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15화 (15/220)

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5)

나는 공포에 질린 눈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흙에서 태어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는 딱이지 않아? 어디 한번 흙 처먹고 인간성이나 찾아보자고.”

“으웁, 읍…!”

“잘하면 코어에 좋을 것 같기도 한데. 적어도 쥐보다는 나을걸. 그렇지?”

놈이 발버둥 치며 내 옷을 걷어찼다. 그와 동시에, 한쪽 시야에 섬광이 번뜩였다.

콰앙―!

팔을 들어 마법을 막아 냈다. 손에 쥐었던 흙이 공중에 흩뿌려졌다.

한 학생이 얼뜬 얼굴로 완드를 뻗은 채 소리쳤다.

“너… 너…. 마법 쓸 수 있었잖아!”

“잘못 봤어.”

나는 간단히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상대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이…!”

내가 다른 놈에게 대답하는 틈을 타, 멱살을 잡혔던 학생이 완드를 휘둘렀다.

콰앙―!

곧바로 장막을 둘러 마법을 반사했다. 레오와 훈련을 하고 나니 감정에 찬 공격은 공격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제 마법에 잘못 맞았는지, 학생이 눈을 붙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악! 야, 이 새끼 좀 어떻게 해 봐!”

“안 그래도 하고 있잖아!”

어디선가 한 학생이 소리를 질러 대답했다.

나는 공격을 튕겨 내고는 주위를 살펴, 바닥에 떨어진 동물을 안전한 구석에 옮겨 놓았다.

‘하고 있다’는 말 치고는 굉장히 막아 내기 쉬운 걸 보니, 역시 내 신력이 통할 수준인 게 분명했다.

같은 순간, 한 학생이 루카스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퍼부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전혀 안 통해.’

완드를 쥔 손에 식은땀이 났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와닿지 않았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공격을 쏟아붓는데도 장막은 도통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방어 범위를 벗어난 공격 역시 루카스가 비슷한 파워로 마법을 내보내 공격을 상쇄해 의미가 없었다.

파앙―

학생이 루카스의 공격을 맞고 뒤로 밀려났다.

루카스가 마법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통증도 잊혀졌다.

‘아니, 물론 마법이야 쓸 수 있지.’

수업에서 봤던 그 대여섯 살 수준의 마법은 작위가 하나라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다.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9할 9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당연히 이놈도 그런 부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멀쩡히 쓸 수 있었을 줄이야.’

아스카니엔은 마력 하나만 보면 제국 내에서 한 손에 꼽히는 가문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저놈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학교 역사상 유례없던 기부입학으로 이곳에 들어왔지.

‘설마 진짜로 피를 마셔서 마력을 얻기라도 한 건가….’

아무리 플레로마라도 마법을 쓰지 못했을 때는 그냥 한심하고 꺼림칙할 뿐이었다.

또 어떤 면에서는 그저 자기를 방어하려는 차원에서 플레로마인 척을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닐까 의심도 했다.

존재를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고 여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간의 모든 가정을 박살 냈다.

학생이 곳곳에서 쇄도하는 섬광 사이로 루카스의 얼굴을 바라봤다.

악을 쓰며 달려드는 제 친구들과 달리 루카스는 이 상황이 못마땅한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손목만 까딱이고 있었다.

화악―

루카스가 볼 옆으로 튄 장막 파편을 공기 중에 흩어 냈다. 세 명이 연속해서 마법을 쏘아대니 장막을 보강하고 있음에도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무리 실력이 후져도 세 명은 좀 무리긴 하네.’

시간 끌지 말고 슬슬 정리해야지.

루카스가 완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두 학생을 뒤로 밀쳐 내고는 남은 한 학생을 향해 완드를 가로로 살짝 내저었다.

“어?”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학생의 중심이 흔들렸다. 학생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축축한 흙이 시야의 반을 차지했고, 완드를 쥐었던 제 손은 루카스의 구속 마법에 걸려 있었다.

“…!”

“너무 쉽게 받아 주는 거 아니야? 이 정도는 쳐 낼 수 있어야지.”

루카스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진 학생을 보며 비웃었다. 학생이 악을 질렀다.

“야, 이 새끼 똑같이 해 줘!”

“이럴 땐 구속 마법부터 제거하는 게 우선이겠지….”

학생이 깨달은 얼굴로 또다시 악을 쓰려 하자, 루카스가 헛웃음을 짓고는 놈을 걷어찼다. 그러고는 곧바로 몸을 돌려 등 뒤로 닥쳐오는 공격을 막아 냈다.

‘왜 그렇게 서열질에 목을 매는지 알겠다.’

알맹이가 없으니까.

지난 10년간 운동이란 걸 하지 않은 데다 마법도 고작 2주 배운 자신이 선방하고 있는 것부터 이놈들은 글렀다. 아무리 마력 차이가 난다 해도 그렇지.

루카스가 남은 둘의 공격을 쳐 내며 학생들에게 성큼 다가갔다. 두 학생이 주춤거리며 소리쳤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냐?! 어?”

루카스가 말없이 놈의 어깨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 뒤집었다. 옆의 공격은 그저 마법으로 짓누르는 것만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뒤집힌 학생이 고개를 돌려 다급하게 소리쳤다.

“야, 야! 인간적으로! 이건 좀 너무한….”

“인간적으로?”

“아악!”

루카스가 놈의 팔을 꺾어 붙잡았다.

“벽에 처박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인간적으로 대해 달래?”

“난… 난 안 했어! 쟤가 다 했지!”

학생이 억울하다는 듯이 저 멀리 눈을 부여잡은 학생에게 고갯짓했다.

‘…가관이네….’

루카스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마법을 때려 박고는 남은 한 학생을 처리했다.

당장 옆에서 안 해도 될 말을 해 더 맞은 꼴을 봐서 그런지, 이번 놈은 별말이 없었다.

루카스가 학생 둘을 정리하고 몸을 일으켰다.

“후….”

방해가 될 학생들의 거동을 전부 막아 두었다. 루카스가 아까 제게 쥐를 먹이려 한 학생에게 다가갔다.

학생은 한 손에 완드를 꾹 쥐고 다른 손으로 눈을 누르고 있었다.

“완드 내놔.”

“시, 싫… 악!”

놈의 손목을 밟아 완드를 뽑아냈다. 놈이 손목을 부여잡고 엎어져 신음했다.

루카스가 완드를 돌려보며 입을 열었다.

“좋은 거 쓰네.”

“뭔….”

“하긴 실력이 없으면 돈이라도 발라야 여기 붙어 있지.”

기부 입학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는지 학생이 멍하니 루카스를 쳐다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너 이 새끼, 안 내놔?! 절도로 신고할 거야!”

“그걸 걱정하는 거야?”

루카스가 미소 지으며 놈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재밌었냐?”

“뭐, 뭐가….”

“아, 됐어. 내가 뭘 묻고 있어. 듣는 것보다 경험이 빠른데.”

루카스가 다시금 한 손에 흙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놈의 셔츠 깃을 잡아채 앞으로 끌어왔다.

“먹어.”

“…….”

주위에 엎어진 학생들이 잔뜩 얼어붙은 채 상황을 지켜봤다. 멱살이 잡힌 학생 역시 마찬가지로 멍한 얼굴이었다.

놈이 쳐다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않자 루카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난 너희 덕에 마법도 쓰고 좋았는데. 답례할 기회라도 좀 주지 그래.”

“…이걸 어떻게 먹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쥐는 말이 되고?”

“…….”

“아무렴 어때. 뭐든 살아 있는 쥐를 먹으라는 것보다는 현실적이지.”

루카스가 저 멀리 엎어져 있는 정체 모를 동물을 흘끗 보더니 흙을 내밀었다.

“여러 말 하게 할 거야?”

놈이 손을 떨며 루카스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야, 야. 우리 이러지 말고 좀….”

“좀?”

“이제 안 괴롭힐 테니까… 그만하자, 응?”

“싫은데.”

쾅―!

루카스가 아까 학생이 했던 대답을 따라 하며 그를 바닥에 꽂았다.

“헉, 크읍….”

“할 말이 많은데 솔직히 지금 와서 해 봤자 뭐가 해결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하나만 알고 있어.”

루카스가 또다시 학생의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오늘 있던 일 전부 신고할 거야. 내 마법은 그냥 정당방위로 들어갈 테고, 학교는 이 일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걸 걱정해 너희를 퇴학시키겠지.”

“…….”

“내가 여기서 더 말해야 해?”

“야, 역겨워도 눈 딱 감고 그냥 좀 해! XX, 우리도 나중에 저 새끼 신고하면 되잖아!”

저 멀리서 학생 하나가 버럭 소리쳤다.

그제야 놈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신고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작년처럼 뭘 해도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처럼 바뀌었을 줄은 몰랐으니까.

놈이 이 일을 신고한다면 정말 퇴학까지 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제대로 된 작위도 물려받을 수 없겠지.

등골이 서늘해졌다.

뭘 위해 이 학교에 입학했는데.

퇴학만큼은 안 될 일이었다.

‘…증거도 없는데 그냥 확 잡아떼 봐?’

안 된다.

학생의 눈이 주위의 다른 학생들에게 향했다.

저 중에서 변절자가 하나라도 나오면 끝이다. 퇴학만은 면하는 조건을 걸고 모든 걸 털어 버릴지도 모르지.

‘아니면 내가 먼저 그렇게 할까.’

또 문제가 있다.

그런 조건을 100% 받아준다는 보장이 없으니, 내가 먼저 협상을 시도하면 나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될 수 있다.

솔직히… 놈이 요구하는 바가 굉장히 비상식적인 일이니, 이 정도면 정당방위를 넘어설 것이다.

우리야 뭐, 입에 가져가긴 했지만, 이놈이 삼킨 것도 아니고, 그냥 장난이었다고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잘하면 반대로 뒤집어씌우는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리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냥 눈 딱 감고 한번 따라 주는 것 외에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기도 했다. 분명히 마법을 쓸 테니까.

루카스가 학생의 표정을 관찰하다 고개를 기울였다.

“머리 엄청 굴리네. 내가 직접 네 입에 털어 넣기 전에 그냥 스스로 먹지?”

루카스의 입꼬리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불길한 미소를 보던 학생이 전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루카스의 손으로 가져갔다.

주위 친구들이 탄식을 내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우….”

“아, XX 난 절대 못 하겠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할 때는 언제고!’

아무리 내가 전부 행동에 옮겼어도 그렇지 이걸 독박 쓰는 건 너무한 처사였다.

딱 지금 이 순간만 지나면 루카스부터 처리하고 저 새끼들도 다 한 대씩 패 주는 수밖에.

학생이 이를 뿌득 갈며 혀를 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카스가 미간을 구기며 웃었다.

“아니… 먹으란다고 진짜 먹네.”

“…!”

“뱉어. 더러워서 못 봐 주겠다.”

놈이 상황 파악 덜 된 얼굴로 루카스를 바라보자, 루카스가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눈을 가늘게 좁히며 물었다.

“삼킨 건 아니지? 아직 목 움직이는 건 못 본 것 같은데.”

“너… 너 아까는 먹….”

“당연히 장난이지. 인간적으로 이걸 어떻게 먹어? 오늘 먹은 것 전부 올라올 것 같은데… 너도 보통은 아니구나.”

루카스가 피식대다 놈의 얼뜬 표정을 보고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맛있었어? 먹어본 김에 무슨 맛인지나 좀 자세히 알려 줘라.”

“이 새끼…!”

학생이 주먹을 내질렀다. 잔뜩 흥분한 탓에 조준이 되지 않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지만, 루카스는 그저 눈을 살짝 찌푸리기만 했다.

빠악―!

“으….”

이놈은 진작 주먹부터 휘둘렀어야 했다.

되지도 않는 마법보다 이게 더 확실한데.

루카스가 눈을 찌푸리며 눈가를 매만졌다.

피부가 칼에 베인 듯 따가워지며 뜨끈한 열이 올랐다가, 순간 얼음주머니를 댄 것처럼 차게 식었다.

피부가 찢어졌을 것만 같은 통증이지만 아쉽게도 살은 의외로 쉽게 찢어지지 않으니 그 정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이 정도면 멍은 남겠지.’

잘못 맞았는지, 원체 힘이 세서 그런지 머리가 잔뜩 울렸다.

‘이거 위험하긴 하네.’

아니, 그래도 완전히 잘못 맞은 건 아닐 것이다. 이 위치에서 잘못 맞기까지 했으면 이미 뼈가 부러졌겠지.

루카스가 술에 취한 듯 빙글대는 시야에 눈을 꽉 감은 찰나, 놈이 루카스의 멱살을 틀어쥐고 팔을 뒤로 팽팽히 당겼다.

그때 한 학생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야! 때리지 마!”

그 고함에 학생이 멈칫했다.

그제야 루카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왜 멈춰? 더 해. 분 풀릴 때까지 패 봐.”

루카스가 웃음을 터트리며 눈을 부릅떴다.

더 패라고 말하는 상황이라니, 마법을 처음으로 제대로 썼던 날 레오가 했던 말이 생각나 계속해서 웃음이 났다.

학생이 멱살을 놓고 주춤대며 물러났다.

‘왜, 왜 처웃지?’

때리지 말라는 친구의 다급한 말이 다시금 재생됐다.

분명 이유가 있다.

맞아 놓고도 웃을 수 있는 놈이 대체 세상에 몇이나 되나. 아까 이 자식을 벽에 밀칠 때만 해도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 이번엔 왜….

‘…설마.’

문득 든 생각에 학생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뒤에서 학생이 또다시 있는 힘을 전부 짜내 소리쳤다.

“저 새끼 지금 맞아 놓고 나중에 피해자인 척하려고 저러는 거라고!”

“척이 아니라 진짜지.”

루카스가 계속해서 울리는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내가 신고 안 하겠다고 한 말까지 장난이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나오면 난 신고할 수밖에 없지 않나?”

“아, 아니… 루카스, 난….”

놈이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휘젓자 루카스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알아. 오해했겠지. 넌 그냥 네 성질머리 하나 못 참고 주먹부터 날린 거고. 그치?”

“…잠깐만, 그래. 진짜, 난 진짜로 실수였어. 알잖아!”

“잘 알지.”

학생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차올랐다.

“그럼…!”

“실수해 줘서 고맙다. 눈에 보이는 증거 하나쯤 있으면 좋지.”

학생의 표정이 보기 좋게 썩어 들어갔다.

루카스가 적당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놈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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