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4화 (14/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4)

내가 여전히 학교에서 좋지 않은 입지에 있음을 집안에 알리는 셈이다.

학교 교복은 가문에서 직접 주문을 넣어 만들기 때문에, 교복이 손상되면 그 소식을 집에 전달할 수밖에 없다.

이때 루카라면 옷이 망가진 사유는 전하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당연히 그렇게 할 거고. 괜히 집에서 나서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최소한의 눈치가 있다면 옷이 망가진 이유를 바로 알겠지.’

그렇다 해도 명예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스카니엔의 일원을 괴롭히는 행위가 가문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집에서 길길이 날뛸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는 실질적으로 그 일원에 속하지 않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아니까.

‘악마에 씐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치료하며 ―차도는 없지만―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좋은 학교에 넣어 준 덕’에 아스카니엔의 이미지가 더욱 좋아졌다는 것 하나면 설명이 끝나지.

한마디로, 제국의 모두가 루카와 아스카니엔을 별개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루카를 열심히 물고 뜯는 와중에도 ‘진짜’ 아스카니엔을 만난다면 고개부터 절로 숙일 놈들이 널리고 널렸다.

그러니 집안에서 나서는 등의 문제는 생각할 필요가 없고, 나는 오로지 형의 귀에 들어갈 소식만 생각하면 된다.

만약 이 일을 알게 된다면, 형은….

‘아주 입이 찢어져라 웃겠네.’

잠시 형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

나는 재킷을 벗어 던졌다.

“이야, 밟으라고 바닥에 던진 거지?”

콰앙―!

누군가 재킷을 콱 밟았다. 경박스러운 발길질에 흙먼지가 일었다.

“하하하하!”

“야, 확실하게 좀 해라.”

다른 학생들이 낄낄대며 환호했다.

‘…에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남의 옷을 발로 차고는 다 같이 진심을 다해 기뻐하는 꼴을 보고 있으니 내가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살짝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 일이 널리 퍼지지 않는 이상 가문에서 일절 나서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그 집에서 자란 루카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스카니엔과 루카를 따로 생각하기에 루카를 벌레 보듯 할 수는 있더라도, 그걸 넘어 물리적으로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여태 루카가 대놓고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이유는 루카가 가문의 이름을 달고 있는 이상 가문 차원에서 ‘명목상’ 처벌이나 압박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놈들은….’

단 한 수 뒤의 일도 내다보지 못하는 놈들이다.

이렇게 생각 없이 움직이는 놈들이 여태까지 루카를 때리지 않은 건 그것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근데 보니까 정작 이 새끼는 계속 반응이 없잖아.”

환호에 자신감을 입었는지, 놈이 성큼 다가와 내 멱살을 틀어쥐었다.

“시키는 대로 했으면 됐지, 이제 반응까지 해 주길 바라?”

“…뭔….”

멱살을 잡은 학생의 얼굴에 잠시 당황의 기색이 스쳤다.

아무리 봐도 자신들이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작년이었다면 이곳으로 불렀을 때부터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금방 세상을 뜰 것 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그냥 센 척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척을 유지할 수 있나?

멱살까지 쥐었으면 당연히 가식은 버리고 찌질한 본성을 드러낼 줄 알았다.

셔츠를 쥔 학생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내가 여기서 눈물이라도 짜야 좀 이긴 것 같겠지, 안 그래?”

“이 새끼….”

“그럼 평생 이길 일 없겠어.”

비웃음에 학생의 눈가가 와락 구겨졌다.

놈의 손이 허리춤의 완드로 옮겨갔다.

콰앙―!

“윽!”

“야, 소리는 안 나게 할 거였잖아!”

놈의 공격으로 나는 멀리 떨어진 벽에 부딪혔다.

주위 학생들이 마법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됐어, 여긴 멀어서 안 들려.”

놈이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침을 뱉고는 내 앞에 섰다.

어깨 통증에 이어 점점 머리가 울려 왔다.

나는 머리를 붙잡고 놈을 노려봤다.

‘정도껏 할 줄을 모르네.’

이 상황에 소리가 퍼질 것을 걱정하고 있는 걸 보니 나머지 놈들도 정상은 아니다.

그냥 마법을 쓸까. 어차피 신력으로 입을 닫게 할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

‘아냐.’

그건 최후의 수단이다.

나는 천천히 방향 감각을 찾아 몸을 일으켰다.

놈은 아까의 공격으로 나를 적당히 궁지에 몰았다고 여겼는지 처음의 느긋함을 되찾아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눈깔 색 봐라. 며칠 전에 너네 쪽에서 일 터진 것도 모르냐? 레오랑 그 파란 어쩌고 사냥꾼 좀 본받아라. 아, 아니다. 나부터 본받아, 새꺄.”

나는 귀를 의심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안타깝게도 다시 말해 주지는 않았다.

‘XX… 내가 뭘 들은 거지….’

주위의 학생들은 내 반응을 눈치채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 새끼 아무 말이나 막 내뱉네.”

“하하하, 너 본받으면 쟤 눈 썩어, XX.”

놈이 친구들의 말에 피식 웃더니 그들을 옆으로 밀어냈다.

“말하고 있잖아. 야, 이왕이면 행동도 좀 본받아서 갱생 좀 하고. 사실 우리 다 눈치 깠거든.”

“뭘.”

“너 레오나 뭐, 그런 애들처럼 되고 싶은 거잖아.”

‘음?’

대외적으로 레오와 나는 그 어떤 접점도 없다. 확실한 근거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자의적 판단에만 기댄 멍청한 추론인 것이다.

‘자기보다 서열이 높아지는 걸 원치 않았겠지.’

이미 집안만큼은 놈들을 한참 뛰어넘은 내가 정신을 차리고 똑바로 살면, 아무리 마법을 못 쓴다 해도 충분히 서열 변동의 여지가 생길 테니까.

결국 어떻게든 내가 ‘정상’의 범주에 드는 걸 막기 위해 이 사달이 난 거다.

“네가 정상적인 척이나 하려고 애쓰는 동안 레오는 다른 마법사랑 오지 가서 마귀 새끼들 때려잡고 다녔다고. 네가 정상인이 되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응?”

“야, 생각해 보니까 레오랑 얘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부터 그냥 급이 XX 안 맞잖아.”

“당연하지, 이 새낀 마법도 못 쓰는데.”

웃음소리가 귀를 흔들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손을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대체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순간만큼은 잘라 낸 긴 머리카락이 그리웠다. 나는 표정을 관리하지 못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눈살을 구겼다.

“…내가 주제에 안 맞는 짓을 하고 다니는 동안 걔는 사회에 공헌을 했다, 이 말이지.”

그 말에 한 학생이 안타깝다는 듯 눈썹을 일그러뜨리고는 슬쩍슬쩍 웃음을 터트렸다.

“제대로 알아들었네. 분수를 알아, 좀. 네가 불쌍해서 그래. 당연히 너도 레오처럼 되고 싶겠지만 넌 절대 못 따라간다고. 그냥 그 시간에….”

나는 귀찮음에 손을 휙 저었다.

“그래, 그냥 예전처럼 살란 말이잖아. 너희 말이 옳다 치자. 나는 레오만 한 능력이 없을지도 모르지.”

“모르는 게 아니고 그냥 없지.”

“뭐, 맞아. 그런데….”

나는 그 말에 미소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예전으로 돌아갈 일은 없지. 특히 너희에게 이런 말을 들으면 더더욱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래?”

그 말에 학생이 위협적인 얼굴을 지어 보이고는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섰다.

“파악이 안 되나 보네.”

“야, 참아. 여기 텅 비어서 잘 울리니까 소리는 안 나게 하라고.”

“아, 됐어. 이제 끝낼 거니까.”

놈이 다른 학생을 시켜 저 멀리 내려놓았던 제 가방을 가져오게 했다.

“네가 그렇게까지 변하고 싶다니까 어쩔 수 없네. 열심히 살아 봐. 대신… 우리가 뭐 하나만 돕자.”

“아니, 도움 안 될 것 같다.”

그 말에 뒤에 서 있던 한 학생이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 진짜 끝까지 골 때리네….”

“됐어. 루카스, 너도 알다시피 네 마법의 원동력은 피잖아?”

“그걸 또 믿어?”

“첫 주에 깔짝깔짝 마법을 써댔었지. 그 뒤로는 다시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하고…. 우리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알아? 이제 또 피를 안 처먹는 건지 다른 플레로마들하고 다르게 마법을 못 쓰잖아.”

“오지랖도 넓다.”

“아니, 오지랖이 아니라 같은 반 친구로서 걱정해 주는 거지.”

“필요 없어. 너희가 뭘 해도 나는 마법을 못 쓰니까.”

나는 적당히 마무리하려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놈의 주위에 서 있던 세 학생이 내 팔을 잡아챘다. 순식간에 중심이 넘어갔다.

“…!”

“필요가 없어? 웃기네. 또 모르지.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예상 밖의 상황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법으로 떨궈야 하나.’

사실 대책이 있으니, 마법을 쓴다고 아주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확 지르고 입이나 다물게 해?

아니. 웬만해서는 마법을 쓰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건 놈들이 뭘 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일단 적당히 패는 정도라면 그냥 기다려 봐야 한다. 그 이상이면 또 모르겠지만.

그때, 놈이 웃으며 가방에서 무언가 꺼내 들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게 뭔 말이야. 우리가 어떻게든 쓰게 해 준다니까. 그냥 너희 방식대로 도와주려는 거야. 그래도 허접한 마법 밖에 안 나오면 그게 네 운명이지, 뭐.”

놈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킬킬 웃었다. 손에는 물컹한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덩어리를 관찰했다.

“이게 뭐….”

그게 무엇인지 확인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쥐인지 토끼인지 확신하기 어려운 동물이 놈의 손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알아봤나 보네.”

나는 의문스러운 눈으로 동물을 바라봤다.

이걸 왜? 이 정체를 모르겠는 동물 좀 관찰해 보라고 가져온 건 아닐 테고.

그 순간, 머릿속에 말도 안 되는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쥐에게서 시선을 떼 천천히 놈에게로 옮겼다.

학생이 시선을 맞춰 앉고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축 늘어진 쥐를 눈앞에 들이밀었다.

팔다리를 붙든 이들이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금세 의식에서 멀어졌다.

“먹어.”

“…….”

“널 위해서 친절히 잡아 왔어. 마침 쥐새끼가 기숙사 복도에 돌아다니더라.”

제정신이 아니다. 어떻게 사람 상대로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보아하니 저 쥐 비슷한 동물은 오염된 상태도 아니었다. 그냥 정말로 돌아다니던 멀쩡한 동물을 잡아 온 듯했다.

모습은 깨끗했지만, 미동 하나 없었다. 아무리 지켜봐도 쥐는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죽인 건 아냐.”

놈이 시치미를 떼듯 어깨를 으쓱이고는 입꼬리를 쓱 올렸다.

“네가 죽여야지.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작년? 웃기네. 그게 너희가 퍼트린 헛소문인 건 잊었고?”

“어차피 맞잖아. 눈깔 색부터 바꾸고 말해.”

남의 마력을 흡수한다고 본인의 마력 색이 붉어진다는 주장은 그냥 플레로마의 헛소리일 뿐이다. 나는 싸늘한 눈으로 놈들을 노려봤다.

학생이 이제는 코앞까지 쥐를 들이밀었다.

“내가 너무 안타까워서 그래.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니까. 그래야 쓸데없이 기대하지 않아. 먼저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데 왜 그걸 모르지?”

"적당히 하지 그래."

“싫은데?”

놈이 순식간에 턱관절을 잡아챘다. 붙들린 팔에도 체중이 실렸다.

“왜, 네가 진짜로 마법을 못 쓴다는 걸 확인하게 될까 봐 무서워? 너무 걱정 마. 산 채로 먹으면 또 다를지도 모르지. 혹시 아냐? 갑자기 마법을 잘 쓰게 될지.”

“진짜 되면 재밌겠다.”

“읍…!”

‘미친 건가.’

이 새끼들은 정말로 이걸 먹일 생각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내 발길질에 학생 하나가 다리를 짓눌렀다. 그 와중에 동물의 체온이 입가의 피부로 전해졌다.

“마법 쓸 수 있게 도와준다니까? 그냥 그 소문부터 직접 확인해 보자고.”

학생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걸렸다.

그 순간, 조명을 켠 듯 붉은 섬광이 번쩍였다.

콰아아앙―!

“아악!”

“뭐야?!”

학생이 흙먼지가 튄 얼굴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일순 번뜩인 빛이 잔상으로 남아 시야가 분명치 않았다. 양팔을 붙들었던 학생들은 제 손에 튄 마법에 신음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벗어나고 잔뜩 흔들리는 시야를 고정하려 노력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진짜 플레로마 같은 놈들이 누군지 모르겠네. 누가 누굴 보고….”

“뭐야, 지금?!”

“마법을 쓰게 도와준다는 게 이렇게 도와준다는 거였냐? 확실히 효과는 있어, 그래….”

나는 비식비식 웃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과 흙을 한 움큼 쥐었다.

그러고는 쥐를 들고 있던 학생의 멱살을 잡아챘다.

“고개 들어. 내가 벌리기 전에 입도 열면 좋을 것 같네.”

“뭐, 뭐….”

학생이 내 얼굴과 손의 흙을 번갈아 보며 말을 더듬었다. 이 상황에 내가 왜 흙을 들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학생이 황급히 주위의 친구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는 놈의 시선을 따라 주위를 둘러보고는 학생의 턱을 으스러뜨릴 듯 눌렀다.

“빼지 말고. 오늘 안에 인간 되어서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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