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6)
가관이다.
저런 재미있는 표정은 돈 주고도 못 볼 것이다.
나는 놈의 얼굴을 한껏 감상하다 시계를 흘끗 보았다.
이곳에 불려 왔을 때 새벽 세 시 반이었는데, 벌써 다섯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쯤에서 슬슬 정리해야겠네.’
나는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완드를 뽑아 놈의 이마를 겨냥했다.
그리고, 이제는 토가 나올 만큼 지겹게 암기했던 수식을 채워 넣으며 스펠을 입 밖에 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실제로 스펠을 꺼내 보기는 처음이었으나, 완벽히 정립된 신력 특성 덕분인지 효과는 확실했다.
내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학생이 갑자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주위를 훑다, 정신을 잃고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퍼억―!
“…!”
“뭐, 뭐 하는…!”
저 멀리 엎어져 있던 학생들이 소리쳤다. 나는 대답 대신 똑같은 마법을 쏘아 놈들을 잠재웠다.
뇌를 구성하는 마력에 작용시킨 마법으로, 발동 시점으로부터 일정 시간 전에 대한 지각 및 기억이 훼손된다.
삭제한 대상은 마법.
빛, 붉은색, 팔을 뻗는 동작, 완드 등 마법으로 인지될 수 있는 기억은 전부 삭제된다.
물론 이외에도 또 다른 기억이 삭제되었을 수 있다. 내 마법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분류되었다면, 아까 있었던 ‘충격적인’ 기억은 전부 삭제되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멍청한 놈들 더 멍청하게 만든 거 아닌지 모르겠네.’
나는 놈들을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또, 감정은 지우지 않았다.
앞으로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니 감정만큼은 선명해야 했다.
‘퇴학을 시켜도 좋겠지만….’
루카스 ‘아스카니엔’에 대한 폭력 사건으로 집에 소식이 들어간다면, 당연히 가문 차원에서 나설 수밖에 없다. 공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내 선에서 끝을 내야 한다.
“으….”
한 번에 셋의 정신을 조작했더니 내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이건 정신력을 올려야 해, 체력을 올려야 해….’
어쨌든 최대한 빨리 모든 스탯을 올려놓는 게 최선이겠다.
‘이참에 점수나 좀 볼까.’
이놈들을 어떤 쪽으로 써먹을지 계산을 좀 해 봐야겠다.
나는 상태창을 불러냈다.
루카스 르네 아스카니엔
칭호: ???의 사냥꾼
체력: -3.4 (+0.1) [-0.4]
정신력: -7.7 (+0.5)
마력: ?
기술: +1.015 [+4.015]
인상: -10
행운: -6.485 (+0.5)
특성: 여명777, 신력
나는 눈썹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만으로 정신력이 0.5점 올랐다.
‘괜찮은데.’
누가 또 시비 안 걸어 주나.
나는 입을 다시며 기술 점수를 확인했다.
마침 한 달 뒤면 중간고사다.
하지만 내 마법 실력을 빠르게 올려야 하는 지금, 중간고사는 사실상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마법뿐 아니라 수많은 교양 과목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렇다고 성적이 주는 이점을 포기할 수는 없어.’
학생에게 이보다 더 간편하고 쉬운 이미지 상승 방법이 없다. 성적만 높아져도 내 말의 신뢰도 자체가 달라진다.
아주 시기 좋게, 형도 내게 ‘성적을 평균까지는 올리면 좋을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쓸 만하겠는데.’
나는 미소 지으며 놈들을 내려다보았다.
“멋진 마법이네.”
그때,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건물 위에서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즉각적으로 시비를 걸어 달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분명 아까까지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새 쥐새끼처럼 나타난 놈이 있네. 어차피 앞으로 두세 달만 마법 못 쓰는 척을 하고 살 생각이니, 한두 명쯤은 알아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겠지만… 처리는 해 볼까.
내가 완드를 뽑아 들려 하자, 누군가 손을 내저으며 다급히 소리쳤다.
“잠깐만! 내려갈게.”
그가 옥상 난간을 짚더니, 다리에 마력을 실어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미안해. 내 소개부터 해야 했는데. 난 나르케 파르네세야. 교황령에서 왔고, 다음 주부터 교환학생으로 이 학교에 다니게 됐어.”
교환학생이라.
소설에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도 일어났지만 전개에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라 배제되었거나, 아니면 벌써부터 전개가 바뀌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지금으로서는 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후자일 가능성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 바로 기억을 지우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정보를 얻어 내어 보는 것이 우선이다.
나는 이 자리를 뜰 생각이 없어 보이는 교환학생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기다렸다.
“너는 루카스지? 만나서 반갑다. 네 이야기는 교황령에서부터 많이 들었어.”
“그래, 반갑다.”
나는 놈의 얼굴을 뜯어보며 호감도 창을 불러냈다.
나르케 파르네세
호감도 +7
‘호감도가 양수라고?’
나는 두 눈을 의심하고 또다시 호감도 창을 불러냈다. 숫자는 여전했다.
처음 보는 수치였다.
내 이야기를 교황령에서부터 많이 들었는데 저런 수치가 나온다?
‘뭘 들은 거야, 얘는….’
내가 말없이 놈의 얼굴만 보고 있자, 상대가 머쓱했는지 눈을 굴리다 말을 꺼냈다.
“안 그래도 화가 많이 났는데 네가 전부 잘 처리해 줘서 속이 다 시원하네. 고맙다. 이 친구들이 들고 왔던 동물, 내가 키우는 친구거든.”
“그러냐.”
나는 손에 받쳐 들고 있던 동물을 상대에게 넘겼다.
“어. 의지할 데가 얘밖에 없었는데 사라져서 엄청 놀랐어.”
놈이 동물의 심장께를 짚어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놈이 완드를 꺼내들었다.
“솔직히 아직도 괘씸한데… 그렇다고 학교에 소식을 전할 수는 없지.”
“왜?”
“네가 마법을 써서 방어했다는 걸 알리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다른 방법으로 좀 손을 봐 줄까 해서.”
놈이 미소 짓더니 완드를 가볍게 튕겼다. 그러더니 스펠을 입에 담아 쓰러진 놈들에게 또다시 마법을 걸어댔다.
‘음….’
이거 봐라.
‘마법을 써서 방어했다는 걸 알리면 안 된다’?
나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띠며 놈을 빤히 바라봤다.
그래, 혼자 호감도 양수 찍을 때부터 알아봤다.
경계할 이유가 충분하다.
저놈이 어떤 놈인지 미리 파악해 보자.
‘상태창.’
띠링―!
하지만, 그 순간 나타난 것은 상태창이 아니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글자를 읽어 나갔다.
〈 Chapter 3. 끊임없는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1) 〉
제안 1: 최적의 선택을 하세요. (0/1)
* Route 1 ― 〈 제안 2 〉
* Route 2 ― 〈 Chapter 4. 느려도 어떻게든 간다 〉
‘최적의 선택.’
또 나타났다.
지금으로서 최적의 선택이라 한다면….
저놈에 대한 내 태도를 결정하라는 뜻이겠지.
동료로 만들 것인지, 놈과의 접근을 최소화하고 경계 태세를 갖출 것인지.
대신, 예전과 달리 두 선택지 모두에 사망하는 경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어딜 선택해도 큰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놈의 눈을 바라보며 상태창을 불러냈다.
‘상태창.’
나르케 파르네세
호감도 +7
칭호: ?
체력: +8
정신력: +9
마력: +10
기술: +7
인상: ?
행운: +4
특성: 신력, 예지(Lv.1)*, 통찰(Lv.2)*
‘…허.’
레오의 상태창을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이 나이에 이 정도 수치가 가능한가.
나는 스탯을 빠르게 훑고 특성을 살폈다.
‘특성에 통찰.’
통찰 Lv.2
― 다음 레벨까지 3.0 포인트
*신의 가호 적용
내가 마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건 이걸로 알아낸 건가.
쓸 만한 능력이다.
아니, 고작 쓸 만한 수준이라고 하긴 어렵지.
여건만 된다면 가지고 싶은 능력이다.
거기에 예지력이라면….
예지 Lv.1
― 다음 레벨까지 2.0 포인트
*신의 가호 적용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최적의 선택을 하라고….
당연히 동료로 삼아야지.
동료라고 해서 경계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원래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두어야 하는 법이다.
띠링―!
축하합니다!
‘제안 1: 최적의 선택을 하세요.’ 완료!
‘Route 1 — 〈 제안 2 〉’를 확정합니다.
나는 곧바로 여명 창을 불러냈다.
여명777
― 최종 결말 ‘Chapter X. 사망’까지 757일 5시간 1분 35초
― 변경 가능성: 6.4% (+1.0%p)
이번 결정으로 생존 가능성이 1%p 올랐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5.3이었는데… 전에 이미 0.1 퍼센트포인트 증가했나 보네.
어쨌든, 이번 결정도 내게 불리한 결정이 아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나 지켜보자고.
“이 정도면 됐겠지.”
마침 놈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완드를 다시 허리춤에 넣었다.
“뭐 했냐?”
“그냥, 네가 썼던 신력 비슷한 거. 딱히 티는 안 날 거야.”
놈이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이놈도 정신 조작을 했다는 말이다.
그래, 티는 안 나겠지.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는 놈을 보며 따라 웃었다. 그러다 놈이 학생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야 뭐, 이 정도로 끝내도 괜찮지만… 보니까 넌 좀 맞은 것 같은데, 이대로 없던 일로 넘길 생각이야?”
“아니.”
나는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놈들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어떻게 굴러들어온 기회인데, 잘 써먹어 줘야지.
* * *
“아….”
듣기 좋은 새 소리가 저 멀리 학생들의 대화 소리와 조화롭게 섞였다. 피부에 따스한 빛이 잔뜩 내려앉고, 선선한 바람이 부드럽게 온몸을 스쳤다.
학생은 잠시 뜨였던 눈을 다시 감았다. 깨는 것이 아쉬울 만큼 잠에 푹 빠져들기 좋은 상황이었다.
‘으음… 음?’
바람? 온몸을 스쳐?
학생이 퍼뜩 눈을 떴다.
“…!”
지금 누워 있는 곳은 루카스를 불러낸 공터였다.
학생이 벌떡 일어나 제 친구들에게 발길질했다.
“야! 일어나!”
“악!”
“으으….”
“어떻게 된 거야, 아까?!”
루카스를 골려 주려 불러냈는데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머릿속이 멍했다.
다행히 그 와중에도 단편적인 장면들이 몇 떠오르기는 했다.
‘…흙을 먹었던 것 같은데.’
아니겠지?
학생이 죽어 가는 얼굴로 헛구역질했다.
그냥 혼자 미친 생각을 한 줄 알았더니만, 정말로 입술 안쪽에서 짠맛이 나 더더욱 속이 뒤집혔다.
‘…아니겠지. 진짜.’
그리고… 루카스가 멱살을 잡은 것이 기억난다.
친구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던 것도.
이상으로 떠올리려 하자, 머리 회로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결론은 분명했다.
흐릿하게나마 기억나는 것을 종합해 보았을 때 이건….
‘우리가 역으로 당한 건가…?’
루카스를 떠올릴 때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밀려든다.
왜인지 놈과 더 이상 엮여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아니,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몰라도 시간을 돌려서 놈을 불러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떻게든 루카스의 입을 닫아야만 한다는 필사적인 다짐까지 들었다.
이 정도면… 정말로 우리가 루카스에게 쪽도 못 써보고 곧바로 제압당한 게 분명하다.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던 한 친구가 영혼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 마법도 못 쓰는 놈한테 진 거야?”
“…….”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럴… 그럴 리가 없어. 일반인 하나가 마법사 셋을 어떻게 이겨. 어떻게 됐었지? 야, 너 똑똑하잖아. 뭔 일이 있었는지 좀 떠올려 봐.”
“뭘 똑똑해?! 작년에 반에서 36등 한 거 몰라?”
“우리보단 낫잖아. 난 기억나는 게 없다고!”
말싸움을 하고 있자 다른 학생이 손을 내저었다.
“닥쳐 봐. 이건 성적 문제가 아니잖아. 일단 우리가 루카스를 불러냈어. 그리고 네가 걔를 벽에 밀쳤고, 음, 그 쥐새끼를 먹이려고 했지. 그 뒤로….”
“…….”
“눈을 떠 보니까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 얘 교복 뒤에 발자국이 있는 걸로 봐서 루카스한테 밟힌 것 같기도 한데….”
학생들의 얼굴이 더더욱 어두워졌다.
“그놈이 마법을 쓴 기억은 확실히 없어. 그렇지?”
“썼으면 당연히 기억하고 있겠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루카스면, 더더욱.”
“그치? 그리고… 그 뒤로는 아마 기절한 것 같아. 기억이 없어.”
정적이 이어졌다.
힘없이 바닥에 앉아 있던 학생 하나가 입을 열었다.
“우리 마법이 그렇게 형편없었나? 일반인이 주먹으로 뚫을 만큼?”
그 누구도 차마 아니란 말을 하지 못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턱걸이로 입학한 학생들이었으니, 실력을 걸고넘어진다면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때 한 학생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 우리가 걜 때린 건 아니잖아. 잊었어? 우린 그냥 겁 좀 주려는 거였지, 때리려고 부른 게 아니었어.”
그 말에, 학생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다른 학생이 그를 닦달했다.
“알아듣게 말해.”
“우리가 뭘 했는데? 쪽지도 두루뭉술하게 썼고, 진짜로 뭘 먹인 것도 아니고, 우리가 걜 불렀다는 걸 아는 놈도 그 1학년 말곤 없잖아. 심지어 뭘 하기도 전에 바로 뒤돌아서 가 버렸지.”
학생이 제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는 친구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한마디로 루카스가 신고해도 우리가 처벌받을 증거가 없다는 말이야. 벌써부터 떨 필요 없어.”
“…좋아. 맞는 말이네. 그럼 우리가 먼저 루카스를 신고하는 건? 잘만 하면 뒤집을 수 있을 텐데.”
“아니, 위험이 커. 등에 남은 발자국 말고 다른 증거가 없잖아. 그리고 우리도 그놈 재킷을 밟았으니 아예 무결하다고 할 수는 없어. 입을 닫는 게 최선이야.”
그리고, 신고한다고 해도 꿀릴 것은 없다.
그놈이 우릴 전부 기절시키고 혼자 자리를 뜬 걸 생각해 보면, 놈도 결코 당당할 수만은 없다.
우리가 먼저 꺼내기엔 위험한 패지만, 그쪽이 우리를 건드린다면 쓸 만한 패다.
마법도 제대로 못 쓰는 놈에게 당한 셈이니 명예는 박살 나겠지. 하지만 지금 명예가 중요한가?
퇴학만 면하면 된다.
퇴학만.
학생이 필사적으로 미소 지었다.
* * *
‘X… X 됐다.’
퇴학도 못 면하게 생겼다.
학생이 제 눈에 들어온 광경에 속으로 경악하며 눈을 굴렸다.
“뭐야?”
교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레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혼잣말했다. 입 밖에 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야, 안 때렸다며…!”
옆자리 앉은 친구가 다급하게 귓속말했다.
“버려두고 왔는데 알아서 일어나서 잘 왔네.”
루카스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옆을 스쳐 지나가며 비웃음을 흘렸다.
학생은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애써 루카스의 시선을 외면했다.
루카스의 얼굴에 멍이 들어 있었다. 의료용 테이프로 가려 두긴 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주먹이 오갔다는 건 뻔히 알 수 있었다.
당장 어제 기억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놈이 왜 어디서 처맞고 온 비주얼을 하고 있는가?
누가 저렇게 만들었을지는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누가 보아도 명확한 학교 폭력의 증거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저, 저, 저렇게 티 나게 때렸다고? 우리가? 미친 거 아냐….’
“야.”
자리에 가방을 던져두고 다시 온 루카스가 어깨를 잡았다.
시야가 미친 듯이 떨렸다. 학생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던 루카스가 눈이 마주치자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