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2)
콰앙―!
이리와 대치한 지 10분째, 나는 또다시 완드를 가로질러 허공에 장막을 펼쳐 냈다.
이리의 육중한 몸이 장막에 부딪혔다.
완드를 든 팔에 마력을 거세게 밀어붙여 방어 자세를 유지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뒤 나는 이리 떼를 훑었다.
‘다른 놈들은 키메라가 아니군.’
달빛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숲속이었지만, 끊임없이 마법이 쏟아져 시야 확보에는 무리가 없었다.
긴장한 탓인지, 새벽이라 날이 찬 탓인지 피부가 오싹해졌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계속해서 완드를 휘둘렀다.
‘솔직히….’
이런 하급 마수 출몰 지역에 이리가 나타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누군가 악의적으로 손을 댄 이리가 나올 거라고는, 더더욱.
소설에서도 이리가 나온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고, 주인공 역시 단순 탐사 목적이었기에 의도적으로 안전한 곳을 골랐었다.
직접 조사를 했을 때도 이곳이 안전하다는 건 수많은 자료를 통해 이미 검증받은 사실이었다.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됐지만… 지금으로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히려 잘 됐는지도 모르지.’
좋게 생각해 보면,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미친놈도 아니고.’
솔직히 무섭다. 아무리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도 죽을 수 있는 상황을 눈앞에 두고 그리 긍정적으로 사고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아야지. 마냥 긍정적일 필요는 없어도 후회에 내 생을 양보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땀이 밴 손으로 완드를 꾹 눌러 잡았다.
콰앙―! 쾅―!
이리는 지칠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두꺼운 장막 앞으로 달려들었다. 몇 번이나 머리를 박았으면 정도껏 나가떨어져 줄 법도 한데,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완드를 그대로 앞으로 찌르듯 내질러 이리 하나를 저 멀리 내쳤다.
콰앙―!
[그으으으으으윽….]
고통에 찬 이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까부터 머리가 아플 만큼 진하게 진동하던 피 냄새에 새로운 비린내가 덧입혀졌다. 이리들이 동족의 피 냄새에 더욱 미쳐 날뛰었다.
나는 그에 맞춰 공격 속도를 높였다. 그때, 시야 한쪽에 무언가 스쳐 지나갔다.
“…!”
오른쪽 공간이 번쩍 빛났다.
이리의 붉은 눈이 필름처럼 뚝뚝 끊겨 얼굴 옆까지 밀려왔다.
콰아앙―! 쿠웅―
“윽!”
반동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급하게 완드를 휘두른 탓에 다리에 힘을 불어넣을 시간이 없었다.
이리는 뒤로 쓰러진 나무와 함께 죽었는지, 또다시 피 냄새가 강하게 코끝에 맴돌았다.
“루카스!”
어디선가 레오가 소리쳤다.
이리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서로 꽤 멀어져, 소리가 잔뜩 울린 채 들려왔다.
“네 주위나 잘 살펴!”
나는 몸 위로 날아드는 이리를 쳐 내고는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저놈은 이 상황에 남 걱정할 여유가 다 있네.
나는 바닥을 박차고 일어났다.
쓰러진 순간부터 이리에게 시간을 내어 줬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한 번의 선택이 내 앞날을 가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상대로 남은 두 이리는 미친 듯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눈을 꽉 감고 주저 없이 완드를 양손으로 잡아 바닥으로 꽂아 내렸다.
콰아아앙―!
완드에서 쏟아진 새하얀 빛이 숲을 밝혔다.
처리를 마치고 나를 도우러 오던 레오가 눈앞을 가렸다. 나는 인기척이 가까워진 걸 느끼고 멀리 떨어진 늑대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레오, 그쪽 처리해 줘!”
레오가 퍼뜩 팔을 내리고 바닥을 살폈다. 엎어진 이리 하나가 비틀대며 일어나고 있었다. 척 봐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게, 이미 힘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
레오가 침을 뚝뚝 흘리며 다가오는 이리를 지켜보며 한 발짝 물러났다.
이리는 레오가 있던 자리에 입질하더니 또다시 비틀거렸다. 마법을 쏘자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레오가 그 앞에 다가가 숨이 꺼져 가는 이리를 바라봤다.
‘그 키메라 생물을 생각하면….’
이 이리들도 전부 사람이 이렇게 만들었겠지.
당장 놈들을 살려 두면 우리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고, 어찌어찌해서 우리만큼은 산다 해도 놈들이 민가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으니 지금 여기서 이리를 전부 죽여야만 했다. 이 결정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약이 있었다면?’
놈들이 이렇게 고통받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마수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 수도 확연히 줄었겠지.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었을 것이다.
레오가 손을 이리의 가슴께에 얹었다.
마력을 흘려 넣자 코어의 윤곽이 잡혔다.
‘루카스가 마셔 왔던 게 무슨 독이지? 코어를 억제하는 독이라면 임시방편으로 도움이 될 거야. 궁극적으로는 코어 자체를 제거해야 하니… 무언가를 넣어야겠지.’
레오가 턱을 쓸었다.
그 독을 강화하는 재료를 찾아 넣어 볼까.
심장으로 침투하기 직전까지 작용하도록 하려면 종마다 실험을 거쳐야 할 것이다.
몸에 퍼진 독을 코어 해체 후 해독해야 하니, 그 시간과 약이 드는 시간을 계산해 적절한 시기에 약을 투입해야겠지.
‘2제까지 함께 공급하려면 비용 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텐데.’
레오가 바로 앞까지 온 루카를 눈치채지 못한 채 생각에 몰두했다.
“…….”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레오는 죽은 이리를 관찰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거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 상황 맞나.’
지금… 오염 치료제가 만들어지는 시기가 많이 앞당겨진 현장을 목격한 것 같은데.
나는 그 옆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치료제 만들 거냐?”
“어? 어떻게 알았어?”
“네 얼굴에 다 쓰여 있다.”
“응? 아무튼, 한번 시도는 해 보려고. 시도는.”
“잘됐네. 너라면 성공할 거야.”
“흠….”
이런저런 계산에 눈살을 찌푸렸던 레오가 씩 웃었다.
“그래, 성공하게끔 해 봐야지.”
10년 후를 읽은 입장에서 그의 성장 과정을 직접 목격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익숙한 것이 없는 이곳에서 나름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마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내가 좀 일을 앞당긴 것 같지만,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다친 곳 있어?”
“팔뚝 좀 긁힌 것 말고는 없어. 너는?”
“없어.”
레오는 몰라도 나는 신원 문제가 있으니 상처처럼 인물을 특정할 단서를 만들어서는 안 됐는데, 다행히 큰 상처가 생기지는 않았다.
나는 챙겨 온 자루를 집어 들고 이리를 향해 고갯짓했다.
“자, 정리해서 돌아가자.”
* * *
“오셨군요. 곧 아침인데도 안 오셔서 걱정을….”
관리인이 둘을 반기다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공중에 반쯤 띄워 가져온 자루가 아까보다도 더 컸다.
‘대체 얼마나 때려잡은 거지?’
마수가 설치는 지역이라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지역은 또 아니라 저만한 양이 잡힐 리가 없다. 어디까지 나가면 저렇게 잡히는지 경이로움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경악과 감탄에 물들어 있던 그의 눈이 뒤늦게 두 사람의 옷으로 향했다. 어두운 옷이라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피와 흙탕물로 오염되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멀쩡합니다. 이것부터 좀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레오가 자루를 모아 바닥에 내려놓았다. 관리인이 자루를 받아 들어 끈을 풀었다.
“어디 한번… 음?”
관리인이 사색이 되어 그대로 굳었다.
‘저럴 줄 알았다.’
나는 그가 더 놀라기 전에 부연 설명을 했다.
“이리입니다. 아무래도 치안본부에 연락을 좀 넣으셔야겠습니다.”
“이, 이게 여기에 있을 리가….”
이 정도면 적어도 중급 이상은 되는 마수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봐도 그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급 위험 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에서 나올 마수는 아니었다.
물론 마수의 급을 떠나서, 이곳에서 평생 자라오면서 이리가 사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 그중에 키메라 이리가 하나 있습니다.”
“예?!”
“누군가 의도적으로 마법을 걸어 다른 생물과 이리를 결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그 생물에 대해서는 함구령이 내려올 겁니다. 언론에 섣불리 말을 꺼내지 마세요.”
마법사가 이런 곳에 발을 들이는 게 흔한 일이 아니니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올 가능성이 크다.
아예 모르면 좋겠지만, 이곳과 연결된 은행에서 돈을 이체받아야 하니 이야기가 새어 나가지 않을 수는 없다.
내 말에 관리인이 뒤 구린 일에 실수로 발을 담근 사람처럼 사색이 되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예, 당연한 말씀입니다.”
관리인의 패닉으로 정적이 찾아오자, 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럼, 보수는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이곳에 보관 중인 현찰로는 충당이 안 될 텐데요.”
도난 위험이 있어 이곳에는 소액만 비치해 놓는다.
애초에 여태까지 보수를 받아 간 자들은 전부 비마법사였기에 큰 액수가 나가지 않았기도 했고.
“아, 그건….”
관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서랍을 열었다.
제국 중앙은행의 로고가 박힌 통신 마법 도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한참을 사용하지 않은 듯 거미줄이 끼어 있었지만, 통신 마법 도구는 장식이 아니었다.
은행에 연락을 보낸 지 10분도 되지 않아 레오의 통장에 새로운 거래 내역이 찍혔다.
“구, 구십오만….”
처음 워프했던 장소로 돌아가며, 레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나 역시 그 반응에 동의했다. 한화로 1억에 달하는 돈이니까.
‘미친 거지.’
아무리 목숨을 걸었대도 그렇지, 반나절 일한 보수로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아무리 물정을 몰라도 레오 역시 이만한 시간을 투입해 1억 가까이 벌기가 드문 걸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레오의 현실 감각에 대한 평가를 높이며 입을 열었다.
“이리 한 마리당 십만 펠을 잡아 놨던데.”
마리당 1,000만 원.
진짜 와서 잡을 줄 모르고 대충 책정한 건지, 이리 떼를 처리할 정도면 고급 인력이니 그 값을 쳐주는 건지 몰라도 그다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보수였다.
물론 위험 프리미엄을 붙였다면 말이 되는 가격이긴 하다.
오염된 생물은 원래 힘의 몇십, 몇백 배 이상을 내기에, 웬만한 수준이 아니면 죽을 각오로 맞서야 하니까.
“…예상 못 한 문제였지만 아예 손도 못 댈 일도 아니었고, 정말 크게 다친 곳 없이 잘 해결이 돼서 다행이네.”
레오가 마법이 깃든 통장을 꺼내 방금 찍힌 숫자를 바라봤다.
“지금 돌아가면 전에 골라 뒀던 물건에 기능 추가해서 바로 주문 넣을게. 가격 맞춰서 더 좋은 걸로 넣을 수 있겠어.”
“고맙다. 아, 거기서 반은 쓰지 말고 네 앞으로 남겨 둬. 아무리 그래도 혼자 가지기는 좀 그러니까.”
솔직히 별것 아닌 마수를 상상했을 때는 놈이 내게 전부 넘기겠다느니 해도 별생각이 안 들었지만, 본의 아니게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시키고 나니 혼자 이 모든 금액을 가지기가 조금 꺼려졌다.
그런 나와 달리 레오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음…. 나는 굳이 안 가져도 돼.”
“…….”
저 ‘굳이’는 뭐지. 별생각 없이 하는 말이겠지만 잔고가 0원이나 마찬가지인 내 입장에서는 헛웃음만 났다.
옆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들은 레오가 뒤늦게 해명을 시작했다.
“크흠… 네가 생각하는 그런 뜻이 아니고, 전부 쏟아부어서 하루빨리 코어를 안정시키면 좋지. 애초에 여긴 내가 먼저 따라가겠다고 한 거잖아. 처음부터 너한테 전부 넘길 거라고 말하기도 했고. 그리고 또 난 살 물건도 없고….”
“전부 알았으니까 그만 해명해라.”
“그래.”
레오가 적당한 자리를 잡아 장소 이동 마법을 걸었다.
공간은 순식간에 레오의 훈련장으로 변했다.
레오가 탁 트인 훈련장 천장을 한번 훑어보고는 훈련장 문을 툭 두드렸다.
“자, 이제 기숙사로 가 보자고. 오늘 저녁은 둘 다 쉬고 내일 저녁 때 보자.”
“그래, 오늘 고생 많았어. 빨리 들어가라.”
내 인사에 레오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펜던트를 잡아 꺼내다 말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레오.”
“응?”
“오늘 고마웠다.”
놈이 없었다면 혼자 이리 떼를 상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여러모로 느끼는 바였다. 시작하자마자 좋은 동료를 얻다니, 운이 좋았다.
그 말에 레오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할 말이야.”
* * *
‘뭐가 본인이 할 소리야?’
하여간 마법 광인답다.
결국 마법을 볼 수 있으니 이리 떼를 마주쳤어도 괜찮다는 말 아닌가.
열정이 보통 열정이 아니네. 주인공이 왜 10년 내내 옆에 끼고 다녔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책을 챙기고 방을 나섰다.
층을 벗어나기도 전에, 익숙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야, 오늘 북동쪽 숲에서 95만 펠 쓸어 간 사람 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