”
나는 쥐를 담은 자루를 건물 앞에 내려놓았다.
무언가가 가득 들어 있는 듯한 형체에 관리인이 의문스러운 눈으로 그 앞에 다가섰다.
“이게 왜 이렇게… 음?!”
가득 찬 자루를 열어 본 관리인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이들 나와서는…. 이렇게까지 많은 식인 쥐는 오늘 처음 봅니다.”
“그렇게 많나요?”
“예, 이 정도면 씨를 아예 말려 버리신 것 같은데요. 보통은 많이 발견해도 대여섯 마리가 전부인데….”
“아마 저희 마력을 느끼고 평소보다 더 많이 출몰했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마력에 굶주린 짐승들이니까요.”
레오의 설명에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만한 양이면 당분간은 저 종류는 안 나오겠네요. 안 그래도 가끔 민가로 가는 것들이 나타나서 골치가 아팠는데, 다행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아, 이건 달아 봐야 알겠지만, 이 정도면 적어도 5만은 하겠습니다.”
관리인이 자루를 들었다 놓아 보고는 말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 일하고 대략 한화 가치로 500만 원을 손에 쥐었다. 어디서도 이런 일거리는 못 찾는다.
‘박멸 수준으로 잡아 왔으니 뭐….’
돈이 흘러넘치는 가문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 현실감이 부족한 레오 역시 시간 대비 보수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럭저럭 만족하는 얼굴이었다.
또다시 결계 안으로 들어선 레오가 의외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한 달 치 용돈을 이렇게 한 시간 만에 벌 수 있구나. 이런 일도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네. 네 덕에 좋은 경험 했다.”
“그래. 그런데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보통 한 시간 일해서 이만큼 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건 당연히 알… 알지.”
레오가 눈을 굴리며 대답했다.
모르는 것 같은데. 아주 그냥 부잣집 자식의 전형이다. 나중에 주인공 따라 황실에 가서 재정 관련 일을 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내가 제 말을 전혀 믿지 않는 걸 눈치챈 레오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조사했던 것 중에서는 괜찮은 놈들을 마주쳤어.”
“그래.”
속도가 빠르고 쥐치고는 덩치가 커 비마법사에게는 쉽지 않겠지만, 마법사인 우리는 그냥 신체 장막을 둘러 살을 뜯지 못하게 하면 끝이니 반가운 상대였다.
“이 난이도에 5만이라니, 새벽 내내 있으면 네가 원하는 물건 두 개는 사고도 남을 만큼 벌 수 있겠는데? 나까지 있으니까 더 빨리 끝날 거 아냐.”
“그래. 그런데 너도 여기 계속 있을 생각인가 보네. 적당히 잡고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이왕 온 거 확실히 해야지. 다들 자원해서 오질 않는다니까 한번 왔을 때 제대로 하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뭐, 네가 그렇다면야.”
그때, 나는 또다시 걸음을 멈췄다.
레오가 그런 나를 불길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뭐, 또 피 냄새 나?”
“어.”
“너 진짜 개코네. 난 안 나는데.”
“이번엔 좀 더 깨끗해. 아까처럼 고름 섞인 피가 아니야.”
“…그렇게 자세히 알아?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진짜 플레로마 사람인 줄 알겠어….”
레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내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말소리가 멈추고 나니 작은 생물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바람이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남았다.
타다닥―
‘음?’
고요 속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를 들은 순간, 정체를 알아보기 힘든 덩어리가 수풀에서 튀어나왔다.
콰앙―!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장막을 치우고 뒤로 물러났다.
“깜짝이야.”
“뭐야?!”
상황을 보니 공격하려 온 것은 아니고, 그냥 마구 달리다 부딪힌 모양이었다.
다른 공격이 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 그 자리에 엎어진 회갈색 덩어리를 뒤집었다.
“토끼네. 오염된 놈은 아니야.”
가져온 물을 흘려 토끼의 정신을 깨우는 동안, 내 방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레오가 뒤에서 소리쳤다.
“야, 그만큼 거리 띄웠으면 장막에는 힘 다 실어도 돼.”
“언제는 힘 죽이라며?”
“그건 장막 모서리 얘기지. 그리고 지금은 대련이 아니잖아. 반동 생각해서 하체에도 땅이랑 연결해서 힘 실어야 하는 거 잊지 말고!”
“이 상황에도 수업이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레오가 말한 것은 방금 마법을 쓰면서 나 역시도 느낀 점이었다.
‘이래서 대련 외 연습도 중요하다니까.’
학문으로서의 마법 대련과 살상용 마법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에는 실전적인 시간을 가지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물론 저런 작은 것들이 주로 출몰하는 이곳에서 그 효과를 전부 보긴 어렵고, 나중에 정 실전을 찾을 수 없으면 플레로마라도 때려잡아야지.
‘그런데….’
애매하네.
나는 다시 일어나 도망치는 토끼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과연 여기 위험한 놈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저 토끼는 앞에 뭐가 있는지 확인도 하지 못하고 정신없이 달려왔다.
게다가 아까 또 다른 피 냄새가 났지.
‘돌아가야겠다.’
오면서 확인한 이곳의 결계는 하급 결계였다. 위험한 마수가 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오염된 동물이라 해 봤자 아까 만난 대로 쥐나 토끼 정도겠지.
마수가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굳이 이 밤에 사람 먹는 육식 동물을 만날 필요는 없다.
나는 흙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레오, 방어 태세 갖춰. 일단 돌아서 피하자.”
“…안 그래도 말하려 했는데. 저거 이리 발자국 맞지?”
이 주위에 이리가 산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저 발자국은 누가 보아도 그쯤 되는 동물의 것이다.
레오가 완드를 고쳐 잡고는 신체 장막의 강도를 높였다.
[크으으으으으….]
그때 표현하기 어려운 울음소리가 숲 전체로 희미하게 퍼졌다.
어떤 동물인지는 몰라도, 초식동물의 것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이미 늦었네.
천천히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그 순간, 두 개의 붉은 빛이 선분을 그리며 죽 이어졌다.
[크어어어어억!]
콰앙―!
“윽!”
몸을 낮춰 중심을 유지했다.
토끼와는 강도 자체가 달랐다.
다행히 아까 레오의 조언을 그대로 따른 덕에 시전자가 되레 반동으로 튕겨 나가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
‘장막에 금이 갔어.’
일반적인 동물이 내 장막을 깰 수 있을 리가 없다. 아까 보았던 빛도 그렇고, 이건 오염된 놈일 가능성이 크다.
완드를 손에서 굴려 검으로 바꿔 냈다.
하늘을 향해 새로 장막을 만들어 부수자, 둘이 선 곳이 잠깐이나마 밝아졌다.
‘…!’
미친 건가.
나뿐 아니라 레오도 빛이 꺼지기 직전 확인한 찰나의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그냥 이리가 아니었다.
이리의 귀 안쪽에 단단한 뿔이 자라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조합에 입이 다물리지 않았다.
‘미쳤군.’
아마 장막에 금이 쉽게 간 건 저 뿔의 덕도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금이 간 것에 놀란 것이 아니다. 거기까지는 그나마 상식선의 일이었다.
내 시선이 이리의 다리로 향했다.
길고 두꺼운 회색 털이 자리한 가슴께와 달리, 다리는 짧고 노란 털로 덮여 있었다.
단순히 털 색이 다른 게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그건 다른 동물의 다리였다.
이 이상으로 상황을 파악할 시간은 없었다.
이리는 우리의 마력에 반응해 더 날뛰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악―!]
쾅―! 콰앙―!
나는 계속해서 마법을 쏘아 이리의 시야를 방해했다.
그때 주위에 있던 식물이 굵게 변하더니 길게 늘어나 이리에게 들러붙었다.
레오가 전에 내게 사용했던 마법이었다. 다리를 붙잡으려던 시도는 실패했지만, 놈의 뿔은 잡아챌 수 있었다.
제 다리가 아니라 초식동물의 다리가 붙은 탓에 이리는 쉽게 중심을 잃었다.
그 틈을 타 완드를 휘둘렀다. 이리 뒤의 나무가 반대로 꺾여 쓰러졌다.
콰앙―!
폭음에 이리의 비명이 묻혔다.
전혀 힘 조절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만큼은 레오도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창백하게 질린 레오가 피부에 튄 피를 닦아 내며 사체에서 눈을 피했다.
“…키메라야.”
“그래.”
서로 다른 동물을 저렇게 엉성하게 연결해,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말이 안 되는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로지 마법뿐인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마법이 자연 발생해 다른 동물을 접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누가 보아도 확실하게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아까 결계에서도 느꼈지만, 분명 네가 찾은 자료에서도 여기는 그렇게 위험한 지역이 아니었어. 대체 왜 이런….”
레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왔다 갔을 때에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다.
시기의 차이가 있는 만큼 등장하는 짐승이 약간은 다를 가능성을 생각하긴 했지만, 누가 봐도 뒤가 구린 마수가 나타날 줄이야.
“애초에 이곳 결계도 하급이었지. 그리 위험한 놈들이 나오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야.”
나는 놈의 숨이 완전히 끊어진 걸 확인하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자세히 마수를 살폈다.
“레오, 가까이 와서 봐 줘. 이놈 본체가 뭘 것 같아?”
“하….”
레오가 도저히 두 눈 뜨고 보고 싶지 않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반대편에 자리를 잡았다.
“…머리부터 가슴까지 이리네. 뿔이랑 다리는 산양인 것 같고. 그러면 이리 쪽이 본체겠지.”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왜,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레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어나.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뭐?”
“아무리 키메라 생물이라 해도 습성은 본체의 것을 따라가겠지. 아까 본 발자국 기억해?”
“…….”
말뜻을 알아챈 레오의 얼굴이 한순간에 굳었다.
사람 손바닥보다 조금 작았던 그 육식 동물 발자국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건 지금 우리가 죽인 이리가 아니라 다른 개체의 것이다.
레오가 작게 중얼거렸다.
“…다리가 산양인데 이리 발자국이 남을 이유가 없지.”
“그래, 이리의 습성대로 놈들은 무리 생활을 하고 있었을 거야.”
“보통 한 무리에 몇 마리씩 있지?”
“글쎄, 운 좋으면 열 마리 안쪽일 거야.”
완드를 고쳐 잡았다.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마력의 파동이 피부에 닿았다.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르르륵….]
이제 와서 지원 인력을 부를 수는 없다.
뒤를 도는 순간 앞뒤 안 재고 미친 듯이 쫓아올 테니까. 마력에 굶주린 이 이리들이 마법사를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어찌어찌 잘 따돌린다 해도 놈들이 민가로 내려간다면 많은 이들의 목숨이 위험하다.
‘결계가 있으니 한번 시도나 해 볼까.’
아니, 안 된다. 결계는 보조도구일 뿐 완벽한 것이 아니다.
쥐들이 가끔 민가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결계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할 것은 뻔했다.
나는 완드를 손에서 둥글게 돌렸다.
붉은빛을 띠는 창살 하나가 만들어졌다.
“동트기 전에 저것들은 다 처리하고 가야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